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19화 (219/255)

< #219. 야망의 남자 >

부자는 방금 소식이 워낙 의외의 말이기에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신해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따.

“금액은 다행히도 전부 돌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시간 되실 때, 빠른 시일 내에 강진경찰서로 출석해주시기 바랍니다.”

해수는 공손하게 강현석에게 명함을 건네주고는 뒤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끼이익- 철컥

털썩

문이 닫힘과 동시에 강현석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들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했다.

“아, 아버지···.”

강현석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보고는, 두 손을 뻗어 푸석푸석한 얼굴을 매만지다가 확 끌어안고, 한참을 말없이 울었다.

“다행··· 다행이다. 아빠는··· 참 감사하다. 감사해···.”

*  *  *

강진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들로 사무실이 가득 찼다.

“···여기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친 부분 작성해주시고, 지장 찍으셔서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아이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사님들, 이 은혜는 정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요.”

“나 진짜 이번 인생은 망한 줄 알았는데···.”

사기 피해자들이 연신 허리를 숙이며 형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두 손으로 형사의 손을 소중하게 잡고 온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서류상에 찍힌 보상금액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무실 한구석에 곽반장과 오갱이 뿌듯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놈들이 투자에 재능이 있었던 게 천만 다행이지.”

“그러게 말이에요. 사기꾼 잡아도 피해금액 절반조차 돌려받기 힘든 게 다반사인데, 원금에 피해보상금까지 챙겨주는 건 진짜 역대급인듯.”

“역대급은 아닌듯.”

“에이, 형님이 뭘 알아.”

곽반장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오갱을 쳐다보았다.

“에이? 이것 봐라? 팀장 됐다고 막 기어오르네?”

“말은 똑바로 해야지, 팀장 전부터였거든?”

“그래, 내가 잊고 있었네, 오늘 한 번 피해자들 앞에서 쳐맞아보자.”

“자신있으면 해보든가.”

곽반장과 오팀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씩거리고 있을 때, 해수가 그 사이로 쑥 끼어들었다.

“어헙! 뭐야?”

“아 깜짝이야, 너는 좀,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 튀어나오기 전에 돌격합니다! 말하고 오라고.”

해수는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더니 대답했다.

“신입 형사들이 흉봅니다.”

“어디, 어디?”

해수는 두리번거리는 곽반장의 어깨를 붙잡아 문 쪽으로 돌리고는 앞으로 밀었다.

“밥 먹으러 갑시다.”

“어,어···.”

곽반장은 신해수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걸음을 옮기고, 오갱은 3팀의 여자 신입 오미연과 눈을 마주치고는 헛기침을 하며 다급히 해수의 뒤를 쫓았다.

“커흠, 가,같이 가! 신과장!”

*  *  *

점심시간, 오늘은 기분좋은 날이니 기념으로 밖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 메뉴는 비빔밥이었다. 곽반장이 냉큼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며 말했다.

“비빔밥이 전주에서 강진까지 금방 왔네, 흐흫.”

“거, 그런 것 좀-”

오갱이 습관적으로 뭐라 하려던 그때,

“그러게 말입니다. 싸이렌 울리면서 왔나봅니다.”

신입이 아무렇지도 않게 곽반장의 말을 받았다.

곽반장은 신입이 받아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이 났다.

무뚝뚝한 특수팀 팀원들은 단 한 번도 곽반장의 개그를 제대로 받아준 적이 없었다.

“어? 아하핳! 그러게! 싸이렌 울리면서 오면 금방이지 금방! 그래서 이렇게 뜨끈뜨끈하구만!”

“아앗, 반장님 손 데이십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비벼드리겠습니다!”

“어? 자네 좀 비빌 줄 아는가?”

신입이 마치 수술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두 팔을 들어올리고는 비장하게 말했다.

“제 팔도 비빔면입니다.”

“뭐? 으하핫핫! 그럼 잘 비비겠구만! 그래 한 번 맡겨보겠어!”

곽반장은 흥분하여 큰 소리로 말하며 비빔밥 그릇을 신입에게 넘겼고, 신입은 정말로 달인처럼 맛깔나게 비비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오갱과 해수, 우대리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어하는 오갱과 해수와는 달리, 전 막내 우대리의 표정은 심각했다.

‘저 신입에게서··· 엄청난 야망이 느껴진다.’

우대리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 이후로도, 신입의 야망은 수시로 드러났다.

경찰서 주차장에 위치한 정자, 흡연구역.

탁, 탁

“아, 가스 떨어졌나.”

오갱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에 가스가 떨어져서 난감해할 때였다.

탁-

신입이 어느새 나타나 불이 흔들리지도 않는 지포라이터를 들이밀었다.

오갱이 살짝 놀라며 물었다.

“뭐야 신입, 너는 담배 안 피잖아?”

“여러모로 필요할 때가 많아서 들고 다닙니다.”

“오··· 센스, 좋아 좋아.”

오갱은 엄지를 추켜들며 신입의 센스를 칭찬했다.

이 광경을, 우대리가 정자 기둥 뒤에 숨어 노려보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야···.’

“근육몬, 넌 거기서 뭐하냐?”

“옙? 아, 아닙니다!”

우대리가 후다닥 도망가자 오갱이 그 곰같은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놈은 저 몸이 숨겨질 거라 생각했나?”

오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담배를 다시 물었다.

신입의 야망은 때를 가리지 않았다.

강력반 사무실.

특수팀은 일이 없어 교통과 지원을 나갔다가 복귀하는 길이었다.

오갱이 교통 경찰용 안전 조끼를 벗어던지며 투덜거렸다.

“그래 씨, 내가 짭새다 짭새! 오늘 아주 그냥 짭새 소리만 백 번은 들었네, 짹짹짹!”

그때 신입이 재빨리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님, 그럼 제가 새모이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엉? 뭔 모이?”

오갱이 어이없어하는 그때, 신입이 언제 사놨는지 초콜릿을 가져와 포장까지 까서 내밀었다.

진상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던 오갱의 얼굴이 금세 사르르 펴진다.

“야··· 이거 물건이야 물건, 마침 당 딸리던 참이었는데.”

신입은 재빨리 해수와 우대리에게도 초콜릿을 나누어주었다.

우대리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가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나는 괜찮···.”

그때, 신입이 다시 다가와 우대리의 손에 초콜릿을 쥐어주었다.

“챙겨드십시오. 오늘 점심도 당이 거의 없는 음식을 드셨기 때문에 당분 섭취 모자라십니다.”

우대리가 흠칫했다. 자신의 메뉴까지 기억하다니.

“그걸 어떻게···.”

신입은 우대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우대리님, 아니 선배님, 선배님은 제··· 워너비입니다. 닮고 싶어서 일거수일투족 모두 지켜보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뭐,뭣···?”

우대리는 눈치 없다거나 감정에 둔하다는 말을 가끔 듣기는 하지만, 자신의 진실을 판별하는 능력은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신입의 눈빛이나 말투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우대리는 그의 진심에 충격을 받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신입은 그 짧은 시간에도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니며 이 선배 저 선배를 챙겼다.

우대리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다.

‘이건··· 보통 야망이 아니다. 이 자식, 잘 해줘야겠다.’

신입에게 우대리가 워너비가 된 것은, 스튜어디스 여자친구가 경찰서에 나타난 이후였지만, 우대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쩝 쩝-

해수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신입이 준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을 느껴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저장된 이름을 확인했다.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렸지만 해수는 인지하지 못했다.

“어.”

-오늘 아지트로 안서은님 데리고 와도 됩니까?

다짜고짜 본론을 꺼낸다. 그녀답다. 해수는 비집고 나오는 실소를 애써 집어넣고는 대답했다.

“그래, 다음에는 허락 안 받아도 돼.”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알겠습니다. 해수님은 언제 오십니까?

“나는 오늘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려고.”

-네.

“넌 언제···.”

통화할 때 들리는 미세한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해수는 귓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보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겼다.

그는 허무하게 화면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  *  *

타닥 타닥 타닥

또각 또각

서로 다른 두 발소리가 인적이 드문 골목에 울려 퍼진다.

머리를 올려서 묶어 고정시키고, 편한 츄리닝에 운동화를 신은 하루.

그 뒤에는 컬이 들어간 여신 머리스타일에 세련된 투피스 정장, 그 위에 코트를 걸치고, 하얀 힐을 신은 안서은이 뒤따르고 있다.

하루는 오른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마치 아이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매운볶음면, 삼각김밥, 치즈, 편의점 존맛 삼위일체를 맛보는 날이다.

삼위일체 음식들과는 거리가 먼 재벌3세 안서은에게도 이 맛을 전도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생각에 매몰되어 안서은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치마폭도 좁아 총총걸음으로 간신히 따라가던 안서은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가, 같이 가요.”

척-

귀는 밝은 하루가 휙 돌아서서 서은의 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하이힐은 유사시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기동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네, 으···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천천히···.”

“바꿔 신을까요?”

“네? 아, 아니요. 괜찮아요.”

하루와 안서은은 발 사이즈가 동일하여 바꿔신을 수 있다. 예전에도 하루가 급하게 경호원 땜빵을 하게 될 때 구두를 빌려준 적이 있다.

서은은 하루가 아무렇지도 않게 바꿔 신자는 말을 꺼내자 멈칫하더니, 살짝 좁혀졌던 미간이 펴졌다.

하루는 그제야 서은과 속도를 맞추며 아지트로 향했다.

“오늘은 해수씨가 없다고요?”

하루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해맑게 대답했다.

“네, 깡패 아저씨도 나갔고, 까불이도 어디 다녀온다고 합니다. 우리 둘만 있습니다. 아, 영수도 있습니다.”

“아하.”

서은은 살짝 아쉬웠지만, 이 멤버도 좋다. 하루는 물론이고 영수도 그 멤버 중에 가장 편한 편이었다.

두 여인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닫히기 직전.

턱-

커다란 워커발이 훅 들어왔다.

지이이잉-

그로 인해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고, 덩치 큰 사내 다섯 명이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서은은 본능적으로 위축되어 어깨를 움츠리며 하루에게 붙었다.

그 모습을 사내들이 힐끔 보고 냉소를 지었지만 두 여인은 보지 못했다.

덩치 다섯 명 중에 두 명이 들어오자마자 엘리베이터 뒤쪽 벽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하루와 서은이 중앙에 서게 되었다.

틱 틱-

하루는 어쩔 수 없이 지하가 아닌 황장수의 임시거처가 있는 4층을 눌렀다.

양옆과 뒤에 포진한 사내들은 하루와 서은을 힐끔힐끔 보았다. 하루는 둘이 함께라면 항상 있는 일이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뒤에 둘, 양쪽에 둘, 앞에 한 명이 있는 상태다.

딩 동- 4층입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양쪽에 있던 덩치 두 명이 앞으로 나가더니 넓은 등판으로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안서은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뭐죠?”

그녀의 물음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덩치 두 명이 검은 헝겊을 두 여자의 얼굴에 씌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