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반항하면 쳐맞아요. >
다섯 살 아이는 흘러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의 감정에 가장 민감하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다.
아이는 엄마가 처절하게 힘들어하는 감정을 보았고, 자신을 들어올린 순간, 찰나 그 걱정이 사라지는 눈빛을 보았다.
의자에서 떨어져도 많이 아픈데, 저 밑은 얼마나 아플까 상상이 된다. 그러나 엄마가 힘들지 않으면 되었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을 놓아도 괜찮아, 나는 여전히, 언제나.
“흡”
강선주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살얼음물을 끼얹은 듯이 화들짝 놀랐다. 번개가 정통으로 머리에 내리친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급히 아들을 안고,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었다.
“미안, 미안, 엄마가 미안, 엄마가···.”
스윽-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옷자락을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움켜쥐었다.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무서웠다. 놓치고 싶지 않다.
강선주는 제 손으로 저승의 문턱까지 다녀오게 한 아들의 온기를 느끼며 한참동안 가만히 흐느꼈다.
아들도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엄마를 토닥이며 계속해서 작게 속삭였다.
“엄마 내가 밥도 잘 먹고, 장난감도 잘 치울게, 엄마 울지마.”
“흐으읍-”
아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가슴이 아리다. 자신이 어떤 끔찍한 짓을 하려 했는지 떠올라 선주는 도저히 눈을 마주볼 수가 없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선주는 혹시나 행복드림 직원일까 하여 입을 막고 가만히 있었다.
똑똑-
-계세요. 강선주씨, SCV채널에서 나왔습니다.
‘···SCV채널?’
처음 들어보는 채널이다. 선주는 아들의 손을 잡고 현관문으로 가서 문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정장차림에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고 은테 안경을 쓴 여자가 서 있다. 그 옆에는 여자보다 조금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보인다.
선주는 문고리를 걸고 문을 살짝 열었다.
“···누구세요?”
은테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격방송채널 SCV의 하루미 기자 입니다. 잠시 말씀 가능하실까요?”
선주는 문틈 사이로 여자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신종 사이비종교 전파인가 싶었다.
“아뇨, 제가 바빠서, 수고하세요.”
선주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하루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연기가 제법이다.
“행복드림, 아시죠?”
턱-
문을 닫으려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녀는 다시금 문을 살짝 열고 하루에게 물었다.
“당신들 누구죠?”
이번에는 하루가 아닌, 그 뒤에 물러나 있던 연기전문가 쪽새가 나서서 말했다.
평범한 외모지만 말끔한 차림새가 어쩐지 호감상이다.
“행복드림 회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쪽새는 신뢰가 가는 선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선주는 그와 하루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문고리를 풀고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어쩌면, 이게 아들과 자신의 살길일 수도 있겠다 싶어 이야기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루와 쪽새는 지금까지 해수를 통해서, 그리고 아지트 팀이 따로 조사한 내용들을 알려주면서 그녀를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그래서 강선주씨와의 자세한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접근했고, 어떤 행동과 계약들을 강요했는지.”
쪽새의 설명에 강선주는 자신의 품에서 잠이 든 아들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악마같은 자식들에게 속았다고는 하나, 차마 사람같지 않은 선택을 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가 없다.
그 모습에 쪽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연기는 남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습득하게 된 쪽새는 남의 감정을 잘 캐치한다.
그는 현재까지 조사한 자료의 내용과 강선주의 행동과 감정을 보고 금방 상황을 눈치챘다.
“행복드림은 최악의 기업입니다. 인간이 가장 약할 때 약한 면을 더욱 자극해서 악한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 끝에는 생지옥밖에 없죠,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곳을 찾아오게 된 건, 강선주씨에게 마지막 회생의 기회가 닿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기회···.”
강선주는 조용히 잠든 아들을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쪽새를 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처연하던 눈빛 속에 결연함이 깃들었다.
“원래 카드회사에 빚이 있었는데, 한참을 안 갚으니 거기서 전화가 왔어요. 행복드림···.”
* * *
강력반 4팀 화이트보드 앞.
신해수가 마카로 글씨를 쓰면서 말을 이었다.
“···행복드림이 돈을 갚는 것은 물론, 생활비가 모자라면 대출도 땡겨주겠다. 라고 접근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가 지옥같은 사람들 열에 아홉은 수락합니다. 그렇게 중고차를 뻥튀기해서 대출로 구매하면 돈도 받고 카드 쪽 대출은 갚고, 온전히 행복드림이 채권을 갖게 되는 겁니다. 몇배로 뻥튀기된 금액으로.”
“개새끼들이네. 아니 근데 어차피 갚을 능력 없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돈을 빌려주면 뭐하나? 뭐 장기라도 받아내나?”
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방법으로 납부를 받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회사로 끌어들여서 최저임금으로 노예처럼 부려먹거나, 젊은 여성은 업소에 넘기고, 장기밀매도 의심됩니다. 그리고···.”
상상 이상의 결말에 오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또 있어?”
“보험사기가 의심됩니다. 생명보험, 피해자들의 가족이··· 또는 피해자 본인까지, 사망자만 17명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그게 가능해?”
대답할 필요도 없고,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것도 아니다.
오갱은 충격에 빠져 가만히 바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근데, 해수 너는 어디서 이런 것들을 다 알아왔냐? 우리 같이 뛰어다녔잖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계속 같이 옆에 있었는데, 모릅니다.”
오갱은 물론 근육몬, 신입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해수는 무표정으로 마카 뚜껑을 닫으며 대답했다.
“유능한 정보원이 있습니다.”
“크, 난 뭐한 거지? 정보원 하나 없이···.”
씁쓸한 얼굴의 오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해수 옆에서 막내라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진짜 나쁜 새끼들이 뭔지 아냐, 돈 많은 새끼들이 돈 안 내는 거? 돈 많은 새끼들 돈 빼먹는 사기꾼들? 아니야, 진짜 개같은 새끼들은,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들, 등 떠미는 이런 행복드림같은 새끼들이야.”
근육몬이 감명받은 듯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깊이 끄덕인다. 겨드랑이에 팔이 붙지도 않지만 그 태도에서 진심이 전해진다.
오갱이 해수와 눈을 한 번 마주하고는 다시 앞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자, 이제 발로 뛰어서 증거 확보하고 행복드림 개새끼들 조지자!”
“조지자!!”
“다 죽여버려!!”
“아즈아!!”
강력4팀이 괴성을 내지르며 강력반 사무실을 나섰다. 다른 강력팀 형사들이 그들을 보며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어우, 쟤네는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돼.”
“여기가 조폭 사무실인지, 형사 사무실인지 나도 헷갈린다.”
-악!
“아이 깜짝이야, 저게 사람 소리야 짐승이야.”
형사들은 사무실 밖에서도 들려오는 강력4팀의 외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행복드림 회사가 저지르고 있는, 여기저기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런 대출사기는 수면 위로 드러나기 힘든 구조였다.
교묘하게 피해자들이 인지하고 선택한 것처럼 몰아세워, 중고차 대출은 물론이고 보험사기같은 경우에는 보험에 들기만 해도 공범이 되는 듯한 소속감을 주어 고통을 받아도 신고를 절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파고 들어가니, 저 밑바닥에서 구원의 동아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입을 열어, 생각보다 증거수집이 원활했다.
HS생명보험 강진지부 지하주차장.
명품 옷을 빼입은 중년 여인이 2억이 넘는 세단으로 다가간다.
삑- 철컥.
차 문을 열기 직전, 누군가가 다가와 문이 열리지 않게 잡았다.
여인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가온 사내를 바라보았다. 덩치가 크고 근육질에 인상이 사납다.
“뭐에요?”
그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보험설계사 김미영씨?”
“그런데요. 누구시죠?”
근육질, 근육몬이 경찰 배지를 보여주었다.
“강진서 강력4팀 수사관 우강철입니다. 잠시 동행하실게요.”
탁!
김미영은 근육몬의 팔을 사납게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두 눈이 주차장 출구 쪽을 힐끔였다.
“뭔데? 영장 있어? 나 바쁜 사람이야! 니 월급의 열 배를 번다고 내가!”
근육몬이 미소를 유지하며 그녀의 팔뚝을 다시 잡고 말했다.
“부탁 아니고 협박입니다. 어차피 이틀 안에 보험사기 입증되실 거고, 지금 진술 거부하면 형량만 늘어나요. 좋은 말 할 때, 따라오시죠.”
“잇, 이···!”
근육몬의 말투에 확신이 깃들어 있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김미영은 그것을 금세 눈치 채고 낭패한 표정으로 그의 이끌림에 따라갔다.
‘어떤 새끼가 신고한 거야? 행복김밥 김사장? 아니면 멍청한 이혼녀 강선주?’
* * *
‘샤론 플라워’ 꽃집 안.
한 중년인이 꽃 한다발을 꽃집 주인에게 받아들고 향기를 맡았다.
“좋네요. 계산해주세요.”
“예, 와이프분이 좋아하시겠어요.”
“돈으로 바꿔오지 말라고 하면 다행이죠.”
“하하, 여기 결제 완료했습니다.”
“네, 많이 파세요~”
중년인이 꽃집에서 나와 주차된 차로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가까이 붙는다. 중년인은 거리가 가까워 그를 이상한 눈으로 힐끔거리다 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때 남자가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좋은 일 있으신가봅니다.”
중년인이 멈추어 서서 남자에게 몸을 틀었다. 남자가 키도 크고 몸도 근육질에 흉터도 많아 한 눈에 보아도 조직폭력배로 보였다.
“너 뭐야? 어디파 놈이야? 나 담그러 왔어?”
남자, 신해수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나쁜 일 전하려고 왔습니다. 문지한씨 사망 사건 담당 강상철 경위님 맞으시죠?”
“너 뭔데?”
멈칫한 중년인이 바락거리며 따져든다.
해수는 그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비리비리한 비리경찰 잡으러 온 과잉진압 전문 형사.”
* * *
강진시 외곽에 위치한 조립식 단층 건물 앞.
허름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스포츠카, 명품 외제차가 즐비해 있다.
건물 안에는 파티션도 제대로 쳐져 있지 않은 오픈형 사무실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에 수십 명의 젊은 사람들이 전화기를 들고 있고, 시야가 방해될 정도로 담배연기가 가득 차 있다.
“···아니 그러니까! 돈을 달라고 돈을! 돈 없으면 빌리지를 마셔야지, 어?!”
“···아이 시팔 진짜, 그쪽 애새끼 아픈 건 그쪽 사정이고! 돈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라고, 내가 연결시켜준다니까 아줌마? 아줌마 몸매 되잖아, 어? 세달 이차까지 바짝 땡기면 이거 싹 갚는다. 내가 보장할게.”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줄게요. 일단 중고차를 우리한테 사면 저쪽 빚 탕감해주고, 고객님한테도 생활비 500쯤은 쥐어줄 수 있어요. 아이 그렇다니까, 우리가 고객님 사정 봐주는 거지. 우리한테 빌린 돈? 천천히 갚아도 된다니까.”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잡고 쌍욕을 하고, 누군가는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고 있다.
그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엥? 우리우리 이쁜이 주솜비씨, 어디가나?”
젊은 여성의 비율이 극히 적은 곳이기에 남자들 몇 명은 꼭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녀의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팀장의 물음에 주솜비가 당황하여 안절부절 못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 화, 화장실이요.”
“또? 아까 30분 전에 갔잖아, 또 마려? 아, 그날?”
“아아··· 네.”
“오케이 오케이, 얼른 다녀와, 이런 팀장 없다. 옆팀이었으면 그냥 자리에서 갈아끼라고 했어.”
기분나쁠만한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센스있는 척, 배려한 척 포장한다.
주솜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입구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팀장이 다시 불러세웠다.
“엥? 거긴 입군데?”
주솜비는 멈칫했다가, 팀장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고 입구로 향했다.
“팀장님, 그, 한 명이 연락을 안받-”
“뭐? 어떤 겁없는 새끼야?”
일어나서 다가오려던 팀장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솜비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번호 도어락을 열고, 더 바깥쪽에 일반 철문도 열었다.
이곳은 이중으로 안쪽까지도 문을 잠가놓는다. 비밀번호도 팀장만 안다.
드나들려면 잠겨져 있는 문을 누군가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끼익-
문을 열자, 새까만 옷을 입은 사내들 여러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다부진 체격의 남자, 오갱이 주솜비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사무실로 새까만 옷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안에서 전화를 받던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방금 전에 주솜비에게 말을 걸었던 팀장이 말했다.
“뭐, 뭐야 니네?!”
오갱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중간에 서서 담배연기가 자욱한 사무실을 살펴보았다.
“하, 너구리를 단체로 잡고 있네, 나도 담배 좀 끊어야겠다.”
오갱은 두 손을 들어 손뼉을 두 번 크게 짝짝 치고는 말을 이었다.
“자, 우리 좃같은 행복드림 직원분들, 여러분을 사기죄 및 살인교사, 장기밀매 등의 혐의로 현장 체포합니다. 이제 남 등쳐먹으면서 꿀 빠는 거 그만 하고 차가운 교도소 바닥에 등 붙일 때입니다. 반항하면 존나 쳐맞으니까, 사이좋게 줄 서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