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15화 (215/255)

< #215. 하루는 재능이 없었다. >

두 중년 남성이 마주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다.

창문 너머에는 푸르른 잔디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직도 서로 칼질을 하고 있습니다.”

검은 수트를 입고 있는 중년인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머리가 새하얀 중년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본래, 옛부터 호랑이 없으면 여우가 숲의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소? 여우가 많으면 왕이 되려고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게 당연한 거지.”

“선생님께서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하얀 머리 중년인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음음, 아직 때가 아니에요. 볕이 내리기 가장 좋은 날이 올 거에요.”

“알겠습니다. 주제 넘는 의견이었네요. 선생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실 텐데.”

“허허···.”

하얀 머리 중년인, 천선생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끄으으으응!!”

쿠웅!

강력4팀의 신입 김하민이 바벨을 바닥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 옆에 하루가 알도 없는 은테 안경을 끼고 테블릿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근력 5등급.”

“헥,헥,헥, 5등급? 1등급이 높은 거죠? 저 왜 이렇게 낮죠? 3대 400은 치는데요?! 이거 쉽지 않아요!”

하루는 표정없이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황장수가 살며시 이동하여 스쿼트 기구에 걸려있는 바벨 중량을 올렸다.

철컹 철컹 철컹-

이쯤 되면 끝내겠지 싶었는데 계속 중량을 올린다. 그렇게 250KG가 되자,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허업!”

신입은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저렇게 고중량 스쿼트를 하는 것도 놀랐는데, 그것을 한 번도 아니고 가볍다는 듯이 계속 하는 황장수의 행동과 평온한 표정을 보고 기겁했다.

하루가 그 옆에 가서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2등급입니다.”

“저, 저, 저게요? 대,대체 그러면 1등급은 얼마나 탈인간이어야···!”

“신해수님이 기준입니다. 1등급.”

“허얼···.”

그런 사람들이 있다. 같은 크기의 근육, 같은 형태의 몸이더라도 더 튼튼하고 더 힘이 강한 사람, 골밀도가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은 사람.

그게 바로 신해수였다. 그는 이미 강력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보다 더한 힘을 낼 수 있는 축복받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그는 근육이 더 커지면 몸이 둔해진다 하여 유지하기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신입이 놀라워하는 사이, 하루는 고민어린 표정으로 테블릿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틈에 신입도 구체적인 평가가 궁금하여 테블릿을 힐끔 보았다.

-김하민- 근력 5등급

해수님ㅂㄳㅍ 해수님 언제옴? 너튜브 조회수 줄어씀 장수 아저씨 산적가테

아 오늘 엑시트이벤트 있는데

‘뭐,뭐야, 다 쓸데없는 말이잖아?’

하루는 뒤늦게 신입의 시선을 인지하고는 테블릿을 옆구리에 끼우고, 안경테 중앙을 검지로 살짝 올리며 입을 열었다.

“김하민 교육생은 근력이 딸리니까 자기보다 힘이 강한 사람을 상대로 이기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배울 겁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신입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루가 발을 구르며 절도 있게 말했다.

“교육생, 대답은 ‘악!’으로 통일합니다!”

“아, 악!”

그 모습에 황장수는 몇 시간 전, 해수에게 교관 제의를 받고 나서 하루가 보고 있던 너튜브가 떠올랐다.

-짜가 사나이 (지옥의 훈련)

“목소리가 작습니다. 알겠습니까?!”

“악!!”

장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컨셉을 잡았어. 뭐, 즐거우면 됐지.’

그래도 황장수나 신해수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강력반을 지원하고 운동부심을 부리는 만큼, 신입은 나름대로 몸이 적당히 다져진 상태였다.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파쿠르를 잘 하는 쪽새나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정영수에 비하면 트레이너 수준이었다.

그래서 하루와 황장수는 그에게 근력 훈련보다는 곧바로 기술 교육에 들어갔다.

“상대의 어깨를 잘 보고, 겨드랑이를 찌릅니다.”

훙- 퍽!

“어욱!”

신입이 황장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을 굴렀다. 글러브에 헤드기어, 낭심보호대까지 보호구를 전부 착용하고 있어도 그 충격으로 골이 흔들릴 정도였다.

“괜찮아요?”

“괘, 괘, 괜찮습···니다.”

그때 하루가 크게 외쳤다.

“대답은 악!”

“아악!!”

“좋아, 다시!”

퍽!

“악!”

신입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하루의 눈이 슬며시 가늘어졌다.

하루는, 자신의 근육대비 근력, 반사신경, 동체시력 등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천재 수준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하는대로 바로 행하지 못하는 신입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이게 왜 안 되지? 부교관, 위치로.”

“위치로!”

본래는 황장수를 어려워하는 하루였지만, 컨셉에 잡아먹혀 그를 완벽하게 자신의 부교관으로 다뤘다.

하루가 손을 휘휘 저어 공격하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황장수는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휘둘렀다.

콱!

커다란 주먹이 뻗어오자 하루는 살짝 몸을 숙이며 안으로 파고들어가 황장수의 겨드랑이를 강타했다.

글러브를 차고 있지만 송곳같은 하루의 손맛은 여전했다.

“크윽-”

하루는 황장수가 겨드랑이를 매만지며 아파하는 모습은 시선도 주지 않고,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신입을 나무라며 다시 둘을 마주세웠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게 힘듭니까?”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부교관, 다시 들어오세요!”

“아, 옙···.”

이번에는 가벼운 잽을 날렸다가 연이어 훅을 휘둘렀고, 하루는 금세 몸을 틀며 장수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쾅!

“커헉!”

둔탁한 굉음과 함께 장수가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요즘 너튜브를 찍느라 평소보다 근력운동을 더 많이 하여 펀치력도 강해진 하루였다.

“이게 어렵습니까? 상대가 공격할 때 빠르게 공격한다. 간단하잖아요. 다시!”

“아···악!”

퍽!

다시 신입이 바닥을 뒹굴었다. 하루의 펀치에 아직도 어지러운 황장수였지만, 신입을 한 방에 눕히기에는 충분했다.

하루는 본신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르치는데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끝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  *  *

3주 후.

“다시!”

“악!!”

퍽! 쿠당탕-

신입이 황장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을 굴렀다. 전과 달라진 것은 일어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끝, 오늘로써 3주간 특별 교육이 끝납니다.”

하루의 말에 신입이 울컥했다.

“저, 저는 3주 전에 비해 나아진 게 없는데···!”

하루가 고운 미간을 좁히며 짐짓 위협적인 어조로 물었다.

“펀치에 힘을 싣는 법, 배웠습니까?”

하루종일 맞고 나면 다음날에는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는지 하루가 격일로 공격만 가르치는 날이 있긴 했다.

신입은 그것을 떠올리고 절도 있게 대답했다.

“배웠습니다!”

“나보다 강한 상대를 제압하는 법, 배웠습니까?”

“배, 배웠습니다···.”

신입은 뒤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황장수를 힐끔 보았다.

3주동안 악바리 근성으로 덤볐지만 단 한 번도 주먹 한 번 닿지 못했던 괴물.

신입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져 하루를 힐끔 보았다가 눈을 마주치고 다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황장수가 괴물이라면, 그녀는 괴물사냥꾼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3주동안 함께하면서 황장수가 왜 하루와의 스파링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맞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저 가녀린 몸으로 황장수같은 괴물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선배님은 이분들을 어디서 섭외한 거지···?’

하지만 두려운 마음에 감히 사적인 질문은 입밖으로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그럼 됐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싸우십시오!”

“악!!”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주 1회, 월요일 아침에 이곳에서 교육을 이어간다.”

“서, 선배님 오셨습니까?!”

신입이 울먹이며 해수에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뒤늦게 해수의 말을 깨닫고 기겁했다.

“매, 매주 1회?”

“그래, 고작 3주 동안 뭐가 바뀔 줄 알았나? 적어도 1년은 배워야지, 수고했고, 앞으로도 수고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신입은 돌아서서 하루와 황장수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루 교관님! 황장수 부교관님!”

하루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황장수는 매주 1회라는 말에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해수를 째려보았다.

*  *  *

리드빌딩 엘리베이터 안, 숨막히는 적막이 신입의 목을 틀어쥐고 있다. 정말 숨도 쉬기 힘들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신해수가 그 특유의 건조한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아, 안 데려다주셔도 되는데.”

“교육 수료 기념이다.”

차가 없는 신입을 위해 해수가 직접 집으로 데려다주기로 한 것이다.

“아··· 넵, 감사합니다.”

해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10층에서 지하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싶다.

신입은 문득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저···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해.”

“그, 하루 교관님하고 황장수 부교관님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이십니까? 아니, 본래 직업이 어떻게 되십니까? 실례인 줄 알지만 너무 궁금해서···.”

해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루는 이전 강수대 팀원, 현재는 백수, 황장수는 내 친구, 현재는 백수.”

“아, 아···?! 강수대! 와··· 부교관님은 선배님의 친구분··· 그렇군요. 가, 감사합니다.”

신입의 얼굴이 멍해졌다.

하루가 전직 강수대라는 말에 무언가 더 멋있어보였다.

또한 황장수가 해수의 친구라는 말에, 그렇게 강한 실력자라는 것도 납득이 되었다.

‘잠깐, 친구라고 해도 둘 다 괴물처럼 강할··· 강할 수도 있지, 음.’

*  *  *

드디어 3주간의 지옥같은 교육이 끝나고 강력4팀으로 복귀하는 날.

신입이 들어서자마자 오갱과 우대리가 그를 격하게 반겼다.

“아이고 우리 병아리 왔어?! 푹 쉬다 왔어?”

“신입 어서 와라! 기다렸··· 너, 얼굴이 왜 그래?”

“엉? 그러게? 뭐 이렇게 퉁퉁 부었어? 어떤 새끼가 이랬어?!!”

신입은 저 끝에 앉아있는 해수를 힐끔 보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별거 아닙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서 복싱을 좀 배우다가···.”

“복싱? 어디 체육관이야! 어떤 새끼가 우리 신입 얼굴을 샌드백으로 삼은 거야!”

“저 정말 괜찮습니다. 팀장님 고정, 고정하세요.”

그때, 해수가 신입을 보며 손을 까딱거렸다.

“우대리, 신입.”

“예! 신과장님!”

“예썰!”

우대리와 신입이 강력반이 떠나가라 대답하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 모습에 오갱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저놈들은 어째 팀장보다 해수를 더 무서워해? 누가 보면 청장이 부른 줄, 퉷.”

심술을 부렸지만 오갱의 마음에 서운함은 없었다. 해수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갱을 항상 깍듯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해수가 우대리의 책상 밑에 쌓여있는 덤벨 하나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거 신입 좀 빌려줘라.”

“예? 아···.”

우대리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신해수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수 있지만, 목숨처럼 아끼는 운동기구를 남에게 빌려주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해수와 눈을 마주쳤고, 자신의 마음과 달리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예! 알겠습니다!”

“신입은 이두랑 악력부터 늘려, 형사가 몸싸움할 때는 악력을 가장 많이 쓴다.”

“악! 아, 아니, 알겠습니다!”

신입은 우대리에게 덤벨을 두 손으로 받고는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과연, 내가 발전을 했을까?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곧 신입은 2층 계단에서 떨어지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조폭들 상대하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은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그러나, 신입은 대한민국의 고담시, 강진시를 너무 얕잡아보았다.

띠리리리-

“강력반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보냅니다.”

곽반장이 내선전화를 받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시선에는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강력4팀, 아니 이제는 특별수사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 한가하게 운동하고 있는 특수팀! 떼폭이다! 출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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