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등산 3인조 >
하루는 신해수의 겉옷을 치마처럼 두르고, 왠지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산을 올라갔다.
“헥, 헥, 처,천천히, 이러다 다 죽어···.”
정영수가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했다. 그때 신발끈을 묶느라 뒤처졌던 쪽새가 그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님만 죽을 거 같은데?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하지, 맨날 컴퓨터 앞에만 있으면 쓰나, 쯧쯧.”
“저, 저 새끼가···!”
영수는 쭉쭉 치고 올라가는 쪽새의 뒷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보다 더 왜소한 체구이기에 비슷한 체력을 지녔을 줄 알았는데, 저 괴물같은 일행들을 곧잘 쫓아가고 있었다.
영수는 자신이 꼴지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이를 악물며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 드디어 쉬는 곳에 도착했다.
“헤엑, 헤엑, 이렇게 힘든 등산은 처음이네. 근데 누님··· 뭐하세요?”
하루는 신해수의 가방에서 무언가 엄청난 것을 꺼내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두껍고 견고한 벨트로,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고, 구멍 테두리가 쇠로 둘러져 있다. 벨트 아래에도 무언가 치렁치렁 달려있다.
무슨 마술의 가방처럼 엄청 긴 밧줄까지 나온다.
철컥
하루는 벨트에 고리를 걸고, 밧줄을 걸며 대답했다.
“여긴 초보자 코스라서 이 정도 장비면 충분하다.”
“···예?”
영수는 그녀가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등을 대고 있었던 가파른 절벽, 그곳을 그녀가 바라보고 있다.
영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죠?”
하루는 말없이 안전벨트를 가져와 영수의 허리와 두 허벅지에 메어주었다.
해수와 황장수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 장비를 착용한다. 영수는 무언가 많이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이··· 이런 것도 등산이라고 하나?”
“하, 내가 이십 평생에 암벽을 타는 날이 올 줄이야.”
쪽새의 투덜거림에 장수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파쿠르 했다며, 암벽도 잘 타야지.”
“아 이 단순한 아저씨, 뭐 모르면 말을 마쇼.”
“까불아, 겁먹지 마. 나도 처음이야, 여긴 6살 애도 올라간댄다.”
“후···.”
모든 인원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밧줄로 이었다.
말이 암벽이지 경사가 조금 더 가파른 길 정도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영수가 그렇게 애써 위안을 삼고 있을 때, 해수가 그에게 다가왔다.
“영수야, 출발해라.”
“···네?”
“하루가 그러던데, 가장 느린 사람이 선두에 서야 안전하다고, 가자.”
“헐···.”
영수는 생전 처음으로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저 위까지는 고작 20미터지만, 영수에게는 평생처럼 긴,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하아, 하아, 하악, 하악, 아 입에서 피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양쪽에서 해수와 장수가 거의 끌고 올라가다시피 하여 간신히 위에 올랐고, 영수는 올라가자마자 바로 대자로 누워 숨을 골랐다.
그러나 올라간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벌떡 일어선 하루가 장비를 해체,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정상까지 30분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쥐어짭니다. 갑시다!”
그녀가 당차게 외치며 해수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낚아채고 바로 뛰어올라갔고, 그에 질세라 해수와 장수가 뒤를 쫓았다.
쪽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영수 하나였다.
“가지 말까? 가지 말자 그냥, 어차피 올라가면 내려올 거 아니야?”
영수는 저 앞에 멀어지는 쪽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안 가 안 가,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이제 때려죽여도 못 가.”
영수는 그대로 다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청명하고, 바람은 솔솔 분다. 약간 춥지만, 폐속 깊숙한 곳까지 청량하게 해주는 맑은 공기가 기분이 좋다.
“흐읍, 하아··· 날씨는 겁나 좋네.”
짹짹 짹
끼익 끼익-
가만히 있으니, 적막이 찾아오며 지금까지는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낙엽을 밟고 사부작거리는 소리, 새소리, 벌레 소리.
문득 오늘 산을 오르기 전에 해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3인조가 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나쁜 짓을 한다던데···
영수는 순간 갑자기 추위를 느꼈다. 상체를 벌떡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알 수 없다.
“크, 크흠,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번 가볼까···.”
영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를 만날 수 있었다.
“헉, 헉, 어? 신형님?”
“왔냐, 가자.”
보이지 않는 영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영수는 말은 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히며 감동의 마음을 추스렸다.
그렇게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에게··· 600미터?”
툴툴대는 쪽새의 반응이 바로 영수의 마음이었다. 죽을똥 살똥 간신히 올라왔더니, 60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심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때, 하루가 ‘강내산 600미터’라고 적혀있는 돌판에 손을 얹히고 통보하듯이 말했다.
“다음에는 1키로, 그 다음에는 1.5키로! 가장 높은 산까지 정복할 것입니다!”
“하아···.”
쪽새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해 보였다.
영수는 다음이고 뭐고 거의 탈진 직전 상태이기에 헤롱거리면서 멍하니 앉아 숨을 골랐다.
그러다가 아까 떠올랐던 3인조 이야기가 궁금해져 해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셀카봉을 든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후, 후! 자, 여기가 드디어 정상입니다. 어머, 다른 분들이 있었네, 봉봉들아 나 너무 창피해 어쩌지.”
그녀는 화장을 꽤 짙게 하고, 가슴골과 배꼽이 드러나는 티셔츠에 레깅스를 입은 모습이 개인방송을 하는 여인인 듯보였다.
그녀는 돌판 앞에 서서 인증차 브이를 하며 혼자 뭐라뭐라 말을 했다.
“오늘은 강내산 정복! 여봉이가 강내산 뿌셔뿌셔! 아이, 땀 찬 걸 왜 보여줘, 어? 아니 님들아, 나한테 집중해 나한테, 왜 다른 여자를 보여달래, 죽을라고.”
카메라를 돌리면서 하루가 살짝 나온 것이다. 여봉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인은 카메라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자세를 취하며 시청자들과 귀여운 소통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해수가 중얼거렸다.
“요즘은 이렇게 인적이 드문 시간에 여성 혼자 산을 타면 안 됩니다.”
“···네?”
해수는 작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워낙 무게감이 있고 발음이 정확하여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봉은 그제야 해수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장수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꺄읍!”
장수는 머쓱해하며 해수 뒤로 숨었다.
해수의 말에 쪽새가 물었다.
“왜요? 아까 말했던 그 3인조 뭐 어쩌구때문에요?”
“신형님, 걔네가 정확히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요?”
금세 해수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3인조라는 말에 생방송을 찍던 여봉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거리를 둔 채 귀를 기울였다.
“큰 건 아닌데, 신고가 좀 들어왔어. 등산가들 협박 폭행하고, 여자 성폭행 미수로. 곧 수배 뜰 거다.”
“어떻게 생겼습니까? 산에서 내려오는 거 찍혔습니까?”
하루의 물음에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었다.
여봉이는 해수가 하는 말을 듣고는 조금 경계가 풀어진 눈치다. 저런 말을 대놓고 하는 걸 보니 위험한 사람은 아니다 싶은 것이다.
“여러분, 저 괘, 괜찮습니다. 등산가 분 중에 경찰도 계신 거 같아요. 휴우···”
해수가 다시 입을 열 때쯤, 올라오는 길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놈은 빡빡이에 키가 크고.”
그때, 빡빡이에 키가 큰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올라오자마자 해수의 말을 듣고는 뜨끔하여 경직된 자세로 있었다.
“한 놈은 팔다리에 장미 문신이 빼곡하고.”
스윽-
“야, 그년 찾았냐? 어잉?”
이어서 나타난 반팔에 반바지 사내, 팔다리에 장미 문신이 빼곡하다.
해수가 앉아있는 바위에서 일어나 목 관절을 풀며 말을 이었다.
“한 놈은··· 근육질에 골프가방을 메고 있었다.”
쿵-
“아이쿠, 왜 안 가고 있··· 응?”
이어서 근육질에 검은색 골프가방을 메고 있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보아도 만만해보이지 않는 해수와 장수, 게다가 자신들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읊은 해수로 인해 3인조가 순간 뇌정지가 되어 그 자리에 경직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해수가 그들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 안에 사람 담아서 납치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는데.”
-우웁 웁!
때마침, 근육질이 메고 있는 가방이 움직이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해수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거기 세 분, 이리 와보시죠.”
해수의 부름에 3인조가 주춤한다. 그 중 가운데에 있는 장미문신 사내가 품에서 드라이버를 꺼내며 외쳤다.
“얘들아 연장 꺼내라, 오늘은 피 좀 튀겠다. 전리품은 확실하니까 일 좀 하자!”
“예 형님!”
“예에!”
빡빡이가 품에서 렌치를 꺼내고, 근육질 사내가 골프가방을 내려놓더니 겉주머니에서 장도리를 꺼내어 들었다.
방송을 하던 여봉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 아 무서워 무서워, 나 어떡해, 지금 저 경찰아저씨랑 무서운 아저씨들이···!”
이건 실제상황이다. 자신을 위한 몰카가 이렇게 규모가 클 리도 없고, 저 3인조가 뿌리는 살기는 진짜였다.
하지만.
그건 기회였다. 여봉은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자신의 입지를 수직상승시켜줄 대박 컨텐츠임을 깨닫고 카메라를 돌려 그들을 찍었다.
“이, 이, 이거 찌, 찍다가, 나 위험할 거 같으면 도망칠게, 봉봉들아, 겨, 경찰에 빨리 신고 좀 해줘.”
┗응주작 개유치하네진짜
┗뭐냐뭐냐? 아니 피지컬들이 미쳤네? 여봉봉 언제 이렇게 대형스타가 됐어? 돈 많이 썼네?
┗저거 눈 봐라 졸라 무서운데? 진짜 아니야?
┗개무섭다 ㄷㄷㄷ
┗진짜임? 신고해? 진짜야 가짜야
┗와 미쳐따
┗어? 신형사같은데? 옆모습 신형사 아님?
┗진짜라고?
눈앞의 상황을 보여주자 채팅 반응이 뜨거워졌고, 다른 눈치 빠른 비제이도 그녀의 방송으로 들어와 중계방송을 했다.
갑자기 급격히 인원수가 늘어난다.
여봉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일이 조작이 아니라 실제상황인 만큼, 대박이 터질 수밖에 없다.
방금까지만 해도 도망갈까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직업이 너튜버인 이상 지금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에서 그 상황을 찍기 시작했다.
“여, 여러분이 여봉이 지켜줘요. 나, 나 몰라.”
여봉이 헛소리를 해대는 동안, 해수와 장수, 그리고 3인조가 서로 마주보고 섰다.
3인조는 연장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 해수와 장수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는 망설이고 있었다.
해수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상태로 말했다.
“그거 바닥에 내려놓고, 바닥에 업드리면 정상참작한다. 기회는 한 번이다.”
그때, 근육질 사내가 장도리를 추켜올리며 외쳤다.
“조까 이 씨발럼아!!”
해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던 그때, 기분좋은 향과 함께 그의 어깨 위에 작은 손이 얹혀지더니, 시야를 무언가가 가렸다.
팍!
해수의 어깨를 붙잡고 날아오른 하루의 발끝이 장도리를 든 손을 차고, 다른 다리가 근육질 사내의 목을 감쌌다.
후웅-
하루가 묘기처럼 사내에게 올라타 한쪽 팔을 잡고 두 다리로 목을 감싸고, 두 발목을 교차시키며 허벅지로 목을 조였다.
꾸욱-
“커,컥.”
근육질 사내는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바로 두 무릎을 꿇었다. 양쪽에 있던 다른 사내들이 놀라면서 바로 하루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해수가 앞으로 튀어나가 키 큰 빡빡이 사내의 흉기를 든 팔을 잡아채고, 다른 손으로 그의 명치를 후려쳤다.
으득-
“커헉!”
그사이 장수는 장미문신 사내의 렌치를 잡아 빼앗고, 그의 팔을 꺾어서 나무에 댔다.
그러고는.
“이런 건”
퍽!
“이렇게”
퍽!
“쓰는 거야.”
퍽 퍽 퍽 퍼석
“끄으아아악!!!”
문신 사내의 비명소리가 산 곳곳에 메아리 친다.
장수는 렌치로 문신 사내의 손을 완전히 아작냈다. 해수팀 중에서 누가 가장 잔인한 성정을 지니고 있는지 한 번에 비교가 되는 상황이었다.
눈을 빛내던 여봉은 그 잔인한 행동에 몸을 덜덜 떠느라 제대로 찍지 못했다.
화면에 제대로 담긴 것은 하루가 근육질 덩치를 제압하는 모습과, 해수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뿐이었다.
“어,어떡해, 허업.”
┗뭐야 뭐야?
┗이거 영화냐?
┗저 여자 누구임? 미쳤네
┗실시간 영화 틀었냐?
┗주작 적당히 좀 하고 그만 끄자 진짜 역겹다
┗주작무새야 너는 지금 저게 주작같냐?
여봉이 떨면서 멍하니 상황을 찍고 있을 때, 해수가 그녀에게 다가와 카메라를 가렸다.
“방송 종료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네에··· 보, 봉봉들, 이, 이따 봐,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