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신고자
곽은정이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서른 아홉, 마흔, 마흔 하나…
어금니 부분에 진짜 피가 방금 묻은 듯한 고퀄리티 오크 가면이, 화면에서 내려가 사라졌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마흔 한 개를 하고 나서야 카메라 앵글이 내려가 턱걸이를 하는 여성의 전신을 잡았다.
가느다란 발목, 균형 잡힌 늘씬한 각선미, 잘록한 허리,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볼록한 승모근.
‘…하루님이다!’
은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여전사의 신체를 지닌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다.
은정은 바로 하루살이의 채널을 구독하고, 올라온 영상을 싹 다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루가 경찰을 그만두고 운동 너튜버를 하는 것을 알게 된 은정은 오히려 더 기뻤다.
경찰이면 찾아가지 않는 한 거의 볼 수 없지만, 너튜버면 업로드 할 때마다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녀는 퇴원하자마자 오크 가면을 따라 사고, 펜카페에 가입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문틀 턱걸이를 구매해 자신의 방 문틀에 설치까지 했다.
“흐읍, 끄으… 허억 허억.”
은정은 맨몸으로 턱걸이에 매달렸다가, 한 개는커녕 올라가지도 못하고 몇 초만에 떨어졌다.
“이렇게 힘든데… 하루느님 그 분은 도대체….”
은정은 초보들이 턱걸이 갯수를 늘리는 방법을 검색하여 턱걸이용 밴드까지 구매하고, 제대로 턱걸이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곽반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딸랑구? 갑자기 왠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해?
“응? 아니 그냥….”
차마 하루를 따라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은정은 소심하게 말을 삼켰다. 그러나 그 모습에 곽반장의 표정은 확 심각해졌다.
“누가 또 괴롭혀??”
아빠의 오해를 파악한 은정이 두 손을 들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아니, 나도 운동 좀 해서 더 튼튼해지구, 그러다 경찰 해도 좋잖아! 아빠 경찰하는 거 넘 멋있어서!”
그렇게 급한 대로 마구 둘러댔다. 그런데 이번에도 곽반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움찔한 은정은 아빠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빠가 멋져보여서…!’
딸의 마음에 심장을 저격당한 곽팀장이,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그래, 아빠도 열심히 할게!”
“으, 응, 아, 아빠 화이팅.”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은 반응에, 은정은 어설픈 얼굴로 웃어보였다.
* * *
“…그랬다니까?”
강력반 사무실.
다른 팀은 사건 뛰느라고 없고, 이번에 신설된 4팀만이 곽반장의 자식자랑을 받아주고 있다.
오갱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에이 설마, 이거 딱 보니까 그냥 은정이가 둘러댄 거네.”
“떽! 둘러대기는 무슨, 우리 딸랑구 거짓말 못 해, 아닌 척 했지만 사실 아빠가 그렇게 멋있었던 거지, 니네도 얼른 결혼해서 우리 은정이같은 딸 낳아라.”
곽반장의 말에 해수는 살짝 시선을 피했고, 막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네! 저도 얼른 결혼해서 꼭 은정이같은 딸 낳고 싶습니다!”
“오~ 올해 국수 먹는 거냐?”
“아 그건 아직, 헤헤”
막내가 뒷목을 긁으며 귀여운 웃음을 짓자, 해수가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얘기했다.
“너 간장 맞아본 적 있냐?”
“어,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헤헤같은 거 하면 헤롱거리게….”
딩 디링 딩 딩딩
해수가 얌전히 협박하고 있던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보통 업무 때 개인 휴대폰은 진동, 무전기는 벨소리다.
곽반장은 바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어 받았다.
“강력반입니다… 음?”
-…그러면 지금 감금된 자택 화장실이라는 거죠? 어딘지는 모르고.
[…네]
-화장실에 창문은 있나요?
[있는데… 작아요. 철창도 있어서 못 나가요. 무서워요…흐읍]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경찰이 위치 파악하고 출동하고 있으니까, 전화 최대한 끊지 마시고…
상황실에서 넘어온 신고전화다.
곽반장은 바로 상황실 직원이 헷갈리지 않도록 무음을 누르고, 이어서 상황실 메신저로 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납치 신고 전화는 일분 일초가 급박한 상황이다.
반장의 표정을 보자마자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4팀 형사들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무전기와 차키, 겉옷을 챙겨들었다.
반장은 이어폰을 끼고 실시간 통화 내용을 들으며 메시지가 떠오르는 무전기 화면을 형사들에게 보여주었다.
[20대 여성 납치 감금 상황]
[납치범 자택에서 수면 중]
[신고자가 속박 끈 끊고 화장실로 도피]
[1층 단독주택으로 추정]
[화장실 창문으로 빨간벽돌 2층 혹은 3층집]
[010-336-001]
신고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강력반으로 연결하느라, 정보과에 위치추적 요청은 아직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보낸 것이다.
오갱은 바로 정보과에 전화해서 위치 추적을 요청했고, 해수는 이어폰을 챙겨 막내와 오갱에게 주었다.
“반장님.”
“어 그래, 너한테 공유할게.”
“예, 그럼.”
현재 상황실 통화 실시간 공유를 해수에게만 하고, 오갱과 막내는 곽반장이나 해수에게 상황이 바뀌면 내용을 전달받는 형식이다.
세 명이 모두 실시간 내용을 들으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여 더 더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경씨, 창문 밖에는 뭐가 보이나요?
[어두워서 잘 안 보여요… 창문이 높아서… 집이 보이는데…]
-집이 어떻게 생긴 집이죠?
[그냥 빨간 벽돌에 2층 집같은…3층인가… 언제 와요? 무서워요, 언니…]
-지금 경찰 출발했습니다. 밖에서 위치를 알 수 있게 창문 밖으로 아무거나 던져주실래요? 휴지라던가.
신고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그녀가 얼마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지 온전히 전해주고 있다.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승용차를 탈 때쯤, 오갱이 무전기를 보며 외쳤다.
“위치 잡았다. 보낼게, 바로 수색 들어가자.”
“예 형님, 먼저 갑니다.”
뚝 뚜둑-
그때, 굵은 빗방울이 몇 방울 차에 떨어졌다. 오갱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비? 이런 시팔…”
해수는 무전기에 뜨는 주소로 바로 내비게이션을 찍고는 오토바이 액셀을 당겼다.
부아아앙-
이어폰으로는 신고 통화 소리, 강력반 무전은 스피커폰으로 들리도록 설정했다.
해수는 마음이 급했다.
하필이면 오늘, 이미 리셋을 한 번 써먹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리셋을 이미 써서 구하지 못했던 하체마비가 왔던 여고생이 떠오른다. 대성의 도움으로 잘 해결되었지만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해서는 안 된다.
곽반장이 시간을 뺄 수 있는 강력팀 한 팀과 지구대 순마 세 대를 지원 요쳥했다는 무전이 어지럽게 들린다.
[배터리가… 아, 휴지 없는데, 아무거나 던질게요.]
-네 인경씨, 잘 하고 계세요. 지금 경찰들 많이 그 위치로 가고 있습니다. 던지는 거 용품 얘기해주시고, 문을 막을만한 건 있나요?
[없어요흐… 청소솔이랑, 배수구 뚜껑이랑… 아, 깨, 깨어난 거 같아요. 어떡해]
숨죽이며 말하느라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비명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곽반장이 바로 팀에 무전을 쳤다.
-화장실 창문 통해서 청소솔 배수구 뚜껑 버렸습니다.
-백넷 청소솔 배수구 뚜껑 송인
-순열하나 송인
-순열둘 송인
위치추적의 정확성은 반경 50미터다. 위치가 뜬 곳은 강진시 외각에 낙후된 주택가,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미로같은 장소였다.
쏴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금씩 떨어지던 비가 장대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위치가 찍힌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르막길에 집이 비스듬히 지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마 신고자가 창문을 통해 던진 청소솔과 배수구 뚜껑도 쓸려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그것을 발견하면 그 근처라는 뜻이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미래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빙의는 발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 프로 발동이 아니라 오히려 발동을 안 할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끼이익-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던 그때, 하얀색 청소솔이 보였다.
해수는 주변을 먼저 둘러보았다. 2층 혹은 3층집으로 보이는 단독주택이 없다.
일단 오토바이에서 내려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냥 누군가가 버린 것인지, 아니면 신고자가 버린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청소솔 끝에, 하얀 솔이 희미하게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다.
해수는 바로 무전기를 들며 위쪽으로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여기 백넷 청소솔 발견, 장앙로 88번길 12-3, 비에 쓸려내려온 것으로 추정, 위로 올라갑니….”
그때, 이어폰 너머로 갑자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나와,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나오면 안 죽이는데, 내가 들어가면 니 모가지 자른다.]
범인의 목소리다.
중저음의 목소리,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린다. 두려움이 아닌 분노로 떠는 것이다. 해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런 범인은 충동이 강하여 납치대상을 빨리 죽인다.
[흐으,. 흐으으… 언니, 언니 어떡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인경씨, 인경씨 진정하세요. 절대 열어주지 마시고…
[나와, 마지막 기회다.]
[어떡해… 나 어떡해, 엄마아…]
[넌 그냥 죽여야겠구나.]
쾅 쾅!
화장실 문을 둔기로 찍는 소리가 마치 해수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쾅 콰직!!
이윽고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흐어엉 흐으! 꺄아악!!]
[이리 와 이 씨팔년아!]
퍽 퍽!
[사,살,살려…]
퍼석-
[꺽]
불길하게 짧은 비명을 끝으로 갑자기 조용해졌다. 상황실 직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다.
[시발년이 감히… 뭐냐 이건, 신고? 경찰? 하]
그때, 범인의 목소리가 확 가까워졌다.
[한 번 찾아와봐, 니네가 이년 뒤지기 전에 올 수 있나 보자.]
뚝-
전화가 끊겼다. 해수는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위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주변을 둘러볼 시간은 없다. 바닥을 집중적으로 보며 배수구 뚜껑을 찾아보았다.
척-
해수의 발이 멈추었다. 아래에는 배수구 뚜껑이 놓여 있었다. 긴 머리카락과 피딱지가 엉켜붙어 있다.
이놈은, 처음이 아니다.
빠르게 걸어 올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에 2층 단독주택이 보인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창문과 철창, 녹슨 파란색 철문, 해수는 고민없이 파란색 철문을 발로 찼다.
콰장창!!
철문이 우지끈 휘어지며 떨어져 나가고, 안에 또 있는 낡은 나무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그대로 열린다. 방바닥에 비에 젖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안쪽에 부서진 화장실 문이 보인다.
쿵쿵쿵쿵!
해수는 다급히 달려가 안을 보았다. 그곳에는 속옷차림의 젊은 여성이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다.
해수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며 속으로 미친듯이 외쳤다.
‘리셋, 리셋, 리셋, 리셋!!’
하지만 야속하게도 리셋은 응답하지 않았다.
두근, 두근.
그때, 맥박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해수는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위로 올라오면 왼편에 부서진 파란 철문! 신고자 상태 안 좋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여기다! 왔다 해수야!!
거의 곧바로 오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보다 직접적인 목소리가 더 가까웠다. 오갱이 바로 들어와 여성의 상태를 보았고, 해수는 그와 눈을 마주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끼 멀리 안 갔습니다. 등산용 워커, 발 260, 키는 165에서 175 사이.”
“어 나도 신고자 인계하면 바로 동참할게, 먼저 찾아.”
해수는 뒤따라 들어오는 막내의 어깨를 툭 치고는 비에 젖은 족적을 찾아나섰다.
비는 소리와 흔적을 감춘다. 하지만 심리는 감추지 못한다.
놈은 통화에서 도망치는 것보다 죽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미 탈출로나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이 근처이면서도 들키지 않을 것 같은 곳.
퉁퉁-
“경찰입니다. 잠시 협조 바랍니다.”
끼익-
낡은 철문이 열리며 한 여학생이 얼굴을 보였다. 그녀의 안색이 하얗다.
“아, 학생 혼자 있어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상한 아저씨 못 봤어요?”
“…네.”
“알겠어요. 아저씨 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해수는 여학생에게 명함을 주고 나왔다.
쿵-
여학생은 문을 닫고 뒤돌아서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거실에는 한 남자가 그녀의 어머니 목에 피 묻은 칼을 겨누고 있었다.
남자는 여학생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
“착하네. 잘 했어, 이제 아저씨한테 가까이 와 봐.”
그때.
콰장창창!!
거실쪽 큰 창문이 깨지며 호랑이처럼 덩치 큰 무언가가 뛰쳐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