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17화 (217/255)

< #217. 전세 사기 >

가을공인중개사무소.

우강철이 인상 좋은 중년인과 마주앉아 있다.

“젊으신 것 같은데, 돈 열심히 모으셨나봐요.”

“하하하하! 결혼하려고 열심히 모았죠! 물론 대출이 절반이지만.”

우강철의 입에 걸린 미소가 내려오지 않는다. 여자친구와 함께 아득바득 모은 돈으로 드디어 결실을 맺는 날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인상 좋은 중년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아하, 결혼! 축하드립니다. 여기가 또 신혼부부가 살기 딱 좋죠, 남향이라 햇빛도 잘 들어오고, 아기 키울 때는 집안이 따뜻해야 하거든요.”

“아, 아기 하하하하!! 우강철 베이비라니, 상상만 해도 좋군요!”

“화통하시네, 그런데 와이프분은 바쁘신가봐요? 보통 같이 계약하시던데.”

와이프라는 말에 또 다시 우강철의 입꼬리가 움찔거린다. 그는 두 배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같이 오고 싶었는데, 오늘 비행이 있어서요. 제 와이··· 흐흫, 와이프 될 사람이 스튜어디스라서! 스튜어디스.”

중년인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와, 정말 좋으시겠어요? 여기.”

우강철이 계약서를 받고는 갑자기 돌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것을 읽어보았다.

가운데에 앉은 중개인이 설명을 이었다.

“계약 확인할게요. 2년 전세 계약이고, 나갈 때는 원상복구 비용 청구, 전세자금은 2억, 읽어보시고 여기 서명, 도장 찍으시면 됩니다.”

“흠··· 네, 제가 또 경찰이라서, 이런 건 꼼꼼히 봐야 하거든요. 아 그리고, 신분증 좀 확인할게요.”

이미 중개인이 중년인과 우강철의 신분증 사본을 프린트하여 보여줬지만, 꼼꼼히 확인한다고 신분증까지 제시하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말에 중년인이 움찔했지만, 우강철은 눈치채지 못했다.

“···네네, 그러셔야죠.”

“오호, 사장님 실물이 훨씬 젊어보이십니다.”

“아하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중년인은 물론 중개인의 것까지, 우강철이 직접 신분증을 보고 그제야 서명과 도장을 찍었다.

“자, 그러면 계약서에 적힌 계좌로 2억 송금하시면 됩니다. 저한테는 이 계좌로 80만원 주시면 되고요.”

“옙, 알겠습니다. 방금 보냈고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강철은 뿌듯한 표정으로 일어나 중년인과 손을 맞잡았다.

“예, 다시 한 번 결혼 축하드리고, 아들 딸 낳고 알콩달콩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하하핫!! 옙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세계약을 끝내고 둘이 나란히 나오다가, 다시 눈이 마주치자 중년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 예,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럼 뭐 저 앞에서 식사 하실래요? 제가 사죠.”

그가 검지로 가리킨 곳에는 국밥집이 있었다. 우강철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나온 거라서, 빨리 들어가봐야 합니다.”

“그래요. 수고가 많아요.”

“옙 그럼!”

중년인은 우강철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강철은 전세 계약을 끝내자마자 바로 복귀했다가, 30분 일찍 퇴근을 하고 전입신고까지 바로 마치고, 미리 준비해둔 서류에 계약서까지 첨부하여 전세보증보험 가입까지 완료했다.

그리고 이틀 뒤.

친구와 함께 자신의 짐을 먼저 넣어놓기 위해 전세계약을 한 신혼집을 찾아갔다.

지이이이잉- 달달달달

신혼집 빌라에 사다리차가 주차되어 있고, 이삿짐이 올라가고 있다.

“어 뭐야, 이사오나?”

“이것봐 이것봐, 여기 터가 좋으니까 이사도 막 오잖아.”

“그러게, 어 근데 니네 집 302호라고 하지 않았냐?”

“어 그렇지, 왜?”

“저기, 302호 아니야?”

“···어? 에이 아니야.”

우강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계단으로 향했다.

친구는 검지로 층을 세고, 창문 위치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는 것 같은데···.”

302호 현관문 앞, 우강철은 멍한 눈으로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터벅 터벅 터벅

우강철이 들어서자, 그 위압적인 덩치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 중에 일꾼들에게 가구 위치를 알려주고 있던 남자가 고개만 돌려 그를 보며 물었다.

“누구세요?”

처음 보는 얼굴이다. 우강철도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쪽은··· 누구시죠?”

우강철의 심각한 표정에 그 남자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몸을 완전히 돌려 마주하며 말했다.

“전, 여기 집주인인데요.”

“···네?”

*  *  *

사정을 얘기한 후, 우강철과 구매자는 가장 먼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았다.

그러고는 구매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없었는데?”

알고보니, 구매자는 우강철이 전세계약을 한 당일에 비슷한 시간에 구매를 한 것이었고, 구매 당시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에 나와있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계약한 사람이 김가량씨··· 맞습니까?”

“네, 순한 인상에··· 안경 쓰고, 약간 어눌하시고···”

“···어눌?”

우강철이 아는 판매자는 어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길하다.

어쩌면 동일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는 상태였다.

우강철은 구매자와 함께 부동산을 찾아갔다.

전세 계약을 하자마자 바로 매매하여 등기부등본에 나오지 않을 경우, 중개인이 전세계약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반하면 사기를 돕는 것이니, 중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 가을 공인중개사무소 앞까지 오자 구매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여기 아닌데?”

“아···.”

상황을 알아보니 거의 같은 시간에 두 중개소에 약속을 잡아놓고 계약을 진행한 것이다. 매우 치밀한 놈이다.

중개인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전혀 몰랐다는 말과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저는 항상 해왔던 대로 확인할 거 다 확인하고 계약을 해드렸을 뿐이에요. 저는 책임 없어요.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아무튼 이게 그 사람 연락처고, 빨리 경찰에 신고해보세요.”

상황이 점점 복잡하게 꼬여간다. 이쯤 되니 집 구매자도 손을 놓기 시작했다.

“어··· 제가 일단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고, 아무튼···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오늘은 일단 바빠서 들어가보겠습니다.”

“아··· 그, 예···.”

우강철은 다른 것보다 여자친구 오지연에게 말을 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는 그렇게 근심과 걱정 속에서 밤을 보냈고, 다음날에 출근하여 사기꾼 김가량의 신상을 조회하여 직접 잡을 생각을 했다.

*  *  *

다음날.

우강철은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김가량의 신상정보를 조회하려다가 멈추었다.

정식으로 사건 등록이 되지 않은 정보 조회는 불법이다.

‘일단 신고를 먼저 해야 하나, 그러다 일이 커지면 지연이도 알게 될 텐데··· 내가 그냥 정보과에 휴대폰 위치추적해서 잡고, 돈 돌려받은 뒤라면 지연이한테 할 말이 있는데···.’

고민과 걱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에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정보과에 한 번 가보려던 찰나에, 스튜어디스 여자친구 오지연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다.

*  *  *

우강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 난 표정도 예쁜 여자친구를 보며 물었다.

“어,어떻게···.”

사건의 심각성보다 오지연이 알게 된 것에 더 초점을 두며 묻는다. 그 물음에 오지연이 우강철을 째려보며 말했다.

“강동식! 오빠 친구!”

알고보니 이삿짐을 같이 나르려던 친구가 별스타그램에 [우직한 내 친구, 그래도 힘내라.] 라는 개소리를 적어놓았고, 그것을 이상하게 본 오지연이 그에게 연락하여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비행을 끝내자마자 바로 경찰서를 찾아온 것이다.

“하···.”

우강철이 고개를 떨구며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쥔다. 그렇게 몇 초 있다가 얼굴을 들어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오지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해, 자기야, 내가 무식해서··· 진짜 미안해, 자기 돈은···.”

슥-

그때, 오지연이 일어나 우울한 곰같은 우강철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휴 이 곰탱아, 그깟 돈이 뭐라고, 그걸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어,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자,자기, 어,어,어허엉!”

돈을 잃은 탓도 아니고, 계약을 똑똑하게 하지 못한 탓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힘들었을 우강철을 걱정하는 오지연.

그녀의 진심이 전해지자 우강철은 정말 짐승처럼 오열했다.

그 모습에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강력팀 다른 팀원들이 수군수군거렸다.

“뭐야 뭐야, 특수팀 우형사 여친이 승무원이야?”

“꿀 떨어지네 떨어져, 아으 부럽다!”

“나 오늘부터 우씨랑 친하게 지내련다. 장가 좀 가보자!”

“우씨가 능력자였네···.”

수군거리는 소리에 오갱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다른 팀원들을 보며 외쳤다.

“자, 자! 우리 대한민국 형사님들! 그만 열심히 하시고! 퇴근들 하세요 퇴근! 님들 할 일 없잖아!”

오갱이 들뜬 분위기를 정리하는 동안, 해수가 조금 진정이 된 우강철을 구석으로 데려가며 물었다.

“얘기해봐, 정확히 어떻게 사기를 당한 건지.”

“흡, 흐응, 흡, 예, 그,그게, 전 실수한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우강철은 해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계약하는 당시의 상황부터 새로운 주인을 만날 때까지 상황을 얘기했고, 오지연도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조용히 경청했다.

“···그러니까 계약 직후에 밥을 사준다고 물었다고.”

“예, 그래서 점심시간에 급하게 나온 거라 들어가봐야 한다고···.”

해수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일부러 시간 끈 거군, 공범이 있겠어. 전입신고 안 하고 바로 들어간다는 정보를 듣고 그냥 보낸 거다.”

“아··· 전입신고···.”

우강철의 얼굴에 깨달음이 스쳤다.

전입신고를 하면 빠르면 10분, 느려도 1시간이 지나면 전산상으로 등록되어 등기부등본을 떼었을 때 확인이 된다.

그것을 구매자가 확인했다면 매매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수가 볼펜 끄트머리 버튼을 딸칵딸칵 누르며 말을 이었다.

“당일 계약이면··· 전세보증보험도 효력이 없을 테고···.”

우강철이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화해보니까, 확정일자 받은 후 다다음날부터 발생이라고···.”

해수는 볼펜으로 ‘김가량’이라고 적은 곳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김가량, 이 사람이 이중계약을 한 거니까 책임을 져야 하는 상대는 맞는데, 이 정도로 치밀한 거 보니까 쉽진 않겠어. 네가 일단 지능범죄수사팀에 사건 접수하고, 신입은 김가량 신원 조회해봐.”

“예···.”

“옙 알겠습니다!”

수사 상황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는 없다. 우강철은 여자친구 오지연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서 지능범죄수사팀으로 사건을 접수하러 올라갔다.

그 사이 신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신과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음···.”

오갱도 어느새 다가와 모니터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씁, 이거 각 나오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 그 히든카드는 바로 김가량이었다.

김가량은 지금까지 쭉 자가가 없다가, 이번에만 한 달 전에 우강철이 계약했던 신혼집을 구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주소도 이상한 곳에 등록되어 있다.

그 사이 우강철이 사건을 접수하고 내려왔다.

“뭐 좀··· 나왔습니까?”

오갱이 우강철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흠, 일단 신과장이 정보과에 요청해서 위치추적하고, 우대리 너는··· 신입이랑 같이 나가서 돈 찾은 곳 cctv랑 블랙박스 따와, 나는 일단 혹시 모르니까 이 사람 출국 금지부터 받아올게.”

“예, 알겠습니다.”

오갱의 주도하에 특수팀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만에 김가량을 찾을 수 있었다.

강진역 4번출구 지하철 계단에서.

“···김가량씨?”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은 노숙자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안경을 쓰고 우강철과 눈을 마주했다.

“에?”

우강철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너무나도 닮았다. 아니, 신분증에 있던 자는 이 자가 맞다.

심지어 옷차림과 안경이 사기꾼과 동일하다.

“씨···팔.”

사기꾼이, 김가량의 외모를 따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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