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72화 (172/255)

172. 변심

불 꺼진 집무실.

달빛이 비추는 통유리 앞에 선 한 남자가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굽어보고 있다.

깔끔하게 넘긴 하얀 머리에 번들거리는 피부, 천선생의 뒤로 마실장이 소리없이 다가왔다.

“로이스가 신해수와 접촉 중입니다.”

“그래요. 그 친구는 잘 해내겠지, 일성은?”

“로이스에게 린치를 했습니다. 신해수가 현장에 있어 큰일은 면했습니다.”

린치라는 말에 천선생이 고개를 돌리며 혀를 찼다.

“쯧, 그래서 안 되는 거에요. 일성은 역시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마실장이 거들어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마실장의 모습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둥 둥 둥 둥

음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클럽 안, 로이스킴은 유리조각에 긁힌 얼굴을 닦지도 않고 댄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

큰 키에 훤칠한 얼굴, 감춰지지 않는 부티는 언제나 로이스킴 주변에 여자가 꼬이게 만든다.

그는 방금 전까지 그 큰일을 겪었음에도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여자들과 밀착댄스를 췄다.

신해수는 멀찌감치 떨어져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음료수를 마시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로이스킴은 그런 해수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레이디 이제 그만, 스톱, 나 쉬고 싶어요.”

“아 쉬러 가자고요?”

“오 노노, 나 쉰다고, 즐거웠어요.”

그는 해수가 있던 테이블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곧 해수가 왔고, 그는 금세 굳은 표정을 지우고 잔을 들었다.

“부라더! 오늘은 한 잔 해야지! 대리 부를 꺼야, 마셔 마셔!”

해수는 피식 웃으며 잔만 부딪혔다.

로이스킴은 한 잔을 쭉 들이키고는 말없이 해수를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치워, 느끼하다.”

“부라더, 날 백프로 믿어?”

해수는 손으로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밀며 대답했다.

“안 믿어.”

“그럼 왜 아까 나 대신 쇠파이프 맞았어?”

해수는 안주를 집어먹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경찰이니까.”

“오 쉣, 부라더 방금 로이스보다 더 느끼했어.”

로이스킴은 두 손으로 팔뚝을 비비면서 오도방정을 떨었다. 그러나 해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어쩐지 복잡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 * *

그날 밤, 오랜만에 게임에 접속한 하루는 우편이 하나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으니당: 하루씨 이거 보면 신해수씨에게 전해줘요. 당신의 새로운 파트너 로이스킴은 칠성회 회원일 확률이 높습니다. 로이스킴은 협상전문가입니다.]

“아….”

하루는 칠성회가 뭔지 몰랐지만, 해수에게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띠딕- 철컥

때마침 현관문이 열렸다. 하루는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해수님! 서은… 헛!”

하루는 해수의 상태를 보고는 기겁했다.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얼굴도 날카로운 것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해수가 놀란 토끼 눈을 한 하루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들어와 겉옷을 벗었다. 그러자 팔뚝과 어깨에 쇠파이프를 막다가 생긴 상처들이 더 두드러졌다.

하루는 어디선가 날카로운 단검을 하나 챙겨와서는 허리춤에 꽂고 살기어린 눈으로 해수에게 말했다.

“로이스킴이라는 자가 그랬습니까? 제가 당장 그 자의 목을 병뚜껑처럼 따버리겠습니다.”

해수는 거울 앞에서 상처를 살펴보다가 특수방검복까지 차려입은 하루를 보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별 거 아니니까 난리 피우지 마.”

그리고 다시 상처를 보려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네가 로이스킴을 어떻게 알아?”

하루는 로이스킴을 본 적도, 해수가 이름을 알려준 적도 없다.

“서은님에게 들었습니다. 그 자는 칠성회의 회원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자는 협상가입니다. 그 자와 파트너를 하지 마십시오.”

“서은? 전화로?”

안서은이 칠성회의 감시를 받는다는 가정 하에, 서은과 하루가 연락을 하면 하루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연락을 금하도록 했다.

하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엑시트에서 대화하였습니다.”

“아….”

해수는 그제야 안서은이 감금당했을 때 어떻게 연락을 취했었는지 떠올렸다.

“지금도 대화가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서은님은 거의 풀 접속입니다.”

해수는 하루의 계정으로 서은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하루살이: 안서은씨, 신해수입니다.]

[서으니당: 아 네, 로이스킴 그 사람이 먼저 접근해왔나요?]

[하루살이: 예,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그가 보고 있어서 일부러 강하게 말했습니다.]

[서으니당: …그러셨구나, 진짜 상처받았는데.]

[하루살이: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서으니당: 나중에 갚으시죠, 밥이든 뭐든, 아무튼 그 사람이랑 놀지 마세요.]

[하루살이: 알고 있습니다. 그가 직접 밝혔습니다.]

해수는 서은에게 로이스킴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이제 서은이 있는 대성이 칠성회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서은이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으니당: 그래도 위험부담이 큰데… 그는 협상가답게 수단과 방법의 폭이 넓습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해수씨를 함정에 빠트릴지 모릅니다.]

[하루살이: 거짓말의 기본은 9할의 사실에 1할의 거짓 아닙니까? 베테랑 형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면 적어도 절반 이상은 사실을 섞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이 위험한 동행을 지속할 생각입니다.]

[서으니당: 해수씨가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저한테 이걸로 도움 요청해주세요. 언제나 접속해 있으니까.]

[하루살이: 감사합니다. 저희가 다시 파트너가 될 날을 위하여.]

해수는 돌연 하루의 캐릭터로 맥주잔을 들어올리는 포즈를 취했다.

[서으니당: 위,위하여;;]

서은은 당황했지만 그에 맞춰 건배 포즈를 취해주었다.

* * *

그 후로도 해수는 로이스킴과 손을 잡고 일성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계속해서 벽돌을 빼내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성그룹은 면적만 넓지 흙돌로 쌓은 성이었다.

그 결과 주가는 절반으로 폭락하고, 계열사부터 본사까지 경영진이 실시간으로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부탁을 받은 정영수가 로이스킴의 뒷조사를 해왔지만,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 외에는 특이사항을 볼 수 없었다. 그의 소개대로 큰 외국계 투자회사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 * *

오늘은 해수가 로이스킴과 함께 그의 정보원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일성물산 본사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건이었고, 같이 가기로 했던 로이스킴은 급한 일이 생겨서 못 나오고 해수 혼자서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일성물산 본사 건물이 막 보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안주머니에 있는 2G폰이 울렸다. 로이스킴의 전화다. 해수는 이어폰을 두드려 전화를 받았다.

“어, 거의 다 왔다.”

-부라더, 스톱

착 가라앉은 목소리, 서늘한 느낌, 해수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로이스킴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다.

“뭐야.”

-며칠 전에 차 사고 나서 수리 맡기고, 어제 밤에 찾았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오늘 약속은 패스, 정보원 위험해서 철수시켰어.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

-갓 블레스 유, 신이 너와 함께 하기를.

“로이스킴.”

전화가 바로 끊겼다. 로이스킴은 먼저 전화를 끊은 적이 없다. 항상 쉴 새 없이 떠들었고 해수가 중간에 그냥 끊는 식이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해수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

해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차 사고….’

해수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로 향했다. 트렁크를 열자, 단단히 봉해져 있는 사과박스 두 개가 있었다.

부우욱-

그것을 거침없이 뜯어내자, 오만원 권 현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대충 보아도 수십 억이 넘어보였다.

이것을 가지고 일성물산 본사 깊숙이 들어간다?

일성과 해수 둘을 엮어 자빠트리기 딱 좋은 조작이다.

해수는 다시 트렁크를 닫고 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신형님?

“번호 받아적어, 공일공…

-예예, 위치추적?

“그래, 바로.”

전화를 끊고 바로 유턴하여 돈을 맡기기 위해 경찰서로 향하는 해수의 얼굴은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 * *

같은 시각.

전화를 끊은 로이스킴은 씁쓸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다 보았다.

전화통화내역, 주고받은 문자, 해수와 로이스킴이 같이 있는 수십 장의 사진.

해수를 큰 함정에 빠트리고 한 순간에 몰락시키기 위해 모아놨던 자료들이다.

“쯥.”

그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앞에 활활 타고 있는 드럼통 안에 자료를 쳐넣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해수와 통화했던 휴대폰도 넣었다.

* * *

해수는 로이스킴의 휴대폰을 추적해보았지만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통화 중이 아니면 위치추적이 힘든 2G폰 특성 때문이다.

일단 하루 정도는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하고, 해수는 다음으로 바로 수리를 맡겼던 정비소로 갔다. cctv까지 요구하며 수사를 했지만, 정비공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금세 들통이 나는 건이니 꼬리가 잡히지 않게 몰래 돈을 놓고 간 듯했다.

그날 밤, 알 수 없는 수신자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부라더에게

부라더, 그동안 즐거웠어, 자의든 타의든 그동안 부라더와 함께 했던 시간은 즐겁고 신선했어.

쓸데없는 감성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말할게.

칠성회는 폭력적인 집단이야. 회사라는 전술육성집단이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야.

그것만 봐도 칠성회의 성향이 잘 나타나지, 수틀리면 없애버린다는 거야. 그들은 어렵게 돌아가지 않아, 그들이 가장 잘 하는 일은 바로 사고사로 처리하는 거야.

그들이 유일하게 무력으로 못 꺾은 상대가 한 명 있는게, 그게 당신이야.

그래도 조심해, 안 꺾이면 뿌리채 뽑는 게 그들 스타일이니까, 부라더가 총알을 피할 수는 없잖아?

칠성회는 세상 무서울 게 없어보이는 최강의 집단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허점이 명확해, 서로 다른 일곱 개의 집단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여있다는 것.

서로의 손을 잡고 있지만, 이익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주저없이 손등을 찍을 거야.

일성의 몰락은 천티쳐의 지시야.

그리고 이것은 곧 일성도 알게 될 것이야,

부라더가 이 이메일을 받았을 때쯤에는 아마 난 없을 거야, 이 나라에 없던지, 이 세상에 없던지.

부라더, 당신은 참 경찰이야. 내 방식대로 응원할게.

[파일,파일,파일]

마지막에 첨부 파일은 칠성회 회원들의 자료, 그리고 그가 수집해온 칠성회 기업들의 약점이 잡혀있는 자료들이었다.

해수는 입맛을 씁쓸하게 다셨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로이스킴이 분명했다.

내용을 대충 들어보면 그가 자신을 배신하려던 것도 분명한데, 나중에 변심을 왜 했는지, 이렇게 커다란 폭탄을 자신에게 왜 안겨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해수는 일단 바로 일어나 겉옷을 낚아채고 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수, 이메일 추적 되지?”

-…네?

잡아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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