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무서운 삼촌 >
김선태는 눈을 껌뻑껌뻑거렸다.
‘좋은 건가?’
문자로만 보면 분명 나쁜 것이지만, 눈 앞에 있는 두 여인을 빛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녀들에게 어떻게든 귀속된다는 뜻이 선태의 마음에 혼란을 주었다.
턱
선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루가 돌연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일단 좀 맞아야지, 네가 대장인데, 네가 제일 많이 쳐맞아야지.”
“에? 아니 눈-”
뻑!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하루의 무릎이 얼굴을 가격했고, 코뼈가 으스러지고 얼굴이 함몰되는 고통이 밀려왔다.
퍽 퍽 퍽!
하루는 그가 죽을 정도로 아프지만 죽지 않을 곳만 골라서 팼다. 나중에는 안서은이 손을 들어 눈을 가릴 정도였다.
“끄으으윽.”
김선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기절하지 않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흐으, 흐으, 오,오른···.”
“이제부터 왼손잡이 해.”
으드득-
하루는 곧바로 그의 오른손 손등이 팔목에 완전히 닿게 확 꺾고 비틀었다.
“크아아악!!”
하루는 그의 입을 막고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 자주 보자, 우리 호구.”
“흡, 우읍.”
‘우리라고 했다···.’
등골에 소름이 와드득 돋았다.
김선태는 우리라는 말이 이렇게 섬뜩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 * *
경찰인 신해수를 부르지 않는 것은 안서은의 의견이었다.
비록 선자리 이후에 한가지가 어긋나기는 했지만, 대성그룹과 송양그룹이 여러가지로 엮인 우호적인 관계였고, 두 회사의 회장도 돈독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둘째아들은 이렇게 망나니지만, 대외적으로 알고 있는 송양그룹 회장과 오너일가 대부분은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
그래서 안서은은 김선태의 목줄을 쥐고, 천천히 송양그룹을 알아갈 예정이었다.
“괜찮소?”
“아, 네, 네.”
서은은 황장수가 대뜸 다가와 묻자 상념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와 어려서부터 친구라더니, 몸과 얼굴만 닮은 줄 알았는데 무지막지한 실력까지 닮아서 놀랐다.
서은이 황장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붉어진 볼을 매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소?”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그리고 오늘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은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자 황장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허허 웃었다.
“내가 뭐 한 게 있소, 하루씨가 다 했지.”
안서은의 것까지 핫초코 두 잔을 타온 하루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조폭아저씨, 말투가 왜 그렇습니까?”
“내 말투가 뭐가 어때서, 그리고 나 이제 조폭 아니라니까, 깡패도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고.”
황장수는 손사래까지 치며 서은의 눈치를 살폈다. 서은은 그저 하루가 갖다준 핫초코를 마시며 눈웃음을 칠 뿐이다.
하루는 황장수가 욱하여 반발하는 것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호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좋겠습니까?”
서은은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싸며 진지하게 말했다.
“돈을 뜯어내는 건 불법이니까, 일단 좋은 아이디어 나오기 전까지는 틈날 때마다 패는 거 어떨까요?”
“음, 괜찮은 방법입니다. 한 주에 손가락 하나씩 부러트리는 것도···.”
“손가락은 티가 잘 나니까 발가락부터 어떨까요?”
“일리있는 의견입니다. 발은 씻고 오라고 해야겠습니다.”
황장수는 두 여인이 머리를 맞대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게 모두 진심이라는 게 더 무서웠다.
* * *
신해수의 집.
삐빅, 철컥-
해수가 들어오자 하루가 오랜만에 후다닥 마중을 나왔다.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 없었지?”
“······.”
해수는 평소처럼 평범한 안부를 전했는데, 하루가 그대로 얼어붙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해수는 그녀를 지나쳐 손을 닦으러 욕실로 가다가 말고 돌아섰다. 그녀가 여전히 가만히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뭐야, 뭔 일 있었어?”
“아,아닙니다.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하루가 로봇처럼 딱딱 끊어서 어색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해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올 뻔했다.
예전에 위장잠입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음, 그래.”
해수가 별말없이 넘어가며 욕실로 들어가자, 욕실 문이 닫히고 나서 하루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평소에 연기 연습을 해두어서 다행이다.”
긴장이 좀 풀린 하루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엑시트 모바일에 접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가 나와서 주방으로 가며 물었다.
“오늘 안서은씨랑은 뭐했어.”
“엡?!”
해수의 물음에 하루는 토끼처럼 펄쩍 뛰며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먼저 아지트에 안서은 데리고 와도 되냐고 물었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해수의 평소 말투가 취조하는 톤과 동일하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 그, 그건!”
딸꾹
딸꾹질까지 한다. 해수는 양파를 꺼내어 도마에 놓고, 자르려고 칼을 들었다가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그 상태로 뒤돌아서 하루를 바라보며 물었다.
“비밀이야?”
식칼이 마체테로 보이게 만드는 얼굴, 취조하는 어투,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물음.
하루는 시선을 피하며 발을 꼬물락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마,말씀드리겠습니다.”
“아냐, 안 해도 돼.”
탁!
해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칼로 양파를 내리쳤다. 양파의 끝이 깔끔하게 잘린다.
그 자비없는 칼질에 하루가 어깨를 떨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루는 제 발이 저려 해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상세히 털어놓았고, 해수는 당장 김선태를 찢어죽이겠다며 눈에 불을 켰다.
“···그놈의 거시기를 뽑아버려야겠다.”
“아하? 역시 해수님···!”
하루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황을 들은 해수는, 서은과 하루, 황장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기소하지는 않았다.
“하루야,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최대한 네 뜻을 따를 테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나한테 알려야 한다. 반드시.”
하루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반드시···.”
* * *
휴일, 아지트.
신해수는 오랜만에 아지트로 출근하였고, 정영수가 탐색으로 알아낸 범죄 정보를 열심히 브리핑했다.
“···이 학생들이 이렇게 교묘하게 괴롭히고 있어요. 대놓고 때리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돈을 뜯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따돌리는 것도 아닌데··· 은근하게.”
영수는 안경테를 올리며 한 번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저도 이거 당해봐서 아는데··· 이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거든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더 미쳐요. 그리고 대부분, ‘아 얘네도 내 친구고 장난이 조금 짓궂은 거구나.’라면서 자신과 합의를 해요.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인데.”
“음··· 어디라고 했지.”
“경일고 2학년, 피해학생은 황지구, sos로 판단되는 신호도 세 번 이상 보냈었고요. 지금까지 보기로 가해 학생은 네 명이 주축이네요.”
“경일고···.”
해수에게도 익숙한, 경찰이 나서도 처벌이 아주 애매한 건으로, 아주 간사한 수법이다.
해수가 고민에 잠겨있자 영수가 저 구석에서 바벨을 들고 있는 황장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황장수 아저씨 보내요.”
가만히 운동을 하고 있던 장수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뭐? 뭐, 나 왜, 뭐.”
해수는 턱을 매만지며 황장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마침 같은 황씨네.”
“맞아요. 피해자한테 동의 구하고, 삼촌이라면서 2주만 등하굣길 같이 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거에요.”
“들었지, 장수야.”
장수는 인상을 쓰며 정영수에게 다가왔다. 그 살인적인 인상에 영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해수는 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장수는 아주 적절한 인선이었다.
“2주? 2주가 뭐 지나가는 개 이름이야? 경일고 그리고 여기서 두 시간 거리 아니야? 나랑 장난해? 영수야, 형이랑 운동하고 싶어?”
해수는 점점 영수에게 위협적인 얼굴을 가까이 하는 황장수의 고개를 자신에게 돌리고, 눈을 마주했다.
“출장비 줄게, 오늘부터 바로 가.”
“얼마.”
“일당백.”
“오케이, 콜.”
황장수의 얼굴이 금세 다리미질 한 듯이 펴졌다. 그렇게 해수는 일당백을 성공적으로 경일고로 보냈다.
* * *
경일고 2학년2반.
황지구는 다리를 덜덜 떨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이 교실에서 제발 자신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탁!
“야! 황지구!!”
한 남학생이 지구의 두 어깨를 쎄게 내리치며 반갑게 불렀다.
지구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어, 어 남수야.”
“가위바위 보!”
남수는 다짜고짜 바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지구는 반사적으로 보를 냈다. 남수는 주먹을 냈다.
“아, 이겼네, 야 때려 때려.”
남수가 자신의 볼을 들이밀며 때리라고 강요했다. 지구가 손을 뻗어 살짝 치자, 그가 지구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씨 쎄게 쳐야 재밌지, 나 괜찮다니까? 야야, 이렇게!”
짝-
그렇게 지구의 손목을 휘둘러 꽤 쎄게 따귀를 때리게 하고는 다시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번에는 지구가 가위, 남수가 주먹이다.
“아···.”
“아싸!”
지구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생각하며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이, 남수가 가차없이 지구의 따귀를 갈겼다.
쩌억!
경쾌한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며 지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와우 씨팔 정남수!! 불꽃싸다구!”
“소리 존나 찰지네.”
“야 살살 좀 쳐라, 지구 아프게.”
남수는 히죽거리다가 갑자기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구의 얼굴을 양손을 붙잡았다.
“아아, 지구야 괜찮아? 내가 너무 쎄게 때렸지? 미안.”
“아, 아니야, 괘, 괜찮아.”
“괜찮아? 오케이 우리 지구 남잔데? 한 판 더!”
짝 짜악! 짝!!
그렇게 쉬는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에서 따귀 맞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양쪽 볼이 퉁퉁 붓고 피까지 고여있었지만, 선생님은 ‘장난 좀 심하게 치지 마라’ 라는 말 뿐이었다.
그들의 괴롭힘은 폭력 뿐만이 아니었다.
“야야야 모여 모여, 판치기 합시다!”
판치기는 항상 지구의 자리에서 하는 게 룰이었다.
“나는 돈 없어서 안 하려고···.”
“돈? 아이 친구끼리 왜 그래, 내가 빌려줄게 빌려줄게,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만 하라니까?”
남수는 바로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지구에게 주었고, 지구는 반 강제로 낄 수밖에 없었다.
판치기는 책에 동전을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판을 내리쳐서, 동전이 뒤집는 게임이다.
보통 판 위에 올라간 동전으로만 게임을 하지만, 요즘은 동전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물가가 많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판당 천 원에서 오천 원, 만 원씩 판돈을 걸고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지구는 판치기가 끝나면 빚이 계속 불어났다.
“우리 지구 12만원 빌렸나? 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내가 오늘 많이 땄으니까 2만원 깎아줄게. 10만원만 갚아. 천천히 갚아 천천히, 이번주 안에만.”
“아, 어···.”
“와 씨 정남수 존나 상남자.”
지구는 한참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이제 판치기 안 할래, 하고싶지 않아.”
“야 씨 쪼잔하게 왜 그래, 오늘 많이 잃어서 그래? 풀어풀어 화 풀어, 이거 먹어.”
남수가 위로하는 척하면서 그의 입에 팥빵을 우겨넣었다. 지구는 그것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구야? 지구 울어? 우리 지구 울어? 야 시발 누가 너보고 판치기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왜 그래?”
유독 운다는 단어가 크게 들린다. 지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아니, 아니야, 아니야···.”
남수는 지구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지구가 바짝 얼어붙었다.
“그래, 씨발··· 누가 보면 괴롭하는 줄 알겠어, 왜 쳐울어 울기는, 엄한 사람 가해자 만들지 마라, 어?”
“어? 어, 미, 미안···.”
학교가 끝나면 이 지옥도 끝이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하굣길에서도 그들의 관심은 이어졌다.
“싸커킥!”
퍽!
남수가 지구의 종아리를 강하게 발로 찼다. 지구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며 통증을 호소했다.
“어어 지구야 괜찮아? 너도 차 너도 차, 이거 맷집 단련되고 좋대, 고고.”
그때, 어두운 그림자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싸커킥!!”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퍼억!!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수가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