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사기꾼들 >
강진서 강력반 사무실.
멀끔한 정장 차림의 노숙자 김가량이 뚱한 표정으로 오갱을 바라보며 말했다.
“몰라요오···후.”
“어으.”
“웁, 우욱.”
입을 열 때마다 술냄새가 역하게 풍긴다. 그는 히죽거리면서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보다못한 우대리가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내 돈 가져간 놈 어디 갔냐고! 너 만났잖아, 이 옷이랑 안경 사준 놈 어디갔어!”
“아, 모른다니까··· 깜빵 보내줘요. 깜빵.”
“이 자식이!!”
턱
이미 바닥인 처지, 감옥에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뻗대는 것이다.
노숙자의 뻔뻔한 태도에 우대리가 이성을 잃고 한 손을 번쩍 드는 순간, 해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대리는 눈에 불을 켜고 휙 돌아섰다가 해수의 얼굴을 보고는 그제야 정신을 번뜩 차렸다.
“헙, 죄,죄송합니다!”
“아냐, 팀장님, 잠시.”
해수가 우대리를 치우고 김가량의 어깨에 손을 얹자, 오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해수는 그의 앞에 마주앉아 얼굴을 가까이 하고는, 그에게만 들리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빵··· 좋은 곳이지, 지금 네가 지내는 곳보다 따뜻하고, 바람 막아주고, 삼시세끼 다 챙겨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해수의 말에 김가량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해수의 표정이 확 돌변하며 목소리 톤도 위협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랑 같은 방 재소자들도 그럴까? 내가 아는 놈 중에··· 키가 2미터 20짜리가 있어, 몸무게도 150이 넘고, 당연히 힘이 장사지. 그런 놈들이 안에서는 인기가 많아, 거긴 힘이 곧 법이거든, 그런데 그놈과는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아, 왜인 줄 알아?”
김가량은 홀린듯이 말을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놈 별명이 김관장이거든.”
“김관장···?”
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놈이 남자를 밝히거든, 그놈과 같은 방을 쓰던 놈들은 모두··· 기저귀를 차고 다니지.”
아무리 어벙벙한 노숙자라고 해도 이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김가량은 순간 상상이 되어 인상을 확 찌푸리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읍, 우욱···.”
턱-
해수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 가까이 하고는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마침 자리가 났어, 내가 너··· 그놈 단짝 시켜줄게, 재밌게 놀아봐.”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련없이 돌아섰다.
김가량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얼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 모습에 오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뭐,뭐야? 뭘 어떻게 한 거야? 이봐요. 김가량씨, 정신차려 정신!”
김가량은 뺨을 몇 대 맞더니 그제야 머리를 털며 오갱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저! 저 뭐든 말하겠습니다. 깜빵 그··· 김관장한테 보내지 말아주세요!”
이제 막 사무실을 나서려던 해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김가량은 사기꾼을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인상착의는 어떻게 되는지, 통장과 휴대폰을 개설하게 한 것과, 주택 거래 보상으로 얼마를 주었는지까지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거기 살 때 100만 원, 팔 때도 100만 원··· 그거 돈은 없어요. 다 날렸어···.”
그의 말에 해수가 이상함을 느끼고 검지를 들었다.
“잠깐, 팔 때도 100만 원? 이건 무슨 말이지?”
“팔 때가 팔 때지 무슨 말이기는···.”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히 협박했다.
“김관장이 보고싶은가봐.”
“아, 아니 그러니까··· 한 달동안 잊고 지내고 있는데 대뜸 나타나서 이 옷이랑 안경 사주더니, 이번에는 팔라잖아, 그래서 같이 가서 팔았지.”
이번에는 우대리가 끼어들었다.
“그게 혹시··· 경성부동산?”
“뭐, 그런 비슷한 이름 같기도 하고···”
해수와 우대리의 눈이 마주쳤다.
사기꾼이 우대리와 전세 거래를 하는 동안, 동시간대에 다른 부동산에서 진짜 김가량이 사기꾼2호와 함께 매매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대리는 문득 새로운 집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약간 어눌하시고···
“공범, 공범이 있었던 겁니다.”
“중개소 cctv 다 땄나?”
오갱이 돌아서며 묻자 지금 막 들어오던 신입이 대답했다.
“여기 있습니다!”
특수팀은 거래금액을 인출하는 장면, 두 개의 부동산에서 나오는 장면, 그리고 노숙자 김가량이 사기꾼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날에 지하철 cctv 등을 분석해보았다.
두 명이 특정되기는 하지만, 안경과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외형과 걸음걸이만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우대리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 얘네들 진짜 치밀하네요. 잡을 수 있을까요?”
우대리의 말에 오갱이 즉각 대답했다.
“어, 무조건, 내가 무조건 잡아줄게, 걱정하지 마.”
오갱의 확신에 찬 대답에 우대리는 무언가 그의 말대로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울상이 살며시 펴졌다.
“고맙···습니다.”
“그건 잡고 나서 말하자.”
“···옙.”
그러나 오갱의 의지와는 달리 사기꾼들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틀만에 얼굴과 거주지가 어느 지역인지까지는 알아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히지 못하여 출국금지 요청은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배로 낮아진다. 이미 해외로 날랐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을 알기에 우대리는 물론 특수팀 전원이 조급해하던 그때.
지이잉 지이이잉
해수는 자신의 메인 휴대폰을 꺼내었다가 이것의 진동이 아닌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잠시.”
그가 옥상으로 올라가며 안주머니에 있는 대포폰을 받았다.
“어.”
-신형님, 얘네 찾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공항이랑 항구 cctv에 코 박고 있다가···
“어디야.”
* * *
일본으로 향하는 대형 크루즈.
두 남자가 고가의 수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선상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다.
“여긴 무슨 늙은이들만 탔냐.”
“당연하지, 가끔 죽이는 애 보여도 꼭 늙은 사장 끼고 있더라.”
“에잇 퉤.”
“기다려라, 우리가 가는 데가 또 성진국 아니냐?”
친구의 말에 남자가 음흉하게 웃는다.
“흐흐, 그렇지. 얼른 가서 신나게 좀 돌리고 싶···은데, 누구?”
어느새 그들 옆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끼어 있었다.
그는 정장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근육을 지녔다.
그, 우대리가 고개를 돌려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나다. 이 씹새끼야.”
우대리의 얼굴을 알아본 사기꾼1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툭-
그러다가 등에 바위같은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돌아보니 우대리와 맞먹는 덩치에 그보다 더한 인상을 지닌 신해수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도망가면 한 대 맞을 거 두 대 맞는다.”
“흐이힉!”
사기꾼1이 기겁하며 돌아서서 우대리 쪽으로 도망쳤고, 우대리는 한 팔을 들어 달려오는 그의 몸통을 팔뚝으로 후려쳤다.
퍼억!
사기꾼1은 달려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러 해수의 발 밑에 도착했다.
해수는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도망 안 칠까봐 걱정했네, 다행이야.”
사기꾼1의 얼굴로 해수의 거대한 손바닥이 내리찍혔다.
* * *
강력반 사무실.
우대리는 사기꾼1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 신기하네, 진짜 나보다 스무 살은 많아보였는데, 진짜 재능은 재능이다. 악마의 재능”
“하하하···감사합니···.”
퍽!
그때, 오갱이 사기꾼1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감사는 무슨 이 사기꾼 새끼야, 내 동생이 니네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어!”
“겨, 경찰이 이렇게 막 사람 때려도 돼요? 어!”
스윽-
그의 말에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해수가 일어났다.
“사람 때리면 안 되지, 근데 니넨··· 사람 새끼가 아니니까 때려도 돼.”
해수가 살기를 뿜으며 다가오자, 사기꾼1이 두 손을 들고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발 거기 앉아계세요. 산적 형님···.”
“산적··· 풉.”
산적이라는 말에 오갱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가 금세 표정관리를 하고는 조서를 이어서 작성했다.
“그러니까 둘이 특수분장사였다 이거지?”
“···예.”
사기꾼 2인조는 쪽새처럼 변장의 달인이었다. 그들의 전직은 특수분장사로, 자신들이 매수한 노숙자와 최대한 비슷하게 변장을 하고 사기를 친 것이다.
이들은 절대 잡히지 않을 거라 믿고 증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것은 물론, 핸드폰의 문자나 카톡에도 범죄 모의가 가득해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기 건만 12건이 넘었고,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돌려보니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아예 포기하고 살았던 사람들도 대부분으로 확인되었다.
깊이 알아보니 얼굴만 비슷하면 할 수 있는 사기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 * *
콜록, 콜록!
한기가 솔솔 들어오는 옥탑방 원룸.
한 중년인이 점퍼 두 개를 껴입고 집을 나서다가 기침을 해댄다.
쿨럭, 쿨럭, 켈륵!
그 소리에 잠들어있던 아들이 일어나 눈을 한 번 비비고, 현관에 서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어디 나가시려고요. 또!”
“어, 아 저기, 잠깐만 나갔다 올게.”
아들은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안으로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어느새 부쩍 커서 자신보다 힘이 강해진 아들을 보며 미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들어오세요 좀, 딱 한 달만, 한 달만 집에 계셔서 쉬세요. 돈은 제가 벌어온다니까요.”
“아들은 학교나 가, 아빠가 돼서 어떻게 집구석에 앉아서 아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살아···.”
“아, 진짜···.”
아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15년간 아득바득 모았던 돈으로 아파트 계약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그 뒤로 이혼까지 당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까지 온 아버지였다.
어느덧 사기를 당한 지 2년이 지났고,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그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며 철 든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거친 손으로 아들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들,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뭐가 또 미안해요. 아버지가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여기 딱 앉아계세요. 밥 할게요.”
아들은 일어나 가스버너를 꺼내고, 냄비에 물을 담아 그 위에 올려놓고 능숙하게 가스불을 켰다.
그때.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버지는 물론 아들도 몸이 얼어붙었다. 둘은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계세요.
묵직한 목소리, 아버지는 소리없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빚쟁이가 분명했다.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할 때 받았던 대출의 채권이 사설 추심업체로 넘어간 것이다.
스으윽- 딱
아들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스불을 껐다. 그러나 그 소리를 밖에 있는 사람이 들은 듯했다.
-계신 거 같은데, 강현석씨, 계시면 문 좀 열어보세요.
지금까지 피하지도 않았지만, 줄 수 없는 돈이 없으니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 그대로 있으면 앞에서 난장을 피울 게 확실하기에 아버지는 힘없이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그는 현관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험악한 인상에 덩치까지 큰 남자를 보며 빚쟁이임을 확신했다.
“강현석씨?”
“예··· 그, 돈은···.”
그때, 남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경찰 신분증이었다.
“강진서 특수팀 수사관 신해수입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이렇게 출근 전에 찾아뵈었습니다.”
경찰이라는 말에 강현석은 본능적으로 위축되었다. 아들도 불안한 마음에 다가와 아버지의 팔을 잡고 해수를 째려보며 물었다.
“경찰이 무슨 일이신데요?”
해수는 아들을 힐끔 보았다가 다시 강현석을 보고는, 그들의 삶이 조금은 추측이 되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2년 전에 화성 경찰서에서 신고하셨던 아파트 매매 사기꾼, 체포했습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