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퇴사는 힘들다. >
하루와 해수는 침착하게 움직였다.
총소리까지 났고, 엘리베이터도 완전히 부서진 시점에서, 이미 덮을 수 있을만 한 크기의 사건은 아니게 되었다.
하루는 지문이 묻지 않게 총을 챙겨 신해수에게 주었고, 그를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누가 신고했는지 출동한 경찰들과 마주쳤다.
해수는 경찰공무원증을 꺼내려다가 자신의 손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보았다.
하루는 눈치 빠르게 해수의 품을 뒤져 지갑에 있는 경찰공무원증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해수가 입을 열었다.
“강진서 강력4팀 신해수입니다··· 습격 받았고, 괴한은 놓쳤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그 중에 해수를 알아본 경찰관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터주었다.
하루가 안서은에게 미리 전화를 해두어 해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하루가 수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에 형사 동료들이 다급히 들이닥쳤다.
“하루씨!”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돌격이 어때요?! 어딨어?!”
“선배님, 우리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어떤 놈이 감히 형사를!!!”
“그게···.”
해수가 몸이 엉망이 되어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고 대답하자, 형사들이 난리가 났다. 평소에는 예의를 잘 지키는 막내 우강철도 고릴라처럼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악!! 어떤 자식이야!”
“야 그래도 소리는 지르지 마 이놈아, 수술하다가 의사 선생이 놀라셔서 잘못 되기라도 하면 넌 내 손으로 목을 따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한 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조금만 정숙해주세요.”
“아 예예 죄송합니다. 이놈 입단속 단단히 하겠습니다. 속상해서 그만···.”
비록 표현은 거칠지만, 하루는 이들이 해수를 아끼는 마음을 온전히 느꼈다.
해수의 이번 부상은 지금까지 경찰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부상이었다.
손 뼈를 맞추고 혈관을 잇는 수술만 11시간 걸렸다.
수술이 끝나고나서는 VIP실로 이동하였고, 의사는 회복기간이 최소 3개월은 되고, 앞으로도 예전처럼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 * *
다음날.
하루와 해수만 남은 VIP병동.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형사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해수를 이렇게 만든 괴한을 잡기 위해 증거를 찾으러 떠났기 때문이다.
하루는 해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단에서 마실장을 마주쳤을 때, 외관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표정이나 숨소리, 걸음걸이를 보면 분명 큰 부상을 입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이 먼저 공격했으면 잡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처럼 다시 언제 그가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감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해수를 두고 마실장을 찾아나설 수도 없다. 그 사이 해수를 암살시도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아쉬움과 죄책감에 그녀는 해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해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넌, 괜찮아?”
하루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네? 아, 네, 아무런 부상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를 잡았어야 했는데···”
해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잘 했어,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는 거야, 덤볐으면 너랑 나랑 둘 다 여기 없었을 수도 있어.”
하루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의 생각에도 상처입은 마실장을 공격하여 잡는 것보다, 괜히 덤볐다가 둘 다 죽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몸은 갈비뼈 몇 대 부러진 것 빼고는 괜찮다고 하니까···.”
해수는 그녀에게 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두 손도 칭칭 감아서 깁스를 해놨고, 갈비뼈도 부러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에 비해서 마실장은 두 손 두 발 멀쩡하다. 옆구리에 타격이 좀 있었으나, 그가 직접 오든 다른 전문가들이 오든 지금 상태로는 개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하루가 필요하다.
저 조그마한 어깨가 지금은 왜 이렇게 의지가 되는 지 모르겠다.
“하루야, 총은···.”
해수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꼭두새벽에도 들어본 적 없는 지친 목소리다.
하루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이며 눈물이 살짝 맺혔다. 그녀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입을 열었다.
“반납했습니다. 맡은 사건 수사 중이라서 가지고 계셨다고, 곽반장님이 대신 반납하신답니다.”
“그래.”
어떻게 진행되었을지는 짐작이 간다.
총을 맞은 사람도 없고, 상태를 보면 꼭 필요한 상황에 썼다고 믿고 곽반장의 권한으로 해수가 총을 개인적으로 꺼내온 것을 무마시킨 것이다.
“저는 여기 있을 겁니다. 해수님이 다 나을 때까지.”
“···그래, 고맙다.”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번에 해수 본인이 제대로 칠성회의 타깃이 된 것을 알았으니, 꼭 마실장이 아니더라도 회사 에이스들이 오면 해수는 물론 하루도 위험하다.
마실장이 하루를 알아보았으니 그에 맞게 더 강한 실력자들을 보낼 수도 있다.
지금 지키고 있겠다는 것은 목숨을 건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때.
똑똑-
-들어가도 되나요?
익숙하지는 않지만 낯익은 목소리, 해수가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반가운 두 얼굴이 비쳤다.
“안녕하세요오···”
“신경위!! 이게 무슨 일이야!”
자로 잰 듯한 단발머리에 크고 맑은 눈을 지닌 여인, 경기북부 강력팀장 조아라가 수줍게 들어온다.
그 뒤로 중년인이 그녀를 어깨로 밀치며 다급히 다가왔다. 지금은 경찰직을 아예 내려놓은 조감찬 전 청장이다.
그의 옷깃에는 금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청장님···?”
“몸 괜찮아요? 누가 그런 거야, 아직 못 잡았다면서요?!”
조감찬의 뒤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사내 네 명이 언뜻 보인다. 사복 경호원으로 추측된다.
“예,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식 듣고 한달음에 왔지요. 마침 딸랑구도 지나는 길이어서 데려다달라고 했어요. 아, 저 분들은 경특대 대원들이에요. 신경위 회복할 때까지 여기 두려고.”
조감찬의 폭탄발언에 해수는 살짝 입을 벌렸다.
경찰특공대, 그들이 누구인가, 정예 중에 정예로, 특수부대나 UDT 출신들이 더 실력을 갈고 닦는 곳이 경특대다.
요인 경호나 특수임무로 항상 바쁜 최고급인력을 고작 직급도 낮은 형사의 병실 지키기용 경호원으로 둔다는 것이다.
현직 청장이어도 불가능할 텐데, 지금 옷깃에 단 배지의 힘인 듯하다.
해수는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경특대는 총으로도 무장하고 있으니 아무리 마실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외부로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또 다시 공격해오지는 않을 것이다.
* * *
회사 내부 치료실.
마실장은 침상에 앉아 자신의 강하게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힘을 줄 때마다 저릿하고, 왼쪽 옆구리는 가만히 있어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고통스럽다.
그는 신해수와의 전투를 다시금 떠올렸다.
‘이 정도 부상을 입은 게 얼마만이지···’
부상은커녕 손가락 하나 다친 것도 10년은 넘은 듯하다.
자신의 공격에 대한 신해수의 대응을 떠올리니 존경심까지 피어오를 정도였다.
그렇게 아득바득 훈련을 시켜서 전투에 능한 살인기계들을 만들어냈는데, 그들을 능가하는 자가 일반인 틈에 섞여 있었다니.
똑똑- 드르르륵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뱀눈을 한 하팀장이 얼굴을 보였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제 반나절 지났다. 몸이 괜찮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하팀장의 뉘앙스는 마치 한참 회복 중인 환자를 대하는 듯했다.
마실장은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조금 더 펴며 대답했다.
“멀쩡하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의사는 그 상태로 걷는 것도 힘들었을 거라고 하던데···.”
마실장도 못 들었던 말이다. 의사에게 들어 몸 상태를 알고 있는 주제에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로 안부를 전한 것이 신경을 은근히 긁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마실장에게 굳이 병문안을 온 것이 신경쓰인다.
하팀장은 용건이 없으면 얼굴을 비추는 자가 아니다.
“무슨 일이지?”
“아아···.”
하팀장은 평소같지 않게 의자를 끌고 와서 마실장 앞에 앉더니, 긴밀한 어투로 말했다.
“이번 건에 대해 천선생님께 보고 드렸더니 걱정이 매우 크십니다. 그래서··· 당분간 몸조리 좀 하시고 기분 전환도 하시라고, 베트남 지부로 파견을 제안하셨습니다.”
마실장의 눈이 찰나 날카롭게 변했다가 사그라들었다.
천선생은 마실장을 비서실장으로 둔 후로 단 한 번도 외부로 파견을 보낸 적이 없다.
일 중에도 항상 언제든지 튀어올 수 있게 같은 지역에 머물러 있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다른 도시도 아니고 다른 나라로 파견? 이것은 아예 직위를 박탈한다는 뜻이다.
직위 박탈은 퇴사를 의미한다.
이 세계에서 퇴사는, 죽음이다.
마실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준비하지.”
하팀장은 예의 그 비릿한 미소를 짓는 얼굴로 마실장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보다가 더욱 짙은 미소를 보였다.
“실장님 뜻이 천선생님과 동일하다니, 역시 최고의 파트너이십니다. 천선생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마실장은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입었다.
그 모습에 하팀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
“댁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래.”
하팀장의 안내를 따라 치료실 후문으로 나가는 길, 후문 입구에 검은색 세단이 주차되어 있고, 검은 수트를 빼입은 회사원 세 명이 서 있었다.
시간 빼기도 어려운 1급 회사원 한 명에 2급 회사원 둘, 에스코트하기에는 과한 인원이다.
그때, 하팀장이 마실장의 생각을 읽은 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부상 중이시기에 경호에 집중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마실장을 발견하고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하팀장은 직접 문을 닫아주고는 창문 너머 마실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마실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창문을 닫았다.
부르르릉-
검은색 세단이 부드럽게 도로 위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마실장의 집으로 가는 길, 차 내부는 숨막히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도로에 차들은 드문드문 보이고, 갈림길이 나왔다.
마실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차 돌리자.”
그의 말에 세 명이 거의 동시에 눈을 번뜩 떴다. 그러나 눈치도 못 챌 정도로 금세 표정관리를 했고, 운전수가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천선생한테 인사를 안 했다. 인사는 해야지.”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서 천선생에게 가겠다.
이로써 마실장의 의지가 확인되었다. 순순히 퇴사할 마음이 없다.
이번에는 마실장 옆에 앉은 회사원이 대답했다.
“선생님은 외부 일정으로 바쁘십니다.”
외부 일정, 한낱 2급 회사원이 천선생의 일정을 알 리가 없다.
마실장은 백미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돌려라, 동식아.”
동식이라 불린 운전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의 이마에 갑자기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상대는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논외등급으로 분류되는 사내 최강자 마실장.
명령을 받고 올 때는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앞에서 보니 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스윽-
조수석에 앉은 회사원이 안주머니에서 카람빗을 살며시 꺼내는 것이 보인다. 운전수 동식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동식은 깨달았다. 아무리 자신이 지금 공격을 하지 않아도, 마실장은 절대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임을.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다.
끼이이이익-!
동식이 사이드브레이크를 누르며 핸들을 확 틀었고, 동시에 조수석과 뒷자리에 앉은 회사원이 칼을 꺼내어 마실장에게 휘둘렀다.
콰장창-!!
뒷자리 창문이 깨지며 회사원의 머리통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