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내가 다 이김
로이스킴의 충격발언에 신해수는 그를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부터 먼저 전화가 와서 도와준다고 할 때, 같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여러가지 물어보았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해수의 눈빛이 시리도록 차가워졌다. 그가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모습에 로이스킴은 당황하며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였다.
“왓,왓, 돈 무브 돈 무브, 때리지 마, 진정해 부라더!”
“왜 그래야하는지 짧게 말해, 하나.”
“오 오 쉣! 하나 하고 때릴 거잖아!”
로이스킴은 다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 벌렸다.
“둘.”
“와,왓!! 헌트! 칠성회 같이 잡자고!”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단 본론부터 내뱉었다.
“…뭐?”
해수가 멈추니 로이스킴은 그제야 손을 내리며 숨을 골랐다. 그렇게 몇 번 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나, 어쩔 수 없이 칠성회 들어왔어. 칠성회 싫어, 천티쳐 싫어, 나빠, 너무 나쁜 카르텔이야, 변화가 필요해.”
“…….”
해수는 그에게서 처음 듣는 단어를 들었다.
‘천티쳐….’
그의 진심이 뭐든간에, 일단 이야기를 들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해수가 생각에 잠겨있자 로이스킴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뭐부터 얘기해줄까? 아, 일단 내가 오픈 가능한 걸 다 말해줄게. 칠성회 회원은 극소수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단언컨대 100명은 넘지 않아, 대기업의 대표, 또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만이 회원으로 초대되지.”
해수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네가 그 정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눈빛을 해석한 로이스킴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왜 이래? 내가 당장에 운용할 수 있는 돈만 1억 달러야.”
“나는 당장 니 얼굴을 뭉갤 수 있지.”
“워워, 컴 다운 컴 다운, 부라더.”
로이스킴은 현재 칠성회가 어디어디 기업인지, 그리고 자신이 칠성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가 바라본 칠성회의 성격이 어떤지 말해주었다.
일성,대성,하진,KD 등 이미 박 경위의 엑스파일로 인해 해수가 의심하고 있던 세력들이었다.
“네가 혼자 잡으면 되지 왜 고작 형사인 나한테 접근했지? 그것도 이렇게 계획적으로.”
“부라더, 처음부터 계획적인 건 없어, 우린 운명이야.”
“닥치고 대답부터 해.”
“아아 오케이, 칠성회가 여기 한반도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있어. 그런데 떡에 들어간 돌처럼 네가 주무르는 것을 방해해, 솔직히 칠성회 힘이라면 너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게 완전 삭제가 가능할 텐데. 안 하는, 아니 못 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추측했지, 분명 네 뒤에는 칠성회에 버금가는 세력이 있다고….”
해수는 반쯤 감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 혼자야.”
“뭐? 에이 왜 그래, 다 알아.”
“더 있으면 좋겠는데, 나 혼자야. 다 안다면 알겠네, 내가 하루에만 살해위협을 세 번은 받았는데, 회한테.”
“에….”
로이스킴은 그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칠성회를 무너트릴 방법을 말해봐.”
“아… 오케이, 칠성회 크다. 하지만 잡을 방법은 분명히 있어, 하나하나 야금야금 갉아먹으면 언젠가 무너질 거야.”
“그게 다야?”
“그럴 리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 회의 팔 하나쯤은 자를 수 있다고. 그런데 갑자기 다른 곳을 치는 건 내가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 현재 자연스럽게 이어진 타깃인 일성 먼저 쳐. 내가 알고 있는 비리를 건넬게, 물론 나중에 알게 될 것들도. 그것들을 타이밍 맞춰서 처리해줘, 아는 검사라도 있으면 불러서.”
“서로의 신뢰가 쌓인다면.”
“아아, 오케이, 인정.”
로이스킴이 한 손을 들어올리며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해수는 한 손을 번쩍 들어 마주 손바닥을 휘둘렀다.
쩌억-!
해수의 커다란 손바닥은 로이스킴의 손이 아닌 따귀를 갈겼다. 그는 그대로 바위 위에 개구리처럼 뻗었다.
“이건 날 속인 대가.”
* * *
해수는 로이스킴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칠성회 회원이 직접 날 찾아와서 손을 잡자고 한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고 손해를 보지 않게 대비하며 움직인다.
칠성회가 어느 기업들인지, 그 중에서 네 군데나 알고 있음에도 망망대해처럼 손 놓고 가만히 있었을 때보다는 나을 수 있다.
띡- 철컥
윗옷을 벗으려던 그때, 하루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요즘 바쁘네.”
하루는 최근에 무엇을 하는지 밖을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현관 앞에 서서 해수를 빤히 쳐다보던 하루가 돌연 물었다.
“해수님, 너튜브 하십니까?”
“너튜브? 아니, 그건 왜.”
“다행입니다.”
“응?”
“아,아닙니다. 쉬십시오.”
하루는 후다닥 소파로 가서 엎어지더니 해수의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만졌다.
해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동방으로 들어갔다.
[하루살이: 집에 왔습니다. 해수님은 너튜브 잘 안 한답니다.]
[서으니당: 그래요? 근데 정말 해수님한테는 비밀로 할 거에요?]
[하루살이: 언젠가는 밝히겠지만, 당장은 밝히기 부끄럽습니다.]
[서으니당: 그럴 수 있지요. 채널명은 정했어요?]
[하루살이: 아직입니다. 신중하게 고민 중입니다.]
[서으니당: 기대된당 >.< 열심히 지원사격 할게요!]
[하루살이: 랩업이 먼저입니다.]
[서으니당: 아앗 넵!]
하루는 서은의 장비를 훑어보고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너튜브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풀업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일주일만에 200만, 200만이 얼마나 올리기 힘든 조회수인지 하루는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 댓글이 신기해서 이렇게 가끔 들어가서 반응만 살펴볼 뿐이었다.
#석스#길거리 풀업#역대급
[힘숨미 떴다. 역대급 미모! 역대급 반전!]
조회수 2,134,003회
┗진짜 쩐다 미쳐따리
┗누눈나 ㅗㅜㅑ
┗이번 건 낚이 아니라 진짜진짜 역대급이다 지려따 팬티 좀 갈아입고 올게
┗눈나 아닌거같은데? 겁나 어려보이는데?
┗그냥 예쁘면 다 눈나임
┗와 나 6:30 여기만 무한반복중 사랑에 빠진 거 같애
┗저런 몸매로 풀업 정자세 40개는 약빤거 아니냐? 다음부터 길거리 풀업 도핑테스트 가즈아!
┗너는 약빨아도 안 될듯
┗나 제발 저 눈나 마스크 벗은 거 보고싶어 내 평생 소원이야
┗소원 참 소박하다
┗저 여성분 별스타 알려주시는 분 사례금 드립니다
┗와 자세 좋은 거 봐, 37번째 돌려보는 중인데 왜 질리지를 않냐
┗7:11 티셔츠 말려올라갈 때 기립근 쩐다
┗세상 여리여리해보이는데 저게 다 압축근육이었던 거임?
┗석스가 보물을 찾았구나 부럽다
┗또 나오겠지? 제발
하루는 혼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때 20만 원을 그렇게 쉽게 벌고 너튜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는데, 정영수도 이 영상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너튜브를 추천했다.
거기에 영수가 영상 편집도 도와준다고 하여 하루는 용기내어 너튜브를 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 * *
다음날.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어 그래, 하루도 수고해.”
하루는 해수가 출근하자 휴대폰으로 GPS기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운동방으로 향했다.
하루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운동 콘텐츠로 방향을 잡았다.
첫 영상은 풀업이었다.
얼굴은 절대 들키지 않도록 아예 가면을 주문했는데, 다른 운동 너튜버 중에 가면을 쓴 사람을 보고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러고는 적당한 곳에 휴대폰 녹화 기능을 켜서 자리를 잡고, 수십 번 외웠던 멘트를 했다.
“안녕하세요. 하루살이입니다. 풀업 시작하겠습니다.”
하루의 성격이 묻어나는 시니컬한 멘트, 그 후에 다짜고짜 시작되는 풀업.
“하나”
훅
“둘”
훅
“셋”
그렇게 끊기지 않고 풀업으로 턱걸이를 41개까지 하고 내려와서는, 카메라 앞으로 다시 자리를 잡고 입을 열었다.
“풀업 마흔 한 개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마흔 두 개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루는 자신이 열심히 찍은 영상을 바로 정영수의 이메일로 보내고 뿌듯해했다.
* * *
정영수의 집.
영수는 하루에게 오늘 영상 찍은 걸 보낸다는 말을 듣고 기대감을 가득 품고 기다리고 있었다.
띠링
“왔다 왔다 왔어!”
그가 1초만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영상을 다운받았다.
그리고 재생버튼을 누른 순간, 그는 딱딱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
-영수: 누님 이건 좀…
-하루: 왜? 나 이상해?
-영수: 아…
영수는 이 천진난만한 누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루: 잘 올려줘, 언제 올라와?
-영수: …네, 오늘 밤 8시에 올릴게요.
영수는 어차피 첫 영상이고, 사람들이 많이 보지도 않을 테니 일단 올리는 데 의의를 두자는 생각으로 업로드를 수락했다.
-하루: 알았어, 이제 그러면 나도 몇 천만 원씩 벌 수 있는 거야? 내가 해수님 먹여살릴 수 있겠다.
-영수: ㅎㅎㅎ
-하루: 영수도 월급 줄게, 얼마 줘? 천만 원?
-영수: 아니에요 ㅎㅎ 일단 나중에 돈이 되면 그때 얘기해요. 투자로 생각하고 무료로 할게요.
영수는 이 꿈에 부푼 누님이 곧 현실을 깨닫는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는 감정을 고이 접어두고 영상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편집할 것도 거의 없을 만큼 본영상이 어마어마하게 간단명료했다.
그리고, 업로드 시간인 밤 8시가 되었다.
* * *
불이 꺼져있는 대성E&M 건물.
유일하게 가장 꼭대기층에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작은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닥 탁탁탁
어두운 사무실 안, 안서은이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전에는 없었던 짙은 다크서클이 돋보인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있다.
“요즘 각대장이 안 보이네, 충격 받았나….”
[경계대상 (각대장)이 접속하였습니다.]
“오? 접했네.”
거래소에 올렸던 +9절망의검이 안 그래도 비싸서 안 팔리던 차였다.
서은은 검을 돌려줄 생각으로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서으니당: 각대장]
[상대방이 당신을 차단하였습니다.]
그때 돌연 뜨는 메시지에 서은의 고운 미간이 확 좁혀졌다.
“충격이 컸나보네, 어쩔 수 없지….”
그때, 귓속말이 들어왔다.
[하루살이: 안서은님 첫 영상 올렸습니다.]
[서으니당: 오오 정말요? 채널명 정했어요? 얼른 알려줘요!!]
[하루살이: 내가 다 이김]
[서으니당: 네?]
[하루살이: 내가 다 이김 입니다.]
[서으니당: …아,아 트,트렌디하게 잘 지었네요! 얼른 보러 가야지]
서은은 바로 게임창을 내리고 너튜브를 켰다.
그리고 ‘내가 다 이김’을 검색하여 딱 한 개 올라온 영상을 설레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두둥 두르릉
명상을 할 때와 같은 배경음이 흘러나오며 검은 배경에 하얀 글씨로 ‘내가 다 이김’이라는 채널명이 떴다가 부드럽게 사라지고, 깔끔한 헬스장 화면이 잡혔다. 그런데 약간 앵글이 높다.
서은은 기대하며 미리 따라놓았던 와인을 한 모금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하루살이: 안녕하세요. 하루살이입니다. 풀업 시작하겠습니다.]
영상에서 하루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앵글은 그대로였다.
하루의 희고 가느다란 손이 보인다. 철봉을 잡고, 천천히 올라오는데…
“…응?”
초록색이다. 크다. 무언가 이상하다.
[하루살이: 하나]
이윽고 하루가 올라와서 앵글에 완전히 잡혔을 때, 그녀의 가면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쨍그랑
서은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와인을 키보드에 엎질렀다.
“대… 대…?”
서은 앞에는 웬 초록색 대머리 오크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뾰족 튀어나온 어금니에는 붉은 색 피까지 묻어있을 정도로 디테일이 좋은 가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