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황장수의 복수
쏴아아아아-
밖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엄청나게 쏟아붓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의 비.
뚜- 뚜-
신호는 가지만 전화는 받지 않는다. 신해수는 일단 황장수의 ‘회사’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몰면서 정영수에게 전화를 했다.
-아, 형니…
“번호 위치추적.”
영수는 해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건조하지만 호흡에서 오는 긴박함을 느끼고 침을 꿀꺽 삼켰다.
-불러주세요.
“010-337….”
부아아아앙-
해수는 곧 전송받은 휴대폰 위치로 가면서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황장수는 정황상 목숨이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휴대폰 전원을 끌 힘도 없을 정도로, 위치도 지속적으로 확인 중이지만 변하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해수의 얼굴이 점점 후회로 일그러졌다.
스무 살 이전에, 단짝처럼 항상 붙어다니면서 운동도 하고 사고도 같이 치던 때가 떠오른다.
비록 어쩌다가 지하세계로 갔지만, 자신보다 순수한 놈이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쪽에서 빼냈어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니, 찾아내서, 살려내면 된다.
끼이익-
해수는 복잡한 동네를 마구 헤집고 다니다가 우뚝 멈추었다.
가게와 가게 사이, 한 명이 간신히 게걸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틈.
쓰레기, 담뱃갑, 담배꽁초, 오물이 버려져 있는 그 애매한 공간 벽에 새빨간 핏자국이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가 벽에 손바닥 모양으로 찍힌 피를 검지로 훑어보았다.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
게걸음으로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희미한 호흡이 들린다.
쉭- 쉭
기역자로 꺾이는 부분 끄트머리에, 낯익은 남자가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황장수!”
다가가 몸을 살폈다.
무겁게 감겨있는 눈꺼풀을 들어올려보니 초점이 흐릿하다. 새까만 셔츠를 입고 있어서 티가 안 나는데, 주변이 빗물에 섞인 피의 양이 꽤 많다.
해수의 눈이 빠르게 상처를 확인했다.
목에는 자상이 있으나 동맥은 빗겨나갔다.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은 허벅지와 발목에 커다란 칼자국,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
검은 셔츠에는 마치 구제패션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맥박은 뛴다. 호흡은 매우 가쁘다.
여기서 대성병원까지는 대략 7분 거리, 복잡한 거리이기에 구급차가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
가다가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황장수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어떤 놈들에게 당했는지 힌트는 아무것도 찾은 게 없다.
해수는 장수의 흐릿한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리셋.’
쏴아아아아-
고요하다.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귓가에 들려온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황장수는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다.
‘리셋, 리셋.’
먹통이다. 오늘은 한 번도 리셋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부정했던 그 설정.
이 빌어먹을 능력은 조폭을 대상으로 통하지 않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마음이 조급하다.
“리셋, 리셋, 리셋!!”
장수의 어깨가 으스러질 듯이 붙잡고 리셋을 외쳤지만,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해수는 순간 밖에 지나가는 아무나 잡고 죽을 때까지 팬 다음에 리셋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리셋이 뭐냐….”
모기 날개짓처럼 작은 황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수는 눈을 부릅뜨고 그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상처를 한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말하지 마.”
하지만 해수의 말을 들어먹을 장수가 아니었다.
“이게 주마등이냐… 히야, 나랑 니 고딩 때 쌈질하고 다니던 때가 영화 튼 것마냥….”
“입 다물고, 정신 똑바로 차려, 내가 너 무조건 살린다.”
장수가 말을 하니까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졌다. 해수는 겉옷을 벗어서 그의 배에 강하게 묶고, 그를 조심스럽게 업었다.
“아이씨… 아파….”
그 말을 끝으로 장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해수는 그의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대성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 * *
해수가 그만큼이나 덩치 큰 황장수를 두 손으로 안고 응급실로 들어서자 의료진은 물론 환자들의 시선도 집중되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빗물이 붉은 것을 본 의료진이 상태가 위중한 것을 알고 재빨리 모여들었다.
바로 응급수술이 들어가고, 의사 오더를 받은 간호사가 내부 전화기를 들었다.
턱-
그때, 피 묻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경찰 공무원증이 보였다.
“신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고 받고 출동한 거라.”
“아, 아하… 네, 그럼 소속하고 성함 좀….”
“강진경찰서 강력1팀 경사 신해수입니다.”
간호사는 해수의 사진과 이름을 확인하고는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수술은 10시간 만에 끝이 났다. 강력팀에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퇴근한다고 알리고,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다.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가 해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수가 대성병원에 자주 들르니 얼굴과 직업을 알고 있는 것이다.
“…환자분 보호자가 따로 없으신가봐요? 신형사님만 계시네요.”
“후우… 예.”
해수는 의사의 표정과 어투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의사의 표정은 매우 중의적이다.
“음, 아무튼, 출혈은 잡았으나 장기가 너무 엉망이라서…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살아날 가능성은….”
의사는 눈을 들어 해수와 눈을 마주했다.
“아, 신형사님 지인이시군요… 흠, 아시겠지만 이건 단순히 의학적인 통계라는 걸 참고하시고… 20프로 미만입니다.”
해수는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현장에서 그의 꼴을 생각하면 지금 숨이 붙어있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닥쳐오는 절망감은 언제나 각오했던 것보다 컸다.
“…알겠습니다.”
* * *
황장수는 중환자실에 반나절 있다가 1인실로 옮겨졌다.
그날 밤.
드르르륵-
입원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저벅 저벅 저벅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발소리, 모자에 마스크, 검은 점퍼를 입은 괴한이 황장수가 누워있는 침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스윽-
그가 품에서 서슬퍼런 칼을 꺼내어 들었다. 동시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스테인리스로 된 휴지통이 날아왔다.
쾅!
괴한은 반사적으로 팔로 그것을 쳐냈고, 연이어 자신에게 돌진해오는 안광이 번뜩이는 맹수를 맞이했다.
쿵! 쿠광쾅!!
해수의 몸통박치기에 괴한이 뒤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그러면서도 칼은 놓지 않고 해수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턱 우드득
“끄으읍!”
하지만 이보다 앞서 해수는 그의 손목을 잡아 확 비틀고, 주먹으로 그의 옆구리를 짧게 끊어 쳤다.
퍼억!
“우욱!”
한쪽 팔을 들고 있어 옆구리를 보호하는 살과 근육도 얇아진 상태에서 정확히 가격당했다. 괴한은 그 한 방에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진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해수는 그의 뒷목을 잡아 돌바닥에 내리찍고, 무릎으로 얼굴을 짓눌렀다.
“너는, 묵….”
해수는 다음 말을 삼켰다.
황장수를 살해하려던 자들을 합법적으로 잡아내면 과연 그는 안전해질까? 제대로 복수가 될까? 비관적이다.
해수는, 개인적으로 움직이기로 결단했다.
그가 괴한의 두 손목을 뒤로 꺾어 케이블타이로 묶고 있는데, 소란을 들은 간호사 두 명이 달려와 문을 열었다.
이 소란 속에서도 황장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해수는 그녀들을 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별 일 아닙니다. 용무 보세요.”
해수의 목소리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 간호사들은,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뒷걸음질을 쳤다.
드르르륵- 쿵
병실 문이 닫히자마자 해수는 괴한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끌고 가 변기에 얼굴을 쳐박았다.
“끄르르르르륵! 꾸륵!”
해수는 물을 두 번 내리고는 그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말했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허억, 허억, 허….”
괴한은 독기어린 눈으로 해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있으면 텝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변기에 쳐박았다.
“어웈-!”
* * *
킬러 소동이 있은 뒤, 해수는 황장수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다가 관두고, 하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해수님
“많이 바쁜가? 아니, 바빠도 일 미루고 여기 와, 그리고… 안서은씨도 연락해줘.”
-네, 알겠습니다.
해수에게도 서은의 전화번호가 있지만, 최대한 그녀에게 직접 전화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곧, 하루에게 연락을 받자마자 왔는지 안서은이 병실로 찾아왔다.
새까만 투피스에 새까만 머리칼을 정갈하게 묶은 모습이 마치 깐깐한 미녀 여배우 느낌을 풍겼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병실을 보고 살짝 놀랐다가,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강비서를 물리고 해수와 마주 앉았다.
칠성회 관련 일이 있고 난 후, 1년 만에 제대로 둘이 마주하는 것이다.
“잘… 지내셨나요? 황장수씨는 저희 병원에서 최선을 다 해서-”
황장수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해수의 지인인지도 모두 보고를 받고 알고 온 것이다.
해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저는 여전히 안서은님을 믿습니다.”
서은은 말을 하는 중이어서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정지되었다. 해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살짝 떨린다.
그렇게 정적이 3초, 서은은 그 큰 눈을 두 번 깜빡이고는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가,감사합니다. 음, 그….”
“그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급히 불렀습니다.”
“예, 예, 편히 말씀하세요.”
“우선, 황장수를 이곳에서 없애주세요.”
“…네?”
* * *
해수는 안서은이라는 사기 카드를 이용해서 황장수를 병원 기록에서만 일시적으로 사망 처리를 하고 VIP실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개인 cctv를 두 대 설치했다.
뒤늦게 하루도 병실에 도착하여 황장수의 얼굴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의 체육관에서 훈련을 했기에,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봐서 나름대로 정이 들었는지 그의 상태를 보고 살짝 분노했다.
“누가 그랬습니까?”
“아직 몰라.”
“제가 찾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해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지켜줘.”
하루가 움찔했다.
방금 해수의 목소리는 몇 년 함께 살면서 처음 듣는 톤의 목소리였다.
마른 나뭇가지 하나 꺾을 힘도 없는 느낌인데, 그 안에 깊은 살기가 내재되어 있다.
매우 위험한 상태, 대꾸하기 위험한 상태다.
하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네.”
“내가, 내일 이 시간까지 오지 않으면 이 번호로 전화해서 알려줘.”
“…네.”
해수는 뒤돌아서 두 걸음 옮겼다가 멈칫하더니, 반 정도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누가 오면….”
“오면?”
“죽여.”
“…네!”
해수의 분노에 찬 극단적인 명령에도, 하루는 당차게 대답했다.
그나마 안심이 된 해수는 하루와 황장수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 * *
스슥 스윽-
특수방검복에 방검용 장갑을 끼고, 형사 활동복은 벗는다. 까만 마스크에 까만 점퍼, 워커를 신고 리드빌딩 뒤쪽 외진 곳으로 향했다.
덜컥-
그곳에는 미리 구해둔 대포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 뒷좌석에는 손발이 묶여있는 괴한이 타고 있었다.
그의 독기가 가득했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순한 사슴같은 눈망울이었다.
“가자, 니 주인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