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62화 (161/255)

162. 사표 수리

놈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는 다시금 곽팀장의 목을 향해 칼을 뻗었다.

부아앙!!

그 사이 신해수가 액셀을 당기며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 놈을 덮쳤다.

놈은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칼을 거두고 덮쳐오는 해수를 맞이했다.

터덕-

공중에서 두 남자의 손이 빠르게 섞인다. 해수가 놈의 팔과 멱살을 잡으려 했고, 놈은 손을 쳐내면서 교묘하게 해수의 멱살을 잡고 업어치기를 했다.

쿠웅!!

해수는 바닥에 꽂히면서도 놈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때문에 해수의 중력으로 인해 놈도 바닥을 함께 몇 바퀴 굴렀다.

어느새 해수가 바닥에 등을 대고 있고, 놈이 해수의 배 위에 올라타 있다.

칼은 해수가 덤벼들 때 놓았기 때문에 몇 미터 떨어져 있다.

놈은 바로 해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퍽퍽퍽 퍽!

해수가 가드를 올려 공격을 모두 막아내자, 놈이 벨트를 풀어 해수의 목을 조이려고 했다.

꽈악!

해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쪽 팔이 어깨너머로 가게 하여 놈을 끌어안아 갈비뼈를 압박했다.

“끄으으-!”

같은 체급이더라도 선천적으로 힘이 장사인 해수인데, 체급이 두 단계는 낮은 놈이 버텨낼 리가 없었다.

놈은 돌연 해수의 어깨를 깨물었다.

뿌드드득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자, 해수의 의지와는 달리 힘이 살짝 풀렸다. 동시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이 옆으로 굴렀다.

곽팀장이 있는 방향이다. 그곳에서 놈이 칼을 줍는 사이, 해수의 시선은 팀장에게 잠시 향했다.

“끕, 끄윽….”

목을 부여잡고 있는 손가락 틈새로 피가 흘러나온다. 아직 동공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를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동시에 머리는 차가워졌다.

수많은 위기상황을 맞닥뜨렸던 베테랑 형사의 경험으로 축적된 능력이 지금 발현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우선순위인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금세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새도 없이 품에서 총을 꺼내었다.

놈은 칼을 들고 해수에게 다시 달려들려다가 총구를 보고 멈칫했다.

눈빛은 마치 ‘진짜 쏘려고? 아니지?’ 라고 말하는 듯했다.

탕 탕!

해수는 총구를 놈의 얼굴을 향하게 하고 공포탄을 쏘고, 다음에는 총구를 내려 허벅지를 향해 쐈다.

놈은 그 짧은 틈에 해수의 눈빛을 보고 진짜 쏠 것임을 직감하고 몸을 틀었다.

보통 반사신경이 아닌지 가까운 거리임에도 총알이 허벅지를 스쳤을 뿐 치명상을 안기지는 못했다.

타다다닥-

놈은 화단 너머로 덤블링하듯이 몸을 숨기더니 다시금 일어나 전속력으로 달렸다.

해수는 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곽팀장에게 다가가며 윗옷을 벗어 거침없이 찢었다.

“큭, 크륵-”

“말하지 마십시오. 의식 잃지 않게 집중하십시오.”

해수는 붕대 대용으로 자신의 티셔츠를 찢어 곽팀장의 목에 두르고, 그를 번쩍 들고 수십 미터 거리에 있는 응급실로 뛰었다.

쿵 쿵 쿵 쿵!!

“의사! 의사!!”

얼굴에는 피가 묻었고, 웃통은 벗고 있는데 칼이나 총 따위로 당한 것 같은 흉터가 넘쳐나는 무시무시한 사내가 눈빛에 흉흉한 살기를 품고 들어왔다.

게다가 포효와도 같은 목소리로 의사를 찾으니 대기하던 간호사나 의사는 물론 환자들도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로 추정되는 남자가 해수를 보고 움찔거리며 바로 다가오지 못하자, 해수가 먼저 곽팀장을 빈 침상에 내려놓으며 주머니에서 경찰공무원증을 꺼내어 보였다.

“부탁합니다!”

해수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뒤돌아서 나갔다. 간호사와 의사는 재빨리 곽팀장에게 우르르 붙었다.

본래대로라면 해수를 잡아놓고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 의무지만, 지금 이곳에는 굶주린 맹수와도 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해수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용기있는 자가 없었다.

* * *

해수는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며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오갱 형님, 팀장님 지금 응급실입니다. 범인은 도주했어요. 오늘 무조건 잡아야 하니까 지원 요청 바랍니다.”

-그게 무슨…

해수는 바로 무전을 끊고 화단에 작은 잎사귀에 묻은 핏자국을 매만졌다.

총알이 허벅지를 스치며 난 상처로 인해 피를 흘린 것이다.

핏자국을 따라갔지만 금방 끊겼다.

예상은 했다. 강력수사대 대장을 습격하는 대담함, 철저한 계획, 잠시뿐이었지만 놈이 보여줬던 실력, 그들 특유의 싸늘한 기운, 마주한 것은 잠깐이지만 회사 출신으로 의심된다.

놈은 핏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치는 금방 취했을 것이다.

‘무조건 잡아야…?’

그때, 해수의 시선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잡혔다. 벽 끝에 누워있는 신발이 보인다. 신발만 저렇게 세워져 있을 수는 없다. 신발 끈에 피가 묻어있다.

총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 휙 코너를 돌았다.

해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범인… 찾았습니다.”

해수의 시선 끝에는 목이 부러진 채 쓰러져 있는 범인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셋을 외쳐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되지 않았다.

리셋은 하루에 한 번, 그리고 범죄자가 대상이면 발현되지 않는다.

지원요청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범인을 이렇게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실력자가 주변에 있다는 것이니.

주변을 둘러보니 병원 내 공원 가로등 쪽에 cctv 한 대가 보였다. 이 근처에서 일이 일어났다면 장면이 찍혔을 수도 있는 위치다.

해수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cctv를 확인했다. 본래는 범인의 시신을 다른 경찰에게 인계하고 움직여야 하지만, 또 다른 살인범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었다.

공원 cctv에 범인이 해수에게서 도망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덩치 큰 남자가 훅 튀어나오더니 한 순간에 범인의 턱과 머리를 잡고 휙 돌려버렸다.

범인이 뭘 어떻게 반격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당했다. 아니, 그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한 손을 들어올렸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던 듯하다.

덩치 큰 남자는 범인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실장!!’

매우 먼 거리에서 찍혔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식별할 수 없지만, 해수는 알 수 있었다.

저 범인과 잠시나마 손속을 섞어본 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정도의 실력자를 단숨에 살해할 수 있는 덩치 큰 남자는, 마실장밖에 없다.

역시 범인은 회사 사람이 맞았다. 회사에서 이번에는 주변인을 죽이기로 했던 것인가? 그렇기에는 행보가 이상하다. 전형적인 목적형 연쇄살인마였다. 그를 마실장이 직접 나서서 처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리셋 전에 범인과 팀장이 했던 대화도 이상하다.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저 덩치, 마실장을 찾는 게 급선무다.

해수는 병원 상황실에서 cctv를 돌려보며 마실장의 실루엣을 찾아댔다.

그때,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띠리링-

“팀장님 상태 확인되었습니까?”

-아직… 수술 중이시다.

“알겠습니다.”

해수는 리셋 전에 팀장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던 이미지를 애써 밀어버렸다.

이번에도 조금 늦었지만, 범인이 칼을 휘두르기 전에 자신을 힐끔 보았던 것이 과거와 달랐다.

그 찰나에 곽팀장이 몸을 비틀며 작은 실수가 생겼고, 리셋 전과는 달리 응급실로 옮길 동안 곽팀장의 목에 피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마실장, 마실장….’

해수는 수많은 화면을 뒤지며 마실장을 찾아댔지만, 그 큰 덩치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며칠 전.

고층 빌딩, 불 꺼진 사무실에 덩치 큰 사내가 태블릿을 보고 있다.

무도인들이 살해 당한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는 마실장이었다.

똑 똑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피부가 창백하고 키가 큰 사내가 들어왔다.

“실장님, 죄송합니다. 23번 사표 수리에 실패하였습니다.”

마실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번이 세 명짼가?”

“예.”

“이것도 23번이 벌인 일이라더군.”

마실장이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이미 소식을 알고 있는 사내도 보고서를 힐끔거리고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겠지, 뛰어난 친구였는데, 아깝네.”

“실력만 뛰어날 뿐, 정신은 붕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더 아까운 거야, 의지가 있는 칼은 주인을 찌르는 법이니까.”

마실장은 태블릿 화면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사표 수리해줘야지.”

“직접 말씀이십니까?”

마실장은 검지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니네 하나 만드는 데 수십 억이야, 돈 아껴야지.”

사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 *

곽팀장은 경동맥이 스쳤지만, 잘리지 않아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마실장에게 목에 뒤틀려 죽은 범인, 그를 강수대는 라이터남이라 불렀다.

라이터남은 지문도 없고 아예 신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머물렀던 여관방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의 트로피나 메달이 하나씩 옷장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그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곽팀장의 딸을 친 오토바이 뺑소니범 역시 동일인이었다.

곽팀장이 본부에서 나오지 않으니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저지른 계획범죄였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라이터남의 오른손 손가락 네 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마실장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 무지막지한 괴력에 손가락마저 같이 빨래 짜듯이 목과 함께 뒤틀린 것으로 추측되었다.

연쇄살인 건은 해결했지만, 마지막에 마실장이 끼어드는 바람에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범죄를 알고 있는 또다른 살인범이 나타난 셈이었으니까.

그가 공범일지, 혹은 복수하러 온 인물일지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

쾅!

오갱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으아아! 형님은 지금 병원에서 놀자판인데, 나는 이 귀신같은 덩치남 찾으려고 이 지랄이나 하고 있다니, 하나 찍힌 게 개미똥꾸멍만하게 나와서 전과자 데이터베이스 돌려도 안 나올거고, 아오 내 눈알!”

“정말 귀신같이 사라졌습니다. 목격자도 한 명도 없고, 이게 말이 됩니까?”

해수는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쉬워, 평소에 cctv를 의식하고 있으면 너도 사각지대로만 이동할 수 있어.”

“제가 말입니까? 에이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해수는 하루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마실장으로 추측되는 자가 나오는 cctv를 확인한 뒤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했다.

엄한 사람을 죽인 살인범과, 연쇄살인범을 죽인 살인범.

똑같은 살인범이지만 강수대도 라이터남을 찾을 때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수사에 진척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지만.

라이터남을 추적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친 강수대는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정해진 수순처럼 곽팀장 병문안을 갔다가 퇴근했다.

* * *

리드빌딩 10층.

해수는 집에 오자마자 턱걸이를 전투적으로 하고 있는 하루에게 다가가 물을 건넸다.

“피곤할 때는 쉬어줘야 해.”

하루도 동일하게 일주일 가까이 본부에서 숙식하여 피곤이 많이 쌓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는 내려오지 않고 이어서 턱걸이를 하며 말했다.

“거기 두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해수는 물 잔을 내려놓고 뒤돌아서려다가 멈칫했다. 그녀의 뒷말이 걸린다.

“시간이 없다니, 그 놈이 널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가까워졌습니다. 회사에서 팀장님을 노린 게 맞다면….”

해수는 그녀를 끌어내리고 말을 이었다.

“세 건 모두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살해였어, 회사에서 이런 암살을 시키나?”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겠지, 이놈은 회사 놈이었지만 탈선하고 있던 거야. 암살에 실패해서 마실장이 라이터남을 처리한 게 아니라, 회사 출신인 라이터남이 개인 욕망을 채우려고 사고를 치니까 마실장이 직접 처리한 거라고.”

“하지만, 가까워진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해수는 하루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마실장인지 매실장인지… 내가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줄 테니까.”

* * *

고층 빌딩 사무실.

고급 의자가 좁아보일 정도로 덩치 큰 남자가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히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누가 내 욕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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