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96화 (196/255)

< #196. 급발진 (2) >

큰 소리가 나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뭐야!”

“아이가?”

“차에 부딪힌 건가?”

덩치 큰 남자가 아이를 안고 바닥에 엎어져 있다.

수군거림에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아이 엄마가 고개를 돌렸고, 아이를 발견했다.

“하,하,하은,하은아!!”

여인은 사람들을 제치며 그곳으로 달려갔고, 아이를 안고 있던 남자가 손을 스르르 풀어주었다.

그러자 눈을 꼭 감고 있던 아이가 눈을 살짝 뜨고는, 자신의 엄마 목소리에 상체를 일으켰다.

“엄마···”

“하은아, 울애기 이리와!”

여인이 아이를 포옥 안는 사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황장수와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합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크게 외치지는 못했다. 자신이 태워야 할 임원이 저곳에 있기 때문이다.

너무 나대지는 않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때, 덩치 큰 남자가 스윽 일어났다.

검은 정장에 검은 셔츠, 190센티 가까이 되는 큰 키, 민머리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얼굴에만 여러 개가 있는 흉터.

아이와 함께 엎어져 있을 때는 몰랐지만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소변을 지리게 만드는 인상의 소유자다.

그 남자, 황장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운전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에, 아, 아니 갑자기 그···”

“저기, 괜찮으세요?”

때마침 아이 엄마가 황장수에게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운전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우리 공주님은 괜찮아요?”

장수가 허리를 숙이고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볼에 있는 흉터가 주름이 잡히며 더욱 깊이 파여 소름 돋는 인상을 만들었다.

아이가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거린다.

“흡, 흐,흐응”

그 사이 차 주인인 양전무가 다가와서 차를 살폈다. 그 덩치가 부딪혔으니 차가 온전치는 못했다. 앞범퍼가 파이고 보닛도 찌그러졌다.

“하, 재수가 없으려니까··· 당신은 누구야? 직원이야?”

황장수는 또 예의 그 살인자같은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주었다.

“아 네, 나는 뭐, 여기 지나가는 기자입니다.”

“뭐,뭐? 기자?”

기자라는 말에 양전무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차주 되시나요? 내가 들이받은 거니까 차 수리비는 당연히 물어줘야죠, 거기로 전화를, 아니 지금 전화번호를 주시죠.”

“가자가 갑자기 여기는 왜···”

“아아, 뭐 2년 넘게 지속 중인 시위가 있다길래 진짜 있나 싶어서··· 아 물론 아이 엄마를 막 패대기 치고, 옷으로 때리고 이런 건 못 봤습니다. 사진도 안 찍었어요. 걱정 마세요!”

“아,아니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패대기라니, 때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장수는 실수했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옙! 저 입 무겁습니다.”

양전무는 결국 차 사고로 인해 복잡하게 일이 얽힐까 하여 비서를 통해 명함을 주었고, 황장수는 그제야 그곳에서 벗어났다.

*

KD자동차 본사 입구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황장수는 아이와 아이 엄마와 함께 걸었다.

“아까 어떤 아가씨한테 들었어요. 아이가 위험했는데 구해주셨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요. 우리 공주님 다치지 않았으면 됐죠 뭐.”

말을 하면서 하은과 눈을 힐끗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바로 엄마 뒤로 쏙 숨는다.

“그 양전무··· 차 보상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우리 아이 구해주셨는데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시면 제가 사람의 도리가 아니죠···”

황장수는 순간 멈칫했다.

여인, 김선희의 뒷조사를 다 끝내서 생활고가 얼마나 심한 지 알고 있는데, 큰 금액이 나올 수 있는 일을 선뜻 처리하겠다는 그녀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동한 것이다.

“아··· 아닙니다. 그걸 빌미로 그 사람을 만날 생각이라서 말이죠, 그러면 대신에 아까 말했듯이 1인 시위 관련해서 알고 싶은게 있어서, 인터뷰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 얼마든지 가능하죠.”

김선희는 황장수의 웬만한 조폭은 씹어먹을 인상에 기자라는 말이 의심은 갔지만, 딸을 구해준 것은 팩트이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는 김선희의 집에서 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이, 하은은 경계가 풀려 장수에게 슬금슬금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왜 무섭게 생겼어요?”

“음, 글쎄··· 나도 그게 고민이란다.”

“아저씨는 용감한 구조대에요? 하은이 구하러 온?”

“응? 아, 하하, 그럴수도 있지?”

“와아!”

천진난만한 하은 덕에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하는 김선희의 집은 8평 원룸이었다. 원래 투룸 빌라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사망한 후에 그것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녀가 냉장고 뒤에 세워두었던 접이식 식탁을 꺼내어 놓고, 믹스커피를 타서 건네주었다.

“죄송해요. 마땅히 드릴 게 없네요.”

“아유 아닙니다. 저 이 커피 제일 좋아합니다.”

황장수는 그곳에서 김선희에게 급발진 사건에 관하여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당사자에게 들으니 확실히 자료에서 놓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열심히 이야기를 받아적던 황장수가 옆을 돌아보았다.

아이 하은은 다섯 살로, 꽤 바르게 자란 모습이었다.

엄마가 일어나기만 하면 도와주려고 하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옆에서 또랑또랑한 눈으로 둘을 번갈아보며 쳐다볼 뿐, 대화에 틈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을 걸지 않았다.

'...흠.'

아이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장수는 이 아이가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철이 빨리 들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일하죠, 마트 캐셔 일을 하는데, 요즘은 셀프 계산으로 많이 바뀌어서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있어요.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는 쉬는 걸로, KD자동차에도 주말에는 사람이 없어서 평일에 가야 하거든요.”

“음···네, 그렇죠,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네.”

인터뷰가 길어지자 하은이 구석에서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선희는 하은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무겁게 대답했다.

“지옥같아요. 하은이한테··· 많이 미안해요···”

장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사채업을 하면서 자신의 딱한 사정을 봐달라는 고객들을 많이 상대했었지만, 이렇게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제가, 제가 꼭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그의 다짐과도 같은 발언에 오히려 김선희가 당황한 눈치다.

지금까지 꽤 많은 기자들을 만났었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하은과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동정표 조회수를 받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많이 만났다.

어떻게든 사과와 인정,보상을 받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모든 기자들을 만났지만, 이용만 할 뿐, 제대로 기사가 나간 건 거의 없었다. 나가도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연락하면 갖가지 이유를 들며 피하거나 아예 차단했다.

그런 기자들을 수없이 겪다가 2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대놓고 도와준다고 하니 오히려 경계가 되는 선희였다.

선희의 눈빛에 황장수는 더욱 신뢰를 주기 위해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든, 그 양전무 그 새···사람, KD자동차 무릎 꿇리겠습니다!”

-황장수, 정신 차려, 너 이러면 앞으로 현장에 투입 안 한다.

귓가로 들리는 해수의 목소리에 장수는 뜨끔했지만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그 열정적인 눈빛과 심각한 인상으로 인해 김선희의 의심은 더해졌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를 왜 도와주시려는 건지···”

황장수의 귓가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봐, 저 아저씨 인상으로는 신뢰를 줄 수가 없다니까요.

-해수님, 제가 가보겠습니다.

-아냐 앉아, 둘 다 앉아, 황장수, 니가 내뱉은 말이니까 니가 수습해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아, 네, 저는···”

장수는 하은을 힐끔 보았다가 다시 김선희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만 높이는 기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 이 나라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참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김선희씨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

김선희는 황장수의 눈에서 설핏 진심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이 얼마만에, 벼랑 끝에서 마주하는 댓가 없는 호의란 말인가? 선희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

“아, 나 진짜 기자 해볼까? 그 말 하는 순간 가슴 속에서 싸나이의 피가 끓어올랐다니까?”

쪽새가 두 손을 들어 줘락펴락거리며 말했다.

“저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줄”

해수가 영수 옆에서 모니터를 보다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나도 피가 끓어올랐어.”

“그치? 그렇지? 이 형이 웅변 좀 했거든”

“너 패고 싶어서.”

해수의 눈빛에 사뭇 살기가 감돈다. 장수는 흠칫하며 주변을 살폈다.

“어? 아이, 치,친구 왜 그래, 애들도 보는데.”

해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히고 주무르며 말했다.

“대본대로 해, 대본대로, 일 어긋나면 니 뼈도 어긋난다.”

“허허, 우리 친구가 요즘 농담이 많이 살벌해졌어, 농담학원을 다니나.”

해수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누르고는 걸음을 옮겼다.

장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날이 갈수록 애가 살벌해져, 고등학교때는 그래도 티없이 맑은 아이였는데.”

“어땠습니까? 해수님 고등학생 때?”

어느새 하루가 다가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장수는 살짝 놀랐다가 그때를 떠올리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흠··· 앞뒤 생각하지 않고 주먹부터 날리고, 나이 막론하고 참교육하고, 하얀 티가 피로 물들어서 빨간 색 되고··· 그때가 참 재밌었지.”

하루는 검지로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어렸을 때는 다들 똑같군요.”

“그렇지 뭐.”

둘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쪽새가 두 손으로 어깨를 쓸었다.

어느새 온몸에 소름이 돋아있었다.

‘뭐야, 엄마 여기 무서워···’

*

KD자동차 공업사, 운전수가 끄는 양전무의 차가 들어간다.

모자를 푹 눌러쓴 키 작은 정비공이 나와서 그를 맞이했다.

“이거 양전무님 차니까 알아서 잘 해요. 어?”

“아아 양전무님, 알겠습니다. 깔끔하게 싹 다 새거로 교체하겠습니다!”

“말귀 잘 알아듣네, 그럼 수고해요.”

“옙, 안녕히 가십시오!”

정비공은 운전수에게 넙쭉 허리를 굽혔다. 그 옆에 정비공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주가 임원이지 지가 임원이야? 하여튼 요즘 노예들은 지 주제를 모르고 저렇게 허세를 부린다니까?”

정비공의 말에 키 작은 정비공, 쪽새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주제를 알게 해 줘야죠.”

*

다음날 아침, 양전무의 전원주택.

운전수가 먼저 도착하여 차고에서 차를 빼내어 현관문 앞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껐다. 오래 기다리면 기름값이 나간다고 자신이 오기 전에는 시동을 다시 꺼놓으라는 양전무의 지시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쪽새가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후에 양전무가 나오자 운전수가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쪽새가 송신기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양전무 나왔습니다.”

-오케이, 눌러

“진짜 누릅니다? 이제 진짜 일 나는 거에요?”

-눌러, 그거 겁냈으면 일 시작도 안 했어.

“옙!”

쪽새가 양전무의 차가 있는 방향으로 까만 리모컨을 내밀며 버튼을 눌렀다. 아직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양전무 먼저 타고, 운전수가 운전석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부아아앙!

갑작스레 차가 앞으로 튀어나간다. 운전수는 물론 양전무도 당황하여 눈이 튀어나갈 듯이 크게 떴다.

콰광쾅쾅!

차는 100미터쯤 가다가 앞에 마침 침대 매트 두 개가 세워져 있는 곳을 들이받고 멈추었다.

쪽새는 망원경으로 운전수와 양전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미션 클리어, 연계 미션 들어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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