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암살 명령 >
신해수는 바로 병상으로 달려가 황장수의 상태를 살폈다.
“황장수”
“흐···”
장수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해수를 보았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알아보는 것이다.
“안심해, 이제 널 건드릴 사람은 없다.”
해수의 말에 황장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안심이라기보다는 해수를 향한 걱정이 더 담겨있는 눈빛.
그 사이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황장수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아직 기력이 모자란지 말은 하지 못했지만, 의식은 30분 이상 깨어 있었다.
의사가 나가는 길, 그냥 지나치려다가 의사 특유의 눈썰미로 해수의 상처를 알아봤다.
“잠시만요. 팔 좀 걷어보시죠.”
“괜찮습니다.”
의사는 해수를 나무라듯이 쳐다보며 그의 팔을 잡았다.
“괜찮은 게 아닌데 지금, 봐봐요.”
팔을 확 걷자 찢어진 특수방검복에 피딱지가 붙어있는 긴 상처가 보였다. 상처가 꽤나 깊다.
그것을 보고는 하루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그대로 두면 감염때문에 일 복잡해져요. 알만한 사람이··· 내가 얘기해놓을 테니까, 얼른 응급실로 바로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의사가 나가고, 해수가 밍기적거리자 하루가 직접 그의 등을 밀어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늦은 시간이기에 응급실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꿰매고 약을 바르고 거즈를 막 붙이고 있을 때, 간호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시간에?”
“공주님이 갑자기 응급실에는 웬 일이래?”
“화장 안 한 것 같은데도 엄청 이쁘네.”
“안 하기는 무슨, 보는 눈이 없냐?”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머리를 깔끔하게 틀어올린 안서은이 등장했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옅은 화장에 회색 투피스는 마치 회사원같은 느낌이었다.
강비서와 김가드를 대동하고 다가온 그녀는 해수 앞에서 멈추어 섰다. 강비서와 김가드는 그녀보다 반 발자국 뒤에서 몰래 해수에게 목례로 인사했다.
해수는 티 나지 않게 그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서은과 눈을 마주했다.
“눈이 많습니다.”
서은은 이제 막 거즈를 붙인 상처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모인 시선이 바퀴벌레처럼 사사삭 흩어진다.
서은이 김가드에게 눈짓하자, 그가 커튼을 쳐서 병상을 두르게 했다.
“무슨 일이에요? 제가 도울게요.”
단순하게 사건을 맡다가 일이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뉘앙스다.
그녀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제 끝났습니다. 설마 이거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 일이 늦게 끝나서 복귀하는 길에···”
“정보원이 많은가봅니다.”
“그야···”
“거기도 많습니다. 제가 알아요.”
“···”
서은은 반박할 수 없었다. 이제 서은보다 해수가 칠성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칠성회 정보원이 병원에도 있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얼마나 될지, 누구인지는 추측이 되지 않았다.
해수는 이제 전과는 달리 칠성회와 전쟁 중이고, 지금같은 모습을 보이면 서은이, 혹은 대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감정이 앞서서 무조건 찾아왔다.
“나도··· 나도 알아요.”
“들어가십시오.”
서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해수를 보았다가, 그의 양쪽 팔에 붕대를 두르거나 거즈를 붙인 곳을 살펴보고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뒤돌아섰다.
이것이 해수를 위해서도, 자신과 대성을 위해서도 올바른 행동이다.
***
효성교도소.
모창귀 없는 7호실은 하루의 훈련소 동기 11호가 방장이 되었다.
“방장님, 운동 시간이랍니다.”
“어 그래, 가자.”
운동시간은 하루에 한 번, 그때가 아니면 햇빛을 온 몸으로 받을 시간이 없다.
운동 시간에는 한 개 사동의 재소자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인다.
오늘은 운동장 분위기가 싸늘하다.
머리가 희긋희긋한 중년인이 몸 좋은 사내 여섯 명을 데리고 운동장을 거닐고 있다.
같은 방원이 11호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게 그 백회장인 것 같습니다. 큰 손.”
“그래 보이네.”
백회장은 들어오기 전부터 소문이 많이 퍼져 있었다. 이미 밖에서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만큼, 안에서도 그의 패거리와 같은 사동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백회장의 오른팔 고씨는 사망했고, 그의 똘마니들과 함께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받았다.
몇몇은 아예 먼저 다가가 알아서 기었다.
11호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의 눈에 닿지 않는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로 가자.”
“예 방장님.”
그는 여기 있는 동안 다른 무리와 시비를 트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없는 듯이 지내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구석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서늘한 기운에 그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한쪽 구석에 다른 재소자들 사이에 가려져 있는 머리를 빡빡 민 왜소한 체구의 남자를 보았다.
그를 확인한 11호는 눈을 부릅떴다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방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말했지만 11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저 빡빡이는 회사원이다. 아랫기수지만 성적이 좋아서 자주 회자가 되던 자였다.
실전 경험이 가장 많은 영업부로 알고 있다.
‘이제 날 처리하러 온 건가···’
11호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그는 그때부터 언제 어디서 그가 공격해올 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기습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해···? 아냐, 같은 방이면 몰라도··· 일단, 두고 보자.’
*
쏴아아아-
3사동 샤워실, 탈의실에 건장한 사내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고, 안에는 단 한 명만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다.
백회장이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탈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 한 명이 수건을 건네주었다.
백회장이 수건을 받아 머리를 털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탈의실 문이 열리며 한 재소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체구가 왜소하고 키는 다른 사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다. 머리칼이 빡빡이라서 더 작아보인다.
백회장은 그를 슬쩍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고 수건으로 몸을 다시 닦았다.
다른 사내가 왜소한 빡빡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가라, 아야.”
빡빡이는 아무 말 없이 건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가라고, 쳐맞아야 말을 듣겠-”
그때, 그의 소매에서 뾰족한 칫솔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그는 칫솔을 잡아채어 바로 자신에게 손을 추켜든 사내의 경동맥에 정확히 꽂았다가 뺐다.
푹- 치이익-
“뭐야 이 새끼!”
“이런 시팔놈이!”
동료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자, 그제야 보통 놈이 아님을 깨닫고 다른 사내들이 덤벼들었다.
교도소이기에 이렇다 할 무기가 없으니, 바구니나 물 묻은 수건, 또는 맨 손으로 그에게 덤벼들었다.
빡빡이는 바로 몸을 확 낮추었다. 그러자 좁은 탈의실에서 갑자기 그가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잠깐 들었다.
그 사이 빡빡이는 칫솔로 다른 사내의 발목 뒤쪽을 꿰뚫고, 또 다른 사내의 종아리에 구멍을 냈다.
터덕-
그 사이 옷이 잡혔다. 빡빡이는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이 부드럽게 잡힌 웃옷을 벗고, 한 사내의 등 뒤에 매달려 목을 확 꺾었다.
우드득-
모두 운동을 한 사람들이기에 목도 두껍고 승모근도 울끈불끈한데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맥없이 부러진다.
그만큼 보이는 것과는 달리 힘이 강하고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쿵! 팍 팍!
마지막으로 수건을 휘두르던 사내의 수건을 빼앗아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옆구리와 목에 칫솔을 찍었다.
빡빡이 재소자는 미꾸라지처럼 적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며 여섯 명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어설픈 처리는 없다. 모두 회생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죽었다.
백회장은 수건을 든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움직임이나 공격에 군더더기가 없다. 고로, 의뢰를 받고 온 청부업자다.
백회장은 해수 때 일을 학습하여 이번에는 공격하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가 받은 돈의 세 배를-”
타다닥-
빡빡이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그의 등에 매달려 칫솔로 목을 무자비하게 찍었다.
푹 푹 푹- 치이이익-
목에 열 개에 가까운 구멍이 난 백회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탈의실은 금세 피바다가 되었다.
왜소한 빡빡이는 백회장이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샤워실로 들어가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
[효성교도소 3사동 폭동, 재소자 7명 사망, 교도관 부상 없이 진압되어]
기사에는 사망자 명단이나 누가 죽었는지 언급이 전혀 되지 않았다.
효성교도소에 백회장이 간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다.
해수는 의심스런 마음에 바로 효성교도소를 찾아가 사망자 명단을 확인했다.
백회장과 그 똘마니들이다. 그들과 싸운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그들만 죽었다.
회사 냄새가 풀풀 난다.
지금은 죽은 고씨라는 사람이 회사 출신으로 의심되었던 만큼, 백회장도 칠성회와 이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그의 장부가 칠성회에 속한 기업들에게 해를 끼치니까 처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사건 알아보기 위해 교도소 소장을 찾아갔다. 효성 교도소장은 해수와 연이 있다. 그런데.
“···아이고 신형사, 알잖아, 이게 정식으로 영장을 받은 게 아니면 내가 알려줄 수 없어, 담당자도 아니잖아, 내 입장도 좀 이해해줘.”
예전에는 뭐든 도와주고 모창귀가 있는 방으로 악질 범죄자들을 집어넣는 것도 잘 해주더니, 이제와서 갑자기 법 타령을 한다.
냄새가 난다. 교도소장도 꼼짝 못할 권력.
“알겠습니다. 그럼 온 김에 면회나 좀 하겠습니다.”
“아이고 당연하지요. 접견실에서 만나요 내가 편의 다 봐줄게.”
“···감사합니다.”
해수는 하루의 동기 11호를 불러냈다. 그는 전과는 달리 오히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 선 느낌이었다.
그는 접견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러워했다.
“뭔 일 있었습니까?”
그는 머뭇거리다가 해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작게 말했다.
“회사가 날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네?”
“며칠 전에 영업부 회사원 한 명이 재소자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음···”
해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거, 계획과는 달리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잡게 생겼다.
“날 이동시켜주시오, 다른 교도소 아니면 다른 사동으로라도,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그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마르고··· 키는 170이 안 될 겁니다. 눈이 날카롭고 머리는 빡빡 밀었습니다.”
“여기에 그려볼 수 있겠습니까?”
해수가 휴대폰과 그림용 펜을 내밀었다.
마음이 급한 11호는 군말없이 해수에게 협조했다. 그는 의외로 그림을 잘 그려서, 그것만으로도 시시티비에서 동일인물을 찾기 수월해보일 정도로 디테일했다.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교도소 이동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동안 몸조심하십시오.”
“예, 빠르게 부탁합니다.”
*
“···그러니까, 신해수가 백회장의 성을 무너트린 자가 확실하다?”
천선생의 말에 마실장이 정정했다.
“정황을 보면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하든 아니든, 확실하게 대답하고 대답한 자가 책임을 지는 것을 좋아하는 천선생은, 마실장의 애매한 대답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마실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신해수··· 그 자가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온다라···하, 참 웃기네요. 칠성회를 상대로 육탄전이라니.”
“···”
천선생은 돌아서서 마실장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신해수, 죽이세요.”
“예, 알겠습니다.”
천선생의 입에서 이제야 확실한 명령이 떨어졌다.
마실장은 짧게 목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저벅 저벅 저벅-
레드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걸어나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바로 아래층을 눌렀다.
지이잉-
열리자마자 바로 앞에 깔끔하게 수트를 입은 네 명의 남녀가 우뚝 서서 대기하고 있다.
남자 세 명에 여자 한 명이다.
마실장은 가운데에 콧수염이 난 가장 키가 큰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번 고객은 영업 4팀 전원 투입한다.”
“예,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