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딸이 사라졌다.
하루는 런닝은 웬만하면 밖에 나가서 뛴다. 출근도 하지 않으니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바깥 공기를 마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해수와 황장수의 체육관에 가서 스파링을 하고, 점심에는 너튜브를 보면서 소재 고민을 하기에 저녁때 밖으로 나가서 런닝을 하게 되었다.
그때, 하루의 눈에 그녀가 들어왔다.
‘곽은정?’
자신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챙겨주고 눈을 반짝이던 소녀, 그녀의 호의가 느껴졌었기에 하루도 기분 좋았던 집들이 기억이었다.
학교가 하루가 사는 리드빌딩과 같은 동네이기에 은정이 소름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좋아했던 것이 떠오른다.
‘음?’
아는 척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던 중에 하루는 은정이 시비에 말려든 것을 보게 되었다.
‘오.’
그리고 곽반장의 딸 다운 깔끔한 업어치기에 감탄했다. 그런데 그 뒤로 비겁하게 단체로 공격하는 모습에 하루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하지만.
촉법소년 나이는 넘어갔지만 엄연한 청소년 싸움에 자신이 끼어들면 일이 복잡해진다. 정의를 위해 싸우고 다굴을 맞은 입장이라도 은정이 불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하루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cctv도 없고, 주차된 차도 없다. 장소는 기가 막히다.
하루는 망설임 없이 가방에 있는 오크 가면을 꺼내어 쓰고, 은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에게 달려가 하이킥을 날렸다.
퍼억! 턱-
그 여학생이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엎어졌고, 하루는 발 끝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받쳐 뇌진탕이 오지 않게 보호했다.
그렇게 살짝 내려놓고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손바닥으로 턱을 올려쳤다.
뻐억!
물론 지금도 비명은 없었다. 여학생은 그대로 눈을 감고 풀썩 쓰러졌다.
퍽 퍽!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여자들을, 그것도 여중생을 상대한 하루는 한 방에 풀썩풀썩 기절하는 그녀들을 보며 살짝 당황했다.
그렇게 금세 상황이 끝나고, 은정이 멍한 눈으로 하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루는 그녀를 힐끔 보았다가 살짝 돌아간 가면을 고쳐쓰고 골목길 안쪽으로 도망쳤다.
“저,저기요!”
은정이 뒤늦게 불렀지만 갑자기 나타났던 그녀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눈을 반짝인 은정은 그녀가 사라진 골목길어귀를 바라보며 며칠 전의 집들이를 떠올렸다.
남색 무지 후드티, 동일한 남색 무지 후드티, 레깅스 컬러는 다르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핏이기에 기억한다.
‘저 키에 저 몸은… 언니가 맞아.’
하지만 은정도 그녀가 왜 가면을 썼는지, 왜 도망쳤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멋있어…!’
* * *
며칠 뒤, 길을 가는데 그 장미문신녀 무리가 앞길을 막아섰다.
“야 곽은정.”
“뭐냐, 또.”
은정이 눈을 치켜뜨자 장미문신녀가 이번에는 같잖다는 듯이 피식 냉소를 흘렸다.
“야, 또 그 오크년 불러봐.”
“…뭐?”
그녀 뒤로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복을 입고 있는 것이 성인이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는 양아치들로 보였다. 드러난 팔뚝과 다리에 문신이 보인다.
아무리 깡이 좋은 은정이라도 내일이 없어보이는 그들을 보자 얼굴이 굳었다.
표정변화를 감지한 장미문신녀가 이죽거렸다.
“왜, 오늘은 없냐 싸방년아?”
“꺼져라.”
그녀를 무시하며 옆으로 피해서 가려고 할 때, 코에 피어싱을 한 남자가 또 은정을 가로막았다. 그가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입을 열었다.
“와, 이쁘네? 오빠랑 사귈래?”
“…미친.”
은정이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서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바로 거친 손길이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꺄악-”
* * *
강력반 사무실.
곽반장은 아무래도 동고동락한 강력4팀이 편하여 시간 날 때마다 그쪽에서 어슬렁거렸다.
“아 형, 반장님 좀 어슬렁거리지 말고 일 좀 해요 일”
“이게 일하고 있는 거야 임마, 니네가 일 잘 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감독. 내가 팀장인 줄 아냐? 나 반장이야 곽반….”
지이이잉 지이이잉
[마느님]
그때, 와이프에게 전화가 울렸다. 곽반장은 바로 사무실 밖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전화를 받았다.
그 뒷모습에 오갱이 쯧쯧거렸다.
“하여튼 형수님한테는 꼼짝 못해.”
“형님은 꽉 잡고 사십니까?”
“나? 당연하지~ 남자가 가정에서 기가 죽으면 안 돼, 해수 너도 명심해, 막내도.”
막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옙 알겠습니다!”
같은 시각, 곽반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은정이가? 어, 금방 들어오겠지, 어… 음… 일단 알겠어,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딸이 들어올 시간이 넘었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소식이었다.
툴툴거리기는 해도 부모와의 연락은 항상 잘 받는 딸이기에 곽반장도 조금 마음이 거슬렸다.
그는 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흠….”
아직 하교시간이 지난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잠깐 배터리가 나가서 연락이 끊겼을 수도 있다. 지금 실종신고를 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혹시나….
“반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반장이 한 시간 째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하자 막내가 물었다.
“어? 아, 뭐 별거 아닌….”
오갱이 끼어들었다.
“별거 아닌 게 아닌데? 지금 낯빛이 거무튀튀한데?”
“하아… 아 그게, 은정이가 집에 안 들어왔다고, 친구들도 못 봤다고 하고. 근데 학교 끝난 지 두 시간도 안 지나서 그냥 배터리가 나갔나 싶기도 하고….”
그때, 해수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오팀장님, 지금 사건 잠깐 미루죠.”
“어? 아 그럴 수 있지, 바빠? 안 급한 건이니 하루쯤 미뤄도 돼.”
해수는 바로 내선전화를 들며 말을 이었다.
“반장님 따님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아니, 어, 어…… 그래 공일공….”
해수는 바로 정보과에 위치추적을 요청하고,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혀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은정을 찾기로 했다.
* * *
시내에서 곽은정을 찾기 시작한 지 1시간 째, 곽반장도 직접 나와서 찾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초조해졌다.
“…어 어, 강력4팀 팀원들이랑 찾고 있는데, 이제 지원 부르려고, 연락 없었지? 어, 아니, 걱정하지 마, 은정이 똑똑한 애니까… 혹시나 무슨 전화 올 지 모르니까 일단 끊어, 휴대폰 충전 잘 해놓고.”
전화를 끊는 곽반장의 얼굴은 며칠은 굶은 것처럼 핼쑥했다.
“…이 학생 본 적 있으십니까?”
“아,아니요….”
오갱과 막내는 학교 인근 cctv를 수거하러 갔고, 해수는 반장과 함께 수색을 하고 있을 때였다.
길목에서 꺽을 때, 돌연 하루와 마주쳤다.
“응?”
“어, 우.연.입.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사람이라도 찾습니까?”
“뭐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수는 그녀의 행동이 굉장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금은 급한 건이 따로 있었기에 넘겼다.
“반장님 딸 은정이가 지금 들어올 시간이 넘었는데 안 들어왔어, 친구들도 못 봤다고 하고, 그래서 수색 중이야.”
“혹시, 원한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단순 납치가 아니라?”
“흠….”
해수는 하루의 어색한 등장이나, 바로 원한관계를 말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러면 좋지.”
하루는 반장의 눈치를 보며 해수의 소매를 잡고 어딘가로 잡아끌었다. 해수는 지금 그녀에게 느껴지는 이질감의 원인을 알려줄 것임을 눈치 채고 못이기는 척 끌려갔다.
“해수님, 사실 며칠 전에 제가 조깅을 하다가…”
하루는 그 여학생들 모두 기절시킨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은정이 곤경에 처했을 때 빼내주었다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했다.
“그 학생들이 의심이 된다?”
“네, 기간도 그렇고 딱 처음 들었을 때 떠올랐습니다.”
“음… 그럼 그 학생들을 먼저 찾아야 하는데…”
“그 학생들 모두 얼굴 기억합니다. 두 명은 이름도 알고 있습니다.”
“이름까지?”
하루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표.”
해수는 오늘 한번 더 깨달았다. 하루는 기억력이 좋다.
곧이어 반장이 지원요청한 순마 두 대가 도착하고, 해수와 하루는 학교를 찾아갔다.
아직 영장이 없었기에 개인정보는 열람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 남아있던 선생님은 거부했다.
빨간색 뿔테 안경을 쓴 선생님이었다.
“알려줄 수 없어요. 잘 아시는 분들이… 영장 가져오셔야죠.”
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영장 나올 때까지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기사나 여론에서 선생님을 질타하면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 선생님은 그저 절차를 정확히 지키셨을 뿐이라며 제가 화 난 네티즌들을 잘 타이르겠습니다.”
“아… 그…!”
선생님은 못이기는 척, 결국 하루가 기억하고 있는 여학생 두 명의 연락처와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학생은 두 명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이 꺼져 있지는 않았다.
영장도 받지 않았고 경찰이 아닌 하루를 끌여들여서 얻은 정보이니 정보과에 알리지는 못하니, 영수에게 두 여학생의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정영수: (링크)(링크) 두 명 다 같은 곳에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영수의 말대로 두 명의 위치는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보통 위치추적을 하면 전방위 50미터로 잡히는데, 그 원이 거의 똑같이 중첩되었다.
위치는 원룸촌, 두 여학생의 주거지와는 전혀 다른 주소였다.
일단 찾는 게 먼저다. 이번 추적이 허탕을 치더라도 빨리 찾아보고 허탕을 치는 것이 낫다.
지금 딱히 다른 단서가 있어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해수는 바로 무전을 들어 상황을 팀원들과 공유했다.
“최근에 곽은정 학생과 마찰이 있었던 학생들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두 명 확인했는데 위치 무전에 올립니다.”
-아? 어… 송팔
-송팔
여러가지가 생략된 말이지만, 팀원들과 곽반장은 해수가 어떻게 벌써 위치추적까지 해서 두 여학생을 찾아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해수를 믿고 우선적으로 수색을 할 뿐이다.
위치로 가서 수색을 시작한 지 30분, 원룸 주차장 안쪽에서 한 무리가 담배를 태우고 있다.
꽤 어려보인다. 혼자 살거나 대학생들이 사는 원룸촌에는 어울리지 않는 미성년자들.
해수는 하루의 팔을 들어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워 연인처럼 보이게 하고는 천천히 그곳을 지나가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하루는 흠칫 놀랐지만 아랫입술을 깨물며 조신히 같이 걸음을 옮겼다.
“…야 근데 시발 우리 다 좆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여자애들이 더 해, 존나 겁이 없어, 뒷감당 어떻게 할려고.”
“뒷감당 생각했으면 우리도 여기까지 안 왔…응?”
그때, 공동현관 쪽 센서등이 켜지며 그들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학생이 본능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사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번들거리는 안광을 지닌 맹수가 우뚝 서 있었다.
해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들, 형하고 대화 좀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