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05화 (205/255)

< #205. 등산 >

“아”

가슴이 따갑다. 신입은 처음 느껴보는 감각과 감정에 몸이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방검복과 맨살 사이에 칼날이 들어온 것이다.

신입이 알아채지 못했지만 칼날이 제대로 박히지 않아 범인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발이 날아왔다.

퍽-!

발을 맞고 구른 범인에게 한 새까만 덩치가 무섭게 달려든다. 신해수의 등장이다.

우드득-

“크흡!”

해수는 범인을 지하철 구석에 몰아붙이고 바로 칼을 든 팔을 부러트리고, 반대로 한 번 더 업어쳤다.

콰앙!

“컥, 커헉!”

이번에는 낙법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꽂혔다. 그가 호흡을 못하는 사이 해수가 그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고 팔을 등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며 신입에게 말했다.

“내가 가까이 붙지 말랬지.”

“그게...”

해수는 신입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인질로 잡혔던 임산부를 보았다.

전과는 다른 사람이지만 이번에도 임산부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봐.”

“옙! 괘,괜찮으세요?”

“감, 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임산부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채 놀라서 몸도 못 가누면서 신입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건넸다.

신입은 괜히 코가 시큰해졌다.

“제가 아니라 저 형사님이...”

고개를 돌려보니 해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열린 문으로 범인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가고 있었다.

신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 특이해, 특이해.”

*

강진역 3번출구, 해수가 검은 후드를 체포하여 강력4팀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용히 따르던 검은 후드가 나지막히 말을 걸었다.

“형사님, 이름이 뭐에요?”

잡히면 이렇게 꼭 이름을 묻는 자들이 있다. 나중에 나와서 복수한다는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해수는 멈춰서서 그의 후드를 벗겼다. 만두귀, 광기어린 눈빛, 새하얀 얼굴.

발바리 강우식은 아니다.

‘연쇄살인범 김우성’

지금까지 알려진 살인만 열 건, 수사망이 좁혀져 잡힐 뻔했으나 검거하려던 형사를 살해하고 도주, 공개수배로 전환된 희대의 살인마, 주 무대가 서울이었는데 이쪽으로 내려온 듯하다.

해수는 김우성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의 머리채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지금 뭐하는-”

쿵 쿵 쿵! 콰직!

해수는 그의 얼굴을 봉고차 옆면 모서리에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김우성의 몸이 건전지가 빠진 장난감처럼 축 쳐졌다.

해수는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언제든지 찾아와라, 내 이름은 신해수다.”

그는 그제야 문을 열고 김우성을 안에 집어넣었다.

“서에서 봅시다.”

뒤늦게 차에 돌아온 오갱과 우강철이 해수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경찰하길 잘했어, 쟤랑 같은 편이잖아.”

“역시 선배님은 과잉진압 1도 안 무서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신입은 임산부를 구급차에 태우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해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

다음날.

강진서 형사과 강력반 사무실.

[영화가 실제로, 지하철 영웅 탄생]

┗엄마가 뛰어들려던거 말리고 지가 뛰는거 실화냐?

┗개쩌네 진짜, 아직 대한민국 살만하다

┗졸라 멋있다. 올라오자마자 지하철 쌩 지나가는 거 개지린다

┗되감기네, 다음 주작

┗응 니 인생이 주작

┗현장에 있었던 사람인데, 이거 앞뒤가 잘린 영상이네, 저 사람 형사고 범죄자랑 몸싸움하다가 놓침, 범죄자 튀다가 아이 집어서 철도에 던진 거임, 관련 기사 링크 (https://[email protected]#..)

┗아 뭐야 그럼 당연한 일 한 거네.

┗넌 당연하게 제발 뒤져라.

┗형사 존나 머싯다

┗대한민국 경찰 클라스

┗그래서 범인 잡힘?

신해수의 건조한 얼굴 근육이 씰룩씰룩 떨린다.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홀린 듯이 링크를 따라 눌렀다.

-강진서 강력4팀, 연쇄살인마 ‘김우성’ 검거

┗얘가 누구임?

┗경찰포함 10명 죽인 연쇄살인마

┗ㄷㄷ잠만, 나 팬티 좀 갈아입고

┗이제 잡았어? 대한민국 견찰 ㅈㄴ 무능 그자체

┗그것도 광수대 있는 관할도 아니고 엉뚱한 관할에서 잡힘

┗얘 잡은 사람이 지하철 영웅임, 내가 현장에서 봄, 신형사님 사랑합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email protected]#...)

┗ㅅㅂ그럼 저 형사때문에 죄없는 애가 죽을 뻔 한 거네, 한 번 붙었을 때 놓쳐서.

마지막 댓글을 보자 해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때 뒤에서 강력반 형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스타 났네 스타, 우리 신스타님!”

“캬, 발바리 잡으러 갔다가 연쇄살인범 잡은 썰 풉니다.”

“야 돌격이 진짜 연예인 해도 되겠네, 팬이 왜 이렇게 많아?”

“신입 팬도 있는데? 니가 구해준 사람이라네? 하 부럽다.”

사무실은 아침부터 시끌시끌했다.

당사자인 신해수보다는 다른 형사들이 더 난리였다. 부러움 반 기쁨 반이다. 어쨌든 크게 보면 강진서 강력반의 실적이 되니.

해수는 돌연 신입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입, 병원 가 봤어?”

해수의 부름에 신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예, 옙! 괜찮다고 합니다! 빨간 약 바르고 왔습니다.”

“그래, 일 봐.”

“예 알겠습니다!”

해수는 다시 몸을 돌려 댓글들을 정독했다.

신입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만약, 어제 해수가 방검복을 입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무조건 죽은 목숨이다. 칼날이 방검복 끄트머리에 걸려 가슴을 1센티 가량 박혔으니.

그때, 신해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우강철 선임에게 듣기로 이때쯤이면 화장실에 들렀다가 믹스커피 한 잔을 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신입은 바로 따라 나가서 믹스커피를 미리 뽑아놓고 기다렸다.

여지없이 해수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커피 자판기 앞으로 왔다. 신입은 미소지으며 그에게 한 잔을 내밀었다.

“선배님, 미리 뽑아놓았습니다.”

신해수는 몇 초간 믹스커피를 바라보았다가 말없이 그것을 받아 홀짝홀짝 마셨다.

신입은 가만히 있어도 풍기는 그의 서늘한 기운에 입이 안 떨어지다가, 용기내어 입을 열었다.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신해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덕이지.”

농담하는 건가? 아니면 감사인사는 사양하지 않고 받는 스타일인가?

신입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왕 분위기가 가벼워진 김에 말을 한 번 더 걸었다.

“팀장님께 들었습니다. 선배님께서 구하신 사람이 많다고, 몇 명이나 구하신 겁니까?”

“37명.”

“와... 그러면 이번에 한 명, 아니 임산부니까 두 명 추가해서...”

“내가 구하지 못한 사람.”

“...에?”

신입은 뇌과 정지된 듯이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해수는 무표정으로 남은 커피를 탈탈 털고는 종이컵을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

‘김우성···’

해수는 김우성의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몸놀림이 날렵하고 강한 놈이지만 회사원은 아니다.

회사원의 정제된 움직임이 아니라 야수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물론 유도같은 것을 배웠겠지만, 기술 외에 움직임은 본능과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예사놈은 아니다. 가끔 이렇게 회사원 외에도 위험한 놈들이 걸려든다. 문득 모창귀가 떠올랐다.

‘그놈 정도는 아니지.’

해수는 고개를 저으며 경찰들의 피를 뒤집어쓴 모창귀의 형상을 애써 지웠다.

모창귀만큼의 실력자는 아니어도, 눈빛에 광기가 깊게 서려 있었다.

“이번에는 그놈, 김우성? 그놈때문에 왔어? 또 그 11호실에 넣어줘?”

해수 맞은편에 앉은 효성 교도소장이 물었다. 해수가 악질 범죄자를 쳐넣을 때마다 찾아오기 때문에 척하면 척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마실장과 만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대신 그 자가 사고를 치면 정해진 법보다 더 강하게 처벌을 해주십시오.”

김우성의 눈을 보면, 마실장에게도 굴하지 않을 자로 보인다. 무력으로는 절대 마실장을 꺾지 못하고, 김우성도 굽히지 않으면 일이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마실장이 김우성을 살해할 수 있다.

‘그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마실장의 필모에 생채기가 있으면 안 된다.

“아아, 뭐 그 정도야 우리 신형사가 말 안 해도 악질범죄자는 그렇게 하지, 특별히 더 강하게 처벌할게요.”

“예, 매번 감사합니다.”

***

해수팀의 본부, 일명 ‘아지트’

아지트 팀원들은 여전히 천선생의 뒤를 쫓고 있지만, 요즘 발로 직접 뛰지는 않아서 여유로운 편이었다.

황장수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몸을 담금질하기 위해 집에서 재활운동[극강의 근력운동]에 열중하고 있고.

쪽새는 감 떨어지면 안 된다며 자주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여 아지트를 들어와 정영수를 놀래켰다.

하루는 방송할 때나 해수 퇴근 전에는 이제 수시로 아지트에서 지냈다.

자기자신도 몰랐지만, 그녀는 제법 외로움을 타는 편이어서 항상 사람이 있는 아지트가 좋았다.

여섯 개의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던 정영수가 일어나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끄으아아아암, 하루 누나, 뭐해요?”

하루는 한쪽에서 무중력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응, 중요한 일.”

“아하.”

하루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하루에게 밥을 맛있게 먹었을 때의 감탄사를 가르쳐주었던 곳이다.

[집단 유대감을 키우는데는 단체행동만한 게 없음, 그 중에서도 등산이 최고다.]

┗뭐냐 이건

┗고롬 고롬 맞지(우리 부장)

┗등산은 단언컨대 인간 최고의 운동이다.(나만 죽을 수 없지)

┗아 등산가고싶다(백수)

┗단합력 보소 ㅋㅋㅋㅋ

하루는 팀원들과 함께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팀 톡방에 가서 바로 채팅을 쳤다.

-하루: 등산갑시다.

-쪽새: 시름

-천재영수: 갑분등산?

-황장수: 언제

-하루: 17일 오전 6시, 강내산 정상 찍기

-쪽새: 아 벌써 날짜랑 시간까지 정해졌구나.

-천재영수: 강내산? 거기 가파르기로 유명한 곳 아님? 클라이밍 하는 선수들 오르는 그런데 아님?

-황장수: 좋군. 그 정도는 되어야 산 탔다고 할 수 있지

-하루: 장비는 각자 챙기는 걸로.

-쪽새: 나는 절대 안감, 산 알레르기 있어요.

-천재영수: 장비? 웬 장비? 혹시 진짜 암벽 등산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 나 죽어요?

-하루: 유대감이 돈독해질 거임

-쪽새: 그 정도면 전우애일듯

-해수: 그날 봅시다.

-쪽새: 아아 사장님, 저는 빠져도 되죠?

*

등산 당일 06:00. 강내산 주차장.

쪽새는 배낭에 모자, 등산복 풀셋트, 스틱까지 들고 투덜거리고 있다.

“아 내가 왜 이런 꼭두새벽에 산을 타야 하는 건데.”

저벅

그때, 해수의 차에서 하루가 내렸다. 그녀는 발목을 덮는 등산화에 검은 레깅스, 위에도 딱 붙는 기능성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투덜거리느라 툭 튀어나온 쪽새의 입이 쏙 들어갔다.

“어, 음.”

정영수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피곤한 얼굴에, 평소 컴퓨터 앞에 있는 츄리닝 옷차림으로 오고, 황장수는 버릇 못 버리고 검은 정장에 구두를 신고 왔다.

쪽새와 비슷하게 등산복 풀셋트에 비상용품까지 배낭에 가득 채운 해수가 장수를 나무랐다.

“넌 왜 그렇게 입었냐.”

“편해, 너도 한 번 이렇게 입고 운동해봐.”

“미친놈.”

“허허, 이 천하에 황장수 성격 많이 죽었다. 나한테 미친놈 소리 하고 어디 하나 불구 안 된 놈이 없었는데!”

장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쪽새가 주변 등산가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저씨 소리 지르지 마요. 안 그래도 관상이 딱 깡패라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데, 더 공포분위기 조성하면 신고 들어와요.”

“뭐 이 땅콩아?”

“풉”

쪽새는 바로 장수에게 헤드락이 걸렸지만, 하루가 피식 웃는 모습에 뿌듯해했다.

무서운 누나지만, 존재만으로 눈호강을 시켜주는 누나이기에 항상 고마운 쪽새였다.

하루가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불이 반짝이는 경광봉을 들고 앞장서며 말했다.

“제가 인터넷으로 길을 미리 숙지했습니다. 본 교관을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낙오자는 없습니다. 출발.”

“어어, 뭔가 무섭다.”

“출바알”

“출발!!”

해수는 별 생각없이 하루의 뒤를 쫓다가 멈칫했다. 처음부터 경사가 가파른데 레깅스를 입은 하루가 앞장서니 뒷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몸매도 두드러져서 일행은 물론 타 등산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정작 하루 본인은 파워당당하게 오르고 있다.

해수는 그녀의 손을 툭 건드렸다.

“하루”

“넵?”

해수는 말없이 자신의 점퍼를 벗더니, 하루의 허리를 껴안듯이 팔을 두르고 앞을 묶어주었다.

하루는 갑자기 훅 들어온 해수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얼음이 되었다.

“가자.”

“네?! 아, 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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