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67화 (166/255)

167.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너튜버 석스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하는 것을 카메라맨이 놀리듯이 잡는다.

석스는 애써 웃는 척하며 숫자를 세었다.

스무 개가 넘어갈 때부터는 장내가 적막해졌다. 가끔 진심어린 탄성이 흐를 뿐이다.

“서른 일곱, 서른 여덟, 서른 아홉….”

하루는 조금 숨이 차자 그제야 올라간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내려왔다.

그제야 석스는 미친 듯이 함성을 내지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마,마흔!! 마흔!!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오늘 무려 남녀 합쳐서 풀업 압도적 1위 탄생입니다으아아아!!”

반전이 없는 우락부락한 여성이 마흔 개 넘게 하는 것보다, 하루처럼 대충 보았을 때는 두 개도 하기 힘들어보이는 여성이 반전으로 마흔 개를 하는 것이 훨씬 드라마틱하고 높은 조회수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스는 복대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 멈칫하더니 뒤돌아서 도망을 쳤다. 많은 상금을 줘야 할 때 재미를 위해 자주 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도전자와 쫓고 쫓기며 주변을 한 바퀴 짧게 도는 퍼포먼스를 하고 주는 게 일반적인데.

“에잇!”

타다닥 척-

석스가 발을 떼기가 무섭게 반사적으로 하루가 쏜살같이 튀어나가 팔을 꺾었다.

“아아아! 하, 항복!”

세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잡혀서 팔까지 꺾였다.

하루는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에 자신도 당황하며 팔을 풀어주었고, 석스는 삐질거리며 상금을 건넸다.

“와, 내가 진짜 이렇게 빨리 잡힌 것도 처음인데, 팔까지 꺾인 건 진짜… 나 범죄자 된 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 여기!”

본래는 16만 원이지만 보너스로 4만원 더 쳐서 20만 원을 주었다.

돈을 주면서 손을 덜덜 떨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건 한 주간 운동계 너튜브를 싹 다 씹어먹을 수밖에 없는 소재였다.

석스가 다음 참가자를 찾으며 매니저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하루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 이강현입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컨텐츠 관련해서 연락이 갈 수 있는데, 혹시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하루는 해수에게 길거리에서 연락처를 물어보는 이들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 매니저가 살짝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 부담스러우시면 인별 주소라도….”

“인별?”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영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SNS 있어요. 사진 찍어서 올리는 앱.”

“아하, 안 합니다.”

“아….”

그때 영수가 나서서 말했다.

“그, 누님 말고 제 연락처라도 알려드릴가요?”

“아, 네, 그럼 감사하죠.”

영수는 너튜버 석스가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대형너튜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라도 이득이 될 수 있기에 일단 연락처를 교환했다.

매니저가 가고, 상금 봉투를 보던 하루가 영수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엌, 어, 왜,왜요?”

“저 사람, 돈 많이 벌어?”

“아… 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 석스는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데다가 영상 하나당 기본 20만 조회수는 넘으니까… 많이 벌 거에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뭐 달에 몇 천씩 번다는데.”

“몇 천? 몇 천만 원?”

“네, 천상계 이야기죠?”

“음….”

하루는 턱을 괴고 자신이 경호원 시절, 그리고 경찰 시절에 받았던 월급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한 달에 백만 원도 벌지 못하는 너튜버들이 넘쳐흘렀지만, 하필 하루가 처음 본 너튜버가 매우 크게 성공한 너튜버라는 것.

“너튜버….”

하루는 혼자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가 휙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만 원짜리를 부채꼴로 펴서 펄럭거리며 영수에게 말했다.

“뭐 먹을래, 누님이 쏜다.”

“누, 누님 최고!”

영수는 홀린 듯이 하루의 뒤꽁무니를 쫓아갔다.

* * *

한 편,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인파 속에 파묻혀 있지만 숨길 수 없는 피지컬, 날카로운 눈빛, 신해수였다.

퇴근길에 턱짱 회원들의 깨톡을 보고 구경을 하러 왔다가 하루를 발견한 것이다.

해수는 턱걸이 기구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뒤돌아섰다.

그의 표정에는 ‘오늘은 봐줬다’ 라는 말이 적혀있는 듯했다.

* * *

강진서 강력반.

휴가를 평화롭게(?) 마치고 돌아온 곽반장의 동공은 동태의 그것처럼 회색이었다.

“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오갱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왜 그러쇼? 우리 반.장.님.”

“아무것도 아니야, 가, 훠이.”

오갱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아 뭐야 이거, 모기? 하루살이인가?”

오갱의 말에 곽반장이 눈을 크게 뜨고는 소리쳤다.

“뭐?! 하루살이!!”

“왜, 왜 그래?”

“몰라 임마! 일 해! 일 없어? 일 주까!”

“간다 가, 아니 사람이 휴가 다녀오면 활력이 넘쳐야 하는데 정반대야, 뭐 비상금이라도 털렸나….”

“내, 반드시 하루살이를 눌러 죽이고 말 테다….”

의도치않게 눌린 트라우마에 곽반장이 앙심을 곱씹는 사이.

띠리리리

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이제 곽반장이 전화를 돌려놓지 않는 이상 상황실 콜은 무조건 그에게 온다.

“강력반입니다. 집단특수폭행? 오호, 알겠어요. 전문가들 대기 중입니다.”

전문가들이라는 말에 오갱과 해수, 막내가 뜨끔했다.

마침 반장과 오갱의 눈이 마주쳤다.

오갱은 앉은 지 5초 만에 다시 슬그머니 일어났다.

“형님, 아니 팀장님 무슨 일이….”

“원래 나다 싶으면 일어나는 거다. 차 키 챙겨.”

곽반장은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우리 오갱이 척하면 척이네.”

“젠장, 나 팀장인데 여전히 저 형 팀원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

해수는 오갱의 어깨를 주무르며 앞으로 밀었다.

“기분 탓입니다. 가시죠.”

봉고차를 타고 현장으로 가는 길, 오갱이 투덜거렸다.

“강수대 때 형님은 본부 지켰는데, 우리는 셋이니까 무조건 나도 같이 나가네. 이게 팀장이냐? 이게 나라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막내도 거들었다.

“저도 막내 벗어났었는데 다시 막내가 되었네요. 하지만 선배님들과 함께 계속 팀을 이룰 수 있으서 정말 좋습니다!”

“그래, 그런 정신으로 싸우는 거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싸우긴 뭘 싸워 임마, 해수 얘는 시간이 갈 수록 더 험악해져, 어휴 비주얼은 참 든든하다….”

20분 후.

현장에 도착했다.

순찰차 한 대가 이미 도착했고, 술집 안쪽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술 먹다가 싸움이 붙은 것이다. 가게 주인의 신고 내용에 따르면 서울말 억양의 사람 두 명, 동네 양아치 다섯 명이다.

콰장창!

“야이 개새끼야!”

“시팔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덤벼!!”

퍽 퍽!

인원수가 많으면 용기도 배가 된다. 특히 남자 세 명 이상 모이면 무서울 것이 없어지는 멍청한 버프가 있다.

경찰들이 있어도 그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야구방망이에 골프채, 쇠로 된 의자가 날아다니니 출동한 경찰 두 명도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다. 수적 열세인 쪽, 서울 사람 두 명으로 추정된다.

오갱이 그 난장판을 흐린 눈으로 보다 검지로 그들을 가리켰다.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일곱, 한 명만 가도 되겠네, 누가 갈래.”

“당연히 제가 가겠습니…”

바로 앞으로 나서려는 막내를 해수가 말렸다. 그러고는 어깨를 풀며 말했다.

“요즘 몸을 안 써서 좀이 쑤셔, 케이블타이나 꺼내놔.”

“예썰!”

눈앞에 양아치들을 바라보는 해수의 눈빛이 꼭 저들을 씹어먹을 것 같아, 오갱은 염려의 한 마디를 던졌다.

“그, 죽이지는 말아라잉.”

“노력해보겠습니다.”

저벅 저벅 저벅

해수는 거침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쾅! 쿠당탕!

날아오는 의자도 쳐다보지도 않고 손으로 쳐내고 정가운데에서 멈추어 섰다.

“모두… 동작 그만!!”

해수의 목소리가 장내가 떠나가라 크게 울려 퍼졌다.

호랑이의 포효를 들은 초식동물들처럼 사내들이 경직되어 강제 소강상태가 되었다.

골프채를 든 놈이 해수를 보며 물었다.

“넌 뭐야, 이 새끼야?”

해수는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검지를 들어올렸다.

“셋 셀 때까지 무기 내리고 머리 박는다.”

“뭔 병신같은….”

“하나.”

하나를 외침과 동시에 해수의 손이 그의 얼굴을 덮쳤다.

퍽 우드득!

“어어억!!”

“뭐야 저건!”

골프채 사내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그 모습에 야구방망이를 든 사내가 해수에게 달려들었고, 해수는 주먹으로 야구방망이를 맞이했다.

까아앙!!

해수의 주먹이 야구방망이를 정확히 강타하고 뒤로 밀리며 사내의 얼굴을 뭉갰다. 사내는 야구방망이를 잡고 있는 상태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뇌진탕을 우려하여 자빠질 때 해수의 발끝이 그의 뒤통수를 받쳐주어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그 행동에 막내는 엄지를 추켜세웠다.

“오오 역시, 스윗남…!”

막내는 열심히 바닥을 기고 있는 사내들에게 케이블타이를 채웠다.

오갱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네, 물리치료사 신해수 선생님.”

우득! 까드득!

“끄아아악!”

“아윽! 항복 항복! 항- 아악!!”

쾅!!

다섯 명 중 마지막 놈까지 바닥에 꽂자 장내가 적막해졌다. 나머지 두 명은 이미 양아치들로 인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다친 상태라서 진압이 불필요했다.

해수는 골프채를 들고 덤볐던 놈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너네를 집단특수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끄어으… 느이, 느이 내가 누군 줄… 내 저,전화 한 번이면 니 잘…”

쩌억-!

그때 날아오는 오갱의 스매싱.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요즘은 해수와 막내의 등빨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오갱도 대한민국 경찰 1프로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그의 스매싱에 골프채 사내는 눈을 까뒤집었다.

* * *

cctv 확인 결과, 쌍방은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 사내들은 일어나서 허리춤에 손을 올렸을 뿐이고, 그 후에는 일방적인 폭행만 있었다.

그렇게 조서를 써내려가는 중, 해수가 멈칫했다.

“일성유통 이사?”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말했지? 니네 이제 다 좃된 거야!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골프채 사내가 턱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그런데 해수의 표정이 더욱 흉악해지자 무언가 이상하다 느꼈다.

다른 사내의 조서를 작성하던 오갱이 다가와 골프채 사내의 어깨를 붙잡으며 속삭였다.

“니가 좃된 거 같은데? 니 앞에 저 짐승, 일성전자 사장 아들도 깜빵에 쳐넣은 놈이야.”

“…어? 니,니가 설마….”

사내는 해수의 책상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신분증을 보았다. 경위 신해수라고 적힌 것이 크게 보였다.

“그 개…!”

“어 그래, 내가 걔다. 한 번 물면 숨이 끊길 때까지 안 놓지, 반갑다. 김정승.”

정승은 의자에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나, 나 변호사, 변호사 올 때까지 아무 말 안 해! 나, 나 건드리지 마.”

* * *

그로부터 며칠 뒤, 강진서 서장실.

서장이 미간을 좁힌 채 전화를 받고 있다.

“…예? 과잉진압으로 징계요? 직위해제? 아니요 청장님, 제가 cctv 다 보내드렸잖습니까? 경찰 대가리를 골프채로 깨부수려고 했던 놈들이에요.”

-봤네. 충분히 다치지 않게 제압 가능하게 보였는데, 내 눈이 틀렸다는 건가? 더 말할 것도 없어, 징계 진행해요.

서장은 한 손으로 수화기를 가리고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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