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03화 (203/255)

< #203. 과격 진압 >

남자들이 당황하며 장하연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어어어?”

“네 네??”

그때, 그 남자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 죄송합니다. 여자친구가 많이 취했네요. 자기야 뭐해, 이분들 당황했잖아, 가자,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남자는 당연한 듯이 장하연의 팔목을 잡고 끌고 갔다. 그 뒷모습에 남자 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야야, 아서라, 괜히 나섰다가 너만 피본다.”

“맞아, 요즘 세상에··· 나한테 피해만 안 오면 돼.”

히죽 웃은 남자는 하연과 바짝 붙으며 다시 송곳을 찔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깊게 찔렀다.

“으읍!”

“봤지, 너 구해줄 사람 없어. 폐에 구멍뚫리기 싫으면 조용히 앞만 보고 걸어. 두 번은 없어, 시험해보고 싶으면 해도 돼.”

여대생, 장하연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두려웠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입을 열어도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손발이 고장난 것처럼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주춤거리며 따라가는 그 뒷모습에 남자무리가 중얼거렸다.

“거봐, 그냥 여자가 술 취한 거라니까.”

“그렇네.”

그 모든 걸 들은 하연은, 그저 지금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필사적인 탈출 시도가 실패한 지금.

이 사람 말만 잘 따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연의 몸은 마네킹처럼, 힘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이윽고 그들은 가로등도 훨씬 적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들어섰다. 남자는 굳어있는 하연의 머리에 비닐을 씌우고 모포같은 것으로 덮었다.

하연은 이제 비닐 아래에 작은 공간으로만 밖을 볼 수 있었다.

끼익- 퉁

철로 된 대문을 지나.

철컥 철컥. 끼익-

짧은 마당을 지나 계단 세 개를 내려간다. 반지하집, 알루미늄으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겼다. 곰팡이 냄새만이 아니라, 다른 이상한 냄새들이 섞여 있었다.

소독약, 소독약 냄새가 짙다.

그때.

“오? 오늘은 좀 어려보이네?”

안쪽에서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그의 말 뜻을 이해하고 등골에서부터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오늘은, 오늘은이라고 했다.

다른 날에도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납치했었다는 뜻, 건장한 남성이 두 명, 비닐봉지 아래로 보이는 시야에 잡히는 수많은 청테이프와 김장용 비닐.

장하연은 확신했다. 이곳에 있으면 무조건 죽는다.

저벅 저벅

자신의 집에까지 데리고 왔으니 긴장이 풀렸는지 남자가 송곳을 떼고 멀어진다. 화장실로 가는 듯하다. 다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발이 보인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다리에 덮수룩한 털, 반바지를 입었다.

“오우, 다리 하얀 거 봐.”

그가 무릎을 꿇고 하연의 다리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그녀는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

퍽!

“아욱 씨팔!”

그러고는 바로 모포와 비닐을 벗고, 뒤돌아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들어올 때 문이 미는 것인지 당기는 것인지, 잠그지 않은 것도 기억하고 있어 빠르게 나갈 수 있었다.

신고 왔던 구두도 당연히 신지 않고 맨발로 나왔다가 철로 된 대문 앞에서 멈칫했다.

대문을 열고 나가도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 꽤 길게 이어진다. 그곳에서 다시 잡혀서 끌려오면 최악이다.

옆을 보니 계단이 있다. 같은 건물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녀는 바로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거의 동시에 그들이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팔년이!”

“아오, 병신 진짜.”

하연은 바로 벽에 붙어서서 웅크리고는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려다가는 걸릴 수 있다.

천천히, 엉금엉금 1층 계단을 올라가니 긴 복도가 펼쳐져 있고, 가장 가까운 집 앞에 유모차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하연은 몸을 숙이고 기어서 유모차까지 가서는 그 뒤에 몸을 쪼그리고 숨었다.

“후읍, 후읍, 후읍, 흑, 흑.”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흐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소리를 죽였다.

그들이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를 뒤지던 하연의 손이 달달 떨렸다. 휴대폰이 없다. 문득 송곳에 찔리던 그때 그가 주머니를 더듬던 것이 떠올랐다. 신고도 하지 못한다.

지금 나가야할까?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그들이 찾아다닐 때는 위험하다. 지금은 기다리다가, 그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나서 나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후···.”

머리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지금 복도에 있는 다른 집에서 건장한 남자라도 나와서 도움을 줬으면··· 아니, 아까도 남자 무리가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가?

게다가 저들이 사는 집에 사는 사람이 같은 편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니 하연은 지금 이 상태도 불안해졌다. 조금 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야 한다.

아까 보니까 마당에 커다란 고무통 몇 개가 놓여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들이 금방 올까? 아직 말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최소 5분은 돌아다니다가 오겠지.

하연은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계단을 내려가 고무통 뚜껑을 들어올렸다. 파란 비닐에 김치가 가득 담겨져 있다.

고무통은 총 세 개, 그 옆에 다른 고무통도 꽉 차 있고, 마지막 하나에는 천만 다행으로 파란 비닐 덩어리가 있지만 공간이 꽤 넓어보였다.

하연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았다.

“···어?”

고무통 안에 하연의 몸을 완전히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려면, 안에 있는 김치와 완전히 몸이 밀착되어야 한다. 그런데, 감촉이 김치가 아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하연은 손으로 비닐 안에 있는 무언가를 만져보았다.

익숙한 생물체의 감촉, 다섯 개의 손가락, 팔, 얼굴.

“허읍!”

사람이다. 사람이 확실하다. 숨을 쉬는 소리는커녕 지금에서야 느껴지는 코끝을 찌르는 악취,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끼익-

그때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하연은 다급히 입을 막았다.

-씨발 그사이 어디로 튄 거야, 썅년이

-내가 어떻게 데려왔는데, 병신같이 그걸 놓쳐?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하냐고, 그 년이 이제 튀어서 신고할 거 아니야.

-일단 짐··· 잠깐만.

-뭐, 왜.

저벅 저벅 저벅

-아니 씨 왜? 갑자기 거긴 왜 올라가? 당장 튀어야 할 거 아니야?

-닥쳐봐 좀.

하연은 입을 가리고 있는 상태에서 턱이 덜덜 떨렸다. 아까 그 유모차 뒤에 숨어 있었다면 꼼짝없이 걸렸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고무통 뚜껑에 가려져 발소리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에이 씨, 짐이나 챙기자, 썅.

끼익, 쿵!

그들이 사는 반지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짐을 챙기려면 최소 5분. 그 전에 나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자.

하연은 고무통 뚜껑을 아주 조금만 열고 밖을 빼꼼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스윽-

뚜껑을 완전히 열고, 몸을 일으킨 순간, 하연은 멈칫했다. 등골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악마와도 같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꺄아-! 읍!”

“이 씨팔년이, 머리 좀 썼다 엉?!”

남자는 바로 하연의 목을 틀어쥐고 고무통에서 꺼내었다. 반지하 안에 들어갔던 그의 동료가 금세 튀어나와 하연의 발목을 들어 안으로 끌고 갔다.

“하, 하 잘 됐다. 잘 됐어 씨, 아오 짭새 오는 줄 알고 쫄려 뒤지는 줄 알았네.”

“문이나 잠가, 이 새끼야.”

“어, 어, 잠가야지.”

남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스타킹을 하연의 입에 넣고, 청테이프로 입을 완전히 봉했다. 그러고는 두 손도 청테이프로 둘둘 감았다.

“우우웁 우우우!!”

“가만히 있어라, 죽기 싫으면.”

이미 시체를 보았던 하연은 이제 어떻게 해도 죽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정할 수 없었다.

“우웁 우우웁!!!”

그녀는 두 손목이 묶이지 않게 마구 발버둥을 쳤고, 그러다가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아.”

순간 남자도 멈추고, 그의 친구도 멈추고, 하연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며 하연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그는 돌연 하연에게서 손을 떼고 화장실로 향하더니, 칼날이 30센티는 될법한 칼을 가지고 나왔다.

“이년, 일단 죽여야겠다.”

“야야야 명식야! 참아 참아! 왜 그래, 나 죽이고 하는 거 싫다고!”

“놔라.”

친구는 평소에는 명식을 무서워하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야, 니가 그렇게 고생해서 데려왔는데 바로 죽이면 뭔 개고생이야, 다 끝내고 죽이자고 다, 엉?”

그러자 명식이 칼끝을 친구에게로 돌렸다.

이제 보니 눈깔이 뒤집어져있다.

“너도 죽고 싶어?”

“···뭐?”

퉁퉁-

그때,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렸다. 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계세요. 경찰입니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둘의 눈빛이 복잡하게 얽히고, 명식은 바로 하연의 목을 잡고 옆구리에 칼을 겨눈 상태로 화장실로 끌고 갔다.

“우우우웁!!”

하연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소리를 냈지만, 명식이 몸을 틀어쥐고 칼끝으로 찔러오자, 그 고통에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그는 화장실로 하연을 데리고 가서 입을 틀어막았다.

화장실 문너머로 소리가 들려온다.

퉁퉁-

-안에 대화소리 들렸는데, 잠깐만 시간 좀 내주시죠.

끼익

-뭔데요.

-예 수고하십니다. 강진서 강력4팀 신해수 수사관입니다. 이 근처 사건이 있어서 수색 중인데요. 잠시 안에 좀 살펴봐도 될까요?

-싫은데요. 살인범을 잡아야지 왜 우리 집은 뒤져요? 저 바쁜데 좀 가주세요.

-어, 살인사건이라고는 말 안 했는데.

잠시간의 정적.

장하연은 눈을 질끈 감고 기도했다. 칼날은 그녀의 옆구리에 살껍질을 찢고 살짝 들어와 있고, 굳은살이 가득 박인 거친 손은 그녀의 목을 금방이라도 부러트릴 것처럼 강하게 움켜쥐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경찰들이 알아채고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제발, 제발···!’

-아, 아니 씨팔 살인 터졌다고 이 동네 소문 다 퍼졌는데 그럼 그걸 모르나? 아니 나 지금 의심하는 거요? 어? 와 나 명예훼손으로 신고해야겠네!

-···죄송합니다. 그러면 언제 안 바쁘실까요? 한 두시간 있다가 다시 찾아뵐까요?

형사가 오히려 낮은 자세로 말하자, 친구의 목소리가 살짝 누그러졌다.

이를 듣던 하연은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어 휘청거렸다.

옆구리에 닿아있던 칼이 더 깊게 찔러오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진짜··· 내일 와요. 내일. 짜증나게···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끼익 쿵.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 하연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마지막 희망이 떠나갔다.

“풉, 흐흐흐.”

하연이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코앞에서 바라본 명식은 즐거움에 히죽 웃음지었다.

“어떡하나? 널 구해줄 경찰들이 갔는데? 이제 오빠랑 재밌게 놀까?”

명식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화장실 벽에 몸을 붙이고, 그 뒤로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원래 이래. 대한민국 경찰들이, 이놈의 인권 때문에 놓치는 범인이 태반이야, 나 말고 법을 원망해.”

그가 바지를 내리며 그녀의 치마를 들추려는 그때.

퉁 퉁-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명식이 화들짝 놀랐다.

“아잇 시팔! 안 죽여 이 새끼야, 나 먼저 놀 테니까 너는···”

끼익-

명식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화장실 문이 열렸다. 그 앞에는 커다란 손에 입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희게 질린 눈이 옆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스윽

곧이어 그 손의 주인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눈만 마주쳐도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인상의 형사가 명식에게 턱짓하며 입을 열었다.

“순순히 나오면 안 아프게 죽여줄게.”

명식과 친구의 눈이 찰나 마주쳤다. 친구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린다.

움찔한 명식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형사가 만만치 않게 생겼지만 명식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 힘을 지녔고, 유도도 오랫동안 배워서 싸움은 자신이 있었다.

문을 잠그는 소리도 들었으니, 이 안에는 형사 한 명이라는 뜻이다. 저 형사만 죽이거나 제압하면 도망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찰나에 생각을 마치고 명식은 하연을 방패를 겸해 앞으로 집어던지며 칼을 들고 튀어나갔다.

쾅! 턱-

허나 형사의 반응은 그의 예상보다 빨랐다.

신해수는 잡고 있던 공범을 벽에 던지고, 하연을 두 손으로 받으며 돌아서서 범인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자연스레 완벽한 뒷차기 자세가 되었다.

당연하지만, 해수의 다리보다 범인의 칼 길이가 더 길지 않았고, 발은 정확히 범인의 배에 꽂혔다.

퍼억!! 콰장창!

범인은 칼을 놓치며 그대로 화장실 끝까지 날아가 욕실 선반을 다 부수며 벽에 부딪혔다.

해수는 다행히도 육안상으로는 아직 괜찮아보이는 하연을 내려놓고, 공범의 멱살을 잡아 화장실로 던졌다.

쿠당탕탕!

좁은 화장실 안에 사내 두 명이 포개어져 엎어져 있다.

끼기긱-

해수는 화장실로 들어가 도기로 된 변기 수조 뚜껑을 한 손으로 집으며 입을 열었다.

“범인이 흉기를 들고 심하게 반항을 하여, 진압 과정에서 피치못하게···.”

해수가 수조 뚜껑을 번쩍 들어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사망하였습니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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