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70화 (170/255)

170. 오크 가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각 관심사별 게시판이 나뉘어 있고, 그곳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게시판 관리자 권한이 주어진다.

강훈은 너튜브 운동 컨텐츠 게시판 관리자다.

그는 책상에 팔꿈치를 올려두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권태로운 눈으로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하, 요즘은 죄다 거기서 거기야. 신선한 게 없어 신선한 게….”

하루에 너튜브만 다섯 시간씩 보는 강훈은 모든 영상이 지루했다. 그래서 신선함을 충전하기 위해 심해 탐사를 시작했다.

“뭐야 이건? 내가 다 이김? 채널명 개병신같네 진짜.”

초딩같은 채널 제목에 구독자수 3명, 조회수 2, 썸네일도 무슨 운동기구들만 찍혀있는 이상한 영상이다.

요즘 이 정도 초보는 보기 드물다. 대부분 편집을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너튜브로 ‘너튜브하는 법’을 배워서 하니까.

그는 낄낄거리며 생초보 너튜버의 영상을 클릭해보았다.

썸네일로 보았던 개인 헬스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시작한다. 앵글이 바뀌지도 않고 그대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외로 목소리는 퍽 듣기 좋았다.

[…풀업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야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철봉을 잡는 모습이 보인다.

‘목소리 합격, 손가락 합격.’

강훈은 이 베일에 싸인 너튜버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흉측한 진녹색 피부의 오크가 쑤욱 올라와 화면의 절반을 차지했다.

“아웈 깜짝이야! 씨팔 뭐야?!”

강훈은 식겁하여 바로 끄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병신같은 너튜버는 대체 뭔지, 뒤가 궁금하여 계속해서 보았다.

“아놔 진짜, 장난 까나?”

그 흉측한 오크 가면만 올라왔다 내려간다.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동일한 화면이 반복된다. 목소리 톤도 처음부터 일정하다.

여성이, 그것도 턱걸이를 수십 개씩 하는데 숨이 안 차는 건 너무 사기였다.

서른 개가 넘어갔을 때는 이제 슬슬 분노까지 올라왔다.

“이게 뭐하는 거야 대체? 영상도 곧 끝나가는데? 이게 다야?”

[달그락 달그락]

그때, 영상 속 너튜버가 턱걸이 41개를 하고 드디어 카메라를 만지는 것이 보였다. 화면이 휙휙 돌아가며 어지럽더니, 이내 어떤 곳에 고정시켰는지 흔들림이 멈추었다.

그제야 낮아진 앵글.

오크가 화면을 보면서 점점 뒷걸음질을 친다.

“아 진짜 개 초…!”

아무리 초보여도 이런 사기같은 영상을 본 것에 분노하려던 찰나, 오크의 전신이 카메라에 잡혔다.

검은색 탱크탑에 검은 레깅스, 그 사이에 살짝 드러난 하얀 배.

41번씩이나 오크의 얼굴이 확대되는 것만 보느라고 몸도 오크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런 반전 몸매를 보자 순간 뇌가 정지되었다.

“응???”

강훈은 방향키를 눌러 카메라 앵글이 바뀐 시점부터 다시 보았다.

“피지컬 미쳤는데?”

[…안녕히 계세요.]

오크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 쿨하게 화면이 꺼졌다.

“뭐야 이거! 이딴 가면에 저런 몸매라니??? 누구지? 누구야? 분명 유명 BJ다. 내가 꼭 찾아낸다.”

강훈의 권태로운 눈동자는 어디 가고, 어느새 그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목: 미친 피지컬에 그렇지 못한 가면

본문: 이 정신나간 너튜버 누군지 아시는 분?

┗ㅗㅜㅑ

┗탱크탑도 겸손하게 만들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

┗되게 여리여리해보이는데 군살하나도 없고 자세히 보면 잔근육이 쩔음

┗개구라 아니면 저 따위로 앵글 잡고 찍을 리가 없지, 백퍼 의자 밟고 찍었다 여자 41개가 말이 되냐?

┗응 말 됨 (링크-석스 영상) 이 여자도 40개 했음

┗헐? 잠깐만, 같은 사람아냐?

┗맞네, 몸매 비슷한 거 같은데? 키나 쩌는 굴곡이나

┗진짜네 목소리도 비슷한듯

┗맞다. 석스팬들이 그렇게 찾던 풀업 여신이 너튜버 시작한 거다

┗도대체 저 가면은 무슨 생각으로 쓴 거지?

┗내가 71번 돌려보면서 분석한 결과 내 손모가지 걸고 풀업 제대로 한 거다.

┗그럼 앵글은 왜 저렇게 한 거? 대놓고 나 주작한다 앵글인데?

┗그냥 좀 이상한듯, 앵글도 이상하고 가면도 이상하고 멘트도 이상하고

┗ㅇㅇ이상함

┗이상할땐 S치과의원!(링크)

┗그녀의 생각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채널명 뭐냨ㅋㅋㅋㅋㅋ

그렇게 너튜버 하루살이의 영상은 짧게 편집되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를 시작으로 오픈톡방, 다른 대형 너튜버들에게 계속해서 퍼날라지고 있었다.

[가녀린 오크의 풀업]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 영상(ㅇㅎ)]

┗???

┗이 무슨

┗미친

┗피지컬 어쩔

┗가녀린데 강해보인다

┗다가졌네

┗오크눈나 사랑해

┗저 오크가면 찢어주는 사람한테 백마넌 줌

┗나 오크 좋아했네

하루의 영상은 하루만에 조회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

탁 탁 타닥

“…음?”

정영수는 별 생각 없이 너튜브를 훑다가 대형너튜벼가 소개하는 요즘 핫한 영상이라는 것을 눌러보았다. 영상 속 영상의 썸네일이 뭔가 익숙해서였다.

“이, 이건?”

영수의 두 눈이 어리둥절해졌다.

그 핫하다는 건 하루의 영상이었다. 이게 대체 왜, 어떤 축복받은 알고리즘을 탔는지 몰라도 조회수가 폭발하고 있었다.

너튜브를 이제 막 시작한 신입의 첫 영상 조회수가 일주일도 안 돼서 70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영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볍게 생각해서 그 혐오스러운 오크가면도 그대로 두고 이상한 앵글, 성의없는 편집에 거의 자막만 넣고 테스트차 내보낸 건데, 이렇게 조회수가 터질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다.

영수는 바로 하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 번 울리고나서 그녀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받았다.

“누님, 영상 반응 봤습니까?”

-아니

“지금 한 번 보십시오. 지금 난리가 났어요!”

-응

그러고는 조용히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하루는 조회수와 댓글을 확인했음에도 반응이 미지근했다.

-봤어.

“와…진짜, 누님 이건 기적이에요 기적! 첫 영상부터 이렇게 터지는 사람은 진짜 유명연예인 아니면 없을걸요?”

-다음 영상 빨리 찍어야겠다

“아아, 네, 누님 근데 왜 하필 오크 가면을 쓰셨어요?”

-내가 연구해봤어. 다들 컨셉이 있어, 그래서 나는 게임 컨셉이야. 엑시트 모바일인데, 목소리 변조도 준비하고 있어.

목소리 변조라는 말에 영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기겁했다. 그녀 스타일대로라면 목소리도 오크처럼 바꾸려는 것이 분명했다.

“누님 안됩니다! 절대 안 돼요. 목소리 변조까지 하면 지금 힘들게 모인, 아니 쉽게 모인, 아무튼 지금 모은 사람들 다 떨어져나가요. 그리고 가면은 그 엑시트에 엘프도 있잖아요. 엘프 가면으로 하는 거 어때요?”

그러나 돌아오는 하루의 대답은 단호했다.

-오크는 내 캐릭터야, 너튜브때문에 내 캐릭터를 부정하고 싶지 않아.

“아아… 그럼 그, 앵글이라도, 앵글이 너무 잘못 됐어요.”

-앵글?

“카메라 각도, 턱걸이 제대로 안 했다고 의심하는 사람 엄청 많잖아요. 삼각대 하나 사서 옆이나 정면으로 전신이 다 보이게 설치하고 턱걸이 하셔야 해요.”

-알았다.

“그래요. 아무튼… 다음에 또 만나서 우리 컨텐츠 기획도 좀 해야할 거 같아요.”

-턱걸이 하나씩 늘리면 돼, 오래 찍을 수 있다.

“아 그거 너무 단순하잖아요, 짧고. 아무튼 제가 많이 찾아볼게요. 누님도 생각 좀 해보세요.”

-알았다.

영수는 하루와의 전화를 끊고 너튜브 컨텐츠를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상편집만 일주일에 한두 시간으로 가볍게 일할 생각이었는데, 이제 이것이 본업이 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영수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시간을 쏟으며 하루의 채널 성장을 위해 공부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게임 컨셉이라던 하루가 복장 얘기를 하지 않았음을.

아니, 그가 묻지 않았음을.

* * *

[…상대방이 통화 중입니다.]

신해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한 번 보았다. 화면에는 ‘정영수’라고 쓰여 있었다.

“통화가 잘 안 되네, 연애하나?”

해수는 그가 또 꽃뱀을 만났나 걱정이 되었다.

그때, 영수에게 전화가 왔다.

“어, 바쁜가보네.”

-아 네,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서요. 무슨 일이세요?

“연애하면 어떤 여자인지 나한테도 데리고 와봐.”

-에이, 연애 안 합니다. 별로 하고싶지도 않고…

그의 목소리 끝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그래, 뭐, 사람 한 명만 조사해줘, 문자 보냈으니까, 이 사람 다니는 회사도.”

-어 이런 정보탐색은 제 전문 영역이 아닌데

“어려우면 하지 말고.”

-근데 제가 워낙 능력이 넘쳐서, 이쪽도 전문가 뺨따구 쎄게 칠 정도는 되죠,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해수는 전화를 끊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원래 안서은에게 부탁하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안서은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잃은 것이 아쉬울 때가 참 많다.

운동방에서 슬그머니 나오는 하루가 보인다. 요즘 따라 운동방을 자주 들락거린다. 휴식기에도 꾸준한 운동은 해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다.

“하루야.”

해수의 부름에 하루가 뜨끔하며 몸을 천천히 돌렸다.

“안서은씨하고는… 아니다.”

“넵.”

해수가 말을 끊자, 평소라면 하루가 달라붙어 되묻겠지만, 슬그머니 물러났다.

이를 본 해수도, 지금은 자신도 숨기는 게 있으니 더 캐묻지 않고 발을 옮겼다.

* * *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한 고급 호텔 로비.

“부라더!”

로이스킴의 회사 명의로 된 호텔이었다.

그는 폭탄발언을 해놓고도 여전히 해맗게 해수를 맞이했다.

해수는 건조한 눈으로 로이스킴에게 다가갔다.

“그때는 너무했어, 차가운 바닥에서 혼자 두고 가다니, 입 돌아가는 줄 알았잖아.”

“오늘은 대리석 바닥하고 키스 좀 할까?”

해수의 살기어린 진담에 로이스킴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노노노, 아 이거, 우리 우정의 증표.”

그가 건넨 것은 2G 휴대폰이었다. 오천만 스마트폰 시대에 2G휴대폰은 기밀 목적이 대부분이다.

해수가 그것을 받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자 로이스킴이 마주 앉으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부라더, 고컵라면이라고 들어봤어?”

해수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가 테블릿을 들어보였다. 컵라면 상단에 일성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일성식품에서 컵라면의 컵 재질이 좋은 것을 마케팅으로 고가에 팔아먹는 라면이야, 보통 컵라면보다 가격이 두 배는 되지.”

“안 팔리겠네.”

“당연하지, 적자야 적자, 그런데도 올해 찍어내는 물량이 더 늘어났어, 일성 직원 중에 고컵라면 집에 쌓아두지 않은 사람 없을걸? 보너스 일부를 컵라면으로 제공한대, 재고처리를 직원들에게 맡기는 아주 더티한 놈들이야.”

말을 하다보니 분노가 올라왔는지 로이스킴은 흥분하여 쎈 발음으로 말을 이었다.

“아주 더티한 놈들이야, 뿌리가 코리아 마피아들이라서 그래, 까딱하면 사람 묻는다고 들었어. 나쁜 놈들, 빨리 없어져야 해.”

해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일성 뿌리가 조폭이라고….”

“응, 부라더. 고컵라면 원자재 공장을 조사해봐, 털어서 나올 게 많을 거야. 대놓고 회사돈을 그쪽으로 돌린 거니까 최소 수천억 원은 될 거야, 비자금 단위를 보면 그냥 식품사장이 아니라 회장이나 사장에게 갔을 게 분명해.”

“너는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데?”

“정보원 많아, 칠성회 회원들은 천티쳐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도와. 우리 회사에도 다른 기업 정보원이 있어, 이미 알고도 지켜보는 직원도 많아.”

“피곤하네.”

로이스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라더가 결단만 내린다면, 바로 영장 받을 수 있는 자료와 증인을 줄게.”

이 말이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대어급 비리를 건네주는 것이다.

하지만.

해수의 눈빛이 로이스킴의 진심을 읽기 위해 파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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