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황장수의 복수 (3) >
고씨는 회사에서 팀장을 제안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파견을 택했다.
그리고 10년만에 백회장을 이 정도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회사에서 승진은 실적과 실력이다.
타닥-
고씨는 바로 바닥에 메다 꽂힐 위기였지만,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두 발이 바닥에 먼저 닿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허리를 튕기며 괴한의 팔을 두 다리로 감쌌다.
끄드득-
‘뭐가 이렇게 단단해?!’
웬만한 통뼈도 이미 반대로 아작이 났어야 하는데, 괴한의 팔은 마치 철골처럼 견고하여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칼을 들고 있는 손은 괴한에게 단단히 붙잡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손에 잡고 있던 칼을 놓고, 공중에서 다른 손으로 낚아채며 괴한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괴한의 팔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양새였다.
괴한이 다급히 손을 내려 팔뚝으로 옆구리를 보호했다. 고씨는 그의 어리석은 선택에 냉소를 지었다.
‘팔뚝이 무슨 쇠로 된 것도 아니고’
카카칵 카칵-
그때, 칼날이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감촉 역시 이상하다. 무언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고씨는 두 번 더 휘둘렀다가 찌르기 위해 어깨를 뒤로 뻗었다.
본래 휘두르는 행동보다 조금 더 큰 동작, 그게 패착이었다.
쾅!
살짝 들어올려진 옆구리로 괴한의 주먹이 꽂혔다. 가동범위가 넓지도 않아 힘이 충분히 실리지도 않았을 텐데, 장기가 흔들린다.
뿌드득-
갈비뼈도 부러진 듯하다. 하지만 고씨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다시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때, 괴한이 고씨가 매달려 있는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앙!!
바닥에 충돌하기 전에 몸을 틀었지만, 왼쪽 어깨와 옆구리, 골반에 큰 충격을 받았다.
“커허억”
그리고 그제야 손목을 잡고 있는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고씨는 그와중에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통증을 참으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아니, 굴리려고 했다.
그러나 왼쪽 팔과 다리가 일시적으로 경직되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사이, 눈 앞에 괴물이 거대한 주먹을 번쩍 들어올렸다.
쾅 쾅 쾅!!
그의 무쇠 주먹이 정통으로 박힌 고씨는,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채 의식을 잃었다.
*
괴한, 신해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는 고씨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너 회사 출신··· 죽었냐?”
숨은 쉰다. 맥박도 뛰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기절한 것이다.
해수는 그의 몸통을 밟고 넘어가 저 복도 끝에 있는 고고한 기운을 풍기는 고풍스러운 문을 열었다.
끼이익-
어두컴컴한 도장, 그 중앙에 한 중년 남성이 우뚝 서 있다. 그의 왼손에는 서슬퍼런 진검이 들려 있었다.
그가 고개를 반쯤 돌려 해수를 보고는 물었다.
“혼자 왔나?”
해수가 말없이 서 있자, 그가 완전히 돌아서서 해수의 뒤쪽에 문 밖에 상황을 살짝 보고는 시선을 거뒀다.
‘불가능해.’
단신의 무력으로 이 성을 파훼할 수는 없다. 총이 있다고 해도 안 된다. 몇 명은 잡겠지만, 분명히 잡힌다.
스윽-
중년인, 백회장이 진검을 두 손으로 받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보냈지?”
해수는 주먹에 붕대를 둘둘 감고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염라대왕”
쉭-!
백회장은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진검을 번쩍 들어올렸다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내리쳤다.
그의 검 거리에는 정확히 해수가 닿았다. 정말로 검으로 사람을 썰려는 것이다.
마주하는 해수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는 긴 진검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보고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돌격했다.
팍!
칼날이 어깨에 닿아 특수방검복을 찢고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깊지는 않다. 그 사이 해수의 몸은 백회장에게 도달했고,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쿠웅-!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전차 같은 해수의 몸에 부딪힌 백회장은 공중에 붕 떠올라 한참을 날아갔다.
콰광!
수 미터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그 뒤에 걸려 있던 보호 장구들과 함께 쓰러져 내렸다.
타다다닥-
그 충격은 머리가 희긋희긋한 중년인이 버텨낼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수는 작은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달려가 그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커다란 주먹을 번쩍 들어올렸다.
주먹 꽂기 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너···”
백회장은 해수의 몸짓에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자는 단순한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다.
이미 쳐들어오는 방식 부터가 틀렸다. 은밀히 들어와서 혼자 있을 때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들어와서 전력을 모두 괴멸시켰다.
고씨가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당했다고 봐야 한다.
고로, 적대세력의 누군가가 보낸 청부업자가 아니라 원한관계다.
“날 죽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나?”
그의 질문에, 해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
쾅 쾅!
두 방에 백회장의 얼굴이 완전히 뭉개졌다. 늙은 사람의 두개골은 밀도가 떨어져서 훨씬 쉽게 무너진다. 벌써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콰직!!
마지막 한 방, 해수의 주먹이 도장 나무 바닥을 부수고 깊이 박혔다.
정신력이 남다른 백회장은, 아직도 기절하지 않고 눈알만 굴려 자신의 바로 옆에 박힌 해수의 주먹을 보았다.
이 주먹이 자신의 얼굴에 꽂혔으면 완전히 박살났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 자는 살인청부업자는 물론,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분노에 잠식된 복수의 화신이다. 그러니 이런 실력을 지녔음에도 처음 보는 눈인 것이다. 사는 세상이 다르니.
해수는 그의 품에서 휴대폰을 찾아 꺼내어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상황실에서 받는 것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백회장의 귓가에 갖다 대었다.
-···입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해수는 백회장을 지그시 내려다보다가 일어나 그곳에서 벗어났다.
백회장은 멀어져가는 해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사,사,살려줘...”
***
[지하세계의 큰 손, 속칭 ‘백가’ 구속]
-지하세계의 큰 손, 백ㅇㅇ씨가 구속되었습니다. 혐의는 살인교사, 살인, 마약, 협박, 폭행, 특수폭행교사 등으로···
백회장의 사옥은 강진시에 있지 않기 때문에 강진서 경찰이 아닌 다른 지역 형사들이 사건을 맡았다.
현장을 둘러보고 온 형사들이 불만어린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완전 프로 짓이야, 시시티비건 뭐 블랙박스건 뭐건 다 없어, 거기서 뭔 일이 일어났는지, 그 주변에 누가 드나들었는지 아무것도 확인이 안 돼.”
“프로는 무슨··· 그래봤자 조폭 쓰레기들이지, 지들끼리 치고 박고 불리할까 봐 다 끊어먹은 거지, 야 상식아, 이 새끼들 아직 아무 말 없어?”
“예, 약속한 것처럼 지들끼리 그냥 싸우다가 그랬대요. 다 짜고 치고 있어, 경찰을 무슨 봉으로 보이나.”
“봉이면 낫게, 아무튼 계속 압박해봐.”
백회장의 친위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절대 말하지 않고 하나같이 침묵을 지켰다.
백회장의 지시다. 큰손 백가의 위엄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경찰이 찾기 전에 자기들이 직접 찾아서 복수하기 위해.
***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사무실.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중년인, 천선생이 최근 들여온 화분을 바라보고 있다.
똑똑 끼이익-
노크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린다. 천선생은 누가 왔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노크를 하고 허락도 없이 안으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뿐이다.
사무실에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곧이어 동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백가가 당했습니다. 장부도 전부 경찰 측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천선생은 미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겁쟁이 노인, 언젠가 당할 줄 알았어요. 누구한테 당했대요?”
“얼굴을 가린 괴한, 한 명이라고 합니다.”
한 명이라는 말에 천선생이 마실장에게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 명?”
백가의 성에 있는 친위대들은 회사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정예였다. 조폭 나부랭이들과는 차별화되는 실력자들이다.
그곳에는 백가와 항상 붙어있는, 회사에서 파견한 고씨도 있었다. 고씨는 회사원들 중에서도 실력자로 정평이 나 있다.
회사 출신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그때, 마실장이 천선생의 표정을 읽고 말을 붙였다.
“총을 쓰지도 않았고, 무기 없이 맨 손으로 상대했다고 합니다.”
“그게···가능해요?”
“가능합니다.”
마실장의 즉답에 천선생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너 말고요. 그 늙은이 성에 혼자 쳐들어가서 잡을 수 있는 회사원이 몇 명이나 있죠?”
마실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다섯 이하입니다만, 무기 없이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다섯이라··· 그런 실력자가 회사원 외에도 있다?”
“정보망에는 두 명이 있었습니다만, 한 명은 일본에서 사망했습니다.”
“모창귀였던가···”
잊혀졌던 이름에 마실장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예.”
“나머지 한 명은 그럼···”
“예,신해수입니다.”
천선생이 몸을 완전히 돌려 마실장을 마주 보았다.
“백가, 신해수 짓인지 찾아봐요.”
“알겠습니다.”
“백가 장부로 인해 많은 분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겠지요?”
“예, 백가가 안고 가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실장이 목을 절도 있게 숙이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천선생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척
“오늘 행동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마실장은 멈칫하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천선생은 이렇게 돌려 말해도 바로 자신의 뜻을 알아듣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또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미리 읽고 대답하는 건 싫어한다.
알아서 하는 건 좋아하지만, 감히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미리 행동하는 건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 천선생의 얼굴 표정을 읽고 미리 얘기한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마실장의 표정도 찰나, 미세하게 굳어졌다가 풀렸다.
그는 다시금 돌아서서 자세를 잡고 목례를 했다.
“유념하겠습니다.”
스윽-
마실장이 바로 돌아서서 나가고, 천선생이 고개를 돌려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흠···”
***
대성병원 VIP 병실.
드르르륵-
문이 거칠게 열리자, 바로 아담한 손이 뻗어왔다.
신해수는 기겁하고 상체를 물리며 그 손을 피하려 했지만, 손이 더 빨랐다.
타닥-
멱살이 잡히고 나서야 그 손의 주인이 해수를 알아보고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수님?”
해수는 열일하는 하루를 보며 멋쩍게 웃음지었다.
“그래, 잘 지키고 있구나, 별 일 없었지?”
“죄송합니다! 피 냄새가 진해서···”
해수는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싹 하고 왔는데도 피 냄새를 말하니 어깨를 들어 자신의 몸 냄새를 맡았다.
그때.
“끄으으응-”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해수도, 하루도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
해수와 하루는 동시에 안쪽 침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