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개편
서장의 대답에 신해수는 물론 강수대 대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자 서장이 말을 이었다.
“나도 알아요. 우리 자랑스런 강수대가 처음으로 미해결 사건이 생기는 거. 이거 종결이 아니라 다른 팀에 넘기고 장기로 갈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빨리 다른 사건 맡아요. 이번 것도 살인이야.”
청장은 마실장의 존재를 모른다.
청장에게 회사와 칠성회, 마실장에 관해 밝힐 수 있을까?
해수는 고개를 털었다.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청장이고, 그가 칠성회가 아니라는 것은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칠성회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데 밝힌다면 칠성회 입장에서 우선순위로 견제대상에 들어갈 것이다.
청장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이 건은 일단 묻어둔다.
“…알겠습니다.”
해수가 인정했고, 팀장이 다음 사건을 서장에게서 받았다.
그래도 건진 건 있다.
김석필이라는 신분.
어떻게 지문과 일치하게 신분을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한 손으로 쥐락펴락하는 이들이라면 쉬운 일일 것이다.
해수는 틈만 나면 김석필이 다니는 무역회사를 몰래 찾아가서 그가 있는지 확인했다.
정영수에게도 김석필의 휴대폰을 해킹하게 부탁했지만, 걸려들지 않았다.
도청기를 기대했지만, 마실장이 그것마저 예상했는지 바로 이사를 했다.
‘치밀한 놈….’
해수는 분을 삭였다.
아버지를 그가 죽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살인을 시킨 단체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이제 조금씩 풀리고 있다. 실밥이 하나 둘 씩 튀어나온다. 그것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해수의 눈이 번뜩거렸다.
‘반드시… 잡아주마.’
* * *
몇 개월 뒤, 강진 경찰서 공고 게시판.
경찰들이 점심을 먹고 그곳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승진 및 특진 대상자가 게시판에 올라오는 날이다.
해수가 식당에서 나오자 오갱이 칼각으로 경례를 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신경위님!”
“음?”
게시판에 가보니 강수대 전원이 모두 한 단계씩 진급 예정자에 적혀 있었다.
해수는 경위, 우강철은 경사, 하루는 경장, 오갱은 경감, 게다가 마지막 팀장 곽수철은 경정으로 올라섰다.
“와우, 경정 실화냐? 나 이제 경찰 간부급에 튼튼한 연줄 생긴 거야?”
곽팀장은 손사래를 쳤다.
“에헤이 연줄은 무슨, 나 살기 바쁘다.”
“그럼 이제, 팀장님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겁니까?”
막내의 물음에 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래야지, 내 나이도 있으니까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야지, 우리 오갱 팀장님 말 잘 따르고.”
“와 벌써 선 긋는 거 봐,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형 뜨뜻한 사무실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사인만 하는 거야?”
“엣헴.”
다들 축하해주었지만, 팀장을 떠나보내야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기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강력2팀 팀장도 다가와 곽팀장에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수철이형 축하해, 드디어 3개 다셨네.”
“어이, 너도 얼른 올라와야지.”
“올라가기는. 여기서 만족해, 이제 나도 몸 좀 사려야지. 아, 강수대 해체된다며?”
“엉?”
“응?”
“음?”
놀라는 강수대의 반응에 2팀장이 오히려 당황했다.
“반응이 왜 이래? 다들 몰랐어? 나만 아는 거야?”
“그런 헛소리는 어디서 들었냐?”
“나는….”
그때, 위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헛소리 내가 했어요.”
“서, 서장님!”
“충성!”
강진서 서장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강수대의 의아한 시선이 단번에 그에게로 꽂혀들었지만, 그의 얼굴은 담담했다. 강진시는 물론이고 충남에 강력 사건을 도맡으며 뛰어난 해결능력을 보이는 강수대를 해체한다는 말은 서장이 생각하기에도 불합리했다.
“청장님이… 따로 얘기할 거에요.”
“이렇게 갑자기….”
대원들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강수대 본부로 복귀했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서로 말없이 있을 때, 마침 곽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충남경찰청장이었다.
“예 강수대 수사관 곽수철입니다. 청장님.”
-조감찬입니다. 좀… 보시죠, 우리 대원들도 다 같이
* * *
며칠 뒤, 칼퇴근 후 강수대 대원들은 봉고차를 타고 다같이 강진시 외곽에 위치한 갈비집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지만, 조감찬 청장은 부속실장과 함께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자랑스러운 우리 강수대 대원분들 오셨어요? 앉으시지요.”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우리 곽수철 대장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좋은 팀 맡겨주신 덕분입니다….”
사람은 나약하여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아무리 올곧은 사람도 유혹이 계속되면 대부분 넘어간다.
계급이 낮은 올곧은 경찰을 만나는 것은 쉽다. 유혹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지방을 대표하는 경찰 청장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올곧은 경우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만나기 어렵다.
그리고, 강수대 설립자 조감찬 청장은 사막에 바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해수는 물론 강수대 대원들도 모두 이 식사 자리가 잡히면서 해체 이유를 눈치챘다.
청장의 퇴임이다.
모두 자리에 앉아 운전자를 제외하고 술잔을 채우고, 첫 잔을 마시고 나서야 청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정말 좆같습니다.”
“…네?”
“흡”
“헙”
인자한 표정의 청장에게서 이런 단어가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했기에 대원들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누가 봐도 강수대 설립 이후에 치안이 좋아졌거든요? 강력범죄 해결 건수도 확 늘어나고, 경찰 이미지도 좋아지고, 경찰 사기도 올라갔어요.”
“으음….”
“지키려고 했는데, 이번에 오는 놈이 영 말이 통하질 않아. 이제 난 끝이라 이거지, 힘이 없어, 빌어먹을.”
청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합니다. 이번에 올라오는 놈은 줄이 굵어. 근데 난 줄이 없어, 무능한 청장이라 미안합니다.”
청장 임기가 끝나면 다른 지방 청장으로 가거나, 본청 국장으로 간다. 그러면 아직 입김이 있으니 강수대를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감찬 청장은 이번을 끝으로 경찰 퇴임을 하는 것이 문제였다.
정년까지 몇 년 남았지만, 그가 그렇게 결정했으니 강수대 대원들이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곽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청장에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다시 오는 청장은 왜 강수대를 없앤답니까?”
곽팀장은 이제 진급하면서 어차피 강수대를 떠나야 하지만, 그래서 이번 소식이 더 씁쓸했다.
청장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대답했다.
“다른 서에서 불만이 많이 올라왔다고,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강수대를 해체한다고 해요.”
“정말로 불만이 많았습니까?”
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율이 낮아지고, 범죄 해결이 빨라져도 일단 강수대가 다른 서의 실적을 떨어트리고 큰 공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하여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것을 청장이 묵묵히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잘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우리 강수대 대원분들, 자랑스러웠고, 앞으로도 우리 강진시 잘 부탁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청장님.”
* * *
청장과의 식사와 함께 강수대 해체 통보를 받은 지 딱 한 달 뒤.
곽팀장과 하루의 송별회가 진행되었다.
송별회는 호프집에서 했다.
오갱이 오자마자 500cc 맥주잔에 맥주와 소주를 섞어서 가득 따르고는, 바로 털어마셨다.
“크흐… 오늘 참 쓰다 써.”
“원래 술은 써 이 새끼야, 처음부터 왜 이렇게 달려?”
“아 몰라, 이제 떠날 사람은 신경 끄쇼.”
“와, 이제 간다고 아주 그냥 말년병장 취급하네, 짬 시키냐? 짬 시켜?”
곽팀장의 말에 돌연 막내가 맥주병과 소주병을 들고는 벌떡 일어났다.
“맞습니다. 짬.”
“와우, 내가 우리 막내를 얼마나 이뻐했는데, 이렇게 또 사랑을 해주네.”
“사랑합니다. 팀장님.”
콸콸콸
그렇게 소맥을 팀장의 잔에 가득 따르고, 하루의 잔에도 따랐다.
“후임이 오자마자 일 년만에 간다니, 정말 꿈만 같구나, 아아, 꿈이었으면 좋겠구나.”
“죄송합니다….”
“아, 아니 뭐, 그냥 아쉽다는 말이야, 죄송할 건 아니고.”
해수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오갱과 눈을 마주치고는 잔을 들었다.
“짠하시죠, 강수대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맏형님 한 마디!”
“뭐 씨, 어딜 가든 강수대는 살아있다. 강수대 화이팅! 곽오신우하 화이팅!”
“아? 성만 딴 겁니까? 다들 성씨가 다른 게 신기합니다!”
“풉, 하여튼 아재, 하순경, 아니아니 하경장도 한 마디.”
하루도 가냘픈 손으로 500cc 잔을 높이 들어올리며 말했다.
“다들 죽지 마십시오. 화이팅.”
“어, 어?”
“아, 그,그래! 우리 다 안전하게 일하고, 으자으자! 짠!”
“으자으자!!”
창 창
다섯 개의 잔이 허공에서 어지러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두 명은 떠나고, 세 명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다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자리였다.
“…나는 뭐 청에 생안계 들어가지.”
“생활안전계? 그럼 형 직급은 뭐지?”
“과장으로 가는 거지.”
“크 과장, 그래, 형도 이제 편한 일 해야지, 아무튼 축하해.”
막내도 하루에게 경찰 일을 왜 휴직하는지 물었다.
해수도 이 다음에 하루가 할 일을 정확히는 듣지 못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일단 휴직이지만, 경찰을 그만 둘 생각으로 휴직하는 겁니다. 안 해본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구나, 역시 젊다 젊어, 아쉽네.”
“그러면 다시 세 명 체제인 건가?”
해수가 처음 들어왔을 때 곽팀장과 오갱, 해수, 이렇게 세 명이 꽤 오랫동안 함께 했었다.
“야, 돌격이 처음 들어왔을 때 생각난다. 돌격이가 그렇게 내 팀에 들어오고 싶다고 난리를 쳤댄다.”
“이제 떠날 사람이라고 막말을 하네, 형 해수 내가 꼬셨어. 그 다잉나이트 때 만나서 내가 입을 얼마나 털었는데.”
“두 분 말씀이 맞습니다. 짠하시죠.”
해수는 계속해서 사이다를 마시면서 그들과 잔을 맞춰주었다.
“막내 들어왔을 때는 수갑 꺼낼 뻔 했습니다.”
“아 맞아 맞아, 이제 말하는데 무슨 조폭이 형사 하나 찌르려고 들어온 줄 알고 쫄았다.”
“다들 같은 마음인 걸 이제야 확인하네. 막내야, 니가 우리 팀이라 다행이다.”
막내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두를 쥐어짜 보였다.
“하경장 처음 왔을 때 다른 팀 애들 반응 생각난다.”
“내가 이것도 이제야 말하는데, 총각 형사들이 나보고 소개시켜달라는 거 뿌리치느라 힘들었다.”
오갱의 말에 해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누가 그랬습니까?”
“어? 아, 아니야 농담이야, 그렇게 인상쓰지 말아줄래? 무서우니까.”
해수의 반응에 하루는 고개를 숙이고 피식 미소를 흘렸다.
그렇게 아쉬운 송별회가 지나가고, 아쉽게 헤어졌다.
* * *
강수대가 해체되고, 나머지 셋은 부탁할 청장이 없으니 서장에게 부탁하여 최대한 같이 붙여달라고 했다.
서장은 셋의 시너지가 좋으니 당연히 그렇게 힘쓸 예정이라 답했다.
그리하여 오갱과 신해수, 우강철은 강진서 강력4팀으로 배정되었다.
끼익
“어이구 퀴퀴하다. 이 냄새나는 곳을 또 들어오다니.”
“정겹습니다.”
셋이 강력반에 들어서자, 다른 강력팀 형사들이 반겼다.
“아이고 이게 누구셔, 지겨운 얼굴 더 가까이서 보게 생겼네.”
“왔냐~ 강수대 대원들 환영해~”
“오셨습니까 선배님들!”
“오셨습니까!!”
해수가 특별교관으로 경찰학교에 가서 가르쳤던 기수 형사들이 후다닥 달려와 칼각으로 경례를 했다.
해수는 간단하게 마주 경례를 마치고는 그들 한 명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했다.
그 중에는 교육생대표였던 김웅민과 오성주 국회의원의 딸 오미연도 있었다.
“어 그래, 수고 많다. 앞으로 같이 수고하자.”
“네, 넵!”
“영광입니다! 선배님!”
가장 구석에 4팀 팀원들이 자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2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4팀도 왔어? 어이구 비주얼 참 든든하네, 자 다들 주목! 새로 부임하신 강력반 반장님 오신다!”
2팀장의 폭탄발언에 형사들이 당황했다.
“어? 갑자기 뭔 말입니까? 반장 없이 굴러간 지 몇 년짼데 무슨 반장이에요?”
“아, 위에 결재할 사람 하나 늘었네.”
“대한민국에서 제일 빡센 데가 여긴데, 여기 사람 아니면 반장으로 인정 못하는데.”
“또 펜대만 굴리는 높으신 양반 하나 오시나보네, 훈장 달러.”
“아오….”
쾅!
그때, 누군가 들어와서 문을 거칠게 닫았다. 기선제압 할 의도가 다분하여 형사들은 냉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정복을 입고, 어깨에 개화한 무궁화 세 개를 달고 있는 하찮은 실루엣의 남자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뭘 얼굴 보기 전부터 욕이 난무하냐?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