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대규모 수색 >
고암동 주택가.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경찰 세 명이 일반인들을 통제하고 있다.
“아아 거기 사진 찍지 마세요!”
“사진 찍지 마시고, 동영상도 안 돼요. 아 참, 어어 거기 꼬마! 들어오면 안 돼!”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이다보니 사람이 금방 몰렸다.
청소차가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걷던 중에 비닐에 둘둘 말려있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오갱과 해수, 막내가 도착하여 가까이에 차를 대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으아아앙!”
“아니 안되면 안 된다고 말만 하면 되지, 왜 애한테 소리를 질러요?!”
경찰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아이엄마의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장 훼손되면 이 경찰분들 책임이라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이해해주세요.”
“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헙!”
아이엄마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해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그 뒤로 오갱과 막내까지 보고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어멋!”
턱
해수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넘어지지 않았다. 강력팀은 물론 해수 혼자 출동해도 일반인이 당황하는 것은 자주 겪는 일이기에 그 다음 돌발행동에도 대처가 빠른 편이다.
“괜찮습니까?”
“예? 아, 예, 예 고맙습니다. 처, 철민아, 가자.”
해수는 묵직한 눈으로 둘의 뒤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자신이 기준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더라도, 아이엄마 입장에서는 남이 자신의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면 감정적으로 민감해질 수 있다.
아이와 엄마가 지나가고, 뒤늦게 강력4팀을 발견한 경찰관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폴리스라인을 내려주었다.
“오셨습니까? 바로 강수대가 오시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요. 보다시피 사람이 워낙 많이 다니는 거리라서···.”
해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 강수대는 해체됐어요.”
“···네?”
뒤따라 오던 오갱이 설명을 이었다.
“청장님 바뀌면서 해체되고, 우리는 지금 강력4팀입니다.”
“아, 아니 왜··· 강수대분들 활약이 얼마나 엄청났는데··· 그거때문에 같은 경찰이라는 게 어깨가 막 으쓱···”
아쉬운 마음에 말이 길어지자 오갱이 경찰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끊었다.
“아무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주세요.”
“아아, 네네 죄송합니다.”
방금 발견된 시신을 앞두고 사담을 나누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해수는 쪼그려앉아 쓰레기들 틈에 있는 시신을 살펴보았다.
천으로 몸을 감싸고, 그 위에 김장용 두꺼운 비닐을 덧대어서 둘둘 말고 청테이프를 붙인 상태였다.
‘비슷해.’
해수는 방금 전까지 서에서 사건 자료를 보았던 살인사건을 떠올리고 더욱 더 날카로운 눈으로 시신을 살폈다.
옷에서 김장용 비닐로 바뀌었을 뿐, 청테이프를 붙인 것도 동일하고, 대담하게 길거리에 버린 방식, 심지어 동네까지 동일하다.
해수와 오갱의 눈이 마주쳤다.
“이거 느낌이 쌔하다···.”
“CSI 먼저 부르겠습니다.”
“그래.”
바로 현장감식에 들어갔고, 4팀은 현장에서 일단 확인할 수 있는 상흔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패는 물론 체온도 별로 떨어지지 않은 상태인 것이, 사망한 지 채 5시간이 안 된 듯하다.
외모로만 보면 20대 중후반 여성, 전과 같이 목 부위에 경부압박 흔적이 있고, 손목에 결박흔도 있다. 옆구리에도 상흔이 있는데, 이번에는 칼이 아닌 뾰족한 것에 찔린 흔적이었다. 매우 조그맣다.
머리에 상흔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놈 같지?”
오갱의 말에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직 범행수법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데···.”
“막내가 최초 목격자 진술 따고, 해수는 나랑 cctv랑 블랙박스 좀 따자.”
“알겠습니다.”
오갱이 발을 옮기다가 멈추어 서서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아아 잠깐, 1팀한테 먼저 말해야겠네, 잠깐.”
오갱은 바로 1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안 그래도 범인이 잡히지 않아 골치아팠던 1팀은 강력팀 에이스로 불리는 4팀과 공동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사건이 넘쳐서 실적이 넘치는 강진서 강력팀은, 대부분의 목표가 실적이 아닌 범인을 빨리 잡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 * *
밤 11시, 밖을 돌아다니던 강력팀원들이 하나 둘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우 다리 아퍼.”
“어 왔냐, 고생 많았다.”
12시가 되기 전에 1팀과 4팀 형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고, 곽반장을 중심으로 모아온 자료를 토대로 회의를 시작했다.
“···사망자 성아현씨는 27세 회사원으로···”
“···목격자는 현재까지는 없는 것 같고요.”
“···실종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정보들을 취합해보니, 확실히 한달 전 살인 사건과 범인이 동일인일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과감한 유기에 비해 흔적은 단 하나, 멀리서 cctv에 찍힌 시신 유기 장면.
범인은 아직 가을인데 패딩을 입고 있어 체형을 추측할 수 없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그 위에 모자까지 겹쳐 써서 얼굴도 알아볼 수 없다.
오로지 키, 175 정도 되는 키만이 추측할 수 있었다.
오늘 발견된 피해자 성아현이 퇴근 후 cctv에서 사라진 시간대가 오후 7시, 이전 피해자는 오후 4시인 것으로 보아 범인은 자영업을 하거나 백수로 추정했다.
살해 방식이 피가 최대한 튀지 않게 깔끔하고, 두 피해자가 전혀 겹치지 않는 것을 보면 면식범일 가능성은 낮다.
곽반장이 화이트보드에 고암동 주택가 지도를 대충 그려놓고 설명했다.
“여기가 첫 번째 시신 유기한 곳, 여기가 두 번째, 2키로밖에 안 떨어졌어, 그리고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cctv 사각지대, 그러면 여기 1번이든, 2번이든, 아니면 3번 골목길로라도 차가 나가야 하거든? 근데 시신 유기 후에 의심될만 한 차가 안 나갔다 이거지.”
오갱이 말을 이었다.
“시신 유기 앞뒤로 10시간은 살펴봤는데··· 뭐 차번호 보이는 걸로 조회해서 싹 다 조사해봐야죠.”
오갱의 말에 형사들이 다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발로 뛰는 것이 수사의 정석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예상되는 고생길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그 중에 범인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없을 때가 더 많으니 문제다.
그때, 해수가 검지를 들어올리며 앞으로 나왔다.
“잠시만, 첫 번째 피해자 cctv에서 사라진 곳이 어디였죠?”
해수의 물음에 1팀장이 대답했다.
“거기, 삼중 정육점 부근 37번 cctv.”
해수가 그 위치를 빨간 색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두 번째 피해자 성아현씨가 사라진 지점은 고암동 지하철 4번 출구에서 나와서··· 홍주빵집 앞, 여기죠.”
“그렇지.”
해수는 피해자들이 사라진 지점을 동그라미 치고, 시신이 유기된 곳까지 줄을 그어서 연결했다.
“cctv를 피해서 여기까지 갈 수 있는 루트입니다.”
두 루트가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것을 보고 형사들 몇몇이 탄성을 흘렸다.
“와···.”
“하, 저 동네가 저렇게 cctv가 없나?”
“우리나라만큼 cctv 많은 곳도 없지, 딴 나라는 우리보다 수사도 훨씬 힘들어.”
해수는 잠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을 이었다.
“사라진 곳에서 시신 유기한 곳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습니다. 모두 5키로 범위 안이지요. 범인이 범행에 차를 이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이 사각지대에서 범행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 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몇 명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신유기 위치가 가까웠을 때부터 제기된 의견이긴 하다. 해수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근거를 덧붙였을 뿐.
곽반장이 이견을 말했다.
“아무리 cctv가 없다고 해도 여기서 범행장소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 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걸어서 강제로 데려가는 건 불가능할 텐데, 중간에 도망치거나 도움을 요청할 기회도 충분할 테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니.”
최소 1키로가 넘는 거리를 협박하면서 사람들 많은 곳에서 끌고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른 형사들도 범행에 차를 무조건 이용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막내가 손을 들며 작게 말했다.
“신해수 선배님이 지정하신 곳을 먼저 수색하고 나중에 차량 조회하는 건 어떻습니까?”
둘 다 하자는 거다. 제일 위인 곽반장이 말하면 다들 불만이 튀어나왔겠지만, 가장 많이 뛰어야 할 막내가 말하니 아무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다.
대표로 나선 오갱이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누군지 알아야 찾지. 이러다간 범인 만나도 그냥 보낼 수 있어, 경계만 돋워서 잡기 더 힘들어지는 거지.”
그때 해수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그걸 노리는 겁니다. 동일범이라면 범행을 단 한 달만에 다시 저질렀습니다. 유기도 매우 대범한데, 수사망이 좁혀왔다는 느낌도 안 들었으니 더욱 대담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해수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던 오갱이 긍정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오갱의 추임새에 곽반장이 말을 이었다.
“범행주기가 더 단축될 수도 있다···.”
곽반장의 말에 막내가 두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 말했다.
“제 3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방범 목적으로 수색을 하는 거군요!”
어쩌다보니 이전에 강수대였던 대원들 네 명만이 일어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을 1팀 형사들이 올려다보며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이래서 강수대 강수대 하는 거구나.”
“그러게요. 어쩜 저리 죽이 잘 맞냐.”
곽반장이 손뼉을 두 번 치고는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자! 지금이 두 시, 빨리 당장 집으로 가서 쳐 주무시고! 여섯 시까지 온다. 사람들 출근 전에 불 켜진 집부터 최대한 많이 수색한다. 얼른 퇴근해!”
“으아아.”
“내일부터 죽었다, 크.”
“네 시간, 아니 세 시간인가, 나는 여기서 자야겠다.”
곽반장의 명령에 형사들은 바퀴벌레 흩어지듯이 재빨리 사무실을 나섰다. 1분이라도 잠을 청하는 것이 내일 수사의 힘이 된다.
* * *
다음날, 1팀과 4팀, 그리고 동부지구대에서 순찰차 세 대가 지원을 나와 대대적인 수색이 진행되었다.
cctv에 찍힌 범인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보여주고, 협조를 구해서 협조해주면 집 안을 대충 둘러보는 형식이다.
오르막길을 오르던 막내가 해수에게 말했다. 이미 반팔만 입은 상태에서도 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다.
“선배님, 이걸로 확실히 방범이 되겠죠?”
해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조건.”
거기다 잘하면 범인도 잡을 수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갑자기 대면했는데 형사도 속이는 범인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촉이 날카로운 형사들은 범인과 대면하면 작은 행동들로도 높은 확률로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챌 수 있다.
“옙, 힘들어도 뭔가, 보람되네요. 저는 정말 강수대 들어오기 잘 했습니다.”
해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발을 옮겼다.
* * *
사흘 뒤, 같은 오르막길을 해수와 막내가 오르고 있다. 막내의 한 손에는 소보로 빵이 들려 있다.
우적 우적
“천천히 먹어라 천천히, 체하면 지장이 크다.”
해수가 막내 우강철에게 바나나우유를 넘겼다. 막내가 빵을 우적거리며 그것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옙, 감사합니다. 언제 범인이 일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곳 수색만 사흘 째, 천 세대 가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없어서 확인을 못한 곳도 많아서 이 인원으로는 보통 일주일은 들러야 한 곳도 빠짐없이 확인 가능하다.
의심이 가는 곳은 착오가 있는 척 한 번 더 들르기도 했다.
“괜찮아, 아무리 주기가 빨라져도 최소 일주일 뒤에 움직일 거야, 우리가 수색하는 걸 알면 더 늦추겠고, 어쩌면 이제 멈출 수도 있···.”
치칙-
그때, 서에 있는 곽반장에게서 무전이 왔다.
-여기 강하나, 현재 수색 인원 전부 주목, 납치 의심 신고 들어왔다. 위치는···
해수와 막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마주보다, 바로 튀어나갔다.
* * *
쿡-
“걸어, 계속.”
장하연은 손발이 덜덜 떨렸다. 지금 양옆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바로 옆에 사람을 붙잡고 도움을 청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남자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하연의 귓가에 대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앞만 보고 걸어, 길거리 사람들하고 눈 마주치지 말고.”
이 상태로 얼마나 어디까지 걸어야하는 걸까?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조금씩 머리가 차가워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앞쪽에 남자 무리가 보인다. 저쪽으로 달리면 송곳도 바로 빠질 것이다.
결심한 즉시,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타다다닥-
“저 좀 살려주세요!! 저 남자가 칼로 절 협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