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황장수의 복수 (2) >
“스읍, 후우-”
작은 사무실 안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네 명이 소파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다.
끼익-
철문이 열리고, 마른 사내가 들어오니 도박을 하고 있던 두꺼운 금목걸이를 한 사내가 그를 보며 물었다.
“어 왔냐? 황사장은?”
“예, 병원에서 사망처리된 거 확인했습니다.”
그의 말에 금목걸이 사내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쓰읍, 후- 아 거 슬픈 날이구만, 니네도 알아둬라, 여기서 장사하는 놈이 똥고집 부리면 황사장처럼 되는 거야, 알았냐?”
“예 사장님.”
“맞는 말씀이십니다.”
금목걸이 사내는 짜장면 그릇에 꽁초를 지지고 상석으로 이동하며 말을 이었다.
“석이는? 아직도 연락 안 돼?”
“예, 아무래도 황사장 절친인 그 경찰에게 잡힌 듯합니다.”
“임무는 완수했지만 잡혔다 이건가··· 뭐 상관없지, 경찰은 어차피 무서울 거 없어, 우리가 법 안 지키는 거 있냐?”
그의 물음에 다른 사내들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법대로 하지 말입니다.”
“사장님은 법 없이도 사실 분입니다.”
“하하 저 새끼, 과하다. 과해, 아무튼 경찰은 어차피 영장 없으며 내 머리카락도 못 건드려, 그딴 거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뒤지고 다니면 조용히 친구 곁으로 가게 해줘야지.”
금목걸이 사내의 말에 마른 사내가 고개를 절도 있게 숙였다.
“예, 사장님 신경쓰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
쾅!!
그가 말을 마치기 직전,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사내를 덮쳤다.
얼마나 세게 부딪혔으면, 부딪힌 사내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다.
금목걸이 사내는 갑작스런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뭐야 이 새끼는?”
마스크남, 신해수는 사무실을 스윽 훑어보고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양만철, 손”
금목걸이 사내 양만철은 해수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얘들아, 일단 다져놓고 뭔 일인지 들어보자.”
그의 말에 소파에 앉아있던 사내 세 명이 슬금슬금 일어났다. 해수는 그들을 보고는 먼저 성큼성큼 다가가 가장 가까운 사내에게 주먹을 뻗었다.
굼뜬 행동, 반쯤 감긴 눈, 짜장면 묻은 입가, 사내는 아직 몸도 마음도 싸울 준비가 안 되었다.
뻑-!
턱을 직격당한 사내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뻣뻣하게 옆으로 쓰러졌다.
그제야 사내들은 해수가 복싱이라도 배운 상대라고 인식하고 주춤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길에 널리고 널린 헬스장 풍선근육인 줄 알았는데, 주먹이 꽤나 매섭다.
한 놈이 자세를 살짝 낮추고 가드를 올린 채 다가오며 주먹을 뻗었다.
해수는 그에게 주먹을 마주 뻗었다.
쾅!! 우드득-
“아악!”
주먹과 주먹이 서로 정확하게 부딪쳤다. 사내는 주먹은 물론 손목도 우그러져 다른 손으로 손목을 붙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 해수가 테이블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집어 신음하는 그의 입에 물리고, 손바닥으로 그릇 끝부분을 쳤다.
콰지직-!
“어어억!”
그릇이 그의 입을 찢으며 부서졌다. 그 사이 다른 놈이 해수의 옆구리를 향해 발을 뻗었다.
쿵-
해수가 살짝 뒤로 이동하며 그의 발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그의 무릎을 내리쳤다.
빠각!
“끄아아악!!”
해수의 주먹 한 방에 사내의 무릎이 반대로 꺾였다.
상체운동만 하고 하체운동은 하지 않은 편식운동러의 최후였다.
해수는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양만철이 앉아있는 책상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얘가 양만철이야?”
“흐으, 흐···”
양만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내는 양만철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는 그의 얼굴을 책상 모서리에 찍었다.
콰직!
사내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르륵 쓰러졌다.
양만철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일어서지도, 앉지도 않은 애매한 자세로 있었다.
해수는 손을 뻗어 손목을 까딱까딱거렸다.
양만철이 고개를 미세하게 저으며 뒤로 더 몸을 물린다.
“야, 니가 누군진 몰라도 이거 실수-”
뻑!
“크흐윽!!”
해수의 주먹에 양만철이 코가 우그러졌다. 쌍코피가 흘러내려 입을 적셨다.
해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책상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잡아끌어, 소파 쪽으로 집어 던졌다.
“어허억!”
콰광 쾅!!
그러고는 소파테이블을 딛고 뛰어올라 엎어져 있는 그의 손바닥을 밟았다.
콰직!
“끄아악!!”
해수는 주변에 보이는 나무젓가락을 집어 그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치기 직전.
“끄으으으으!!! 사려져!!”
양만철의 외침과는 무관하게 해수의 손이 멈추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황장수를 죽이러 왔다가 붙잡은 놈은, 전문 킬러가 아니라 조직원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의 사적인 복수라고 발뺌했지만, 나중에는 그가 몸 담고 있다는 사무실과 보스의 이름까지 불었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하들은 둘째치고 이놈도 수준이 너무 낮다. 황장수 혼자서도 이들 한 트럭 정도는 찜쪄먹을 정도다.
“양만철.”
양만철이 덜덜 떨면서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해수는 솥뚜껑만 한 손을 들어올렸다.
쩌억-!
“커허억”
따귀 한 방에 고개가 180도 돌아갔다. 그가 입에 물고 있던 나무젓가락이 입 안을 갈기갈기 찢으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양만철.”
“에···”
양만철이 차마 뭐라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다음 따귀가 날아왔다.
쩍!!
“양만철.”
쩍! 쩍! 쩍! 퍼억!!
양만철의 얼굴은 이제 피떡이 되어 생김새를 알아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수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다시 그를 불렀다.
“양만철.”
“에! 에! 에 부르셨슴니까!”
양만철은 지금 느껴지는 고통따위는 무시하고 필사적으로 대답하며 재빨리 무릎을 꿇고, 망가진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올려놓았다.
해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고 입을 열었다.
“니가 황장수 죽이라고 시킨 거 맞아?”
“에? 그, 아, 에, 저,저도 시켜서 한 겁니다! 시켜서!”
“누가”
“배,백회장입니다! 백회장이 시켰습니다··· 막타만 넣으면 된다고···”
양만철은 이곳에 뼈를 오래 묻고 있었던 만큼, 아는 것이 많았다.
황장수의 사채업은 개인사업이 아니다. 큰손님을 연결해주고 돈도 대주는 윗선이 존재한다.
그가 백회장이라는 지하세계의 큰 손인데, 이번에 마약을 유통한다는 것을 황장수가 반대하여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평소에도 경찰 친구와 자주 만나고, 여러가지 사업에 태클을 걸어서, 백회장은 황사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저는 정말 친동생처럼 아꼈지만··· 거절 할 수 없-”
쩌억!
마지막 따귀에 양만철은 바닥을 뒹굴었다.
해수는 그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계단 앞에서 그의 턱을 잡아 입을 쩍 벌리고, 계단을 물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게 했다.
“아아, 아아으, 허해님, 허행님 사려듀해요···”
“움직이면 진짜 죽는다. 가만히 있어.”
해수는 거침없이 그의 뒤통수를 발로 찼다.
뻐걱!
“꺼여어어어!!!”
치아가 몽땅 부서지고, 아래턱이 빠지면서 입도 쫙 찢어졌다.
재수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상이다.
해수는 아예 그의 머리를 밟아 죽이고 싶었지만, 포장마차 앞에서 장수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살심을 꾹 눌렀다.
“가자, 백회장 만나러.”
해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기절한 양만철의 뒷덜미를 잡고 계단 아래로 질질 끌고 갔다.
계단에는 붉은 줄이 길게 그어졌다.
쿠궁-
해수는 대포차 뒷좌석에 만신창이가 된 양만철을 집어넣었다.
안에 있던 킬러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못 알아보다가, 옷을 보고 양만철이 자주 입는 옷임을 깨닫고 뒤늦게 놀랐다.
“허업, 사,사장님”
“허어어, 허으···”
위로 올라간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자신이 알기로 그곳에 최소 네 명 이상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싹 다 정리하고 사장까지 이지경으로 만든 걸 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들어 자세를 공손하게 고쳐 앉았다.
부르르릉-
해수는 백미러로 그들을 힐끗 보고는 액셀을 깊게 밟았다.
*
컴컴한 도장에서 한 남자가 달빛을 벗삼아 진검을 휘두르고 있다.
훙- 훙
“후우···”
남자가 숨을 길게 내쉬며 진검을 내려놓고, 투구를 벗었다. 힘있고 절도 있는 자세를 보여준 남자는 놀랍게도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그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수트를 입고 있는 날카로운 기운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중년인의 눈빛을 받자 입을 열었다.
“황장수가 사망했습니다.”
“시체 봤어?”
“병원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양만철이 처리한 듯합니다.”
중년인은 투구를 제자리에 놓고 땀을 훔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까운 놈이었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자였습니다.”
사내의 말에 중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지그시 사내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여기 사람 다 됐네?”
“송구스럽습니다.”
“아, 장수가 자주 만나는 경찰 이름이···”
“신해수입니다.”
“그래, 신해수, 그 친구가 입원시켰다고 하지 않았나?”
“예.”
“꽤 유능한 경찰인 줄 알았는데··· 기사에서 종종 봤잖아, 양만철 그놈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놈도 아니고.”
“알아볼까요?”
중년인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다. 됐어, 이럴 때는 조용히 있는 거야,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어.”
“예, 백회···장님.”
사내는 대답하는 중에 멈칫했다. 눈치 빠른 백회장이 그의 변화를 알아채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천하의 고씨가 내 앞에서 인상을 다 쓸까.”
“죄송합니다. 앞에 작은 소란이 있는 듯합니다. 신경쓰실 일은 아닙니다.”
“자네가 가 봐.”
고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
고씨는 사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회장 전용 도장을 빠져나와 긴 복도를 걸었다.
지하세계 큰손인만큼 무식한 적이 많으니 아예 사옥을 요새처럼 짓고 친위대를 머물게 했다.
친위대는 어중이떠중이 조폭이 아닌, 전문적으로 운동을 배우고 칼밥 경험도 적당히 있는 정예 서른 명.
일당오는 되는 대원들이 요새를 상시 지키고 있으니 조폭 백 명이 쳐들어와도 정문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친위대 실장이 문제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다.
회장과 독대를 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연락을 취했으니 고씨도 약간은 긴장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대체 얼마나 많이 왔길래.’
콰광 쾅!
정문보다 좁은 두 번째 철문이 열리며 검은 수트를 입은 대원이 나자빠졌다.
열린 문으로 밖을 보니 피를 흠뻑 뒤집어 쓰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주변에 대원들은 절반은 누워있고 절반은 거리를 벌리고 있다.
널브러져 있는 대원들의 팔이나 다리는 모두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고, 손가락이 아예 뭉개져 있는 대원도 있다.
‘한 명?’
고씨는 문에 걸려있는 대원을 발로 치우고 나가서 그를 자세히 보았다.
모자에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눈빛과 덩치는 제법 남을 압도할 정도는 되었다.
“이야아!!”
퍽! 꽈드득!
대원 두 명이 눈치를 보다가 한 번에 달려들었다.
괴한은 힘이 다 빠진 듯이 축 쳐져 있다가, 무릎반사처럼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0.1초라도 먼저 다가오는 자의 턱을 정확히 손바닥으로 올려치고, 뒤에서 덤벼드는 자에게 발을 뻗어 가슴을 찼다.
돌려차기에 맞은 대원은 5미터 가까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고씨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눈은 독기가 서려 있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쳐서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 방 한 방 손발을 움직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잘 싸운다. 약점을 단 번에 파악하고 다수를 상대로 어떻게 싸우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전투 천재다.
하지만 양민 학살에 특화된 움직임이다. 재능이 있으니 비슷한 강자를 만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움직임만 봐도 공격 일색이고, 방어는 도외시하고 있다. 경험의 차이다.
지금까지는 적의 공격이 닿기 전에 처리가 가능했으니.
이런 자들은 자신보다 강자가 나타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멍청하게 당한다. 데이터가 없으니 뇌가 고장나는 것이다.
저벅 저벅
‘오늘, 격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고씨는 자세를 낮추고, 칼을 빼들고 은밀하고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완벽한 타이밍에 간장을 향해 칼을 정확히 꽂아넣었다.
터덕- 훙
옆구리에 칼이 파고들었다 라고 생각했을 때, 손목에 엄청난 악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몸이 붕 떠올랐다.
‘어떻게?’
공중에 거꾸로 세워졌을 때 괴한과 눈이 마주쳤다. 괴한의 눈이 반짝인다.
‘속았다. 늑대가 아니라, 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