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불 좀 빌립시다
곽팀장은 김훈의 말을 들으며 바로 삼겹살 가게에서 자신에게 불을 빌리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두 손을 키보드에 올리며 말했다.
“그 사람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죠? 기억나요?”
-음…아 그게 기억이, 썩 인상적인 얼굴은 아니었나봅니다.
“안경은 썼나요?”
-안경은 안 썼던 거 같아요.
“혹시 눈도 코도 입술도 얼굴 크기도 전부 평범했나요?”
-아… 네네,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대화의 흐름은 기억 나는데 얼굴은 별로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샌님같은데 무서운 느낌, 제가 선수 은퇴한 지 오래 됐어도 일반인한테 안 쫄거든요.
“그렇군요. 머리는 직모였습니까 곱슬이었습니까?”
-그것도 잘…
“더 생각나는 건 없으십니까?”
-예 일단은, 또 생각나면 전화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 감사합니다!”
팀장이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대원들이 달라붙었다. 그의 통화 내용과 반짝이는 눈을 보고 무언가 건졌음을 눈치 챈 것이다.
“얘들아, 사냥을 완벽하게 하는 사냥꾼이, 방심할 때가 언제일까?”
팀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해수가 바로 대답했다.
“사냥을 안 할 때.”
팀장은 해수를 보며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맞아, 가자.”
“어디요?”
“삼겹살 가게로.”
“잉?”
“으잉?”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나 물증은 아무것도 없다. 김훈을 찾아왔을 때는 최소 두달 전, cctv 기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살인현장 세 군데에서 아무런 흔적도 증거도, 심지어 cctv에서도 안 찍혔다.
이번 태권도 고수 강철권 사건 때 뒷모습이 찍힌 것도 그와 동일인인지 알 수 없고, 뒷모습이니 안 찍힌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 실수할 때는, 철저할 필요가 없을 때다.
곽팀장은 차 키를 챙기고 일어나 본부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원들은 영문을 모른 채 이것저것 급하게 챙겨서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오갱아 너 담배 필 때 나랑 얘기하던 놈 생각나냐?”
“어 뭐 생각은 나지, 형님 얼굴이 사색이 돼서, 그 사람이 왜?”
“그놈 얼굴 찍힌 거 찾자.”
“나 그놈 얼굴 못 봤는데.”
“아이 증말, 일단 가자, 고고!”
강수대는 바로 삼겹살 가게로 가서 cctv와 그 근처에 있는 블랙박스를 모두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때 봤던 놈이 용의자같다 이거야? 어떻게?”
“그 뒷모습이랑, 김훈씨 통화랑, 아무튼 복잡해. 일단 가서 얘기하자 가서.”
“어, 오케이.”
그의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팀장 뿐이기에 마음이 급했다.
그리고, 삼겹살 가게 근처 3층짜리 건물 위에서 그들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 * *
수거품을 다량 가지고 강수대 본부로 복귀하였다.
팀장은 왜 심증이 생겼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효율적인 분석을 위해 그 남자의 얼굴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어 그러니까, 엄청 평범하게 생겼어, 눈도 보통 크기, 코는 조금… 높나? 아니다 그냥 보통, 입술도 적당하고, 생머리에다가 길이도 적당히? 옷은… 무채색이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안 난다. 아아 그리고, 손에 굳은살이 박였어, 엄지랑 검지에는 특히 더 깊게.”
오갱은 듣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몽타주를 그려보라니까?”
“아… 씨, 일단 해볼게.”
곽팀장은 검은 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에 진지하게 몽타주를 그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정성스럽게 그렸지만….
“이건….”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야 진짜… 와 증말… 우리 하윤이도 이것보다는 잘 그린다.”
“아씨, 그러니까 안 그린다고 했잖아!”
“어떻게 사람이 이렇지?”
팀장은 낙서에 가까운 몽타주에 팔짱을 끼고 가까이 다가오는 오갱을 밀치며 외쳤다.
“아무튼 빨리 찾아! 시간이 금이다!”
“예썰!”
“알겠습니다!”
얼굴을 정확히 아는 만큼, 곽팀장이 cctv 분석을 가장 열심히 했다.
그때.
지이잉 지이잉
곽팀장의 전화가 울렸다. 아내다.
아직 아내의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 시간에 전화 온 적이 없었기에 팀장은 일단 바쁜 와중에도 전화를 받았다.
“어, 어.”
팀장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는데, 그 잠깐의 공백이 무언가 이상했다.
-여보…
처음 들어보는 아내의 말투, 팀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으, 은정이가 오토바이 뺑소니를…
드르륵
팀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야, 지금 갈게.”
곽팀장이 세상 심각한 얼굴로 본부를 나섰다. 오갱은 팀장을 따라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는 다른 팀원들을 붙잡고, 문자 하나만 남겼다.
-오갱: 형님 시간 나면 무슨 일인지 말해줘
* * *
곽팀장은 바로 딸 곽은정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은정은 학원을 가는 길에 오토바이와 부딪혀 크게 넘어졌고, 손목과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몸 이곳저곳에 붕대를 감은 딸을 보니 아빠의 마음은 무너졌다.
“번호판은 기억 안 나지? 어떻게 생긴 오토바이인지는 기억 나? 그 사람은 헬멧 썼어? 어디 또 아픈 곳은 없어?”
곽팀장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퀭한 눈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 눈가가 살짝 촉촉해져 있다. 그의 잘못도 없으면서, 그저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어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한 것이다.
딸은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아 아빠, 나 괜찮아. 아빠 지금 엄청 바쁘잖아, 지금 범인부터 잡아, 이건 다른 경찰 분들한테 맡길게.”
주구장창 맞는 말이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게 더 중요한지 알고 있다.
아니, 어떤 게 더 중요한지 가늠하고 있는 자신이 싫고 괴로웠다.
“하… 아빠가 미안해, 미안해, 우리 딸….”
“아니라니까, 아빠 이제 좀 가.”
곽팀장은 뺑소니건을 맡은 형사들과 만나서 잘 부탁한다고 얘기를 하고 본부로 복귀하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후우….”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팀장은 터덜터덜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딸이 뺑소니를 당했는데, 아빠가 경찰인데 사건을 남에게 맡기고 다른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그는 병원 후문으로 나와 잘 꾸며져 있는 공원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휴대폰을 들었다.
오갱이 보낸 문자를 지금에서야 확인을 하고, 다시 휴대폰을 닫았다.
그때, 소리없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스윽
“아저씨, 불 좀 빌립시다.”
팀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그때의 그 목소리, 같은 멘트.
이건 분명 알고 찾아온 것이다.
상대는 무술이 뛰어난 유단자들을 찾아가 맨 손으로 살해한 실력자다. 다른 대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출동도 아니기에 총도 챙겨오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도 없다. 살해하고 마무리를 할 때 찌르는 칼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른 자들처럼 맨손으로 제압 후 칼로 마무리? 유단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찾아온 것은 목적 자체가 다르니 처음부터 칼을 들고 덤빌 수도 있다.
곽팀장은 그 찰나에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며 손은 라이터를 들어 그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아, 예.”
힐끔 얼굴을 확인하니 그때 그 남자다. 일단 못 알아본 척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곽팀장은 분명 보았다. 남자의 입가에 머금고 있는 조소를.
“스읍, 후….”
남자는 여유롭게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뱉고는 팀장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내 얼굴 찍힌 거 찾았어요?”
백 프로다. 곽팀장은 담배를 그의 얼굴에 던지며 배에 발차기를 날렸다.
* * *
지이잉
곽팀장의 전화다. 오갱은 두 번째 진동이 울리기 전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형님 무슨 일이야?”
-아저씨, 불 좀 빌립시다.
멀리서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잘못 걸었나? 하지만 본부를 나서던 곽팀장의 심각한 얼굴과, 불길한 느낌에 전화를 끊지 않았다.
오갱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스피커폰을 누르고 마이크를 껐다.
그의 이상행동에 다른 대원들이 눈치를 채고 다가왔고, 오갱은 검지를 입술에 대어 소리를 내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다 같이 귀를 기울였다.
-아, 예
-스읍 후-
-아저씨, 내 얼굴 찍힌 거 찾았어요?
오갱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동일한 표정을 한 막내와 눈이 마주쳤다.
해수는 막내의 어깨를 살짝 눌러 잡고는 작게 말했다.
“팀장님 폰 위치 추적.”
“예, 옙.”
막내가 정보과에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면서 본부 밖으로 나갔다.
해수도 오토바이 키를 챙기며 하루에게 실시간으로 계속 상황을 알려달라고 말하고 본부를 나섰다.
부릉 부릉
해수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자마자 바로 영수에게 전화하여 곽팀장의 휴대폰 위치를 1분 단위로 문자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해수가 나가는 모습에 오갱 역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 채고 차 키를 챙기고 봉고차로 이동했다.
정보과에 전화를 걸던 막내도, 하루도 오갱의 뒤를 쫓아서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휴대폰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콰광 쾅쾅! 퍽! 퍽-
핏, 치이익-
-커,커헉
신음만 들리지만 누가 봐도 곽팀장의 것이다. 오갱이 이를 덜덜 떨면서 시동을 켰다.
“빠, 빨리 가자.”
-그러게, 왜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서… 눈 감아요.
우드득!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오갱은 핸들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아!!”
“오갱 형님, 형님 진정, 진정하셔야 합니다!! 제가 운전할게요 제가.”
오갱은 눈물을 뿌리면서 액셀을 깊게 밟았고, 막내는 그와 자리를 바꾸려다가 실패하고 정보과에게 전달받은 위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그때, 갑자기 확 가까워진 목소리
-이것 봐라… 재밌네.
뚝
범인이 통화 연결되어있는 전화기를 발견한 것이다. 전화가 뚝 끊겼고, 다시 전화를 거니 이미 꺼진 상태였다.
오갱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입을 열었다.
“지, 지원, 지원 요청해, 지구대, 가까운 지구대에 순마 싹 다 풀어서!! 이 시팔!”
“예, 옙!”
동부지구대에 전화를 거는 막내의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 * *
신해수는 정영수에게 위치 받아 그 자리에 도착했다.
위치추적은 오차범위가 전방 50미터다. 지금 당장 시선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다른 차로 이동하던 하루에게 곽팀장이 이미 당한 것 같다는 문자를 받은 지 30분이 지났다.
“리셋, 리셋! 리셋!!”
리셋을 아무리 외쳐도 시간이 돌아가지 않는다. 역시 살해당한 사람이나 살해당한 장소에 정확히 도착해야만 리셋할 수 있는 듯했다.
해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주변을 미친 듯이 찾아댔다. 그러나 팀장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무전을 쳤다. 이제 곧 지구대 사람들 지원도 도착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아직입니까?”
-여기 안 보인다 이 시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해수 역시 욕을 내뱉으며 조급하게 찾다가 드디어 피가 다량 쏟아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병원 후문쪽 공원, 12시 방향 벤치, 다량 혈흔 발견….”
-아…
피가 아직 굳지 않았고, 색도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다. 양이 상당하다.
살해 현장으로 보이지만 리셋은 여전히 되지 않았다.
해수는 점점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원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핏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수풀 사이로 낯익은 옷이 보인다. 해수는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툭
해수는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무전기를 툭 떨어트렸다.
바닥에는 곽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티, 팀장님, 팀장님? 곽팀장님!”
해수는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시간 확인해보니 벌써 사망 추정 시간으로부터 50분이 지나 있었다.
해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외쳤다.
‘리셋!’
바로 밤하늘이 내려앉는 것처럼 세상을 까맣게 뒤덮고,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32-1구역 봤고, 오갱 형님이 40부터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흠, 형님은 어디 가신 거지.”
강수대 본부 안이다.
해수는 본부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멍한 표정으로 있었다.
싸늘한 시신이 된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야, 야, 해수야?”
“예, 아…!”
해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곽팀장에게 전화를 걸면서 본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하필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해수는 하루에게 전화하여 곽팀장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연결되면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으라고 전달을 했다.
경찰서에서 병원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었을 때는 13분이 걸린다. 지금 1분이 지났으니 4분, 아니 5분은 모자라다. 시간이 촉박하다.
해수는 액셀을 강하게 당겼다.
부릉 부르릉-!
그는 모든 신호를 무시하고 폭주족같은 운전을 하면서 병원 후문 쪽 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하루에게 문자가 왔다. 이어폰에서 음성으로 문자를 읽어주었다.
-하루: 팀장님과 통화중인데 이상합니다.
‘젠장, 젠장, 벌써 그놈과 만난 거야.’
부아아아앙!!
미친 듯이 당기며 후문 공원에 도착했고, 공원 안까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갔다.
곽팀장이 보인다. 어떤 남자가 팀장의 팔을 꺾고 있다.
우드득-
“끄아악!”
그가 칼을 꺼내었다. 당장 눈앞에 있지만 그것을 막을 거리는 안 된다. 둘이 엉켜있어 총을 쏠 수도 없다. 총을 꺼낼 시간도 모자라다.
“안 돼!!”
포효와도 같은 외침에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해수를 힐끔 보았다가 피식 냉소를 흘리고는 칼을 휘둘렀다.
핏 치이익-
곽팀장의 목에서 선명한 혈선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