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급발진 (1) >
“허억!”
강범이 숨을 들이키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체육관 구석에 있는 창고 안이다.
주변에는 팀원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팀장님 일어나셨습니까?”
“괜찮습니까?”
강범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털고는 자신의 의식이 끊어지기 전에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물근육을 지니고 있던 강진 강력4팀의 중간놈이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자신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던 것만 기억난다.
그는 팀원들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 아으.”
강범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찌릿한 통증에 턱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번개 맞은듯이 신해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꽂혔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씨팔···”
강범이 욕을 내뱉자 팀원들이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야, 나 얼마나 누워 있었냐.”
“5분 정도···”
“씹새끼가 감히 선배를 까? 그것도 기습으로?”
강범은 마치 당장이라도 해수를 패러 갈 것처럼 이를 갈았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하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팀원들 몇 명이 강범에게 달라붙으며 말렸다.
“팀장님 참으십시오.”
“팀장님 그, 제가 좀 알아보니까··· 신해수 그 형사···”
강범이 개차반같은 성격에도 강남강력1팀 팀장으로 있는 것은 날카로운 감도 있지만 주먹의 지분도 컸다.
그만큼 주먹도 쎄고 맷집도 쎈 편인데, 그런 그를 한 방에 기절시킬 정도면 보통 형사가 아니다 싶어 팀원이 조사를 해본 것이다.
“···이때는 조선족 살인청부업자들 네 명을··· 이 기사 보면 칼을 든 조폭 열일곱 명도 제압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씨 히어로도 아니고, 요즘은 기사가 소설을 써서 문제야 소설을··· 과장도 적당히 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아 그리고··· 이게 단순한 강력4팀이 아니라 전에 강력수사대였다가 이번에 청장 바뀌면서 해체돼서 급결성된 팀이라고··· 곽수철 대장님이 거기 대장이었답니다.”
팡!
강범은 억울한 듯이 누워있던 매트리스를 내리쳤다.
“그럴 줄 알았어 개새끼들, 지들끼리 짜고 치는 거였구만, 어쩐지···”
포인트가 그게 아니었지만, 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그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쾅!
창고 문이 거칠게 열렸다. 말소리가 들리자 오갱이 찾아온 것이다.
쿵-!
그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강하게 문을 닫고는 강범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강남팀장님.”
“강남팀장님?”
“왜, 야라고 불러줄까? 경찰 기수 따져보니까 내가 2년 선배드만, 강력반 경력으로 따질까? 나이로 따져? 아니면 주먹으로 따질까? 어?!”
오갱의 그라데이션 분노에 강범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 이건 또 뭐야···”
“내가 진짜 잘 해보려고 했거든? 난다 긴다하는 강력팀이 한 자리에 모이니 얼마나 자존심이 쎄겠어?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지, 근데 이 정도로 망나니 새끼인 줄은 몰랐다. 넌 그냥 나가라, 다른 팀 들어오게, 알았냐?”
오갱이 눈을 부릅뜨고 강범에게 폭언을 퍼붓자, 심각성을 인지한 팀원들이 그를 말렸다.
“선,선배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일단···”
그러나 그 모습마저도 강범의 신경을 긁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형사계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그였다.
높아질대로 높아져버린 자존심이 단숨에 두 번이나 꺾이자 사리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런 씨팔!! 네가 뭔데 지랄이야?! 나 강남서 강력1팀이야!”
강범이 오갱의 멱살을 잡기 위해 한 손을 뻗었고, 오갱은 그의 팔을 역으로 잡고 돌아서며 바닥에 냅다 꽂았다.
후웅- 쿵!!
강범은 10분도 되지 않아 또 한 번 공중을 한 바퀴 돌았다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오갱은 정신적 충격과 신체적 충격이 겹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강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넌 강수대가 좃으로 보이냐?”
오갱이 발을 들어올렸고, 강범은 화들짝 쫄아 두 팔로 얼굴을 막았다.
오갱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
화끈했던 서열정리가 끝났다. 강범도 강남서에서 강력1팀을 이끌어가는 만큼, 사건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했다.
그가 해수와 그들의 팀을 싫어했던 것은, 실력도 없으면서 백으로 들어와 흙탕물을 만들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강범은 지독하게 실력주의자였고, 선천적으로 남자보다 힘을 쓰지 못하는 여자나 실력없는 팀을 병적으로 혐오하는 자였다.
“···오해 좀 했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곽반장은 강범의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임마, 오해든 말든 그러면 안 되는 겨, 앞으로 이번 일을 발판 삼아서 항상 조심해, 알았어?”
“예, 예···”
오갱은 아직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곽반장이 넘어가니 아무 말 없이 따랐다.
서로의 기싸움이 끝나고, 특수대는 본격적으로 괴한들을 어떻게 잡을까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다.
그들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이기 때문에 이후의 행동 예측할 수 없다. 고로, 미리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방지 혹은 검거가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관계가 있는 자들을 감시하거나 조사하여 흔적을 쫓는 수밖에 없다.
특수대는 서류상으로는 없지만, 마실장이 일했었다고 주장하는 천상이라는 기업을 먼저 조사에 착수했다.
*
신해수는 시간이 날 때 마실장과 통화를 하여 칠성회에 관해 캐내었다.
깊숙이 숨은 천선생과 회사원들을 찾는 것보다, 이 참에 혼란에 빠진 칠성회를 무너트리는 것이 급선무다.
경찰은 천선생 쪽으로 액션을 취하고, 뒤에서는 칠성회를 무너트리는 것이 해수의 양동작전 계획이다.
-···거기가 칠성회인지 증거같은 건 없어, 문신?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하면 그만이야, 나중에 칠성회가 붕괴되거나 역으로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서 기밀장부를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지.
마실장은 천선생의 최측근이니만큼 많은 정보를 꿰고 있었다.
-하지만 천선생이 누구야, 첩자를 깊숙이 숨겨둬서 칠성회에 속한 자들의 약점을 수십 개씩 손에 쥐고 있지, 그 중에는 그룹을 뒤흔들 만큼 큰 약점들도 많아, 그걸 어떻게 써먹을지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고.
마실장은 먼저 KD그룹에 관한 정보를 풀었다.
-KD자동차, 2년 전 급발진 사망사고가 있었지, 차량결함 결과표를 양전무가 폐기했다. 검사담당자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돈 받고 결과를 바꿨고, 한 명은 실종됐지, 실종 처리를 회사에서 맡았다.
“별 짓을 다 했군.”
-그걸 파봐, 양전무가 폭탄을 들고 있을 거다.
해수는 마실장과의 통화를 토대로 해수팀에 조사를 맡겼고, 정영수가 금세 알아내어 팀에 공유했다.
“이거 2년 전 8월17일에 일어난 건이네요. 운전미숙으로 운전자 송씨가 가드레일이랑 변압기 들이받고 사망한 건인데, KD자동차 상대로 유가족이 소송했으나 패소, 선임비용까지 떠앉아서 빚더미에 있대요.”
영수의 말에 쪽새가 미간을 좁히며 주먹을 쥐었다.
“개새끼들, 이래서 부자들은 재수없다니까, 부자면서 더 부자되려고 없는 사람들 피를 쪽쪽 빨아먹어, 보상은 없대 보상은?”
해수도 유가족 생각에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쪽새의 물음에 영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유가족한테 보상 많이 주면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한 푼도 안 주고, 오히려 강경하게 대응을 한 것 같네요. 위로금은커녕 식장에 무슨 운전면허 문제집을 보냈다고 한참 난리가 났었대요. 운전미숙이라고 비꼰 거죠, 11년 무사고 운전자인데···”
“미친 싸이코패스 새끼들이네 진짜.”
해수가 손뼉을 쳐서 분노의 감정이 가득 찬 본부를 환기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자, 여기까지가 세상에 나와있는 결과, 그 당시의 결과표 원본, 폐기를 한 게 아니라 양전무가 가지고 있어, 회사가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대비하여 무기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걸 찾는 게 첫번째 임무고, 두 번째는 그당시 검사담당자 중 한 명을 설득하는 거야.”
쪽새가 언제 분노를 불태웠냐는듯이 동그란 눈을 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둘 다 불가능해보이는데요? 그런 힘든 일을 누가 해낼 수 있나요?”
해수가 몸을 돌려 쪽새를 보았다. 그에 이어서 황장수가, 그리고 하루가 쪽새를 보았다. 쪽새가 검지로 자신의 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
KD자동차 본사 입구.
회전교차로 중앙에 젊은 여인이 한 손으로 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한쪽에는 노란 가방을 메고 있는 여자아이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붙잡고 있다.
여인은 사람들이, 그리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입을 열었다.
“한 번만 관심 가져주세요. 우리 남편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 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사람들은 그녀에게 시선을 의식적으로 주지 않으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이가 엄마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 배거파.”
“아, 하은이 배고팠구나, 엄마가 미안, 잠깐만···”
엄마는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어 봉지를 뜯고 아이에게 쥐여주었다.
아이는 초코바를 입에 한움큼 넣고는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엄마는 배거파 안 해?”
“으응? 어, 엄마는 괜찮아, 하은이 다 먹어.”
그때, 본사 입구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중 한 명이 검지로 모녀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야, 저것들 아직도 있어? 빨리 치워, 전무님 곧 나오신다.”
“아, 예 팀장님.”
곧이어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모녀에게 다가왔다.
“아줌마 빨리 애 데리고 집에 가세요.”
“가라고 해서 갔으면 지금 여기 안 있죠, 당신 와이프가 죽어도 순순히 가실 건가요?”
“하 진짜 이 아줌마가, 아줌마, 애 보는 앞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곱게 가세요 그냥 좀.”
“엄마아···”
사내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낀 아이는 무서워서 엄마의 다리를 꼭 붙잡았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여인은 가만히 입구 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알겠어요. 비키세요.”
“진작에 그러셨어야지.”
“가세요. 예, 멀리, 제발 좀 그만 좀 오고, 그런다고 뭐 안 달라져.”
여인은 아이와 함께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꽤 멀어지자 사내들은 그녀에게 신경을 끄고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중년인 몇 명이 나오면서 입구가 시끌시끌해졌다.
기둥에 숨어있던 여인은 아이의 두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하은아, 여기 꼼짝말고 가만히 있어, 엄마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알았지?”
하은은 초코바를 입주면에 잔뜩 묻힌 채로 오물오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웅뇸뇸”
여인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입구에 모여있는 중년인들에게 달려나갔다.
“양인석! 우리 남편 살려내!!”
“어어어!”
“야이 씨! 저 년 뭐야!”
여인은 독기를 품고 사내들 사이를 지나쳐 양전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이썅 뭐야 진짜!”
양전무는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팔을 강하게 털었다.
그러자 여인이 중심을 잃고 돌바닥에 넘어졌다.
“우리 남편 살려내라고! 제발!”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나 양전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내들에게 붙잡혀 옴짝달싹 못했다.
양전무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옷을 털고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자신의 손에 무언가 불쾌한 촉감을 느꼈다.
갈색의 묽은 액체, 미간을 좁히며 냄새를 맡아보니 단 향이 난다. 초콜릿이다. 양복 팔뚝 쪽에도 살짝 묻어있다.
양전무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웃옷을 벗어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인에게 던졌다.
“내가 시발 뒤진 니 남편을 어떻게 살려내! 내가 신이야? 어?! 이 옷 어떻게 할 거야 이 썅년아!!”
거칠게 휘두르는 옷에 여인이 제대로 맞았다. 단추가 얼굴에 쓸리며 얼굴을 할퀴었다.
“아윽!”
커다란 행동에 멀리서 보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달려온다.
“엄마! 엄마 엄마아!!”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걱정되어 무작정 달려들었고, 양전무의 휘두름을 피하느라 뒷걸음질 치는 사내의 다리에 아이가 부딪혔다.
퍽-
그 사이 대로에 양전무를 태울 차가 오고 있었고, 아이는 뒤로 밀리며 그 차에 부딪히려 했다.
콰광!!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아이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차 보닛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