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급발진 (3) >
치이이익-
전원주택가 길목.
검은색 세단이 침대를 들이받은 채 가만히 서 있다. 옆에 담벼락을 길게 그어서 하얀 벽에 검은 칠이 되어 있다.
“끄으으···.”
운전수가 핸들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렸다. KD자동차에서 가장 비싼 차인데 이 정도 사고로 에어백이 터지지 않은 게 놀라울 따름이다.
운전수는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바로 현실을 자각했다. 이 차에는 자신만 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으으···.”
백미러로 보니 양전무가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러다가 운전수와 눈이 마주치자, 눈빛이 야수처럼 변한다.
쾅!!
“야이 개새끼야!!”
그는 발로 운전석을 마구 걷어차며 욕을 내뱉었다.
쾅 쾅! 쾅!!
“뒤질 뻔했잖아 이 개새끼야!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운전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무래도 급발진 같습니다···.”
“···뭐?”
급발진에 유난히 예민할 수밖에 없는 양전무였다. 그때.
쿵쿵쿵 쿵쿵쿵!
누군가가 달려와 차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낯익은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본사 입구에서 마주쳤던 기자였다.
“기자가 왜 하필, 아 오늘 만나기로 했었나? 이런 씨팔···.”
찰칵 찰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진까지 마구 찍어댄다. 그러다가 돌연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치며 말했다.
“아차, 일일구, 일일구에 신고해야지!”
“어어어! 거기, 멈춰!”
양전무는 다급히 차 문을 열면서 황장수를 제지했다.
구급차가 출동하고, 사건이 제대로 접수되면 일이 커진다. 수습도 복잡해진다.
급발진을 신고하면 간접적으로 2년 전 일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러면 큰일나는 건 양전무 자신이다.
양전무의 부름에 황장수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에? 아니 사고가 났는데, 왜···.”
양전무는 그의 휴대폰을 거칠게 빼앗았다.
“허억, 헉, 사고는 무슨, 우,운전 미숙이야, 미숙”
“에?”
양전무는 황당해하는 황장수를 방치한 채 그의 휴대폰을 뒤졌다. 사진첩에 사고 나기 전에 자신이 차에 타는 사진까지 찍혀 있다.
지켜보고 있었다면 급발진을 추측할 수도 있다.
양전무의 추측을 확신시켜주듯이, 황장수가 운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거 급발진 사고죠? 아까 보니까 타자마자 확 나가던데?”
“예? 아니, 그게···.”
운전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눈을 굴리던 양전무가 냅다 뒷목을 잡으며 쓰러졌다.
“아, 아윽!”
“어어 괜찮으세요?! 역시 일일구를!”
“아니 아니, 보험, 보험 불러 이씨.”
“예? 예에 전무님.”
양전무는 바로 보험사를 불러 차를 가져가게 하고, 병원으로 갔다.
황장수는 기자역할답게 먹이감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었다.
“아까 그거 급발진 맞죠? 거기 앞에서 1인시위하는 여성분도 급발진 피해자던데, 아닌가요?”
“어허, 급발진은 무슨! 아니 사람이 아프다는데 왜 이렇게 붙어? 얼른 가 좀! 신고한다?”
황장수는 아쉬운듯이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아··· 그럼 제가 본 대로만 써야겠네요. 급발진으로··· 추측된다. 차후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양전무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기사가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카더라라는 명확한 근거 없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그것을 기정사실화시킨다. 나중에 정정 기사가 나도 사후확증편향으로 인해 해당 사실을 왜곡해서 판단하거나, 거짓기사라고 믿는다.
“하··· 어이, 황기자.”
황장수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씨익 보였다.
“예?”
“그거 얘기는, 내가 자세하게 말해줄 테니까 나중에 합시다.”
“나중에 언제···?”
“후··· 이따가, 오늘 연락 주겠소.”
황장수는 바로 경례 자세를 취했다.
“옙 알겠습니다! 그럼 쾌차하십시오!”
드르륵- 쿵
병실 문이 닫히고, 양전무는 온갖 인상을 쓰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어, 난데, 그거 차 빨리 폐차시켜버리고, 검사는 무슨 검사! 닥치고 더 귀찮아지기 전에 폐차 시켜, 어, 그리고··· 저 기자 새끼한테 꿀 좀 물려줘.”
양전무는 전화를 끊고는 침대에 등을 누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입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모양새였다.
* * *
띠링
[K자동차 영화관. H-11]
갑작스레 날아온 자동차 영화관 표에 황장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건, 모르는 번호인데?”
해수가 그것을 보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 먹이려나보네, 은밀하게.”
“아하··· 하여튼 애새끼들 있는 것들이 더해, 어떻게, 이거 쳐먹어?”
그 말을 하는 장수의 눈에서 탐욕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죽었다 살아난 이후,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것을 알고 해수가 믿고 일의 중심을 맡기는 것이다.
해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더 불러, 이번 기회에 제대로 빨대 꼽아보자는 욕심이 보일 만큼.”
“아아 오케이, 그런 거 이 형님이 또 전문가지.”
* * *
약속시간이 되었고, 황장수는 옷을 챙겨 자동차 영화관으로 향했다.
“에이치 십일, 에이치 십일번··· 존나 구석이네, 음침한 새끼들.”
시간도 늦어서 어둑어둑하니 차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잘 모를 듯하다.
스르륵-
그곳에서 기다린 지 5분쯤 지나자 검은 차 한 대가 옆에 차를 대고는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병원에 입원한 줄만 알았던 운전수다.
장수도 운전석 창문을 내리자, 그가 검은 봉지 하나를 던졌다.
툭
“어이쿠, 이게 뭐요?”
지이이잉-
운전수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올렸고, 차가 그곳에서 빠져나갔다.
황장수는 바로 그곳에 있는 비닐봉지를 확인했다.
“허허, 참.”
5만원 권 한 묶음, 5천만 원, 한낱 기자의 입을 막기 충분한 금액.
“흐읍···.”
황장수는 한동안 가만히 오랜만에 맡는 돈 냄새에 취했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자신의 휴대폰은 아니다. 보니 검은 봉지 안에 작은 폴더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저장이름 [1]이라는 자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다.
“예.”
-성의는 잘 받으셨습니까?
양전무의 목소리다.
“이게 뭡니까? 설명도 없이 사라지셔서 이 기자는 난감하네요?”
-기자님이 우리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써주시니, 사회 구성원으로써 감사한 마음을 표한 겁니다. 부담갖지 마세요. 전화기는 바로 하수구에 버려주시고요.
“아하··· 일단 알겠습니다.”
황장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화면이 꺼진 핸드폰 위로 희게 드러난 이가 비쳤다.
* * *
뚝-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매몰차게 끊겼다.
양전무는 황당한 얼굴로 자신이 들고 있는 폴더폰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 싸가지없는 새끼는??”
기사 하나 안 쓰는 데 5천만 원이면 차고도 넘치는 금액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와서 큰절을 하며 감사하다 외칠 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니 당황한 양전무였다.
그리고 얼마 후.
드르륵-!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황장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양전무가 그를 노려보았다.
저 은밀한 것을 이렇게 대놓고 들고 왔다는 행동 자체가 답을 주고 있다.
툭
황장수는 검은 봉지를 양전무의 침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게 뭐요?”
“몰라요? 이래도?”
황장수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방금 전에 통화내용의 녹음본을 들려주었다.
-···바로 하수구에 버려주시고요.
법적 효력이 없어도 협박용으로는 충분하다. 양전무는 미간을 확 좁히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사람이 원하는 게 따로 있나, 매한가지 아닌가? 근데 이 어이없는 가격을 잘난척하면서 툭 던지고 가니까 짜증이 나서 말이지.”
반전이다. 돈 외에 다른 것, 혹은 정의에 미친 또라이일 줄 알았는데, 그냥 단순히 돈이 부족했던 것이다.
양전무는 두 손가락을 폈다.
“두 배, 더 이상은 안 돼.”
“너무 짜다. 이거 하나로 전무님 모가지가 잘릴지 말지 결정되는 거 아닌가?”
“···너 뭐하는 놈이야?”
양전무의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 건을 덮어야 하는 이유를 꿰뚫어보는 놈이다. 단순한 기자가 아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고, 열 배, 그 정도는 줘야 내가 마음 놓고 펜 놓지, 안 그래요?”
양전무는 황장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하··· 일단 알았다. 그런데 그 정도는 나도 당장에 현금으로 없어, 시간을 좀 줘.”
“시원시원해서 좋네, 이틀이면 되지? 연락은 그 휴대폰으로 해줘요. 이건 수고비 겟.”
황장수는 양전무에게 건넸던 검은 봉지를 다시 휙 빼앗아 병실을 나섰다.
양전무는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끝없는 탐욕을 가지고 있는 놈, 이번에 5억을 쥐여줘서 입을 막더라도, 자기 돈이 궁해지면 분명 나타나서 귀찮게 굴며 또 돈을 캐내려 할 것이다.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감히 상류층을 가지고 놀려는 자들은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양전무는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폴더폰을 들었다.
“어··· 동막이 애들 요즘도 일 하지, 한명 교육 좀 시키자.”
* * *
해수팀의 본부가 위치한 곳은 초저녁부터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다. 특히 저녁 7시 이후, 지하상가같은 비주얼의 수산물 거리는 어두컴컴하여 으쓱함이 더해진다.
쓰윽 쓰윽 쓰윽
그곳에 황장수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걸어갔다.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가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기자 역할을 맡은 후 본부가 있는 주상복합건물 4층에 있는 원룸이 그의 거처가 되었다.
스윽
황장수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검은 인영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마치 장수를 기다리는 듯했다.
열 발자국 정도의 가까운 거리가 되자, 통로 끝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에 의해 상대의 모습이 비쳐졌다.
후즐근한 옷차림에 꾹 눌러 쓴 모자, 한 손에는 파이프렌치가 들려 있다.
슥
그 옆에 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장도리가 들려 있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비슷한 옷차림의 사내 세 명이 어느새 나타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다시 앞을 보자 파이프렌치를 든 사내가 그것으로 모자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황기자? 우리랑 얘기 좀 할까?”
툭
황장수는 검은 봉지를 내려놓고, 깍지를 끼고 손을 풀며 히죽 웃었다.
“양전무 이 이쁜 새끼가 더 분발을 하네.”
기다렸다는 듯 몸을 푸는 그의 행동과 눈빛에 긴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내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파이프렌치를 들어올렸다.
“하여튼, 처음부터 고분고분 듣는 새끼들이 없어, 일단 맞아야 아픈 줄 안다니까? 야, 잘 다져줘라.”
“예에.”
“예 형님.”
후웅-
명령을 내리고 뒤로 빠지려는데 손이 쭉 뻗어온다. 생각보다 빠른 반응, 빠른 타이밍, 긴 손.
척.
멱살이 잡혔다.
“어딜 빠져, 이 새끼야.”
황장수의 커다란 주먹이 당황한 그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퍼억-
“커헉!”
사내가 코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이, 옆에 장도리를 들고 있던 놈이 장수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타닥-
장수는 몸을 붙여 장도리를 어깨로 받고, 놈의 턱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 엄청난 악력에 사내는 순간 경직되어 가만히 굳었고, 장수는 뒤에 달려드는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연장 들었으면 그만한 각오는 하고 왔지?”
“죽어!”
우드득-
장수는 사내의 턱뼈를 비틀어버리고는, 놈의 오른손에 들린 장도리를 빼앗아 옆구리 아래 골반을 때리고, 달려오는 사내들에게 밀었다.
“끄아악!!”
사내들이 쓰러지는 그를 받는 사이, 장수는 아직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사내에게 달려들어 장도리로 팔꿈치를 찍고, 파이프렌치도 빼앗았다.
연장 두 개를 손에 들고, 뒤에서 오는 사내 세 명을 바라보는 황장수의 눈빛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
그 목소리에 장수가 흠칫하더니 눈빛에서 살기가 사그라들었다.
스윽-
어둠 속에서 황장수와 비슷한 덩치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 쪽에서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호리호리한 체형의 여성이 나타났다.
남자, 신해수가 가죽장갑을 끼며 괴한들에게 말했다.
“형들이··· 죽이지는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