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마실장 접견 >
순간 장내가 적막해졌다.
강범이 눈을 좁히며 몇 걸음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곽···수철 선배?”
그의 말에 곽반장이 또 욱하여 치와와처럼 짖어댔다.
“님짜 안 붙이냐? 계급 안 보여? 나이 안 보여? 대한민국 경찰이 근육으로 선후배 나뉘어? 그럼 얘가 대선배야?”
곽반장이 막내 근육몬의 팔을 잡아당기다가 자신이 끌려가 뒤에 숨은 포지션이 됐다. 그 모습에 강범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여전히 허약하시네.”
곽반장은 근육몬 뒤에서 다시 쏙 나와서는 이빨을 내보였다.
“넌 어떻게 여전히 싸가지가 없냐, 아무튼 내가 대장이니까 깝치지 말고 저 구석에 조용히 쳐박혀 있어라.”
하지만 강범은 물러서지 않고 곽반장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휘관이 따로 파견된다는 소리 못 들었는데, 잘못 오신 거 아니요?”
“니가 못 들은 걸 내 탓해야겠냐? 나 온다는 거 못 들은 사람?”
곽반장이 한 손을 들어올리며 경기팀과 강진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들지 않는다.
“봐봐, 니네가 왕따인 거야, 알았으면 꺼져.”
움찔한 강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뒤돌아 자신의 팀으로 향하면서도 작게 중얼거렸다.
“하··· 이거 보통 사건 아니라서 대장이 중요한 사건인데···.”
“다 들린다 이 새끼야, 불만 있으면 꺼지든지, 난 얘네만 데리고 해도 된다.”
그제야 강범은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볼멘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곽반장은 책상 위에 괴한들의 습격에 대한 현장 관련 자료들을 잔뜩 쌓아두고, 특수대 대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두 팀으로 나눠서 조사를 할 거다. 괴한들의 흔적을 쫓는 현장 팀, 그리고 그들의 습격 대상이 되었던 마진강에게 정보를 얻어오는 팀. 그리고-”
곽반장이 아직 입을 벌리고 말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강범이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마진강한테는 내가 갑니다. 범죄자 새끼 입 털게 하는 건 전문이거든.”
강범의 말에 조팀장이 중얼거렸다.
“발로 현장 뛰는 게 싫은 거겠지, 생긴 거랑 다르게 찐따 기질이 있네.”
“풉.”
“큭!”
작게 말했지만 조용한 상태라서 조팀장의 말은 모두에게 잘 들렸다. 그녀의 팀원은 물론 강범의 팀원도 실소를 흘렸다.
얼굴을 붉힌 강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야, 너 뭐라고 했어.”
“우리 팀장님한테 야라니요. 아까부터 말이 좀 그렇네.”
“팀장이 저러니까 팀원도 저따위네, 다 쳐맞고 시작해야 하나.”
그때, 곽반장이 자료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야! 둘 다 그만 해, 지금 우리 연쇄살인범 한 놈 뭐 이런 거 잡는 거 아니야, 사상 초유의 범죄 집단 잡는 거다. 경찰이 열한 명 죽어나갔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라.”
“옙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
팀은 강범의 의견대로 강남팀이 마실장을 만나러 가기로 하고, 경기팀은 괴한들의 흔적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니네는··· 어떻게 팀원이 이렇게 적냐, 뭐 보내기도 애매하게.”
곽반장의 말에 오갱이 중얼거렸다.
“누가 나가서 그렇지 뭐.”
“에헴, 아무튼 그러면 니네는 찢어져. 강남팀이랑 같이 갈 사람?”
곽반장의 말에 해수가 넙쭉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트러블메이커같은 강범과 팀이 되기 싫었는데, 해수가 먼저 나서자 막내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오케이, 그러면 막내가 조팀장네로 가고 오갱은 나랑 같이 있어, 무서우니까.”
“예 그럽죠, 특수대 대장님.”
* * *
강남팀의 봉고차를 타고 구치소로 이동하는 길.
해수와 맞은편에 앉은 강범은 팔짱을 끼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강력4팀이라··· 할 거 없어서 운동만 했나 보네, 그런 물근육은 실전에서 아무 쓸모 없어.”
해수가 경찰 쪽에서 나름 유명인사이기는 해도, 경찰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해수를 모르는 경찰들이 훨씬 더 많았다.
강진서와 버금가게 바쁜 강남서 강력1팀도 해수를 전혀 몰랐다.
해수는 건조하게 강범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보았다.
강범은 자신의 기세에 쫄아서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본다고 생각하고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이, 나한테만 솔직하게 얘기해봐. 니네 빽 있지, 뭐 청장 자식이 있던가, 의원 빽이 있던가. 가서 강남팀에 빌붙어서 실적만 챙겨와라, 이딴 말 들은 거 아니야?”
해수는 속으로 뜨끔했다. 빽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눈앞에 강남팀 외에는 모인 팀들 다 전 청장이 아빠거나 의원이 빽이니 할 말이 없었다.
강남서 강력1팀이라더니, 꼴에 촉은 좀 있는 것 같다.
“이 새끼 말 없는 거 보니까 진짜네, 대한민국 높으신 분들 속은 알 수가 없다 정말. 이런 일에 니네같은 초짜들 끼워넣고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가··· 야.”
해수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창문만 바라보자, 그가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허리를 살짝 숙여 해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야, 어른이 말하면 눈을 마주해야지, 싸가지 없게.”
매우 귀찮게 구는 모습에, 해수는 하는 수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피하지 않는다. 눈동자에 흔들림도 없다. 건조하면서 그 깊숙한 곳에 품고 있는 야수같은 본능이 살짝 드러난 듯 매섭다.
저도 모르게 움찔한 강범은, 그것을 반항심으로 해석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 봐라,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야, 난 한 번만 말한다. 마진강 만나러 가면 깝치지 말고 구석에 쳐박혀 있어, 방해되지 말고. 알았어?”
‘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괴물들을 맨 손으로 단시간에 처리해낸 탈인간급 피지컬의 소유자 마실장이다.
그가 과연 처음 보는 건방진 형사의 말을 귀담아 듣고 답변을 해줄까?
해수는 강범과 그의 팀원이 난처해하는 그림이 떠올라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웃어?”
“뭐, 예, 잘 해보시죠.”
“이 새끼가 근데···!”
그때, 운전을 하던 강남팀 막내 팀원이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봉고차가 멈추고, 강범은 해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넌 갔다 와서 보자.”
강남팀이 차에서 내려 구치소로 들어갔다.
경기,강진,서울, 세 강력팀이 연합한 특수대는 청장들과 의원들 몇 명이 힘을 써서 만들어진 곳이다.
그만큼 수사권이 보통 강력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출발 전에 전화 한 통만 넣었는데도 벌써 프리패스로 들어가 접견실로 안내까지 받았다.
접견실에는 소파테이블을 두고 양쪽에 1인소파 두 개씩, 총 네 자리가 있었고, 팀원은 해수 포함하여 다섯 명이었다.
해수는 자진해서 일어나 구석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고, 운전을 했던 막내와 그 선임이 짬 별로 일어서서 대기했다.
강범이 가만히 3분 정도 기다리다가 불만을 터트렸다.
“시발 내가 온다고 하면 먼저 대기를 시켜놨어야지, 대한민국 경찰이 범죄자 새끼를 기다리는 게 말이 돼? 어?”
“그러게 말입니다.”
똑똑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교도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교도관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마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교도관이 문만 열어주고 뒤로 빠졌고, 마실장이 혼자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저벅 저벅 저벅
그의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장내 공기가 확 무거워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형사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확인하는 마실장의 눈빛은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탐색하는 것만 같았다.
보통 접견실로 들어오면 수갑을 풀어주는데, 예외적으로 아예 손목에 두 개의 수갑이 채워져 있는 모습도 안심보다는 위협적인 이미지를 한층 더해주었다.
“···으.”
주인을 알 수 없는 신음이 허공을 맴돈다.
마실장이 뿜어내는 위압적인 기운이 소문 때문인지 그 본연의 기운 때문인지 구별해낼 수 없지만, 강남팀 팀원들은 예외없이 그에게 기세가 눌렸다.
팀원 한 명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실장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원활한 제압을 위해 누군가 그 옆에 앉아야 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하고 뒤에 멀찍이 서 있었다.
털썩-
마실장이 소파에 몸을 파묻듯이 앉았다. 그러고는 그제야 뒤쪽 구석에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해수를 발견하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강범도 마실장의 기세에 살짝 눌렸지만, 아닌 척 하기 위해 더 쎄게 나갔다.
“범죄자 새끼가 느려 터져서는, 형사가 기다려야겠냐?”
강범의 말에 마실장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그 순간 반짝이는 안광에 강범이 흠칫했다.
“나한테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온 형사님의 태도가 아닌데?”
“하, 이 새끼가··· 근데 어디서 형사 앞에서 기선제압질을 하려고, 야, 니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우리 특수대야. 니가 면회 끝내고 싶어도 강제로 못 끝내, 여기서 한 푸닥거리 할까?”
마실장은 천천히 등을 다시 등받이에 대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이상할 정도로 느리지만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바다 속 대형어류가 그런 것처럼.
그의 깊고 묵직한 목소리가 접견실에 울려 퍼졌다.
“괜찮겠어?”
마실장의 간결한 도발에 강범이 걸려들었다. 아니, 강범은 자기자신에게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더 크게 행동했다. 저 건방진 강진서 형사는 물론, 자신의 팀원까지 함께하고 있는 자리다.
여기서 지고 들어갔다간 이 합동 프로젝트에서 꼬리만 졸졸 따라다녀야할 것이다.
“오냐, 오랜만에 겁대가리 상실한 범죄자 새끼를 보는구나, 오늘 좋게 애기하긴 글렀다. 좀 맞고 시작하자.”
스윽-
강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유리 재털이를 집어 마실장의 이마를 가격했다.
퍽-!
마실장은 눈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지만,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실장의 이마에서 피가 두 줄기 흘러내린다.
“팀장님, 팀장님 참으십시오!”
“팀장님!”
“너, 너도 앉아 있어!”
가관이었다.
마실장은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는데 지레 겁을 먹은 팀원 한 명이 그를 견제했다.
팀원들이 말리자 강범이 더욱 날뛰었다.
그가 팀원들을 밀치며 소파 옆에 기대어 있던 쇠로 된 간이 의자를 들어 마실장에게 휘둘렀다.
콰직!
마실장이 이번 것은 손을 들어 살짝 막았다.
의자를 얼마나 쎄게 휘둘렀는지 기역자로 찌그러졌다.
마실장이 바지에 묻은 자신의 피를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뚜둑-
그의 두 손목을 옥죄고 있던 수갑 두 개가 장난감처럼 뚝 끊어진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범이 휘두른 간이의자를 집었다.
그때.
척-
누군가가 마실장의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해수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놔.”
해수와의 비밀계약이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 없는 마실장에게 이번 일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이미 수십 명을 죽인 사형 예정자다. 몇 명을 더 죽인들 형이 바뀌지 않는다.
천 선생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협조하긴 하겠지만 이런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이참에 눈앞의 형사들을 죽여, 다음에 자신을 찾아오는 형사들이 예의를 갖추도록 본보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뿌드드득-
해수의 손을 뿌리치려고 옆으로 팔을 비틀었다. 그런데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살갗이 밀리고 벌건 상처가 생긴다.
마실장은 살짝 눈을 크게 뜨고 해수의 손을 보았다.
손이 박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만한 괴력을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야 이 새끼야 나와!! 지금 누굴 말리는 거야?!”
그때, 뒤에 이어진 강범의 외침이 마실장을 상념에서 벗어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