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신입의 고민 >
며칠 전, 강선주의 집.
그녀는 하루의 물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들었다.
“둘 다요. 돈도 받고, 복수도··· 나는, 정말 못됐나봐요. 그 사람이··· 내가 겪었던 지옥을 그대로 겪었으면 좋겠어요.”
하루는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하시는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그런데, 이런 일을 해주시는데, 뭐 수수료같은 거라도 드려야하는 거 아닌가요?”
하루는 인위적으로 입꼬리만 올리며 대답했다.
“수수료는, 그쪽에서 지불할 겁니다.”
* * *
구원 자산관리 회사 사무실.
사장실에 김해권이 상가를 급매하기 위해 매입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고급스런 양복을 갖춰입은 상대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으셨네요. 급하게 목돈이 필요하셨나봅니다.”
“···예, 뭐.”
“그렇군요. 모쪼록 하시는 일이 원활하게 풀리시길 바랍니다. 제게 전권을 맡기신 사장님께서도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자, 다 되었습니다.”
“아, 네···.”
김해권은 구매 대리인이자 이 회사 대표인 상대의 서명을 보고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상당히 특이한 이름이었다.
[대리인 서명: 구세주]
* * *
강선주의 집.
하루는 현금 2억이 든 종이가방을 강선주에게 밀어주었다.
“김해권씨에게 받아낸 현금입니다. 모자란 양육비를 충당하시기 바랍니다. 수수료는 김해권씨에게서 넘치게 받았습니다.”
강선주는 얼마나 주는지 금액을 전혀 몰랐고, 받고 나서도 종이가방을 열어 금액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 아니 그놈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하루는 입만 웃음지으며 설명했다.
“현재 5가지의 죄목으로 인해 경찰서에서 조사 중입니다. 불기소 처분이 날 일은 없습니다.”
“아하···.”
강선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하루의 손을 두 손으로 덥썩 붙잡았다.
“정말, 제 삶이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정말,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손을 꼬옥 잡고 있으니, 하루는 당황하여 손을 빼지도 못하고 공감이나 위로도 못해주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런 침묵이 또 강선주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녀는 한참 만에 하루의 손을 놓아주었다.
진정이 된 그녀에게 하루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강선주씨는 우리와의 만남을 모두 잊어야 합니다. cctv, 블랙박스 등 우리의 흔적이 있는 것은 모두 소멸시켰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겁니다. 누군가에게 밝히면, 이 돈을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강선주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들 말씀대로 꼭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복받으세요.”
그녀가 끊임없이 허리를 숙이자 하루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강선주는 터덜터덜 걸어와 식탁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종이가방을 열어보았다.
“어멋!”
그녀는 노란 지폐가 뭉텅이로 무겁게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손을 놓쳤다. 바닥에 5만원권 뭉텅이가 흐트러졌다.
“이,이,이게 다 어,얼마야···?”
수사로 인해서 그녀의 빚도 탕감되었겠다. 사실 본래의 삶이 지옥이었기에 거기서 벗어난 지금도 바랄 것이 없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밀린 것 중에 절반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희망만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확인한 금액은 현재까지 밀렸던 양육비를 포함하여 아들이 스무 살 될 때까지 줘야 하는 금액을 넘어섰다.
그녀는 그 돈들을 바라보다가 하루가 나간 현관문을 보며 다시금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 * *
김해권은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강진경찰서 취조실에 앉아있다.
“···횡령 자료··· 회사측과 일치하고, 이거 보시죠.”
날카로운 인상의 형사가 노트북을 돌려 김해권에게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사진은 뇌물, 이건 접대 겸 성매매, 이건 성추행, 성추행은 세 건, 원조교제는 밝혀진 것만 일곱 건··· 인정하십니까?”
해권은 마치 함정에 빠진 것처럼 증거물이 딱 딱 들어맞는 것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돈 2억을 가져간 그들이 떠올라 다시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저요. 저거 다 인정합니다. 인정해요. 그런데 내 돈 뺏어간 도둑놈들 잡아주세요.”
형사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도둑?”
“네에! 이거, 이 자료 누가 줬죠? 그놈들이에요! 걔네가 내 부동산까지 다 알고 팔라고 해서 팔고 2억을 가져갔다니까요!”
“2억···.”
“그렇다니까! 나, 나 감빵 들어가도 돼요. 그놈들만 잡아서 내 돈만 찾아줘요. 진짜 쌩도둑놈들이에요!”
그때, 형사가 노트북을 다시 돌리고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2억, 그것도 수사망 좁혀오는 거 알고 미리 숨겨두신 거 다 압니다. 형사들 바보 아니에요. 그거 출처와 숨겨두신 곳 안 알려주시면 다른 재산을 몰수해서 피해금액을 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 아니라니까요! 그 새끼들이 다 가져갔다고! cctv, 아니 블랙박스, 내꺼 블랙박스 확인해봐요! 어떤 반반한 여자 하나! 졸라 험악한 새끼 하나! 삐쩍 마른 새끼 하나! 세 명이 막 지네가 의적이니 뭐니 하면서···!”
딱. 딱. 딱.
그때, 형사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파란 칩을 꺼내어 책상을 두드렸다.
순간 김해권은 섬뜩함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블랙박스?”
“······.”
형사, 신해수는 파란 칩, SD카드를 입에 가져갔다.
오도독 오도독-
그러고는 해권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잘근잘근 씹고 꿀꺽 삼켰다.
“없던데.”
해권은 신해수의 섬뜩한 눈동자를 보자 그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결된 경찰이 있어서 수사는 빠르게 진행될 겁니다.
김해권은 눈앞에 형사가 그들이 말하는 연결된 형사임을 깨달았다.
그의 눈빛을 읽은 신해수가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벌, 달게 받고 나오세요. 없는 말 꾸며내면 가중처벌됩니다.”
“아, 아···.”
김해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절망감에 빠졌다.
* * *
강진서 강력반.
행복드림 사건에 이어서 그 피해자와 얽힌 사건까지 깔끔하게 해결되자 강력반 사무실 분위기가 붕 떠 있었다.
신해수의 4팀도 마찬가지였다.
“야 막내야! 아니 근육몬, 신입도 일로 와. 짜장면 먹자, 아오 막내막내 하다가 신입 오니까 이게 교통정리가 안 되네.”
오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짜장면 그릇 랩을 벗겼다.
해수가 말을 보탰다.
“직급으로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엉? 직급?”
“제가 전에 있던 서에서는 회사원 직급으로 불렀습니다.”
오갱이 가만히 있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래, 그렇게 하는 곳도 많다더라. 우리는 서로 형님 형님하면 오해받는 얼굴이니까 성 앞에 직급을 붙이자고.”
근육몬이 휴대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여자친구는 귀염상이라고 했는데···.”
“곰도 손으로 찢어버리게 생긴 놈이 귀염상은 무슨, 자 그러면 나는 그냥 고대로 오팀장이라고 하면 되고, 신입은··· 신입, 아니면 무전명대로 병아리 할래?”
신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사래를 쳤다.
“아,아닙니다. 그건 너무 귀여워서, 신입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근육몬은 우씨니까··· 우주임, 아 아니다. 발음이 뭔가 별로야, 그리고 니가 주임이면 해수는 대리해야되잖아. 해수 짬밥이 있는데 대리는 좀 그렇지. 니가 대리하고 해수가 신과장 하면 되겠다. 괜찮지? 신과장, 우대리, 신입!”
“매우 찬성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불만 없는 걸로, 먹자!”
후루룹 짭짭 후루룹 짭짭
신입은 각자의 자리에 짜장면 두 그릇씩을 두고 흡입하는 팀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위협적인 근육과 얼굴만큼이나 무서운 식사다.
신입은 자신 외에 4팀의 형사들을 보면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같다.
한 달이 지나서야 강력팀이 모두 이런 것이 아니라, 4팀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2,3팀도 4팀을 의지하는 것을 보고 강력반의 실질적인 리더팀임을 알게 되었다.
강력반 반장 곽반장도 이전에 이 팀의 팀장이었다는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데 왜 4팀인가 이상해서 과거 행적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신해수와 강수대의 놀라운 전적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팀에 내가··· 내가 이 팀에 어울릴 수 있을까? 시간이 해결해줄까···?’
말하는 사이에 벌써 셋 다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고 두 그릇을 절반쯤 먹고 있다.
그때, 곽반장이 소리쳤다.
“야 법원 사거리에서 떼폭 신고다! 어디가 지원갈래? 아 아니다. 야 4팀 니네가 가! 덩어리 전문이잖아.”
탁-
곽반장의 명령과 동시에 오갱이 젓가락을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에이 증말, 얘들아 가자.”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오갱의 짜장면은 두 그릇이 모두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오히려 가장 잘 먹을 것 같은 우대리만이 절반정도 남아있었다.
신입이 멍하니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에 올려졌다.
“아직 많이 못 먹었네, 얼른 처리하고 오자.”
신과장이다. 신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네,넵! 죄송합니다!”
* * *
후다닥 준비하고 도착한 사건현장.
“야이 시팔새끼야!”
“죽어 죽어!!”
퍽퍽 퍽! 콰장창!
시꺼먼 무리가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 골프채 등을 휘두르며 맞붙고 있다.
“멈추세요! 멈추지 않으면 쏩니다!!”
“경찰입니다! 멈추세요!”
이미 도착한 경찰관들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애를 먹고 있다.
그때, 4팀을 태운 봉고차가 현장에 멈추어 섰다.
드르륵-
“꺼억, 아으, 소화가 벌써 되네.”
“한놈 두시기 석삼··· 열여덟, 저는 저 놈들 정리하면서 소화시켜야겠습니다.”
“이 막내, 아니 우대리가 선배님들 길 뚫어놓겠습니다!!”
운전석에서 내리느라 가장 늦은 우대리가 크게 외치며 겁도 없이 앞으로 달려나간다.
오갱과 신해수도 그에 질세라 고민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어어, 가,같이 가요!”
오팀장은 그 아수라장 무리에 들어서며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가만히 있는 놈은 안 때린다!!”
퍼버버버벅! 퍽 퍽!!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대리와 신해수 전차가 그 무리를 들이받았다.
근육질 전차에 치인 사람들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나자빠지거나 옆으로 튕겨나갔다. 그 수만 벌써 열 명 가까이 된다.
우드득 우득!
오갱은 전차에 치여 쓰러져 있는 자들의 관절을 꺾으며 수갑을 채웠고, 해수와 우대리는 순식간에 기세가 팍 죽은 조폭들에게 다가가 하나하나씩 여유롭게 제압했다.
‘내가 뭘 본 거지···?’
신입은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행복드림 때는 그래도 일반인이 대부분이었고, 형사들의 기습이었기 때문에 압도적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흉기를 든 조폭들을 순식간에 정리할 줄은 몰랐다.
미리 출동해 있던 경찰관들도 신입과 같은 마음인지 멍청하게 서서 그 압도적인 광경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 * *
다음날.
어제 있었던 떼폭 사건에서 도망친 인원의 위치가 파악되어 잡으러 출동했다.
신해수와 우대리가 건물에 진입하고, 오팀장이 입구를 막으며 신입에게 소리쳤다.
“신입! 너는 저기 뒷문 막아! 도주하는 놈들 다 후려쳐!”
“예 알겠습니다!”
콰장창! 퍽 퍽!
신입은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손을 덜덜 떨면서 진압봉을 움켜쥐었다.
우당탕탕!
얼마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 조폭 두 명이 뒷문으로 튀어나왔다.
신입은 진압봉을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멈춰! 엎드려!!”
“조까 이 씨발!!”
조폭들은 초식동물을 잘 알아본다. 신입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고, 그대로 몸을 들이밀었다.
퍽 퍽!
“아윽!”
신입은 달려오는 조폭에게 진압봉을 휘두르다가, 그 뒤에서 오는 놈이 옆으로 밀어 2층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을 정문을 막고 있는 오갱이 발견했다.
“야! 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