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74화 (174/255)

174. 수상한 집들이

“어,어….”

문신남은 기분이 나빴지만 그보다 더한 두려움에 휩싸여 신해수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곽반장은 손을 휙휙 저어 해수의 손을 내리게 하고는 문신남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아 별거 아니야, 생각보다 일찍 왔네? 일은, 마무리 잘했어?”

“예 뭐, 전문가들 불러서 인계했습니다.”

“어 잘했네, 아이… 돌격아, 피 좀 묻히고 다니지 마, 우리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광고하니?”

‘뭐하는 사람? 피?’

문신남은 둘의 심상치 않은 대화를 본의아니게 귀를 쫑끗하고 듣고 있다가, 곽반장의 말에 해수의 상의로 시선이 돌아갔다.

붉은 피가, 그것도 꽤 많은 양이 묻어 있다.

“아, 죄송합니다.”

“니 얼굴에 옷에 피 묻히고 다니면 무서워, 일처리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번도 아니야? 사람을 막, 자주 처리했어?’

문신남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마구 떨린다.

“예, 지금 갈아입겠습니다.”

해수가 그곳에서 바로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짐승의 몸이 드러났다.

예리한 것에 찢긴 수많은 흉터, 그것은 절대로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다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만 생기는 흉터였다.

문신남은 덜덜 떨면서 자연스레 곽반장에게도 시선이 돌아갔다. 지금 보니 곽반장의 팔뚝 안쪽에 흉터가 슬쩍슬쩍 보인다.

문신남은 이제 확신했다. 이들의 대화에 자신이 오해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슬그머니 어깨를 보였던 반팔 소매를 내리고 두 손을 조신하게 모았다. 차마 그곳을 몰래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건 경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곽반장이 문신남을 보며 물었다.

“뭐해요?”

“에, 예?!”

곽반장의 부름에 문신남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표정에는 겸손과 반성이 가득하다.

“경비원님한테 할 말이 남았어요?”

문신남은 입을 쩍 벌리더니 두 손을 들고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아,아,아닙니다! 제가 자,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반성이 빠른 청년이네, 그래요. 가봐요.”

가보라는 말에 문신남은 넙쭉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외쳤다.

“네,넵!? 네엡! 감사합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문신남은 후다닥 도망가다가 멀지 않은 화단에 쭈그려 숨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곽반장은 강력4팀 팀원들에게 분리수거통 하나씩 나눠주었다.

“…사진 보니까 장난 아니더만.”

“예, 망치로 얼굴을 뭉개놔서…”

‘여,역시… 맞아, 옆집에 저런 사람이 이사가 오다니…!’

* * *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곽반장의 집.

오후 7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기에 와이프는 물론 아들, 딸도 모두 있었다.

곽반장은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소개시켰다.

“여기 이 귀염둥이가 우리 아들 성재! 이제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입니다, 아버지.”

오갱이 성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이구 아들이 아빠 닮아서 똑 부러지네.”

“감사합니다.”

성재는 강력팀 팀원들을 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해수는 이상하게도 저 초등학생의 눈빛에 존경심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는 우리 예쁜 딸! 곽은정이, 중3, 맞지?”

“응, 안녕하세요.”

은정이 손도 공손하게 모으고 허리를 숙이자 강력팀 삼촌들이 아빠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신체는 성인과 비슷한 중학교 3학년이면서 이렇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건, 그만큼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은정이 많이 컸네, 아저씨 기억해?”

“아, 잘….”

“하하하! 아냐아냐 괜찮아, 벌써 여기 온 지 5년은 지난 거 같은데 기억하기가 쉽지 않지.”

민망하여 혼자 손뼉을 치는 오갱.

막내는 은정과 곽반장의 와이프를 힐끔힐끔 보다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따님이 다행히 형수님을 닮았군요! 학교에서 인기 많겠다!”

“뭐, 뭐 이 놈아? 다행히? 여보 얘네가 이래, 막내도 이렇게 이제 같은 팀 아니라고 막 까분다.”

“뭐 맞는 얘기 했는데요 뭘, 우강철씨? 과일 좀 더 갖다 드려야겠네.”

투덜대던 곽반장이 옆을 흘낏 바라보았다.

아들의 시선이 해수에게 꽂혀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것을 눈치 챈 곽반장이 해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그래, 이 두 삼촌은 처음 보지? 이 삼촌은 신해수, 나쁜 놈들 때려잡는 걸, 아니 잡는 걸 엄청 잘 해, 최고야.”

“알아요. 신해수 경위님, 팬입니다.”

아들 성재가 말을 하며 해수에게 a4용지와 볼펜 하나를 내밀었다. 해수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 자신의 싸인을 하며 물었다.

“반장님 아들이 팬이라니, 영광이군, 곽,성,재군….”

해수는 싸인을 마치고 그에게 다시 a4용지를 내밀었고, 성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따라 아들의 낯선 모습에 곽반장은 머쓱하게 웃었다.

“허헛, 참, 우리 아들이 신형사 팬인 줄은 몰랐네, 한 명이 언제 오려나, 올 때가 됐는데…”

곽반장이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 오갱이 물었다.

“또 올 사람이 있어? 배달음식?”

“아, 내가 하루씨 불렀어, 돌격이는 들었어?”

“퇴근하고 바로 오느라고 못 들었습니다.”

“아아 하루씨? 잘 불렀네, 잘 불렀어. 한 번 강수대는 영원한 강수대지.”

“오, 저도 좋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이 울렸다.

디리링 딩-

인터폰이 울리자마자 딸 곽은정이 가장 먼저 후다닥 달려가 공동현관 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현관문을 보며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하루라는, 유일무이한 강수대 여형사의 활약은 익히 들었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도 기피한다는 형사계, 그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강수대에 들어간 것만 해도 멋있는데, 엄청난 실력자라고 들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한 만큼, 아직 얼굴을 미디어에서도 찾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남자못지 않게 덩치도 크고 몸도 굵고 피지컬로 밀리지 않는 사람일까? 아니면 날렵한 몸에 멋진 근육이 붙어있는 강인한 느낌일까?

삐빅 철컥-

곽반장이 문을 열어주고, 그 뒤로 후드를 눌러 쓴 하루가 들어왔다.

‘어?’

스니커즈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하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무슨 모델처럼 다리가 늘씬하게 쭉 뻗어있다.

이 사람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점점 은정의 시선이 올라갔다.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고 왔음에도 살짝살짝 느껴지는 잘록한 허리, 자기주장이 강한 흉부, 가느다랗고 새하얀 목, 그 사이 볼록 올라와 있는 승모근.

승모근으로 이 여자가 말로만 듣던 하루라는 여형사라는 의심을 살짝 거둘 수 있었다.

스윽-

그리고 후드를 벗으면서 얼굴이 사르륵 드러났다.

길게 뻗은 눈꼬리, 가지런히 내려앉은 속눈썹, 무언가 사연이 있는듯한 깊은 눈동자.

은정은 같은 여자인데도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담백한 중저음에 청량감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까지, 소위 말하는 다나까 말투는 은정의 숨어있는 덕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후려치고 말았다.

“여기 앉으세요!”

“…네?”

앉을 자리를 찾으려 두리번 거리는 모습에 은정은 급한 마음에 하루에게 자기 옆자리를 권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희귀한 행동에 웃음을 지었다.

이제 모든 멤버가 모여 거실에 다같이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곽반장의 와이프가 하루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하루씨 보니까 나 젊을 때 생각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곽반장은 하루와 와이프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아아! 여보야가 훨씬 더 이뻤지!”

“거짓말.”

아들 성재가 구석에서 작게 중얼거렸지만, 이는 잠잠히 묻혔다.

“이것도 드세요!”

“네, 은정양도 드십시오.”

은정은 하루 옆에 딱 붙어서 눈을 반짝이며 먹을 것을 갖다 바쳤다.

덕분에 어쩌다보니 주변에 있던 반찬들이 모두 하루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곽반장은 그런 은정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앙칼진 고양이가, 하루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됐네.’

식사가 끝난 후에도 은정과 성재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평소 곽팀장의 친구가 찾아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아들, 딸, 너네 이제 방 들어가서 놀아, 왜 안 가?”

“전 바쁩니다. 아버지, 해수형님, 그 다음 사건이 어떻게 됐는지 듣고 싶습니다.”

성재는 해수에게 밝힐 수 있을 만큼의 사건들을 들으며 눈을 반짝였고.

“방에 들어가서 할 거 없어요. 여기가 좋아요.”

은정도 순간 그 앙칼진 눈빛이 나왔다가, 하루를 보며 다시금 순한 양처럼 수줍어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거실이 꽉 찬 상태로 집들이가 시끌벅적하게 지나갔다.

* * *

하굣길, 곽은정은 그날 이후로 마음이 무언가 붕 뜬 것처럼 들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하루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장면은 머릿속에 시도 때도 없이 수백 번이고 떠올랐다.

‘아빠한테 경찰 하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까? 아, 그때 언니한테 경찰 왜 그만 뒀는지 물어볼껄, 그건 아닌가, 말이라도 많이 걸껄, 병신같이 가만히 옆에 있기만 해서….’

짜악-!

그때, 한 소리가 은정의 귓가를 스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골목길 안쪽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 대여섯 명이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벽에 한 여학생이 등을 대고 있고, 바닥에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이 떨어져 있다.

은정은 고민하지 않고 그쪽으로 바로 발을 옮겼다.

“야!”

은정의 샤우팅에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여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은정은 성큼성큼 걸어가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집고,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있는 여학생에게 건넸다. 그녀는 앞에 있는 일진녀들의 눈치를 보며 그것을 받고 다시 쓰지는 못했다.

“연서, 가자.”

“어? 아, 이건 그, 내가 잘못해서….”

“니가 잘못해도 니 부모도 너 못때려, 근데 이 년들이 뭔데 널 때려?”

은정의 발언에 일진녀 중에 방금 따귀를 올렸던 여학생이 눈을 추켜떴다. 그녀의 손목에는 작은 장미 모양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뭐, 년?”

그 뒤에 서 있던, 은정을 알고 있는 여학생들이 지원사격을 한다.

“해튼 이 썅년은 지 아빠 경찰이라고 존나 나대.”

“곽은정 미친년 진짜 뒤지고 싶은가 봐?”

“야 강연서, 너 꺼져, 곽은정 너 씨발 오늘 한 번 뒤져보자.”

은정은 눈을 부릅뜨며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 한 번 자신 있으면 해보던지, 이 쪽수만 믿고 까부는 양아치 년들아.”

장미문신녀는 은정이 확 가까이 다가오자 한 걸음 물러서며 주춤했다가 주변 친구들을 보고는 더욱 버럭했다.

“이런 시발년이!!”

그러면서 한 손을 번쩍 들어 휘둘렀다. 동시에 은정의 눈이 반짝였다. 두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으면서 몸을 돌려 엉덩이를 그녀의 배에 갖다 대고 허리를 숙였다.

후웅-

“어?”

쾅!

장미문신녀의 몸이 공중에서 휙 돌아 바닥에 내리찍혔다. 여중생에게는 보기 힘든 완벽한 업어치기였다.

“야이 미친년아!”

동시에 다른 여학생들이 달려들어 은정에게 발길질을 했다. 눈으로 많이 보고, 연습은 몇 번 하지 못했던 은정은 이렇게 다수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은정 역시 장미문신녀와 함께 엎어져 밟히던 그때, 어딘가에서 발이 쭉 뻗어와 한 여학생의 얼굴을 갈겼다.

“꺄아악!”

그때 느껴지는 이질감에 은정이 고개를 들었고.

‘으,응?’

눈앞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오크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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