< #222. 도움받을 용기 >
쿠웅!
정남수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아으아윽!”
남수는 다른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종아리에 지끈거리는 통증을 이 악물고 참아내며 일어났다.
그의 시선 끝에는 까만 양복에 무시무시한 인상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이런 씹··· 아,아저씨는 뭐에요?”
그의 물음에 황장수는 황지구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대답했다.
“나? 얘 삼촌”
“···예?”
*
며칠 전.
황지구는 깨톡으로 이상한 연락을 받았다.
-(알수없음): 학폭위 제안 2회, 경찰 3회, 부모님 찬스 1회 사용한 경일고등학교 2학년2반 황지구 학생 맞습니까?
“뭐,뭐야? 미친사람인가?”
황지구는 읽씹을 하고 무시했지만, 계속 그 연락이 신경쓰였다.
‘내가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발버둥 쳤던 횟수다. 어떻게 알았지···?’
-(알수없음): ‘도움’을 드리려고 연락하였습니다. 도움받을 ‘용기’가 생긴다면 연락하십시오.
황지구는 그 대화방을 계속 바라보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서도, 잠을 자기 전까지도,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 답장했다.
-황지구: 누구세요?
황지구는 정남수 패거리 중 누군가가 장난을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다.
새벽인데도 곧바로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알수없음): ‘도움’을 성공적으로 요청하셨습니다. 곧 저희 측 대원의 접촉이 있을 겁니다. 인상은 사납고 더러우며, 덩치는 황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황지구: 그게 무슨 소리··· 혹시 남수야?
그렇게 연락을 받은 게 바로 어제였다.
황지구는 지금 눈 앞에 황소같은 비주얼에 사납고 더러운 인상의 아저씨가 바로 그 대화에서 말한 ‘대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황지구는 황장수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지구는 그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물었다.
“아저씨 대체 누구에요? 나 왜 도와줘요?”
“나도 뭘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 많은 정의로운 사람이 손이 모자라서 날 보냈다고 생각해라, 왜, 싫어?”
“그,그건 아니지만··· 근데 어디까지 따라오실 거에요?”
“나? 니네 집까지.”
“에? 그, 저희 집은 좀···”
“풍성아파트 가동 403호, 니네 집 아니야?”
지구는 자신의 집 주소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황장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집을 알지 못하게 떼어놓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도와주시면··· 뭐 댓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돈 없는데···”
장수는 손사래를 쳤다.
“아냐아냐, 됐어, 아까 말했잖아, 돈 많은 정의로운 사람이 운영한다고, 너한테 코찔찔이 돈은 안 받아.”
“코찔찔이···”
“이 삼촌이 오늘 너랑 할 얘기가 많거든, 부모님은··· 이따 밤에 오시지?”
“네?! 네, 네···”
지구의 아버지는 일 중에 허리를 다쳐 입원해 있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신다. 밤 8시에 퇴근이지만 보통 9시 넘어서 오신다.
지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황장수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철저한 아군인지 적군인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장수가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나도 나같은 놈 만나면 무서울 거야, 집 말고 니네 집 근처 카페 가서 얘기하자.”
네···”
황장수는 황지구와 함께 카페에 가서, 아지트에서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계획을 설명했다.
“···알겠어?”
황지구는 황당한 얼굴로 황장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요? 평소처럼?”
“응, 네가 할 건 아무것도 없어.”
“···그게 대체···”
팍 팍!
장수는 지구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 삼촌만 믿어, 아 그리고, 오늘부터 2주 동안은 출퇴근, 아니 등하교 삼촌이랑 같이 하는 거다.”
“아···네.”
지구는 그거는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봐서는 뭔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가끔 하굣길에도 정남수 패거리가 찾아와 괴롭힐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 찾아왔을 때는 정말 최악이었다. 마치 마지막 보루를 침범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아저씨와 함께한다면 비록 2주밖에 안 되지만 그 기간동안에는 그런 일로부터 해방된다니 기분이 좋았다.
*
다음날.
퍽!
황지구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정남수 패거리 중 한 명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아윽”
퍽! 퍼억!
연이어 다른 놈들에게도 맞고, 마지막에 풀스윙으로 정남수에게 맞았다.
남수는 지구를 교실 끝까지 밀어붙이고는 얼굴을 가까이 하며 물었다.
“황지구, 너 뭐냐?”
“어, 뭐가···”
“어제 그거 뭐냐고, 니네 삼촌 맞아?”
지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구의 대답에 남수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지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에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다.
“씨발··· 갑자기 웬 삼촌이냐? 삼촌한테 일렀어? 내가 괴롭힌다고?”
지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구는 어제 황장수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가만히 평소처럼 지내라는 주문 외에 딱 하나가 더 있었다.
-뭐만 하면 삼촌한테 이른다고 해, 그럼 덜 맞을 거야.
지구 생각에는 더 맞을 것 같았지만, 막상 상황이 들이닥치니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의외의 대답에 남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와 씨팔 미치겠네, 일렀어? 뭐 어쩌게, 어제처럼 나 패게 하려고? 어?
남수는 흥분하여 교복바지 한쪽을 거칠게 걷어 피멍이 든 종아리를 보여주었다.
“이거 보이냐? 보여? 존나 아팠어, 뭐 삼촌한테 일러서 복수? 좃까시고, 니네 삼촌 깜빵 갈 준비 하라고 해라.”
남수의 협박에 지구는 황장수가 걱정되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또 다시 판치기 시간이 왔다.
“야야 판치기하자 판치기, 모여라!”
당연하게도 황지구의 자리로 모였고, 지구는 이를 악물고 가만히 있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 나 판치기··· 안 해.”
“뭐? 왜, 같이 하자, 돈 없어? 내가 빌려줄게.”
“아니, 나는··· 판치기 하기 싫어서···”
드르륵-
정남수가 의자를 옆으로 치우고 지구에게 가까이 다가와, 지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지구가 말이 많아졌네.”
남수는 돌연 지구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뒤로 확 당기며 말했다.
“왜 싫은데 이 씨발롬아? 하루 사이에 존나 용감해졌다 황지구? 왜, 이것도 삼촌한테 이르지 그래?”
지구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린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 순간 정남수의 눈알이 획 돌아갔다. 그는 손을 추켜올려 황지구의 얼굴에 내리쳤다.
짜악 짜악! 쩌억!
“일러! 일러 이 씨발럼아!!”
남수는 지구를 점심시간 종이 칠 때까지 때렸다. 같은 반 학생들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바라볼 뿐, 다른 반 학생들까지 몰려와서 구경만 했다.
하굣길.
학교 정문에서 황장수가 황지구를 맞이했다.
“어허, 꽤 맞았구만, 코피도 났어? 났네 났어.”
“맞을 걸 알았다는 듯이 말하시네요.”
황장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놈들 특징이지, 지가 제일 똑똑한 줄 아는 놈들, 똑똑하게 잘 괴롭히면서 길들인 줄 알았는데, 꿈틀하니까 열받는 거지.”
“···저 이제 삼촌한테 이른다고 안 할 거에요.”
“뭐? 왜, 계속 해야지.”
지구는 경멸어린 표정으로 황장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아저씨는 맞아봤어요? 그것도 전교생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질질 짜면서? 진짜 지옥같아요. 맞아서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
“죽여줄까?”
“···네?”
지구는 화가 나서 황장수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지 못했다가, 저 얼굴에 저런 멘트를 치니 찬 물을 끼얹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수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악마처럼 속삭였다.
“한두 명 감쪽같이 없애는 건 일도 아닌데, 죽여줄까?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아,아니, 그건···”
마음같아서는 백 번이고 죽여달라고 하고 싶지만, 덜컥 겁이 나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때 장수가 어깨를 툭 치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아저씨 닭 모가지도 못 비트는 초식남이야, 누구 죽이고 그런 거 절대 못해.”
“···정말요?”
“크흠, 그래도 이렇게 학교 끝나고 놈들 마주칠 일은 없으니까 좋지?”
“···네.”
지구가 고개를 푹 숙였다. 곧 돌아올 내일이 두렵다.
지구의 예상대로 한 번 꿈틀댔던 댓가는 컸다. 전보다 더 대놓고 괴롭히는 것이다.
지구는 이제는 삼촌에게 이른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체육시간.
“야야 간다 간다! 싸커킥!”
퍽!!
“아윽!”
황지구는 골대 앞에 서 있다. 정남수와 패거리가 그 맞은편에 서서 축구공을 찬다.
패널트킥 절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축구공을 강하게 차며 정남수의 몸을 맞췄다.
“정남수, 막아, 막아야지! 피하지 말고! 시발아!”
“어,어 알았어.”
그렇게 축구공으로 스무 대가 넘게 맞을 때쯤, 학교 체육복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어느새 그곳에 나타났다. 체육복이 작아 팔목과 발목이 훤히 드러나 있다.
“나도 나도 찰래!”
뻥-! 퍼억!
안 맞는 체육복을 입은 거인, 황장수가 달려와 정남수 패거리를 향해 축구공을 찼다.
한 명이 맞고 뒤로 튕겨나가고, 장수는 다시 볼을 가져와 정남수 패거리에게 찼다.
“아이 시팔! 아저씨 뭐에요!”
“어? 왜 이렇게 놀고 있던 거 아니야? 나도 같이 놀자!”
“아 진짜, 미친 아저씨인가.”
그 말에 장수가 돌연 정색을 하며 정남수에게 다가갔다. 남수는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너, 나 신고한다며 안 했더라?”
“뭐, 오,오늘 할 거에요.”
장수는 검지를 들어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봤자 시간낭비야, 시시티비도 없고, 목격자는 니가 먼저 내 조카 차는 거 다 봤고, 날 신고하려면 너부터 신고당해야 할 거야, 그럴 깡이 있어?”
남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가만히 있다가, 장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저씨 동네 양아치죠.”
“뭐?”
“그러니까 할 일 없이 저새끼 뒤치닥거리나 하지.”
“허허, 그래, 양아치다. 왜?”
“아저씨 사람 잘못 건드렸다고, 가자.”
남수는 장수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뒤돌아섰다. 그의 패거리들이 장수를 힐끔힐끔 보며 남수의 뒤를 쫓았다.
“와 씹, 정남수 존나 멋있다.”
“저 아저씨 뭐냐? 피지컬 뒤지는데? 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오줌 쌀 거 같은데, 남수 미쳤다.”
“근육돼지 앞에서도 쫄지 않는 정남수 클라스!”
남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지구는 걱정스런 눈으로 남수 패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황장수의 옷자락을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아저씨 이렇게 수업중에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이게 수업이냐? 선생은 어딜 쳐 간 거야?”
“화장실 가신다더니··· 안 오시네요.”
“참내,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나 간다. 이따 보자, 아 맞아 이거.”
장수는 그 자리에서 체육복을 벗어 지구에게 넘겼다. 체육복 안에 꾸겨입었던 트레이닝복이 드러났다.
“이거 니네 반 한성인가 한친가 걔한테 줘, 간다.”
“후···”
지구는 그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굣길.
여지없이 장수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정남수를 만났다.
“황지구, 아저씨···”
남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풀죽은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뭐야?”
“어, 남,남수야···”
남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후, 내가 좀 사과를 하고 싶은데, 우리 애들 있지? 걔네도 사과를 하고 싶대서··· 저기 지엠 사거리쪽에서 기다리고 있거든?”
“···갑자기?”
지구는 당황스러워 되물었지만, 남수는 여전히 낯선 표정으로 지구의 손목을 붙잡았다.
“같이 가자, 진짜 이상한 거 아니야, 아저씨도 같이 가면 되잖아.”
“어?”
지구가 황장수를 봤고, 장수는 자비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고, 얼른 갑시다.”
남수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에 각목이나 야구배트를 든 무리와 마주쳤다. 어느새 뒤에도 있다. 최소 열 다섯 명 이상.
남수의 표정이 싹 바뀐다.
“어서와, 니네 저 양아치 삼촌이랑 같이 파묻힐 무덤에.”
그 돌변한 모습에 장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