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73화 (173/255)

173. 옆집에 수상한 사람이 이사왔다.

일성전자 본사 로비, 사장 배신주는 미팅 후 사무실로 복귀하고 있었다.

“사장님! 배신주 사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작은 소란에 시선이 모이자, 배신주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배달부로 추정되는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청년에 손을 흔들고 있다.

“뭐야? 빨리 내쫓아.”

“예, 죄송합니다.”

그가 인상을 쓰며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발을 옮기려고 할 때, 청년이 소리쳤다.

“드릴 것이 있습니다! 엄청 중요한 거라고 했어요!”

“강제로 끌어내.”

비서실장이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막 내렸을 때, 배사장의 발이 멈추었다.

“잠깐.”

그는 주변 시선을 둘러보다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데려와.”

배사장이 배달부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는 어떤 한국말이 서툰 미남이 고액을 주며 퀵서비스를 시켰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이걸 나한테 무조건 직접 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네, 맞습니다!”

“알았어요. 가보세요.”

“넵, 감사합니다!”

싱글벙글한 얼굴의 배달부가 나가고, 배신주는 두꺼운 서류봉투를 바로 뜯어서 테이블에 쏟았다.

촤르륵

“이건….”

단번에 딱딱하게 굳은 배신주의 얼굴.

맨 첫장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칠성회 측에서 몰래 계획하여 일성을 무너트리기로 했다는 증거들이었다.

녹음, 녹화, 결재 서류 등 증거는 넘쳐났다. 물론 불법 증거물이지만 천선생을 향한 배신주의 복수심을 불태우기는 충분한 자료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알아야지, 천선생 이 새끼… 야, 애새끼들 싹 모아.”

“예 알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천선생의 집무실.

“…그렇게 됐다고요.”

“네.”

“흠….”

천선생은 아무 말 없이 집무실을 왔다갔다 했다. 마실장은 가만히 서서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5분을 넘어가지 않았을 때, 드디어 발이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마실장을 보며 검지를 들어올렸다.

“신형사 건은 일단 놓고, 일성이 물기 전에 머리부터 따세요. 그 야만스러운 놈들을 천천히 자멸시키기에는 너무 많이 알아.”

“예, 선생님.”

담담한 얼굴의 마실장이 살짝 목례를 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 * *

달빛이 환한 밤.

일성전자 주차장에 봉고차와 승용차 수십 대가 모여든다. 그곳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려서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풀었다. 그 수가 백 명을 훌쩍 넘겼다.

배신주 사장의 사무실.

그의 비서가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배사장에게 말했다.

“천선생 위치 파악됐습니다.”

배신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야.”

“파주 별장이라고 합니다.”

“팔자 좋네, 능구렁이… 가자, 흰머리 뽑으러.”

콰광쾅!

말이 끝나기가 문이 부서지며 한 사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부하다.

스윽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본능적으로 배신주는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을 거의 꽉 채우는 거구의 남자가 안광을 빛내고 있다.

거구의 얼굴을 확인한 배신주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거구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배신주를 보며 정중한 톤으로 말했다.

“오늘,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 * *

[일성전자 사장 배신주, 본사 건물에서 투신자살]

…후회하고 있고, 죽음으로 죄를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자필 유서를 남겨 충격을 주었습니다.

┗큐브: 죽으면 끝남? 해쳐먹은 돈은 또 어디 해외 돌다가 들어오겠지

┗마지막잎새: 회장은 안 죽냐?

┗바람마카롱: 와 진짜 어쩜 이렇게 레파토리가 다 똑같냐

┗곰플: 시신확인 잘해라, 다른 통나무 쓰고 해외로 도피 백퍼다

┗휘오레c: 죽음으로 죄를 어떻게 책임짐?

┗channel0: 나는 이 기사에 댓글이 많은 게 더 신기하다

갑작스런 배신주의 자살에 신해수는 살짝 당황했다.

그가 보기엔, 전혀 그럴 만한 인물은 아니었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상황이 돌아가는 게 매우 수상했다.

연이은 일성 회장의 재판은 불리하게 돌아가 1심보다 형량이 2배 가량 늘어났고, 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역대급이라 봐도 될 정도로 빠르게 이곳저곳의 기업에서 저렴하게 인수해갔다.

해수는 일성그룹 계열사룰 인수하는 기업들을 유심히 보았다.

‘분명 그들이다. 배신주를 자살시킨 것도, 계열사를 인수하는 자들도.’

저들과 얽힌 사건들은 꽤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로이스킴이 준 자료들은 워낙 큰건들이어서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해수 본인도 작은 비리들을 수사할 능력은 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검사에게 맡겨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기업을 무너트릴 수는 있지만, 일성이라는 본보기가 생겼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로이스킴이 남긴 말처럼, 그들을 한 번에 와해시키려면 큰 힘을 지닌 자들이 움직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해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기회가 올 거야.’

해수는 몸을 웅크린 채 기다리며 이것을 효율적으로 터트려줄 대상을 찾기로 결심했다.

삐빅 철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소파에 하루가 보이지 않는다. 신발은 분명 있는데.

-안녕하세요. 하루살이입니다. 오늘은 풀업 마흔 다섯 개를…

“…음?”

해수는 하루의 목소리에 이끌려 운동방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운동방은 유리문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유리문너머에는 웬 초록색 괴물(?) 한 마리가 풀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해수의 동공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하루가 어디 갔지? 아니, 왜 저러는 거지? 그만의 일탈 방법인가? 휴직 후 스트레스가 많았나? 자세가 더 좋아졌군….’

해수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가,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뒷걸음질을 쳐서 다시 집을 나섰다.

그녀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 * *

짹짹 짹짹

감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이 대청마루를 덮는 전통 한옥집,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 퍼진다.

한 중년인이 대청마루에 앉아 테블릿을 넘겨대고 있다.

“쯧쯧, 청장이라는 놈이, 어쩐지 눈빛부터 여우눈깔같더라니.”

문이 열리며 딱 붙는 청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나왔다.

“딸랑구 일어났어? 아니, 어떤 놈 만나려고 이렇게 이쁘게 꾸몄어?!”

“아빠, 나 이제 서른셋이에요. 어떤 놈 좀 빨리 만나라고 밀어줘도 모자랄 판에… 출퇴근길이라도 빡세게 꾸며야 파리든 뭐든 꼬인다니까.”

“아냐, 우리 딸랑구는 그냥 아빠 옆에서 평생 있어.”

조아라는 마루 밑에 놓인 구두를 신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는 신해수씨 만나보라고 등 떠밀더니….”

조아라는 조감찬이 들고 있던 테블릿을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빠, 그렇게 거슬리면 국회의원이라도 하세요.”

“아… 그럴까?”

“그럴까는 무슨, 국회의원이 하고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허, 이 아빠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어떻게요?”

“기다려봐.”

조감찬은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통화버튼을 눌렀을 때 뒤늦게 화면을 본 조아라의 눈이 커졌다.

[오성주 의원]

오성주 의원은, 3선 국회의원이다.

* * *

일성그룹과 충남경찰청장과의 유착관계는 청장이 극구 부인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규율대로 했을 뿐이라고 일관성있게 밀어붙였고,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위법 증거물이 나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미 일성이 무너지고 있어서 청장 쪽에 대중의 관심이 없어 유야무야된 것이 가장 컸다.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고 있던 곽반장이 확 인상을 찌푸렸다.

“아, 킹받네.”

지나가던 오갱이 흠칫 놀랐다.

“잉? 뭐지? 그 소름돋는 말투는?”

깐죽거리는 오갱의 얼굴을 보고는 곽반장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이게 어디서 반장한테-”

“워워, 강력반장이 팀장 때린다!”

그러자 어디선가 곰같은 덩치가 쏜살같이 달려와 오갱의 왼편에 섰다.

“우리 팀장님 때리지 마십시오!”

해수도 오갱의 오른쪽 뒤에 스윽 서서 곽반장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곽반장이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와 진짜 이 자식들이… 내가 반장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니네 기저귀 갈아주던 때가 엊그젠데 이럴 수 있어?!”

그 말에 해수가 슬쩍 걸음을 옮겨 곽반장 뒤에 섰다. 금세 곽반장의 표정이 환해진다.

“그렇지, 역시 돌격이는 의리를 안다니까.”

“해수 이런 박쥐같은 놈!”

“야 시끄럽고, 오늘 니네 시간 되냐?”

“무슨 일이십니까?”

“집들이, 나 이사 했잖아, 오늘 아님 다음주에 하고.”

“오오….”

“막내 됩니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반장님 초댄데.”

곽반장은 해수의 멘트에 그의 팔뚝을 툭툭 치며 감탄했다.

“뭐지? 이 로봇이 업데이트됐나, 멘트가 좀 부드러워졌다?”

* * *

곽반장의 집.

곽반장은 강력4팀보다 먼저 퇴근하여 집안 치우기를 돕고 있었다.

그는 후줄근하게 입고 분리수거된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철컥, 스윽-

그때, 앞집도 문이 열리며 검은색 반팔에 슬리퍼를 끌고, 한쪽 팔에는 도깨비 문신을 한 사내가 껄렁거리며 나왔다.

곽반장은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옆집이시죠? 이사 왔습니다.”

“예에.”

문신남은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폰만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는 길, 그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우, 씨 냄새….”

“아 죄송합니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분리수장으로 가는 길, 옆집 문신남도 같은 방향으로 간다. 그러다가 경비원이 보여서 곽반장이 인사를 하려는데.

“야!”

문신남이 대뜸 경비원에게 윽박을 지른다. 경비원은 이미 익숙한지 고개를 조아리며 그에게 달려온다. 얼굴을 보니 문신남의 아버지뻘이다.

“예예.”

“내가 시팔 저 자리 다른 새끼들이 주차 못하게 하라고 했지? 이 좁아터진 자리에 내 차 댔다가 누가 긁으면 어쩔 거야, 니가 책임질 거야? 이거 긁히면 니 월급으로 모자라!”

“아 그게, 민원이 들어와서….”

“아니 썅 민원 그딴 건 모르겠고, 자리 하나 못 맡아놔? 내가 낸 관리비 쳐먹고 살잖아,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이 아저씨야아!”

그러면서 한 손을 들어 귓방망이를 때리려는 시늉까지 한다. 보다 못한 곽반장이 다가갔다.

“저기요?”

문신남은 왜 자신을 부르는지 예상하고 기선제압을 위해 인상을 한없이 찌푸리며 곽반장을 노려보았다.

“아이 씨… 뭐?”

그러나 사람 잡아먹는 조폭들을 20년간 상대하던 곽반장의 눈에는 갓태어난 고양이가 하악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곽반장은 그의 의도가 보여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분이 그쪽분 개인 경비원이세요? 경비원님, 이분이 따로 월급 주세요?”

“아, 개인은 아니고, 월급은 관리비에 포함된….”

“그게 뭔 개소리야?”

“그… 개소리는 그쪽이 하시는 거 같은데, 우리 아파트는 경비원님이 입주민의 주차 자리를 맡을 의무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안 그래요?”

곽반장이 경비원을 보며 묻자, 그가 쭈뼛쭈뼛 바로 대답을 못 했다.

“그게… 그렇긴 한데….”

“아저씨, 그런 거 다 내가 내는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어, 그 비싼 관리비 처먹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니 씨발, 그러거나 말거나 뭔 오지랖이지? 아저씨, 무서운 거 없어?”

문신남은 자신의 반팔 소매를 어깨 끝까지 걷어 문신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며 곽반장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위협 목적이 다분하다.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곽반장 코 앞까지 붙었다. 키가 커서 곽반장이 올려다봐야 한다.

곽반장은 그의 귀여운 도발에 또 다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웃어?”

“하하, 진짜 무서운 걸 모르시네.”

그때, 뒤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때로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외형이 추측되는 순간이 있다. 문신남은 흠칫하여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터질듯한 근육을 지닌 곰같은 사내와, 사람을 맨손으로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한 소름끼치는 인상의 사내와, 살인청부업자 조선족 두목같은 단단한 체형의 사내가 있었다.

문신남은 28년 살면서 단연코, 이 사내들처럼 공포스러운 인상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사람을 찢어 죽일 것 같은 인상의 사내가 문신남의 머리에 손을 툭 올리며 말했다.

“이 아가가 뭐라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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