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특수본 >
#190. 특수본
신해수는 눈앞의 마실장을 아래서부터 얼굴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파란색 재소자복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여기저기 칼에 베여 찢긴 곳도 많다.
그도 매우 큰 부상을 당한 후이기에 습격자들을 상처 없이 압도적으로 처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해수는 총을 집어넣고, 수갑을 꺼내어 그의 손목에 채웠다.
끊어진 수갑 두 개, 방금 채운 수갑 한 개, 총 세 개가 마치 훈장처럼 그의 손목에 감겨 있다.
해수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작은 신음도 들리지 않는다. 기습했던 회사원들은 물론 같이 이동하던 재소자들도 화를 당했다.
재소자들은 대부분 자상을 입었다. 회사원들이 처리한 것이다.
아닌 자들은 회사원인데 재소자로 위장해서 들어왔다가 마실장에게 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 죽은 건가.”
한 명이라도 살아있어서 그들의 거주지나 천선생에 대한 힌트를 얻었으면 좋을 텐데, 한 명도 남김없이 처리된 것이 아쉬웠다.
그때, 마실장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대답했다.
“말벌은 목표를 정해주면 쏘기만 해, 어차피 나보다 아는 것도 없는 것들이야, 아까워하지 말라고.”
해수는 미간을 좁히며 마실장을 바라보았다.
맹수처럼 이글거리는 눈동자, 하지만 해수는 그 너머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압도적인 실력자라고 해도 그는 개인, 상대는 군단, 결국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20층에서 떨어졌을 때 자신을 불렀던 것이고, 그러니까 자신이 올 때까지 아득바득 차를 붙잡고 버텼던 것이다.
이미 칠성회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칠성회에서 그를 암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구치소로 들어가도, 교도소로 가도 암살 시도는 끊임이 없을 것이다.
“마진강.”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신의 실명에 마실장이 눈썹을 올리며 해수를 내려다보았다.
“넌 곧 죽을 거야.”
마실장은 알고 있다는 듯이 태연한 눈을 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해수가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천선생도 놓치고, ‘회사’도 사라지고, 너는 죽을 테니 계획은 완벽하게 실패했군.”
해수의 말에 마실장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정말 실패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칠성회 원탁은 만만한 놈들이 앉아있는 게 아니야, 천선생은 음지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고,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펑.”
마실장은 한 손을 들어올려 주먹을 쫙 펼치며 폭탄이 터지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전에 마실장이 해주었던 말대로.
칠성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천선생에게 불만이 있지만 압도적인 무력으로 누르고 있던 것일 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천선생을 없애려 들거나 밟고 위로 올라가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몸을 웅크리고 살아남는 단체가 있을 테고, 다른 제 2의 천선생이 나올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천선생이 다시 위로 올라와 군림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마실장의 암살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천선생은 물론 칠성회 모두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모두 해수가 원하는 결말이 아니다.
그리고, 눈앞의 마실장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살고 싶지 않나? 내가 살려줄게.”
해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마실장이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오늘만 봐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는데.”
“그럼 이대로 죽던가.”
마실장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그는 수갑을 철컹거리며 해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진한 피비린내와 함께 위압적인 기운이 확 풍겨왔다. 마치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굶주린 호랑이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해수는 지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마실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릴 때.
삐용 삐용 삐용-
“거기 안에! 손 들어!”
“물러서! 신형사님 괜찮습니까?!”
“우욱”
뒤늦게 도착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해수는 한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고, 마실장을 끌고 그 아수라장에서 나왔다.
나중에 주변에 있는 모든 경찰서와 지구대에서 동원 가능한 경찰들과 경찰기동대 1개 대대가 도착한 후, 그들의 경호를 받으며 구치소로 이동되었다.
해수는 가는 동안 마실장과 떨어지지 않았다.
구치소로 들어가기 직전, 마실장이 멈추어 서더니 뒤돌아서 해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기대해보지.”
어찌됐건 협조한다는 뜻이다.
* * *
해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천선생 외에도 칠성회를 하나하나 모조리 박살내기 위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히든카드 마실장이 필수다.
그를 살려야 한다.
이럴 때 해수가 생각하는 가장 든든한 백이 있다. 그것도 두 명이나.
드르륵-
식당 내 방문이 열리며 중년인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수는 벌떡 일어나 둘을 맞이했다.
“이게 웬일이에요? 신형사가 먼저 보자고 하고.”
“내가 경찰이랑 개인적으로는 절대 안 보는데, 신형사라서 나온 거야.”
전 청장이자 현 국회의원 조감찬과 3선 의원 오성주다.
“감사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수는 그들이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오의원은 이런 해수의 화법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조의원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엉?”
“아직 숟가락도 안 들었어 이 양반아, 뭐가 그렇게 급해?”
그럼에도 해수는 숟가락을 들 생각도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로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두 분은 칠성회이십니까?”
해수의 돌발발언에 방 안 공기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조의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오의원은 대놓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
놀랍게도 둘 다 칠성회가 무엇있지 알고 있는 듯했다.
“···뭐?”
“자네, 그 질문의 의도가 뭔가?”
해수는 오성주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하려는 일은 칠성회를 몰락시키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해왔지만, 지금부터는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진행할 겁니다. 두 분은 칠성회이십니까?”
그 내용에 조감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들며 말했다.
“난 또 뭐라고, 내가 지금까지 자네를 밀어줬던 거 보면 모르나? 그런 이유라면 내가 그 놈들을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그때, 오성주가 조감찬의 말을 끊었다.
“그렇다면 어쩔 건가?”
“···으, 의원님?”
조감찬이 놀라서 오성주를 보았다. 해수 역시 마찬가지다. 둘은 당연히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부른 것이기 때문이다.
오성주가 앞에서 넥타이를 풀더니 셔츠를 살짝 내려 쇄골에 찍힌 북두칠성 문신을 보여주었다.
진짜다. 진짜 칠성회의 일원이었다.
해수는 해머로 머리를 쎄게 맞은 듯했다. 그는 바로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이 자리는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탁-
그때 오성주가 젓가락을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한국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앉게.”
오성주가 점잖게 해수에게 자리를 권했고, 조감찬은 둘 사이에 끼어서 미어캣처럼 눈만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해수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자리에 앉자 오성주가 창문 밖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선으로 막 부임한 때였어, 그들이 소리없이 접근해오더군···.”
.
.
.
오성주는 어떻게 칠성회의 회원이 되었는지, 그리고 칠성회 회원들과 어떻게 지내왔는지, 지금은 활동을 하는지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감언이설에 속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서로 강력하게 엮여있는 그 칠성회에 들어가기로 했고, 나중에야 나라 발전이 아니라 마음대로 주무르고 약자를 더 괴롭게 하는 실체를 깨닫고 나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성주는 후회 가득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았다.
“···그들은 깊이 파고들수록 더 거대했어, 고작 나 따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나는 잘못된 줄 알았지만 내 가족을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자네를 보니 내가 그냥 용기가 없었던 거였군···.”
“저는 의원님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원님이 지금까지 보여주신 행동은 믿습니다.”
탁, 탁
해수는 두 명 앞에 2G 휴대폰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앞으로 두 분께서 해주실 일이 많습니다. 이 휴대폰을 항상 소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조감찬은 휴대폰을 들어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이거 원 비밀요원이 된 느낌이구만.”
“맞습니다. 비밀요원.”
“허허허.”
식사자리에서는 해수의 혼기나 조감찬의 딸, 오성주의 딸에 관한 이야기 등 영양가 없는 말들로 시간을 보냈다.
이후로 해수는 둘에게 도움을 빙자한 지령을 보내어 둘이 칠성회가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되 그들이 해수의 큰 그림은 알지 못하도록 장막을 쳤다.
덕분에 마실장은 구치소에서 바로 독방에 수감되었고, 식사도 독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 * *
[영화가 실제로, 극악 범죄자 구치소로 이송 중 습격, 경찰 11명 사망]
-···이송 중 정체불명의 단체에게 습격을 당하여 경찰 11명, 교도관 3명이 사망하고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재소자 7명도 사망하였다.
현재 괴한들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영화지?
┗개소리지?
┗이게뭐임? 우리나라 일 맞아? 나라 잘못 쓴 거 아니여?
┗저기 버스에 한글 적혀 있는데요.
┗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
┗경찰진짜존나무능력하다
┗띄어쓰기나 좀 잘하셈 국평오 수준 보인다
┗그래서 저 단체 정체가 뭔데? 졸라 무섭다 진짜
┗우리나라도 이제 테러안전국에서 벗어난 거야?
┗그 극악범죄자는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임? 쟤네가 그 범죄자 풀어주려고 경찰 싹 다 죽인겨?
┗위에 난독증? 제대로 좀 읽으셈, 그 극악범죄자는 혼자 살았다잖아, 안 도망치고 다시 잡혔다고
┗ㄱㅅ함니당
┗ㅅㅂ 그와중에 예의바름
┗(링크)혐주의/대박 습격 영상 뜸
대낮에 괴한들에게 습격당하여 경찰과 교도관 열네 명이 죽은 초유의 사건은 금세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신해수가 직접 경고까지 했었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마실장은 살아있지만 사실상 이송 차 보호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찰 측은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한 우호적 기자에게 경찰차 블랙박스를 몰래 넘겨 습격한 이들이 얼마나 고도로 훈련된 자들인지 퍼트리게 했다.
[이송 버스 습격한 괴한들 찍힌 영상, 이게 사람임?]
영상은 경찰차로 추측되는 블랙박스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쿠궁 콰광!!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차가 멈춘다.
-뭐,뭐야?
-팀장님! 팀장님! 뒤에 막혔습니다!
-저,저것들은 뭐야?! 야 테이저··· 아,아니 총 들어 총!
검은색 밴이 몇 대 나타나 앞에 버스도 세우고, 그곳에서 새까만 옷을 입은 괴한들이 튀어나와 한 손에 흉기 하나씩을 들고 경찰차와 이송 버스로 달려든다.
달려오는 기세가 매우 살벌하다.
탕 탕!! 콰장창창!
-아악!
금세 경찰차 창문이 깨지고, 경찰관의 비명이 들려왔다.
멀리서 다른 경찰들이 괴한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보인다.
총구를 들이미는데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총을 피할 생각으로 몸을 숙이거나 옆으로 구른다.
차를 밟고 뛰어올라 경찰관의 목과 심장에 단검을 박아넣는 모습은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착각이 들게 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지만, 그 영상이 영화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익명으로 올라간 그 영상을 유명너튜버가 다시 편집하여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 존나 경찰이 당할 만하네 무협영화 찍는 줄
┗와 미친···? 진짜 영화 아니야?
┗저런 놈들이 액션배우가 아니라 테러 단체라고? ㅃㅃ 나 이민 감
┗이민가면 대굴빡에 총알 박힌다.
┗여기있으면 모가지에 칼 박힐 듯
┗존나 무섭다
┗아니 근데 저런 것들이 습격했는데 그 극악범죄자는 살아있다고?
┗경찰들이 금방 구했겠지
┗영상도 짧은데 니가 어떻게 암
┗난 다 알아
일이 이만큼 커지니 칠성회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천선생이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수일 수도 있다.
정부는 고위급 간부 중에 칠성회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무언가 커다란 액션을 취해야 했고, 서울과 경기, 그리고 범죄율1위, 검거율 1위로 유명한 강진시의 강진서 강력반에서까지 형사들을 차출하여 특수본부가 설립되었고, 그 중에는 강력4팀도 포함되었다.
리드빌딩 9층 902호.
띠딕-
신해수가 지문을 갖다 대자 도어락이 해제된다. 해수는 자신의 집처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하루가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드르륵 쿵
육중한 바벨이 걸이에 걸쳐졌고, 땀에 흠뻑 젖은 상체가 드러났다. 몸 이곳저곳에 커다란 흉터가 살아있는 듯이 넘실거린다.
“어어 친구, 하루씨도 왔네.”
황장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둘을 맞이했다.
해수는 그의 흉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나랑 같이 일 하나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