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201화 (201/255)

< #201. 송곳 >

특수대 취조실.

창고를 취조실로 꾸민 것이다.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오갱과 매우 평범한 30대 남성이 앉아있다.

오갱이 비닐팩에 담겨 있는 칼을 엄지와 검지로 달랑달랑 들어보였다.

“···이게 죽일 때 사용한 칼이고?”

남성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사람은 천선생이고.”

“예.”

“당신은 천선생 밑에 있던 괴한, 그 뭐냐, 무장단체고?”

남성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추더니 오갱의 말을 정정했다.

“회사의 회사원입니다. 직급은 대리.”

“그래요. 회사, 참 무서운 회사네, 그치? 당신 이름은 뭐에요.”

“김도균···.”

오갱은 확 인상을 찌푸렸다.

“위장신분 말고, 진짜 이름.”

그는 건조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교육관에서는 다 30호로 불렸고, 수료 후에는 주씨로 불렸습니다.”

“허허, 지문도 당연히 없고···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네.”

지금 눈앞의 주씨는 예전에 잡았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지문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언론에 발표하진 않았지만, 천선생으로 의심되는 시체도 지문이 없다.

신분을 조회할 수 있는 수단은 철저히 차단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천선생을 찔러 죽인 이유가···.”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후··· 그래요. 일단,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죽였는지 대조 한 번 해봅시다. 나가죠.”

“예.”

주씨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타이밍에 딱 맞춰 자수한 만큼···.

그의 증언대로라면 회사원은 이미 전부 흩어졌고, 세 명만이 천선생을 보필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이 주씨였고, 다른 두 명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천선생을 처리했다고 한다.

그는 자수하러 올 때 끌고 온 세단 안에서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직접 모형 칼을 들고 방식을 열심히 설명했다.

“···여기서 이렇게, 옆구리 찌르고, 목을 찌르고···.”

현장 추리를 잘 하는 조아라팀장이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며 말했다.

“굉장한 자신감이네요. 천선생의 반항이 심했을 텐데.”

주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 칼은 빠르고 치명적입니다. 천선생님은 반항할 수 없습니다.”

“네네, 그러시겠지요. 살인에 자부심 느끼는거 진짜 재수없네.”

조롱 섞인 조팀장의 말에 주씨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아꼈다.

조사는 일사천리였다.

칼은 국과수에 맡겨 피해자의 DNA와 대조하여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고, 자백한 살해방식과 차량 안에 수많은 혈흔, 피해자의 상흔까지 모든 것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대상이 천선생인지 아닌지 그것만이 불확실할 뿐, 이 피해자를 주씨가 죽인 것은 확실했다.

주씨가 기소되자, 청에서 곧바로 명령이 하달되었다.

-뭐하고 있어요? 빨리 발표하고 마무리지어요!

이유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나날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타당한 이유지만 아직 형도 집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빨라도 너무 빨랐다.

형사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모든 것이 짜놓은 판에서 놀아나는 느낌이 강렬했고, 그것은 막내인 우강철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곽반장은 거부했다.

“···수사 계속 하겠습니다. 저거 천선생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증거 나올 때까지만 수사하겠습니다.”

-발표를 했는데 특수본이 그대로 있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리하세요.

하지만 곽반장의 저항은 의미없이 끝났다. 끝끝내 특수대는 해체되었고, 거부한 곽반장 대신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기자들을 모아놓고 바로 발표를 했다.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괴한 집단 검거에 성공하였습니다. 별칭 천선생은 검거 중에 불가피하게 사망하였고, 집단 소속 직원들은 현장에서 체포하였습니다. 이제 국민 여러분은 대한민국 경찰관을 믿고,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  *  *

“쯧쯧쯧.”

“얼씨구. 검거 성공, 불가피하게 사망, 다들 저 정도 위치 되면 저렇게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을 할 수 있으려나?”

강력반 사무실.

다른 팀이 외근을 나가 한적한 사무실에 곽반장과 4팀이 TV를 보면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경찰 이미지 챙겨서 잘했다고 해야하나···.”

“아이고 형님! 그게 무슨 망발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 저런 꼰대 된다고!”

“아오, 귀 아파 귀 아파, 내가 너 때문에 보청기 끼게 되면 니가 사라.”

“경찰 월급 뭐 얼마나 된다고, 벼룩에 똥을 빼먹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해수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고는 벌떡 일어섰다.

“뭐야, 어디가.”

해수는 그를 따라서 일어나려는 막내를 보고 손을 들어 제지시키고는 대답했다.

“오늘 주씨 이송하는 날인데, 할 일이 있습니다.”

“어? 어 그래, 뭐라도 좀 해봐라.”

“그래 돌격아, 다녀와.”

“예, 그럼.”

칠성회는 일곱 개의 큰 단체가 기둥을 이루고 있지만, 그 안의 회원들 개개인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처럼 경찰 소속인 특수대를 해체시키고, 일을 빠르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겠지만.

주씨의 교도소 생활까지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수는 주씨의 교도소 생활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권력 정도는 넘쳐났다.

효성교도소, 주씨가 이송버스에서 내린다. 해수가 그를 미리 마중나와서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물론 주씨는 걷는 내내 해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불편한 티를 냈다.

말로만 듣던 신해수가 자신을 친근하게 대하자 오히려 불안한 것이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닙니다.”

“그래··· 주씨.”

해수가 돌연 주씨의 어깨를 잡아 멈춰세웠다. 그 외 다른 재소자들은 교도관들의 인도를 받으며 방을 찾아 나갔다.

7사동 복도에는 해수와 주씨만이 남아있었다.

해수가 그의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물을게, 천선생 어디 있어.”

“······.”

주씨는 해수의 얼굴을 보았다가 시선을 피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의미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해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렇겠지, 니 선택 잘 봤다. 내가 특별히··· 너는 여유로운 방에 넣어줄게.”

곧이어 재소자들의 안내를 마친 교도관이 돌아왔고, 해수가 주씨를 그에게 넘겼다.

교도관은 그를 이끌고 복도를 거닐며 설명했다.

“무슨 빽이 있는 지 몰라도, 지금 방은 매우 쾌적해요, 방원이 한 명밖에 없어서, 당신은 운 좋은 거에요. 아니, 그 한 명이랑 싸우면 더 지옥이려나.”

“······.”

주씨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 한 명이 누구든 자신이 제압할 수 있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삑 철컥, 끼이익-

“들어가요. 아, 다른 방원은 화장실 갔네.”

“예.”

주씨는 안내된 12호실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고, 화장실 쪽에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그럼, 사이좋게 지내고.”

“예.”

교도관이 호실 문을 잠그고, 주씨가 생필품 짐을 어디에 놓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화장실 문이 열리며 안에 있던 사람이 나왔다.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주씨는 그의 발에서부터 다리, 흉부, 얼굴까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 순간.

털썩

그의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절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가 턱을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마, 마···실장님.”

마실장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며 손을 뻗었다.

“반갑다. 이빨부터 뽑자.”

혀를 깨무는 자살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이를 뽑는 것이다.

그의 입가로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  *  *

해수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제 칠성회에 남은 세 개의 기둥은 하진그룹, 성공일보, 청와대다.

하진그룹은 마실장에게 얻은 정보로 해수팀이 작업 중이었고, 현재 주가는 매일 최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두 군데.

성공일보는 약하다. 몸으로 치면 주먹, 휘두르라고 지시하는 머리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청와대는 몸통, 중요한 건 모두 가지고 있으나 팔다리가 없으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없애야 할 무리들이다.

“어지간히 급한가 보군, 이 밤에 자는 사람을 불러내고.”

묵직한 목소리에 해수가 고개를 들어 접견실 문을 보았다. 마실장이 손에 묻은 피를 휴지로 닦으며 들어서고 있다.

“헛소리 말고 앉아.”

해수는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질문을 했다.

“알아낸 건.”

“급하네, 급해··· 어차피 이제 급하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어.”

해수는 확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예상했다고 해도, 특수대가 아무것도 못하고 힘없이 해체된 것은 해수에게 큰 충격이었고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마실장까지 뭐라도 된 듯이 여유를 부리니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분기를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너랑 말장난 하는 걸로 보여?”

턱-

해수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마실장도 비릿한 미소를 감추고 팔걸이에 두 손을 올린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마실장은 해수의 손가락, 팔뚝, 어깨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 만약 그와 다시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마실장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의 이미지 트레이닝은 꽤나 사실적이고 정확도가 높다. 그것이 그가 지금 위치에 서게 된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다.

그런데, 승패를 가름하기 힘들다. 분명 싸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피지컬은 그가 우위에 있음에도.

신해수가 고개를 들었고, 마실장이 입을 열었다.

“천선생은 살아있다.”

“······.”

해수의 끓어오르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만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확인받고나니 다른 사적인 감정을 바로 날려버릴 정도로 크고 유용한 정보였다.

“회사원들이 어디에 있는지 이 놈은 몰라. 천선생이 팀장급 세 명만 거느리고 잠적했고, 나머지 회사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더군. 연결고리는 휴대폰 하나. 그것도 받는 것만 가능하고, 이놈도 천선생에게 지령을 받고 자수한 거다.”

“천선생을 닮은 그 자는.”

“회사원은 아니야, 천선생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대리인으로 쓸 사람은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일 거야.”

말을 들어보니 마실장도 이미 대리죽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듯하다.

마실장이 뿌듯한 얼굴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좁고 답답한 방에서 뉴스를 보며 공고히 쌓은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통탄했겠지.”

마치 자신이 승리자가 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수가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쓰고 있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애써 찾으려 하지 마라, 어차피 그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을 테니. 찾는 것 무의미하다. 칠성회를 와해시킨 것에 만족해라.”

“너 같으면 그럴 수 있겠나?”

마실장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는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상처입은 사자가 굴에 언제까지나 숨어있을 수는 없으니까, 굶어 죽기 싫으면 나오겠지.”

단언하는 마실장의 눈에 안광이 순간 번뜩인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 목을 물어뜯을 거다.”

마실장은 상상만으로도 쾌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도 정상은 아니다. 아니, 그런 세상에 평생을 살면서 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흠···.”

해수는 마실장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협조로 인해 불가능해보였던 거산을 무너트렸다. 싹 쓸어버리기보다는 각 산의 역린만 후벼 판 느낌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시너지가 나고 있다.

해수는 마실장에게 주씨를 지속적으로 취조하는것을 맡기고 접견실을 나섰다.

*  *  *

강진서 강력반.

오갱이 창문너머 아침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다.

“아··· 역시 고향이 좋아. 특수대가 똥누고 똥꼬 안 닦은 느낌으로 끝나긴 했지만. 근데 진짜 거기 있을 때 지원은 좋아도 거지같긴 했어.”

막내가 구석에서 한 손으로 벽을 잡고 다른 손으로 덤벨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매일 성과가 없으니 무기력함이 온 몸을 지배하는 듯했습니다.”

해수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동감하는 부분, 아쉬움보다는 다시 일선 현장에 복귀했다는 사실에 활기가 조금씩 돋아나고 있었다.

그때, 외근을 나갔던 1팀이 들어왔다.

“하···.”

“왜, 또 허탕이야?”

오갱의 물음에 1팀 팀원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안 나옵니다, 안 나와. 아 미치겠네.”

1팀 팀원들이 모두 풀이 죽은 상태로 하나 둘씩 들어온다.

해수가 오갱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사건인데 저럽니까?”

“어 살인사건. 1팀장님, 한 달 전에 발견했다고 했나?”

오갱의 물음에 1팀장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 달 전에 신고된 건인데, 고암동 다가구주택가 전봇대에서 피해자가 발견됐대, 무슨 버리는 옷가지로 싸맸다나. 시체 처리가 워낙 허술해서 금방 잡힐 줄 알았는데 벌써 한 달이나 된 거지.”

“아하···.”

해수는 1팀 테이블로 다가가서 사건자료를 훑어보았다.

팀원들이 오히려 자료를 내밀며 해수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4팀의 실력을 믿는 것도 있지만, 부동의 검거율 1위 신해수를 신뢰하기에 넘어서서 의지하는 편이다.

피해자는 30대 여성, 목을 압박하여 질직사한 것이 실질적인 사인, 뒤통수에 둔기로 찍힌 흔적, 두 손목에 결박 흔적, 옆구리가 칼에 찔린 흔적이 있다.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자료를 보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선전화, 오갱은 바로 전화를 받았고, 팀원들을 보며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시체···발견됐단다. 고암동.”

*  *  *

장하연은 올해 졸업예정 대학생이다. 그녀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퇴근시간이기에 사람이 많이 붐빈다.

옆구리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듬과 동시에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남성이 자신의 옆구리에 손을 대고 있었고, 그의 손과 자신의 재킷 틈으로 송곳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가 작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앞에 봐.”

살짝만 움직여도 훅 들어올 것 같은 뾰족함이 살갗에 느껴진다. 이미 조금 찔려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장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앞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가 옆에 바짝 붙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가 폐야, 찌르면 고통에 숨을 헐떡이다가 5분만에 죽어. 나는 인파 틈으로 들어가서 사라질 거야, 아무도 찾지 못해. 그러니까··· 조용히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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