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호구 탄생 >
엘리베이터 안.
검은 천이 얼굴에 다 씌워지기 직전, 하루는 돌아서며 팔꿈치로 뒤에 있는 사내의 턱을 후려치고.
뻑-
몸의 회전을 멈추지 않으며 왼손을 뻗어 그 옆 사내의 목젖을 강타했다.
팍!
“케헥! 켈렉!”
순식간에 한 명이 눈알을 뒤집으며 쓰러지고, 한 명은 콜록대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안서은은 놀라서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검은 천이 서은의 머리에 모자처럼 반쯤 씌워진 상태였다.
하루가 천을 살짝 내려 서은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잠깐만 계십시오.”
“꼴에 전직 경호원이라고 까부네, 꼭 그 고운 얼굴에 생채기가 나야겠냐?”
두 명이 금세 당한 것은 방심해서라고 생각하는지, 남은 세 명이 오만하게 하루를 내려다보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하루는 돌연 한쪽 무릎을 꿇고 서은의 발을 잡았다.
“엄?”
“잠깐 빌립니다.”
무엇을 빌린다는 건지 이해를 못하던 그때, 하루가 서은의 다리를 번쩍 들어서 하이힐을 벗겼다.
“꺄앗!”
서은은 다급히 두 손으로 치마를 내렸다.
하루는 그 사이 나머지 한쪽도 벗겨서 두 손에 하이힐을 거꾸로 들고, 바로 가까이 다가온 괴한들의 발등을 구두굽으로 내리찍었다.
팍 팍 팍팍!!
“악!”
“크헉!”
“윽!”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이 빠르고 정확하게 그들의 발등을 내리찍고, 발이 아파서 본능적으로 몸을 확 숙이자마자 여지없이 하이힐이 날아와 관자놀이를 찍었다.
팍! 치이익-!
굽이 꽂혔다 뽑혀나온 구멍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다른 괴한은 코를, 마지막 남은 자는 굽이 부러져 하루가 손수 온 몸 마사지를 해주는 포상을 받았다.
쿠웅!
하루의 날카로운 손날로 목젖과 겨드랑이, 옆구리와 사타구니를 찔린 괴한은 고통에 신음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탁 탁-
하루는 다섯 명의 사내를 금세 제압하고는 손을 털며 뿌듯해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법을 배워둬서 다행입니다.”
검은 천을 벗고 모든 상황을 직관한 서은의 커다란 눈동자가 떨린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피를 질질 흘리며 쓰려져 있는 괴한들이 있었다.
“이, 이게···?”
지이이잉-
그때,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고개를 들자, 황당한 표정으로 두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장수가 서 있었다.
* * *
저벅저벅 저벅저벅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작은 사무실 안, 진청색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남자가 손톱을 뜯으며 왔다갔다거리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사님, 진규는 성공할 겁니다. 너무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그의 말에 수트를 입은 남자, 송양그룹 둘째아들 김선태가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상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임실장, 내가 불안해보여?”
“예? 아니십···니까?”
김선태는 허공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기대하는거야 기대, 존나 기대되잖아, 그년들 얼굴이며 몸매며··· 시발.”
김선태는 입맛을 다시며 음담패설을 이었다.
“그 도도한 년이 싸이코년 만나러 갈 때만 경호원을 떼다니, 이건 아예 잡수세요 하고 밥상 차려준 거 아니냐? 이건 하늘이 돕는 거지, 안 그래?”
“아··· 예 맞습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때마침 임실장의 휴대폰이 울렸고, 그가 받기도 전에 김선태가 후다닥 다가와서 휴대폰을 거칠게 빼앗았다.
“어 왔어?”
-아, 예 이사님, 도착했습니다.
“오케이 빨리 들어와!”
김선태는 바로 전화를 끊고 임실장의 휴대폰을 대충 던지고는, 테이블에 놓인 복면을 빠르게 뒤집어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임실장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줍고, 복면을 쓰고 그의 뒤를 따랐다.
밖은 폐자재가 이곳저곳에 쌓여있는 폐공장이었다.
그 한쪽에는 새하얀 천이 넓게 깔려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고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아예 스튜디오를 꾸며놓은 것이다.
철컥- 끼이이익-
공장 문이 열리고, 봉고차 한 대가 들어섰다. 그곳에서 머리에 검은 천을 쓴 여자 둘이 내렸다.
그녀를 데리고 온 괴한 네 명도 내리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에게 복면을 받아서 바로 뒤집어 썼다.
“헤에에!!”
김선태는 여자 둘을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달려들었다.
그의 발걸음은 츄리닝을 입은 하루보다는 그 옆에 검은 스타킹에 투피스 정장을 입은 서은에게 본능적으로 먼저 다가갔다.
그러고는 바로 덮칠 것처럼 공격적으로 오다가 거짓말처럼 멈추어 서더니, 코만 먼저 들이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쓰으으으읍, 하아··· 이거야, 이거, 이 냄새, 이 몸매, 내가 원하던 거야.”
광기어린 행동에 서은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고, 그 모습에 김선태는 변태같은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얼굴에 씌워져 있는 검은 천을 확 벗겼다.
도자기처럼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얼굴에, 새까만 머리가 흐드러지듯이 내려앉는다.
그 사이로 두려움과 모멸감, 분노가 뒤섞인 눈동자가 김선태를 노려보았다.
“오우··· 마이 갓.”
“너··· 누구야.”
“나? 널 즐겁게 해줄 사람.”
딱
김선태가 한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기자, 동일한 복면을 쓴 괴한이 다가와 와인잔과 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선태는 그 자리에서 와인을 따서 잔에 따르고, 서은이 보는 앞에서 그곳에 하얀 가루를 흩뿌리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한 잔 드실까?”
서은은 그 약의 정체를 모르지만 눈을 부릅뜨고 입은 앙 다물었다. 절대 마시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 모습이 김선태의 눈에는 더욱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흐흐,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여기··· 뭐가 들어있는 줄 알아? 비구니도 창녀로 만들 물뽕, 너는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게 되는 거지.”
하얀 가루의 정체를 듣자 서은의 얼굴에 분노보다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실제로 지금의 상황에 겁을 먹은 것이다. 상대의 복면 너머로도 흐뭇한 웃음이 느껴져 더욱 역겨웠다.
김선태는 실시간으로 도도한 여자가 굴복하는 느낌의 그 얼굴에, 더욱 흥분하여 빠르게 말을 이었다.
“쭉 둘러봐, 카메라 많지? 저 카메라들은 모두 널 위해 준비되어 있어. 재벌3세에 일도 잘하고 예쁘고 자기관리 철저한 미녀가 벌인··· 광란의 마약파티, 재밌겠지?”
서은은 이를 꽉 물었다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너··· 김선태지.”
김선태는 순간 움찔했다가 말없이 뒤돌아섰다. 어차피 동영상만 찍으면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얘들아, 저 년 입 벌려라.”
그의 말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덩치 큰 괴한들이 서은에게 다가와 그 가느다란 팔뚝을 양쪽에서 잡았다.
덩치 큰 괴한도 다가와서 서은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뻗다가, 방향을 틀어 그녀의 팔을 잡고 있는 괴한 두 명의 목을 틀어쥐었다.
우득 끄드득-
“케헥!”
“어헉-”
그는 한 손으로 둘의 목을 움켜쥔 상태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구석으로 내던졌다.
쿠당탕탕!
그 돌발행동에 김선태는 물론 주변에 있던 십수 명의 괴한들까지 놀랐다.
“뭐, 뭐하는 거야?!”
덩치가 돌아서서 가면을 스르륵 벗었다. 수많은 흉터와 험악한 인상, 딱 보아도 만만치 않아보이는 황장수를 보자 김선태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너, 너 누구야?”
그 옆에 조용히 묶여있던 하루는 팔을 풀고 검은 천을 벗었다.
황장수는 아직 떨고 있는 안서은의 옆에 서며 대답했다.
“나? 이 여자 경호원.”
“미친 새끼··· 자살하러 왔구나, 야, 저 덩어리 치워라!”
김선태의 명령에 따라 복면괴한들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제압하기 위해 모여있던 게 아니기에 그들의 양손에 무기는 없었다.
하지만 놈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황장수가 최소 80키로는 될법한 사내 둘을 한 손으로 들어올린 괴력을 보았기에, 다들 주춤거렸다.
그때, 주짓수를 배워 싸움에 자신이 있는 놈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뒤져 이 새끼야!!”
그와 동시에 다른 괴한들도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 두명씩 달려들면 각개격파가 가능해도, 한꺼번에 몰려들어 몸을 들이밀면 황장수도 깔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치도 사방이 뚫린 곳.
그러나.
빡!
거센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처음 달려들던 괴한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하루가 무릎으로 그의 턱을 올려찬 것이다.
그는 옆으로 나비처럼 날아오는 하루를 미쳐 보지 못했다. 사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정도는 눈치 챘지만, 그녀가 벌처럼 쏠 줄은 몰랐었다.
그 뒤를 쫓던 괴한들은 그가 쓰러지자 도미노처럼 발에 걸려 넘어졌다.
황장수와 하루는 마치 잡은 물고기를 회 치듯이, 파닥거리는 놈들을 한 명 한 명 꼼꼼히 짓밟아주었다.
우드득! 꽈득! 쾅!!
황장수는 놈들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하루는 주로 손가락이나 팔꿈치, 발목을 꺾었다.
열댓 명 중에 열 명 가까이 당했을 때부터 김선태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슬금슬금 뒷문으로 이동했다.
“이사님, 여기로!”
“비켜!”
김선태가 자신을 대피시키려는 임실장을 밀치고 뒷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치지지지직-
그는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몸을 덜덜 떨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이, 이사님!!”
끼이익-
그제야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름대로 쎄보이려고 징박힌 가죽재킷을 입은 쪽새였다.
“안뇽?”
임실장은 생각보다 만만해보이는 쪽새를 보고 이빨을 드러냈다.
“너 이 새끼···!”
뻑-!
그가 일어나 쪽새를 향해 손을 뻗기 직전, 어디선가 날아든 발이 관자놀이에 꽂혔다.
쿠웅-
발차기 한 방에 임실장이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고, 그 뒤에 아직 다리를 뻗고 있는 하루의 모습이 보였다.
쪽새는 하루에게 엄지를 추켜세웠고, 하루는 무시하며 감전되어 기절한 김선태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 * *
“꺼어억, 허억! 허억, 헤엑!”
3분만에 깨어난 김선태는 의자에 앉혀진 채 자신의 손과 발이 결박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부른 괴한들과 임실장도 복면이 벗겨진 채 나란히 무릎을 꿇고 둘러앉아 있다.
김선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루와 서은에게 소리쳤다.
“니네 나 이렇게 건드리면 무사할 줄 알아?! 안서은, 네가 저 깡패새끼한테 사주해서 나 팬 거, 내일이면 다 언론에 뿌려질 거야!”
또각 또각 또각
그때, 안서은이 다가와 혐오스런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심하다. 진짜···.”
“뭐 이 씨발ㄴ-”
뻐억-!
김선태는 갑자기 날아온 따귀에 욕을 완성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의자까지 같이 쓰러질 만큼 충격이 큰 따귀였다.
“허, 허어억···.”
김선태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신음할 때, 황장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이가 들긴 들었네, 기절하든지 고막이 터지든지 둘 중 하나였는데.”
입맛을 다신 장수가 그를 다시 일으켜 앉혔고, 안서은이 그에게 SD카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까 당신이 했던 행동, 그 하얀 가루, 저급한 말, 모두 여기 잘 담겼어.”
서은의 말에 김선태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그럴 리가 없···!”
그가 두리번거리다가 빨간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보았다.
그제야 안서은 뒤에 서 있는 사내 다섯 명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안서은과 하루를 데리고 오라고 했던 사내들이다. 이미 안서은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문득 한 장면이 스치듯이 생각났다. 봉고차에서 내린 사내들이 오자마자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녔던 모습을.
“이런 시팔새끼들이···!”
서은에 이어 하루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이었다.
“우리가 경찰을 왜 안 불렀을까?”
김선태가 고개를 돌려 하루를 올려다보았다. 하루의 한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선태였다.
멍한 얼굴의 남자 앞에서 하루가 방긋 웃었다.
“넌, 이제 우리 호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