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신해수VS마실장 (2) >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사무실.
뱀처럼 동공이 가느다란 사내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한쪽 입꼬리는 올리고 있다.
그 앞에는 머리가 하얀 중년인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업부 4팀 전부 퇴사당했다는 말이죠?”
“예, 선생님.”
“마실장은··· 그런 큰일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고요?”
“···예.”
천선생은 조용히 빌딩숲 사이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을 바라보았다.
뱀눈 사내는 이 침묵이 불편했지만 이를 악 물고 참았다. 천선생은 상념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때, 이윽고 천선생의 입이 열렸다.
“하팀장은 해오던 대로 해주세요.”
하팀장이라고 불린 뱀눈 사내는 고개를 절도 있게 숙이며 대답했다.
“예, 맡겨만 주십시오.”
하팀장의 말에 천선생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지만, 뒤돌아있어 알아채지 못했다.
필요없는 말을 붙여서 믿음을 강요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던, 아니 120프로 마음에 들게 행동했던 마실장만 보다가 그 후계자를 키우려니 여간 걸리는 게 많다.
밖을 내다보던 천선생의 몸은 끝내 돌아가지 않았고, 뱀눈 하팀장은 뒤돌아서 사무실을 나섰다.
* * *
리드빌딩 경비실.
화장실 다녀온 경비원은 책상에 놓인 커피를 보았다.
“응? 이게 뭐지?”
커피 옆에는 분홍색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아기자기한 여학생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언제나 수고가 많으세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허허, 참,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만.”
경비원은 그 글을 보고 귀여워하며 아무런 의심 없이 커피를 마셨다.
같은 시각, 한쪽 구석에 엘리베이터를 비추고 있는 cctv에는 두 명의 덩치가 부딪히는 것이 보였으나, 이내 노곤한 낮잠에 잡아먹힌 경비원은 발견하지 못했다.
* * *
신해수는 이제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덩치가 마실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절묘한 타이밍.
그가 바로 쏙 들어오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은 닫혔고, 그대로 해수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해수는 오른발을 뒤로 쭉 빼서 옆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며, 왼손 팔뚝과 오른손 손바닥으로 그의 옆구리를 밀었다.
콰광!!
해수가 민 마실장과, 마실장을 밀면서 뒤로 튕겨나간 해수가 동시에 엘리베이터 양쪽에 강하게 부딪혀 크게 흔들렸다.
그 짧은 틈에 해수는 공격보다 먼저 10층을 취소하고 8층을 눌렀다. 하루와 이 자가 마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 사이 마실장이 벽을 두 손바닥으로 내리쳐 추진력을 얻어 튀어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해수는 한 번의 휘두름은 몸을 숙여 피하고, 또 한 번 뻗어오는 주먹은 옆으로 상체를 물려 피했다.
두 번째 주먹은 해수의 옷자락을 스치며 엘리베이터 거울에 꽂혔다.
훙- 쾅! 콰장창!
거울이 완전히 박살나며 벽면도 주먹 자국으로 움푹 패였다.
해수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저 두꺼운 근육과 덩치에서 어찌 이런 폭발적인 스피드가 나오는지, 해수는 그의 주먹을 피할 때마다 전기가 찌릿찌릿 느껴지는 듯했다.
쿵!
왼발을 앞으로 반 걸음 내딛으며 어깨로 밀치고, 바로 바짝 붙으며 중심이 살짝 흔들린 마실장의 옆구리에 주먹을 짧게 끊어쳤다.
퍽!
기대했던 느낌이 아니다.
공격을 읽었는지, 어느새 마실장이 손바닥으로 해수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손가락이나 손바닥 뼈에 무리가 있을만 한 공격이었지만, 손이 워낙 두텁고 굳은살이 잔뜩 박여서 그런지 타격감이 절반 이상 상쇄된 느낌이었다.
훙-
그는 바로 손가락을 펼치고 손날을 세워서 휘둘렀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해수가 몸을 숙이는 순간 무릎이 날아왔다.
해수는 재빨리 두 손을 교차시켜 그의 니킥을 막아냈다.
쿵!
상체가 들썩일 정도의 충격, 팔을 휘두른 후에 거의 틈을 주지 않고 들어온 공격이기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골이 흔들릴 만한 충격이었다.
터덕-
‘아차!’
그 짧은 틈에 마실장이 해수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다시 제대로 힘을 실어 니킥을 꽂았다.
쾅 쾅 쾅!!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고 코뼈가 얼굴 안쪽으로 파고드는 통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터덕-
해수는 쌍코피를 질질 흘리며 그의 오른발을 두 손으로 안고, 나머지 한쪽 다리를 필사적으로 걸고 넘어트렸다.
마실장이 아무리 단단한 코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해수는 지면에 두 발이 닿아있고, 그는 한쪽 발만 닿아 있으니,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흐으압!”
쾅 쾅 콰광!!
마실장은 깍지를 끼고 해수의 등을 내리치다가 뒤로 밀려나 엘리베이터 벽에 부딪혀 포지션을 잃었다.
엘리베이터가 워낙 좁으니 넘어트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머리가 잡힌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해수는 그를 벽에 밀치고, 손으로 몸을 밀어 거리를 벌리며 품에서 총을 꺼내었다.
탕 탕-!
한 발은 마실장이 몸을 틀어 피하고, 또 한 발은 그가 재빨리 덮쳐와 총을 든 손목을 잡고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마침 cctv를 정확하게 맞춰 완전히 부서졌다.
우드득
“으윽!”
그가 해수의 손을 붙잡고 빨래 짜듯이 우그러트렸다. 이미 니킥을 막을 때 손가락 뼈가 많이 부서진 상태였기에, 해수는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총을 놓쳤다.
이제 오른손은 아예 주먹을 쥐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마실장은 빼앗은 총을 해수에게 바로 겨누려고 했다. 그때, 해수가 그의 발등을 밟고.
팍!
왼팔로 총을 든 그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오른팔 팔꿈치로 그의 턱을 올려쳤다.
빠악!!
마실장의 치아가 부서져 해수의 얼굴에 그 조각이 튀었다. 마실장의 동공이 실시간으로 풀리는 것이 보인다.
해수는 이때가 기회임을 깨닫고, 총을 든 그의 손을 겨드랑이에 끼운 상태로 너덜거리는 주먹으로 그의 옆구리 간장 부분을 강타했다.
쾅 쾅 쾅!! 턱
해수의 마지막 주먹질이 허공을 갈랐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마실장이 총을 버리고는 그 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잡고 옆으로 밀쳐냈다.
쿠웅-!
그러고는 아직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풀린 눈으로 주먹을 뻗었다.
쾅!! 쾅! 콰직! 콰직!
해수의 눈이 번뜩였다.
본능적으로, 짐승과도 같은 감각만으로 주먹을 뻗는 것이다. 그런데 속도나 각도, 위치가 매우 정확하고 위험하다.
수많은 수련으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저절로 발현되는 살인주먹이다.
해수는 다급히 몸을 돌면서 그 주먹을 피했다. 계속해서 흔들리던 엘리베이터 벽이 마치 구리로 만든 것처럼 으스러지고 주먹 자국이 나면서 불이 꺼지고, 이동도 멈추었다.
쿠구구궁-
위기에 몰린 해수의 머리가 치열하게 굴러갔다.
총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지만 주울 수 있는 타이밍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양손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힘든 상황이다.
마실장이 정신을 차리고 줍는다면 더 위험해진다. 그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거리가 애매해.’
주먹을 섞기에는 좋지만, 주먹을 쓰지 못하니 팔꿈치로 공격을 해야 하는데, 팔꿈치로 유효타를 먹이려면 초근접에서 머리를 위주로 가격해야 한다.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킥이다.
타닥
해수는 다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가, 반바퀴 회전력을 더하여 발을 휘둘렀다. 목적지는 아까 유효타를 몇 번 꽂은 옆구리다.
그때, 마실장의 눈이 반짝였다.
턱-
그가 올 것이 왔다는 듯이 갑자기 자세를 바꾸며 몸을 틀어 두 손으로 해수의 발을 잡고, 운동방향 쪽으로 돌리며 엘리베이터 문에 던지듯이 밀쳤다.
콰광쾅쾅!!
맥없이 던져진 해수의 몸이 엘리베이터 문과 충돌하면서 문이 절반 쯤 찢어지듯이 열렸고, 기회를 잡은 마실장은 해수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강하게 압박했다.
우드득 끄드득-
문이 점점 열리며 해수의 몸이 바깥으로 절반 정도 나왔다. 7층 현관이다. 반쯤 누워있어 7층 현관 천장이 보였다.
마실장의 그 우악스러운 손길에 해수는 숨은커녕 목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해수의 목과 얼굴에 핏줄이 터질 듯이 튀어나왔다.
“끄, 끄으아악!!”
해수는 잘 작동하지 않는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의 팔뚝을 두 팔로 내리치고, 접히는 타이밍에 맞춰 허리와 복근에 힘을 주어 박치기를 했다.
쿠웅-!
목을 옥죄던 힘이 순간적으로 풀린다.
해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치 아까의 마실장처럼, 아직 흐릿한 정신으로 오로지 살기 위해 그의 멱살을 잡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업어쳤다.
콰광!
마실장의 육중한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꽂혔다. 동시에 해수도 딸려나가 바닥에 엎어졌다.
몇 초 동안 둘은 가만히 누워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
“큭, 커헉-”
피를 내뱉으면서도 먼저 상체를 일으킨 것은 해수였다.
정보건 뭐건 이 괴수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해수는 간신히 일어나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총에 손을 뻗었다. 그나마 괜찮은 왼손으로 잘하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이다.
턱-
해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총을 집은 순간,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고, 바로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목덜미를 잡아끄는 거대한 힘이 더 우선이었다.
“으아아!!”
마실장은 해수의 몸을 한 손으로 그대로 들어올려 방화문을 향해 내던졌다.
콰광! 쾅 쾅 쿠웅!!
해수는 방화문을 뚫고 나가, 그대로 계단 위쪽 천장, 바닥에 떨어졌다가 튕겨나가 계단을 구르고 중간 계단에 쓰러졌다.
집었던 총은 다시 놓쳤다.
“커, 컥, 크흐···.”
해수의 가슴이 힘겹게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온다.
터벅 터벅
저 위에서.
마실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조한 눈으로 해수를 내려다보며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왔다.
그때.
돌연, 등골이 쭈뼛 서는 서늘한 감각에 마실장이 가드를 올리며 돌아섰다.
스슥 서걱-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마실장에게 바짝 붙었다. 마실장의 팔뚝과 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길게 생겨나고, 옆구리에도 길게 그어졌다.
그가 팔을 휘두르며 칼을 쓰는 자에게 주먹을 뻗자, 그제야 마실장의 옆구리를 두 발로 차며 재빠르게 멀어졌다.
터덕-
누워있는 해수를 지키듯이 등에 두고 가볍게 착지한 여인, 하루는 비장한 눈으로 마실장을 노려보았다.
거의 십 년 만에 마실장과 마주한 하루의 눈동자와 다리는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지만, 절대 물러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수십 년 간 함께 해왔던 동료들의 시체를 보고도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던 마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하루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미세하게 떨린다.
죽은 줄 알았던 하루가 갑작스레 이런 타이밍에 나타나니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의 시선이 하루를 꼼꼼히 훑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칼 끝,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다리, 그럼에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굳건해보이는 눈빛.
마실장은 단 한마디 말 없이, 하루의 눈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돌연 계단을 내려왔다.
저벅 저벅 저벅
하루는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단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발 끝에 해수가 닿자, 아랫입술을 깨물며 더 이상 물러나지 않았다.
저벅 저벅
마실장이 점점 가까워진다. 하루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나오고, 칼을 쥔 손에서 쥐가 날 것만 같다.
상대는 무기가 없고, 하루는 단검이 있으니 선제공격이 유리하지만, 몸이 고장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스윽
하루의 몸이 움찔했다.
마실장도 중간 계단으로 내려와 완전히 가까워진 그때, 그가 돌연 몸을 돌려 더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는 마실장의 등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지만, 하루는 차마 그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그의 발소리가 사라졌다.
털썩-
하루는 그제야 버티고 있던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잠시 후, 리드빌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검은색 밴이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마실장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뱀눈 사내 하팀장이 내려서 그를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실패했다.”
마실장의 말에 하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실장이 직접 나선 일 중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다.
“···잘 못들었습니다.”
마실장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쳐 밴에 한쪽 발을 걸쳤다. 그때.
주르륵-
그가 양쪽 코에서 코피를 흘리며 돌연 옆으로 쓰러졌고, 하팀장은 재빨리 그의 몸을 받았다.
* * *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하팀장이 천선생의 등을 바라보며 보고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팀장 말은, 마실장이··· 내 명령을 어겼다는 거네요?”
하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다가, 표정을 갈무리하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마실장의 몸 상태도 좋지 않아서, 후일을 도모하려고 후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요. 마실장··· 오래 했죠, 나이도 들었고, 몸이 안 좋을 만 해요. 그렇죠? 하실장님?”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천선생의 새로운 호칭에 하팀장은 올라오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