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99화 (199/255)

< #199. 최선의 방어 >

신해수는 단 한 번, 양전무를 협박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신해수 팀이 계획한 대로, 2년 전 급발진 건은 양전무의 양심고백으로 다시 재판이 진행되었다.

“···저는 KD자동차의 임원으로써, 저만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하여 회사의 마음을 헤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 가정에 적절한 보상을 하지 못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양전무는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KD자동차 단체의 의견이라는 식으로 돌려서 말을 하며 책임을 조금이라도 회피하려 했다.

그리고, 그런 양전무를 키워낸 회사답게, KD그룹은 해당 급발진 건을 철저하게 양전무 개인이 진행했고, 회사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발표했다.

우위는 명확했다.

아무리 양전무가 힘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회사를 상대로는 한없이 나약한 개인이었다. 그것도 회사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있었는데 그 회사를 등지게 되었으니, 권력이 아예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양전무는 급발진 관련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실형을 받았다.

*  *  *

교도소로 이동 전, 구치소 접견실.

황장수와 양인석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장수는 귓가에 낀 인이어를 통해 신해수가 말하는 대로 양인석에게 전달했다.

“양인석, 이게 끝이 아니잖아. 네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넘겨, 복수해주겠다.”

“복수? 하하.”

양인석은 다리를 꼬고 등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다야, 한낱 전무가 대기업의 비리를 뭘 얼마나 알겠어? 난 충분히 죗값 치렀으니까 그만 찾아오라고.”

양인석 역시 이런 회사의 성향을 알고도 멍청하게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방어책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들어올 줄 몰라 정리는 되어있지 않지만, 다듬기만 하면 거대한 폭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회사로부터 양인석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다.

황장수는 잠시 가만히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런데··· KD는 너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아무리 좋은 무기를 들었다고 한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무튼 난 할 말 없으니까 이만 가쇼.”

황장수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몇 분간 가만히 있다가, 팔걸이를 잡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춘 그가 고개를 반쯤 돌렸다.

“너와 네 가족은 지켜주지, 신해수의 이름으로.”

“무슨, 신해수가 종교도 아니고···.”

양인석은 귓등으로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에 교도관에게 슬쩍 말했다.

“휴대폰 좀 씁시다. 한 통이면 돼요.”

구치소에서는 그가 아직 대기업의 전무라는 입김이 통했기 때문에, 통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뚜 뚜 뚜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이런 시팔놈들···.”

그러나 회사를 상대로 협박을 하려 해도,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  *  *

[KD자동차 급발진 인정, 책임자 ‘양인석 전무’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밝혀져.]

[KD자동차 급발진 건, 유가족에게 최대한 보상을 진행하기로.]

┗와씨 개쓰레기들 진짜 이제와서 보상하면 뭐하냐? 보상 존나 많이줘라

┗저기 2억7천이라고 안보이냐?

┗2억7천을 누구코에 붙이냐?

┗양ㅇㅇ이라고 실명까지 다 밝힌 거 보니까 희생양이네

┗전무급이 희생양? 진짜인거같은데?

┗와 KD자동차 이제 거를때가 됐다

┗나는 16년 전부터 거르고 잇었음

┗응16년전이면 KD로인수되기전임

┗진짜 유가족 개불쌍

급발진을 회사에서 인정한 것은 국내에서는 최초다. 그래서인지 반응이 뜨거웠다.

지이잉 지이이잉

해수의 전화가 울렸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다.

“예, 구세주 사장님.”

-아이고 사장이라니요. 신사장님한테는 언제나 실장입니다. 부끄럽습니다.

“3년이면 사장님 소리 적응할 때 되지 않았습니까?”

-언제나 새롭습니다. 짜릿합니다. 무겁기도 하고··· 아니 아무튼 여쭤볼 게 있어서요. 제가 사진 하나 보낼게요.

“네.”

디링-

깨톡으로 사진 한 장이 날아온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한 건물 안인데, 황장수가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다.

-여기 KD자동차 재판장이거든요. 이분 사장님 절친이시잖아요. 그래서 그런데··· 이번 KD그룹 건 혹시 신사장님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예리하십니다.”

-돈 벌려면 부지런해야죠, 여기 매집 들어가도 되나요?

“앞으로 많이 터질 겁니다. 그때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사장님 자산 현황 이메일 확인 안 하셨죠?

“음···.”

-네네 이해합니다. 그럴 줄 알고 깨톡 문자로 아주아주 간단하게 압축시켜서 보내드렸습니다. 작년 대비 27프로 상승했습니다!

27프로, 해수의 현재 자산은 지금처럼 개인 팀을 만들어 펑펑 써도 적자가 나지 않는 단계에 왔다.

“아, 예,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 한 번 신동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 한 잔 하시죠.”

-크 추억의 편의점,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옙.”

해수는 전화를 끊고 기밀본부 한쪽에 붙어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보았다.

KD자동차 급발진 건을 보도하는 뉴스와, 주가가 폭락하는 그래프가 한 화면에 담겨 있다.

*  *  *

“후우···.”

효성교도소 7사동 15호, 양인석은 뉴스를 보다 인상을 확 찌푸렸다.

‘개같은 새끼들, 니넨 사람 잘못 건드렸어, 잘했다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내가 다 터트릴 테다. 다 여기 쳐들어와라! 한솥밥 먹자!’

퍽!

“엌!”

그때, 발이 날아와 양인석의 배를 깠다. 그는 벽에 부딪혔다가 앞으로 쓰러지며 배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내장이 파열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끄으으···.”

양인석을 발로 찬 문신 사내가, 다시 발을 들어 그의 머리를 뭉개며 말했다.

“멀 쪼개, 이 샌님 새끼야. 이 새끼는 하여튼 생긴 게 존나 재수없어.”

“죄,죄송합니다.”

KD자동차의 전무로 있을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살려면 머리를 숙여야 했다.

양인석은 오늘도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깎아내며 고개를 조아렸다.

탕 탕 탕

“15호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교도관의 목소리다. 한낱 교도관이지만 양인석이 전무로 있을 때보다 권세가 더 높아보였다.

문신사내가 발을 치우며 딴청을 피웠다.

“그냥 놀고 있었습니다. 뭔 일이래요?”

“뭔 일은 무슨,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삑, 철컥 철컥-

교도관이 문을 열자, 문 앞에는 머리를 삭발한 왜소한 사내가 보급생필품들을 들고 서 있었다.

“신입 왔다. 신고식이니 뭐니 지랄하지 말고, 잘 지내도록.”

교도관은 신입을 밀어 호실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을 다시 잠갔다.

신입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문신사내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서며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와, 이 쌘님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아랫놈이 들어오냐. 재수없게 운도 좋아, 그치?”

“죄,죄송···”

“죄송하다고 하지 마 이 새끼야!”

퍽! 퍽!

문신사내는 쓰러져있는 양인석의 옆구리와 등을 발로 몇 번 밟고는 신입에게 얼굴을 다시 들이밀었다.

“꼬맹아, 넌 뭘로 여기 들어왔냐?”

“특수폭행입니다.”

“쓰레기네, 좀 맞자.”

퍽!

그는 바로 주먹으로 신입의 배를 때렸고, 주변에 있던 다른 방원들이 몰려들어 신입에게 모포를 씌우고 발로 무자비하게 밟았다.

퍼벅 퍽 퍽!

신고식은 몸이 왜소하든 말든 상관없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신입은 그 후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구석에 박혀 있었다.

따로 피해를 주거나, 방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질짜기같은 것을 하지 않아서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방장인 문신 사내조차도 재미가 없다며 관심을 껐다.

그러던 어느날 밤.

“읍, 우웁, 웁!!”

양인석은 잠을 자다가 돌연 숨이 막혀오는 것을 깨닫고 잠에서 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감촉, 얼굴에 와닿은 뭉근한 감촉이 뒤늦게 느껴졌다. 베개로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우웁, 우우웁!!”

양인석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버둥거리다가 옆으로 몸을 굴렸고, 베개를 간신히 치울 수 있었다.

“헤엑 헤엑! 헤엑!!”

“이 시팔놈이 곱게 좀 뒤지지.”

어둡지만 어둠에 적응되어 누구인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방장 문신사내였다.

그가 윗옷을 벗으며 이죽거렸다.

“나 말고 시킨 놈을 원망해라.”

“뭐,뭐?”

문신사내는 양인석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쎘다. 그는 금세 양인석을 제압하고 옷으로 목을 졸랐다.

뿌득 뿌드득

도움을 청하려던 양인석의 손이 멈칫했다.

아무리 불이 꺼졌다고 해도, 이 난리를 피우는데 아무도 잠에서 깨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모두 알면서도 이 일에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는 것이다.

“끄으으윽-”

눈알이 뒤집히고 의식이 흐릿해질 때였다.

퍽!

누군가의 발이 방장의 옆구리를 찼다. 방장은 양인석의 목을 조이던 옷을 놓쳐버렸다.

발길질을 한 주인공을 보니, 며칠 전에 들어온 왜소한 몸의 신입이었다.

“뭐, 뭐야 넌 새끼야? 너도 뒤지고 싶지 않으면 빠져.”

스윽

신입은 말없이 양인석을 등지고 섰다. 마치 양인석을 지키는 포지션으로.

“이 새끼가 진짜!”

방장이 바로 주먹을 휘둘렀고, 신입은 가드를 올린 상태에서 마주 팔꿈치를 휘둘렀다.

탁- 타닥

그는 팔꿈치와 손으로 방장의 주먹을 몇 번 막고, 동작이 큰 공격을 막은 후에 생긴 틈을 타서 손바닥으로 방장의 턱을 올려쳤다.

쾅!

방장은 뇌가 울려 잠시 비틀거렸고, 그 사이 신입이 뛰어오르며 방장의 머리를 팔꿈치로 후려쳤다.

퍼억! 쿵!

방장은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눈을 까뒤집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신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양인석이 가까이 온 것을 느끼고는 작게 말했다.

“신님께서 보냈습니다. 신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신, 신?’

어떤 종교의 광신도인가 싶은 그때 문득 떠오르는 신씨.

‘신해수!’

양인석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뭐하는 경찰이길래 교도소에 보디가드까지 보낼 수 있는지, 그를 향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  *  *

바로 그 다음날, 다 알고 있었다는듯이 황장수에게 접견이 왔다.

“생각은 그대로인가?”

양인석은 전과는 달리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후···.”

이런 식으로 공격해올 줄은 몰랐다. 황기자의 말이 맞았다. 회사는 자신이 무슨 무기를 들고 있든지 겁을 내지 않고, 없앨 생각만 하고 있다.

“네 무기가 돌멩이라도, 파급력은 미사일처럼 만들어줄 수 있다. 폭격을 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알아, 안다고.”

잘만 요리하면 회사를 뒤흔들 수도 있는 무기.

하지만 이렇게 있다간 써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날 판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폭격을 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알아, 안다고.”

그리고, 지금 이 신해수라는 사람은 이 재료로 고성능 폭탄을 만들어서 터트리는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양전무가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주소 받아적어봐, 양천로···.”

황장수는 바로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  *  *

[KD자동차 천억대 비자금, 출처가 밝혀졌다!]

[KD그룹 오너일가의 선 넘은 갑질, 전 운전기사, 현재 하체마비?]

[KD자동차 사장 자살, 자필유서 발견, ‘나는 억울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KD자동차를 넘어 KD그룹을 저격하는 수많은 비리가 연달아 터졌다.

양전무가 자신이 20년간 KD자동차에 종사하면서 긁어모은 정보를 넘겼고, 신해수는 약속한 대로 그것을 터트린 것이다.

아주 화끈하게.

천선생이 잠적하고, 칠성회가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하니 기사는 알아서 미친듯이 퍼져나갔다.

대성E&M대표 안서은도 이참에 대놓고 사건을 증폭시켜주었다.

그 누가 봐도 급발진 건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파급력이었다.

KD그룹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에는 있어서는 안될 쓰레기 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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