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스튜어디스 >
봉고차 안.
우대리가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오팀장이, 신입은 뒷좌석에 탔다.
신해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따로 출발했다.
오팀장이 조수석에서 출동 내용을 읊었다.
“인원 대략 스무 명, 조폭은 아니고 일반인들, 술집에서 동창회하다가 싸움났단다.”
“그럼 격하지는 않겠네요.”
“글쎄, 그건 봐야 알지.”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내리자! 신입도, 이번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옙!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길거리 한복판에서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해수는 웬일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콰장창!
“이 개새끼야! 내가 고딩 때 그 찐따인 줄 아냐!”
퍽퍽 퍽!!
“죽어, 죽어! 죽어 이 시팔놈아!”
일반인들 스무 명이 동창회를 하다가 패싸움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길거리에 펼쳐진 광경은 일반인들이 아니었다. 모두 한 손에 연장을 쥐고 있었고, 인상도 덩치도 대부분 평균을 뛰어넘었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 손가락이 으스러져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조폭들 구역싸움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삐용 삐용-!
마침 경찰차 두 대가 도착했고, 오갱은 해수를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다 연장 들었으니까 살살 다루지 말고, 신입은 몸 사리고, 가자!”
“우으아아아!!”
“예, 옙!”
특수팀은 고민할 여지없이 철제의자와 대걸레, 골프채같은 것들이 날아다니는 현장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신입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짓누르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후웅-!
눈 먼 골프채가 신입의 어깨로 날아온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하며 왼손 손바닥으로 골프채를 휘두른 사내의 턱을 후려쳤다.
뻑!
신입의 손바닥에 턱을 정통으로 맞은 사내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서다가 풀썩 쓰러졌다.
움찔한 신입은 믿기지 않는 듯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뭐, 뭐지?”
그때, 쓰러진 사내의 머리를 발로 차려는 사내가 눈에 보였다.
신입은 재빨리 튀어나가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차 막고, 멱살을 잡아 한 바퀴 돌며 업어쳤다.
쿵!
그 일련의 행동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부드럽게 이어졌다. 행동을 하는 본인마저도 움직이면서 눈은 놀라서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퍽 우스꽝스럽다.
“넌 뭐야 시팔!”
후웅-! 콰직!
이어서 곰같은 덩치의 사내가 철제의자를 휘두르는데, 신입의 얼굴엔 의문만이 서렸다.
그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보인다.
분명 위협적인데, 전혀 두렵지 않다. 악귀같은 얼굴이 귀여워보일 정도다.
‘내가, 왜 이러지···?’
신입은 찰나 저 사내와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보이며 정답을 깨달았다.
‘황장수 부교관님···.’
황장수에 비하면 저 덩치는 그저 귀여운 새끼곰일 뿐이었다.
퍽!
‘하루 교관님···.’
쾅! 꽈드득-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피가 낭자하고 연장이 날아다니지만 두려움은 없다.
신입은 차분한 눈으로 한 명 한 명 철저하게 제압했다.
‘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기름을 넣고 오느라 뒤늦게 도착한 해수가 변화한 신입을 보고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 * *
강력반 사무실은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다.
“야이 새끼야, 니가 먼저 내 와이프 들먹이면서 시비 걸었잖아!”
“난 복수라고 복수, 니가 고삼때 내 여친 건드렸잖아!”
“그년이 먼저 꼬리 친 거라고 이 쪼잔한 새끼야.”
“뭐? 그년? 그냥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쾅 쾅!
“어허! 여기 경찰서에요 경찰서! 조용히 좀 하세요!”
떼폭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해성공고 동창회, 해성공고는 조폭양성소라고 불릴 만큼 악명이 높고, 졸업을 하면 10프로는 그대로 조폭 생활을 하게 되는 학교였다.
이미 체포된 사람 중 절반이 넘게 폭력 전과 기록이 있었다.
인원이 많아 다들 바쁘게 진술서를 받는 중에, 오직 신입만이 기쁜 표정이었다.
‘체포 스물한 명, 그 중에 내가 제압한 사람이 다섯 명···!’
신입은 오늘 자신의 실적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수팀 팀원들이 모두 사람같지 않고 부담스러웠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따라갈 길이 아득히 먼 팀원들을 보고도 부담이 아니라 배울 것이 많아보여, 다른 강력팀이 아니라 특수팀 소속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 뭘 그렇게 멍을 때려? 가서 커피나 한 잔 하고 와.”
“옙?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냐, 명령이야, 바람 좀 쐬고 와, 나랑 해수는 갔다 왔어.”
오갱의 말에 신입이 고개를 돌려 해수를 보았고, 걸어오던 해수는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옙,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신입을 보며 오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가 다녀오더니 애가 군기가 바짝 들었어, 병가를 어디 실미도로 다녀왔나?”
“보기 좋습니다.”
“그렇긴 하지, 비실비실하고 무서워하는 거 같더만, 오늘은 꽤 하더라고, 이제 적응하나봐.”
오갱과 해수가 신입을 칭찬하는 소리에 진술을 따고 있던 우대리의 귀가 쫑끗거렸다.
‘짜식, 제법이군.’
보기 드문 해수의 칭찬에 우대리는 살짝 질투가 났지만, 하나뿐인 후임이 적응하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이 더 컸다.
* * *
금요일, 떼폭 건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고, 자잘한 주폭 건 외에는 별일없이 주말이 다가왔다.
곽반장이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특수팀 테이블로 걸어왔다.
“오갱아? 모하니?”
“뭔 얘기 하시려고 이렇게 느끼하게 말을 거실까.”
“우리 신입도 별일없이 병가 마치고 복귀했는데, 한 잔 콜?”
예상하지 않았던 일정에 오갱이 살짝 눈을 찌푸리며 신입을 보았고, 신입은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저는 좋습니다!”
“오 반응 좋고, 돌격이는, 근육몬은?”
“저도 괜찮습니다.”
“아 전 잠시!”
우대리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들고 구석으로 가서 통화를 했다.
“···어어 자기야, 그래서 내일 만나는 거 어떨까? 아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어 고마워, 사랑해~ 으,응, 미안.”
우대리는 몸까지 쭈그리고 있다가 전화를 끊고는 그제야 어깨를 피고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도 시간 됩니다!”
우대리의 여자친구를 보았던 특수팀 팀원들은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방금 여친이랑 약속 취소한 거지?”
“그러게요. 이해가 안 되네, 스튜어디스 여친과의 데이트를 미루고 시꺼먼 선배들이랑 술 한잔이라니···.”
신입은 우대리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 스튜어디스?! 우대리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스튜어디스는 일단 남자들의 세상에서는 미모와 지성이 우수하다는 판타지에 속해있다.
그런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루고 팀원들과 술자리를 택한 우대리를 보며 신입은 감동을 받아 눈시울을 붉혔다.
‘저 정도는 해야··· 특별수사팀의 가족이 되는 거구나!’
신입은 주먹을 불끈 쥐고 더욱 각오를 다졌다.
‘나 김하민, 꼭 이 특수팀에 뼈를 묻겠다···!’
강력반은 타 과와 달리 경찰들이 기피하는 만큼 자신이 머물고자 하면 오래 머물 수 있다.
게다가 사건이 넘치는 강진서 강력반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에 24시간 365일 항상 지원자를 뽑는 곳이었다.
신입의 각오가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겠다는 꿈은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 *
삼겹살 가게 ‘인생고기’
지르르를 지글지글
곽반장을 포함한 특수팀이 둘러앉아 삼겹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먹자!”
곽반장의 말에 일제히 다섯 쌍의 젓가락이 공격적으로 뻗어나가 고기를 집었다.
‘회식은, 내 시간이다!’
신입의 눈이 비장하게 빛난다. 그가 사실 가장 자신있어하는 특기는.
“반장님 제 마음입니다!”
바로 유순한 사회생활이다.
신입은 상추에 고기, 쌈장, 파채, 마늘을 빻아서 조금만 올려놓고는 곽반장에게 먼저 내밀었다.
“우음 우음, 오잉?”
곽반장은 이미 큼직한 하나를 쑤셔넣던 중 첫 삼겹살을 먹지도 않고 자신에게 양보하는 신입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귀한 걸, 아!”
신입이 곽반장의 입에 쌈을 쏙 넣어주었고, 곽반장은 그 황금비율 고기쌈 맛에 눈을 질끈 감았다.
“오우, 뭐지? 내 근 40년 인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동인데?”
곽반장이 손수 엄지를 추켜올리자, 오갱이 눈을 반짝였다.
신입은 그 마음을 알고 빠르게 새로운 쌈을 만들어 오갱에게 내밀었다.
“오우우!”
신입이 세 번째 쌈을 싸자 해수가 손바닥을 보였다.
“난 됐어, 너 먹어라.”
“앗 이거 신과장님꺼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해수가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고, 다른 팀원들이 풉풉 거리며 웃었다. 신입이 그제야 웃음지으며 일어나 해수에게 내밀었다.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드시고 화 풀어주십시오!”
해수는 그 맛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에 이어서 우대리까지 신입의 황금비율 쌈을 받았다.
‘마, 맛있어···!’
우대리는 자신에게는 없는 신입의 능글맞는 행동에 위기감을 느꼈다. 게다가 맛있어서 더.
이전에는 특수팀에 없었던 신입의 캐릭터에 회식 분위기가 금세 무르익었다.
“그런데 신입 복싱은 어디서 배운 거야? 3주만에 사람이 아주 변해서 왔어!”
“아 그게 다 신과장님 덕분이죠! 과장님! 정말 제 은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닷!”
신입도 기분이 좋아 살짝 취한 상태로 대답하고는 신해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일어나며 그제야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헙!”
해수는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다시 집어먹었고, 다른 팀원들이 물었다.
“뭐야 뭐야, 해수가 도와줬어?”
“역시 돌격이구만!”
“그,그게,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돌격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신입이 난감해하자 해수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하루한테 좀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끔 봐주고.”
“아··· 하루씨!”
“오 여기서 하루가 나오네, 아아 일단 마셔!”
유야무야 넘어가며 회식이 끝나고, 우대리는 해수를 기다렸다가 다가가 소심하게 불만을 표했다.
“선배님···.”
해수는 콜택시를 부르느라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대답했다.
“어, 왜.”
“저 좀··· 섭섭합니다.”
“뭐가.”
“신입은 오자마자 챙겨주고, 저는···.”
해수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와 눈을 마주하고 물었다.
“너도 배울래?”
“···예?”
* * *
신해수의 집 안.
체육관으로 꾸며진 운동방에는 시원한 타격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팡! 팡! 퍼석!
“아으윽!”
하루의 폭주기관차같은 공격을 정신없이 맞던 우강철이 결국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루의 얼굴은 그와 상반되게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신이 나서 출입구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해수를 보며 말했다.
“1호보다 타격감도 좋고, 맷집도 좋습니다!”
쓰러져 있는 우강철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하루씨··· 나 그래도 맞선임이었는데···.”
“어허, 2호 교육생!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악!”
이상하게도 교육생이 늘어날수록 하루는 더욱 즐거워하는 것 같긴 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해수는 내심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의 성장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 * *
며칠 뒤, 강력반 사무실.
우대리가 멍한 눈으로 사무실 끝에 벽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피곤한가보다 싶어 가만히 놔뒀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도, 잠시 바람을 쐬면서 음료수 한 잔을 마실 때에도 축 늘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시선이 바닥을 향해 있다.
신해수는 그의 상태가 마음에 쓰여서 음료를 마시러 나왔을 때, 따라나와 말했다.
“우대리, 그만 배우고 싶다면, 그리해도 된다.”
해수의 말에 우대리가 두 손을 들고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절대요. 저 정말 배우는 거 좋습니다. 그거 때문 아닙니다.”
“그러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신경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해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우대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말하고 싶을 때, 털어놔라.”
언제든지 의지하라는 말, 별거 아닌 말이지만, 우대리는 울컥하여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들어가고, 퇴근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끼익-
누군가가 강력반 사무실을 찾아왔다.
또각 또각 또각
선명하게 울리는 하이힐 굽이 바닥을 찍는 소리,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고개가 하나 둘 올라가고.
딱 붙는 유니폼에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강력반 사무실 중앙을 거닌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스튜어디스 유니폼이다.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힘이었다.
그 여인이 향하는 방향 끝에는 우대리가 있었다. 여인을 발견한 우대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도도하게 우대리를 내려다보다가, 돌연 인상을 확 찌푸리며 두 손을 번쩍 들어 그의 등짝을 내리쳤다.
“야이 멍청아! 곰탱아, 둔팅아! 왜 말을 안해, 말을!”
그녀는 바로 우대리의 여자친구 오지연이었다.
몇 번 마주한 적이 있는 오갱과 해수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이 상황에서도 우대리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
“제수씨, 일단 진정하시고···”
그제야 그녀는 준비해준 의자에 털썩 앉고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힘없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우리··· 전세 사기당했어요. 신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