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66화 (165/255)

166. 풀업

“음.”

툭 툭 꽥

안서은은 문득 어떤 학생이 아버지가 사준 고가의 게임 아이템을 떨어트렸다고 가출을 했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유니크 아이템 +9강화 짜리면 나름 고가이니, 슬라임이 아이템을 소화하기 전에 잡아서 획득했다.

그리고 돌려주려고 귓속말을 했지만.

[상대방이 없습니다.]

각대장은 바로 게임을 종료한 상태였다.

“충격 받았나….”

서은은 조금 찝찝했지만, 나중에 돌려줄 생각을 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어, 하루씨, 바빠요?”

-안 바쁩니다. 오늘 레벨업 많이 했습니까?

“네 알려준 사냥터에서 랩업 중인데 확실히 빠르네요. 아, 그리고 오늘 각대장 죽여서 아이템도 떨어트리게 했어요. 유니크 무기인데, 9강화짜리.”

-그거 팔아서 물약값 하시면 되겠네요.

“음, 좀 소중히 여기는 거 같아서 돌려주려고요.”

-됐습니다. 그 사람 아저씨입니다. 듣기로는 40대라고 들었습니다. 월급으로 다시 사겠죠, 곧 복귀할 테니 레벨업 많이 해두십시오.

“아 그래요? 알겠어요. 전처럼 같이 팀플하기를 기다릴게요.”

-네.

전화를 끊은 서은은 주저없이 +9절망의검 아이템을 거래중개소에 최저가로 올렸다.

* * *

정영수의 집 근처 편의점 앞 테이블.

영수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어떤 여인과 마주앉아 있다.

“…그러니까 여신누님이 필요한 걸 종합해보면 초소형 푸시충전식 GPS기기 10개, 동일방식 감청기 10개, 3단 진압봉 단단한 거 4개? 누님 어디 첩보요원이세요? 전쟁 나가세요? 아니 그거 다 떠나서, 왜 이런 걸 저한테 구하시죠?”

그의 말에 앞에 있는 여인, 하루는 바나나우유를 한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어요. 안서은님은 이유를 캐물을 것 같고, 구세주님은 해수님께 다 이를 것 같습니다. 영수님은 컴퓨터도 잘 하고 아는 것이 많고 편합니다.”

“아… 제가 좀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죠, 하하, 아 누님 그리고 말 편히 해주세요. 제가 동생인데.”

영수는 하루의 상황을 모르기에 말이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일단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알았다.”

“쿨하시네, 아무튼 한 번 찾아볼게요. 전에 그런 거 흘려들은 적이 있긴 한데… 근데 누님 경찰은 왜 그만 두셨어요?”

“응, 나는….”

영수는 테블릿을 꺼내어 하루가 필요하다는 장비를 검색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는 영수에게 절반 정도의 진실을 이야기했다.

해수를 남몰래 돕기 위해서 장비를 구한다는 것과, 경찰 말고 시간에 자유로운 일을 찾고 있다는 것까지 말했다.

“음… 지금 돈은 얼마나 모으셨는데요?”

“900만 원, 앞으로 해수님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야 해. 영수 동생이 추천하는 직업은 있나?”

영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돈은 적당히 버는 일이라… 잘 모르겠네요. 천천히 찾아보죠, 요즘 이 인터넷에서 안 나오는 일은 없거든요.”

“음….”

하루는 정영수가 보이는 자신감에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딩동

그때, 알림음이 울렸다. 영수는 바로 테블릿을 확인했다.

“오 답변 왔다. 빠르네, 물건 있다네요. 받으러 가죠.”

“받으러?”

“네, 이런 물건들은 보통 직거래를 하거든요. 직접 받고 현금 건네고.”

하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잘 다녀와라.”

“네? 아, 누님이 같이 가주셔야 합니다. 거기 험한 사람들이 많아서 누님이 지켜줘야 해요. 저는 애초에 그런 곳 안 가요. 집에만 있는 집콕이입니다.”

영수는 눈앞의 가녀린 하루가 자신의 일진 친구들을 휴대폰 하나로 순식간에 제압했던 때를 잊지 못했다.

그 장면은 인상깊은 영화의 명장면처럼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럼 가자.”

하루가 일어나자 영수도 신나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충남에서 유명한 대형 전자상가 건물.

전자기기 용품을 파는 3층으로 올라가니 복도가 길게 뻗어 있고, 복도를 따라 양쪽에 작은 사무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하루는 왠지 모르게 영수에게 현금다발을 맡겼고, 영수는 200만 원 가까운 현금을 품에 꼬옥 안고 그 복도를 거닐었다.

그녀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생각에 히죽거리는 그였지만, 물론 하루는 손이 부자유스러운 게 싫었을 뿐이다.

“어으, 말로만 듣던 이곳을 직접 오게 되다니… 너무 무섭다.”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인가….”

하루는 허리춤에 있는 삼단봉을 만지작거렸다.

둘이 복도를 걷자,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가게 앞으로 스윽 얼굴을 드러냈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썼지만 가려지지 않는 미모에 사내들이 환호했다.

“휘유~”

“오! 죽이는데?”

“아가씨, 뭐 구하러 왔슈? 뭐든 있으니까 이쪽으로 오쇼.”

콧수염을 길게 기른 사내가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영수는 입만 웃으면서 손바닥을 보여 거절했다.

“아, 저희는 갈 곳이 있어서.”

“여기 와보라니까, 지금 갈 곳보다 우리가 더 싸다고, 무조건.”

그러나 사내는 영수를 개무시하며 하루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동네 나이트클럽에서나 당할 법한 무례한 행동이 이곳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되고 있었다.

영수가 쩔쩔매며 주변을 돌아볼 때, 사내의 덩치와 괴력으로 인해 갑작스레 두 걸음 끌려갔던 하루는 돌연 팔을 휙휙 돌려서 역으로 그의 팔을 꺾고, 가게 밖에 전시되어 있는 일자 드라이버 하나를 꺼내어 그의 눈동자에 갖다 대었다.

1센티도 되지 않는 차이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이 드라이버 끝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사내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인지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눈을 찔러오는 일자 드라이버에 겁이 질려 몸이 얼어붙었다.

그때, 얼음장보다 더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알을 파줄까? 두 개니까 하나는 없어도 되잖아.”

그녀의 서늘한 눈빛, 한기 가득한 목소리, 풍겨져 나오는 살기.

사내는 순간적으로 저 일자 드라이버가 자신의 눈알을 거침없이 후벼파고 눈알이 뽑혀져 나오는 환상을 보았다.

‘이, 이 여자는 진짜다.’

그는 겁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죄, 죄, 죄송합니다! 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사내는 금세 태세전환을 하고 싹싹 빌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갈등이 보인다.

‘눈알을 팔까, 말까.’

그 고민이 문자로 보이는 것 같아 더욱 공포에 몸이 덜덜 떨리다 못해 청바지 가운데가 살짝 젖었다.

하루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검지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가 저 끝까지 갈 동안 누가 내 옷자락이라도 건드리면 니 눈알 판다. 알았어?”

“네,네,네 알겠습니다!”

하루는 사내의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드라이버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 걸음을 옮겼다.

영수는 하루를 졸졸 쫓아가며 엄지를 추켜들었다.

“와, 누님 카리스마 오졌어요. 어떻게 그런 살벌한 협박 멘트를 생각했어요? 진짜 옆에 있는 나도 지릴 뻔-”

“협박 아니야.”

“네? 그게 무슨….”

영수는 뒤늦게 그녀의 말에 숨은 뜻을 깨닫고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사내는 가운데가 축축한 청바지를 입은 상태로 하루와 영수의 뒤를 따랐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몇 발자국 떨어져서.

그렇게 절반 쯤 지나왔을 때, 방금 상황을 못 본 또다른 사내가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어이 아가씨, 여기 한 번….”

“우와악! 이 새끼야!”

“뭐, 뭐야!”

뒤따라오던 사내는 필사적으로 달려와 그를 덮치며 제지했다. 하루는 그 모습에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사람들은 굳이 피를 보지 않아도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그들의 목적지, 가장 끝에 문이 닫혀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330호라고 적혀있다.

영수가 철문에 대고 노크했다.

퉁퉁퉁-

“예약했습니다.”

-예약번호

“일삼구칠.”

철컥

미리 들었던 암호를 말하자 문이 열리며 안경을 쓰고 키가 매우 작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 최소 환갑은 지난 듯보였다.

“돈은.”

영수가 돈 봉투를 내밀자 그가 재빨리 낚아채었다. 그러고는 보는 앞에서 돈을 꺼내어 세어보고, 구석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었다.

“가져가.”

영수도 그 안에 있는 GPS 위치추적기 10개, 감청기 10개를 꺼내어 개수를 확인해보고, 직접 휴대폰에 연동시켜 작동까지 해보았다.

정말 새끼손톱 반만 한 크기였다.

그것을 챙기고 일어나자 돈을 다시 새고 있던 중년인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거 나쁜 짓에 쓰다 걸리면 죽어.”

그의 말에 하루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영수는 그녀를 뒤로 밀며 억지미소를 지었다.

“예 당연하죠, 하하, 수고하세요. 나가요. 나가 누님.”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영수는 문득 중년인의 말이 떠올라 하루에게 물었다.

“신형님 위해서 쓰는 거니까 나쁜 일은 아니죠?”

하루는 잠시 대답 없이 중년인의 말을 곱씹고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나쁜 일에 쓰더라도, 그 노인이 날 죽이지는 못해.”

“아, 네….”

영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누님이구나.

둘이 걷고 있는 장소는 차 없는 거리라고 하여 옷가게와 오락실, 카페 등이 줄지어 있는 시내다.

바닥도 주황색 타일로 깔려있어, 차 진입을 금하고 있는 안전한 길거리다.

얌전히 걷던 영수가 길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 사거리에 가끔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오늘도 무슨 행사가 있는지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시끌시끌했다.

“뭐 또 하나보네, 얼른….”

영수는 구석으로 사람들을 피해서 지나가려다가 하루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그곳에 고정되어 있고, 눈동자가 오늘 하루 봤던 것 중에서 가장 반짝였다.

영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발끝을 돌렸다.

“누님, 뭐하는지 한 번 가볼까요?”

“음.”

하루는 마지못해 가는 척 영수에게 이끌려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몸이 우락부락한 사내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그 뒤에는 턱걸이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앞에는 종이박스로 ‘개당 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 또 하실 분 손! 이 석스 털릴 준비 되었습니다! 여성분은 두 배! 아이고 주머니 털리고 싶다!”

운동 소재로 인기가 많은 너튜버였다.

이런 일상 속의 이벤트를 처음 겪어본 하루는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구경했다.

턱걸이는 특히나 좋아하는 운동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도전하고 돈을 받아가는 모습마저도 너무 흥미로웠다.

“자! 스물 한 개! 우리 고인물 형들은 조금만 있다가 도전하자고, 자 이번에는 우리 헬순이 한 번 갑시다. 어!”

그때, 너튜버가 인파 속에 숨어있는 하루를 발견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도 끼고, 옷으로 몸을 가렸지만 살짝 드러난 눈만 봐도 보통 미모가 아니라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것이다.

“거기 모자 쓰신 분? 지금 뒤돌아보는 분, 너요, 네, 잠깐 나와보시겠어요?”

예쁜 여성은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출연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조회수를 높여주는 절대적 요인이다.

하루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하 우리 헬순이님이 부끄러우셔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옵션 걸고! 5개 이상 성공하면 개당 4배, 4배 드립니다! 어떠세요!”

하루는 잠시 자신이 풀업을 몇 개나 하는지 떠올리며 고민했다. 이제 일도 그만뒀고 용돈벌이로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야! 역시 이 부끄부끄 헬순이도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맛! 나와주시죠!”

하루가 턱걸이 기구 앞에 서서 손목을 풀자, 진행자가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마스크 쓰고? 여기 많은 남성들이 눈알 빠질 것 같애, 한 번만 보여주시죠~!”

하루는 진행자의 손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돼?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몸 풀기?”

“바로 하겠습니다.”

“오 패기 쩔어! 알겠습니다. 시작!”

하루는 겉옷도 벗지 않고 바로 철봉에 매달려 풀업을 시작했다.

둘러서서 구경하던 이들이 입을 딱 벌렸다.

“하나! 오, 자세 뭐야 뭐야! 나 이렇게… 둘! 와우! 완벽한 풀업 하는 여성분 처음이야! 떨리는데? 셋!”

“오오오오!”

“와아아!”

“예쁘다!”

서서히 늘어나는 사람들은 귀한 장면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금방 다섯 개 채우겠… 다섯! 다섯 개 넘겼습니다 다섯! 여섯! 일곱!~ 여얼!!! 또, 또 해? 여,열 하나!”

“와 미친!!”

“짱이다!”

“찢어 찢어!”

“석스 주머니 다 털렸다!”

열 개가 넘어갔을 때부터 함께 숫자를 세는 구경꾼들의 환호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러한 소란 가운데에서도 하루는 꿋꿋이 계속 했고, 이를 보는 너튜버 석스의 낯빛만이 거무튀튀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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