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넷 양호 >
검은색 밴 안, 4팀 팀장 콧수염은 가만히 창문밖을 바라보며 마실장의 당부를 떠올렸다.
‘피치못할 경우, 사고사가 아니어도 된다. 위생팀에서 알아서 수습할 거다.’
“하.”
아무리 위험한 타깃이라고 해도 고작 한 명이다. 그런 곳에 영업부 한 팀이 전부 투입되는데, 사고사 처리도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자신과 자신의 팀원을 거의 무시하는 발언이다.
마실장은 가진 무력은 상당하나, 실무에서 벗어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감이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신해수가 은퇴시킨 사원이 몇 명이라고?”
“여덟 명입니다.”
“여덟 명···.”
그는 피식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이 숫자만 보고 과대평가한 것이다.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한 명씩 처리되었고, 그것도 영업부가 아닌 파견직들 뿐이었다.
단 한 명, 반팀장이 있지만 그는 회사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은퇴 당한 사례, 게다가 그는 실력보다는 정치를 잘 해서 올라간 것으로 유명했다.
이 모든 사건은 회사 소속의 영업부 대리 한 명만으로도 해낼 수 있는 결과다.
4팀장은 머리를 털었다.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떨쳐냈다.
그래도 방심은 프로들에게 죄악이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
철저히 준비하여 실행에 옮긴다.
* * *
하루는 최근에 자신과 신해수 주변에 누군가 맴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머리 스타일이 자주 바뀌고, 마스크를 쓰고, 옷을 입은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꾸었지만, 방심했는지 그 사람만이 가진 태까지 바꾸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인 혹은 눈썰미가 좋은 형사라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체형까지 바꾸는 변장을 할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하루 역시 세 번째가 되기 전에는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자주 지나치는 길목이나 리드빌딩 안에 있는 입간판의 각도가 조금씩 바뀌고, 편의점에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물건 중 하나만 뒤집혀 있는 모습이 한 몫했다.
자신이 훈련소에서 배웠던 팀플 때의 체크 방식이다.
삑- 철컥
스으윽
하루는 외출을 다녀왔다가 집에 들어와서 무언가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집을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수의 방을 살펴보던 그때, 서랍장 뒤쪽에 작게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렌즈가 없으니 카메라는 아니지만,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감청기다.
그 후에도 욕실 선반에 하나, 소파에 하나, TV 셋톱박스에 하나, 운동실 런닝머신에 하나, 총 다섯 개의 감청기를 확인했다.
하나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하루의 고운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그녀는 감청기를 치우지 않고, 잘 들리지 않게 책이나 비닐, 또는 다른 물건들로 가렸다.
일반인들이라면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교묘하고 뛰어난 솜씨다. 그만큼, 눈치챘다는 걸 알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잡것들이···.’
중요한 것은, 해수가 출근하고 나면 뒤따르던 그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해수를 따라가 동선을 미리 파악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루 자신이 아닌 해수가 목표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루는 해수가 무슨 일이 생길까 하여 며칠 전부터 그의 뒤를 쫓았다. 그의 신발에 감청기도 배터리 완충인 것을 새로 붙였다.
그의 모든 신발 밑창에 GPS기기가 있어서 추적은 수월했다.
그렇게 하루가 감시하는 자들을 역으로 감시하던 중, 그들의 신해수 추적이 멈추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준비가 끝난 것이다.
“흡.”
하루는 자신의 방 안 침대에 매트를 들어올리고, 두 개로 나뉘어진 바닥판 중에 위쪽 것을 들었다. 바닥판 아래쪽 검은 홈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검은 가죽이 보인다.
바닥판을 들어올렸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감쪽같다. 하루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가죽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스릉
날이 예리하게 세워져 있는 단검이다. 11호에게서 빼앗았던 것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써왔던 것과 그립감이 같은 것이다.
그것을 허리춤에 꽂고, 특수방검복을 입고, 그 위에 후드티와 레깅스를 입고 하루는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 * *
영업부 4팀은 신해수를 깊이 관찰했다. 이들은 프로 중에 프로, 아무리 타깃이 눈썰미가 좋은 형사라고 해도 들킬 일은 없다. 들킬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고, 철저하게 변장을 하며 정보를 끌어모았다.
-여기 셋, 타깃 주거지에 젊은 여자가 한 명 더 사는 것을 확인.
-여자는 백수로 추정,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음.
-여자가 나가는 시간 불규칙적, 패턴을 찾을 수 없음.
원활한 변장을 위해 오랜만에 콧수염을 민 4팀장은 미간을 좁히며 인이어를 눌렀다.
“여기 하나··· 양호.”
회사 일처리 모토, 타깃 외의 사람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집이 가장 수월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지만, 그 여자를 건드릴 수 없으니, 그의 집에서는 처리가 불가했다.
4팀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타깃, 신해수의 전투력은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와 외관으로 보면 2급이다.
2급은 회사원 대리나 주임 수준이고, 1급은 팀장급, 마실장은 논외등급으로 나뉜다.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일반인에게 등급이 주어지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4팀이 그를 2급으로 결정하고 보고하자, 마실장은 1급으로 격상시켜 준비할 것을 명령했다.
급에 따라 플랜이 달라진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일단은 1급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짰다.
이제 동선과 상대방의 전투력, 변수 등 모든 정보를 수집했으니 결정을 내릴 때다.
영업부 4팀은 검은색 밴 안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차 사고는 어떻습니까? 제가 직접 운전하겠습니다.”
4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차 사고는 정확도가 떨어져, 실제로 반팀장이 외주로 진행시켰지만 그는 빠져나가 구멍이 뚫렸고, 반팀장 본인이 직접 엘리베이터를 진행시키다가 은퇴 당했지, 자칫하면 경계심만 키울 수 있어.”
“사건이 터져서 외부에 모텔같은 곳에서 지낸다면 처리가 좋을 텐데요.”
“그런 곳은 변수가 너무 많아, 흠···.”
“여자가 나간 사이 들어와서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을 텐데, 그 여자가 문제군요.”
“여자를 처리할 순 없으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다들 알아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집에 있을 때가 가장 좋으나 집에서는 불가하니 가장 까다로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장소, 드문 시간에 혼자 움직일 때 처리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부검 때 약물이 나오면 안 되니 약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경찰인 만큼 몸에 많은 흔적을 남기면 안되니, 빠르게 처리해야한다.
“포인트 찍어주면 둘, 셋이 기습 후 투신자살로 처리한다. 빈틈은 위생팀이 채워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위치와 방법이 지정되었다. 시간과 변수에 따른 플랜B도 있다. 실패하고 타깃이 도주 시 2차, 3차 플랜까지 있다.
* * *
그리고, 결전 당일.
4팀장은 감청하다가 헤드셋 한쪽을 내리고 무전을 쳤다.
“주문이 1번 음식점에서 출발한다. 배달 시작.”
-둘 양호
-셋 양호
-넷 양호
주문은 타깃, 1번 음식점은 강진 경찰서를 말한다.
신해수는 매주 금요일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왔다가 집으로 걸어서 간다.
이제 11월이 다가와서 해가 짧아졌고, 그의 퇴근 때는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4팀장은 멀리서 해수를 관찰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둘과 셋도 중간에 합류하여 거리를 두고 해수를 따라가다가, 처리하기 좋은 포인트에서 기습을 할 것이다.
넷은 미리 포인트에 가서 변수에 대비한다.
“주문 대기, 포장마차 들어갔다.”
-둘 양호
-셋 양호
-···
넷이 아무런 말이 없다. 4팀장은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무전을 하려 했다.
-···넷 양호
“···양호, 정신 똑바로 차리자.”
다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4팀장은 조용히 혀를 찼다. 기분이 상하여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 넷은 유일한 여성 팀원으로 작전 수행능력은 훨씬 넓어졌지만,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올 때가 가끔 있어서 팀장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조금 전, 4팀 팀원 여성은 포인트인 골목길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슥-
여성의 몸이 움찔했다.
분명 옥상 문도 잠그고, 옥상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매우 가까운 곳에서.
휙
그녀는 망원경을 내리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몸을 홱 돌렸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후.”
처음으로 한 명을 상대로 모든 팀원이 투입되는 특이한 임무를 수행하다보니 긴장을 많이 했나보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그녀의 목에 서슬퍼런 칼이 닿았다.
즈즈즉-
“꺼,꺼-”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목에서 피를 폭포수처럼 울컥울컥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하루는 그녀의 몸을 잡고, 머리를 뒤로 확 젖혀 칼로 벤 부분을 아가미처럼 쩌억 벌어지게 했다.
그녀는 금세 몸이 축 쳐졌다.
하루는 그녀의 귀에 꽂혀있는 인이어를 빼서 자신의 귀에 꽂고, 작게 입을 열었다.
“넷 양호”
* * *
세 번째 팀원은 무전에 귀를 기울이며 타깃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포인트로 이동하고 있었다.
곧 둘과 합류하여, 그가 먼저 공격을 시작하면 거드는 포지션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설 일은 없다고 생각된다.
척-
포인트 지점인 골목길에 도착한 셋째는 고개를 들어 넷이 지켜보고 있을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아직 타깃이 가깝지 않은 것을 알 텐데, 지금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업무태만이다.
“여기 셋, 넷 어딨어?”
“여깄어.”
셋은 서늘한 목소리에 휙 돌아서며 칼을 든 팔을 휘둘렀다. 마스크를 쓴 여성, 머리칼이나 눈썹을 보니 넷이 아니다. 가려져 있는 그녀의 입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목이 따끔거렸다.
푹 치이익-
그녀는 재빨리 옆으로 한 걸음 옮기 분수처럼 뻗어나가는 피와 셋째가 휘두른 칼을 피했다.
셋째는 귀신처럼 나타난 그녀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뜬 채, 목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천천히 쓰러졌다.
-여기 셋, 넷 어딨어?
4팀장은 셋의 무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넷이 가끔 감정적이기는 해도, 임무에는 충실한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넷 양호
팀장은 고개를 털었다가 멈칫했다. 목소리는 넷 같은데,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팀장은 무전을 다시 눌렀다.
“여기 하나, 셋 지금 어디야, 넷 봤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금 전, 10초 전에만 해도 들었다.
팀장은 다급히 포인트로 달려가며 외쳤다.
“작전 취소, 작전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