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60화 (160/255)

160. 그 놈이다

띡띡띡 띡 철컥

불꺼진 집 안, 넓은 거실의 한쪽 벽면은 고급 장식장이 차지하고 있다.

장식장 유리너머에는 수많은 메달과 상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신발을 벗고 습관적으로 형광등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대었다가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가 있는 곳에는 검은 인영이 서 있었다.

불을 켜자 검은 인영의 정체가 드러났다.

몸에 딱 붙는 새까만 운동복에 새까만 마스크를 쓴 평범한 체격의 남자,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집주인을 보며 마스크를 벗었다.

“주철권씨?”

집주인, 주철권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주철권은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에 현재는 실전태권도 사범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침입한 좀도둑을 상대로는 여유롭다 못해 가소롭지만, 이름을 알고 있다면 실력도 안다는 것이니 보통 좀도둑은 아니다.

“뭐야, 너.”

“내가 누군지는 말해도 모를 거고, 지금 몸 상태 어떠세요? 오늘 술도 안 마셨고, 무리한 대련도 없었고, 컨디션 좋은가요?”

주철권은 천천히 상대의 몸을 살폈다. 몸에 딱 붙는 옷이기에 어디 근육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일반인보다는 발달된 근육이다. 그러나 키가 그리 크지도 않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현재는 맨손이다.

주철권은 가방을 소파에 던지며 말했다.

“컨디션이 좋든 말든, 너 응급실 보낼 상태는 된다.”

“좋아요. 기대해보죠.”

남자가 먼저 공격하라는 듯이 손을 까딱까딱거렸다.

“건방진 새끼가!”

주철권은 확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틀고, 옆으로 한 걸음 옮기며 발을 쭉 뻗었다. 정통으로 들어가면 가드를 들고 맞아도 4~5미터는 날아가는 살인적인 옆차기다.

그러나 남자는 차분하게 그의 발을 맞이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며 주철권의 발목을 팔꿈치에 끼우고, 다른 손으로 그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뿌득!

“끄아악!!”

* * *

강수대 본부, 대원 모두 소파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다. 오늘은 특별히 중앙에 탕수육까지 있다.

후루룹 후룹

쫩쫩

“이게 얼마만에 면이냐, 역시 짜장면은 동해장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탕수육도 찹쌀로 튀겨서 부드럽습니다.”

“해수가 먹을 줄….”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아무 말없이 짜장면을 흡입하던 하루가 벌떡 일어나 꿀꺽 삼키고는 전화가 울리는 자리로 가서 받았다.

대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하루를 보며 짜장면을 빠르게 입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강수대 하루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하루가 전화를 끊자마자 말할 틈도 없이 곽팀장이 먼저 물었다.

“뭐야, 사건?”

“예, 살인 사건입니다.”

하루의 말에 대원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 * *

사건 현장.

거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고, 천장과 바닥에 피가 흩뿌려져 있다.

거실 한 가운데에는 덩치 큰 남자가 대자로 누워 있다.

이번에는 곽팀장도 현장에 함께 왔다.

“난리네.”

해수는 바닥에 널브러진 메달과 상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서른 중반이면 나이도 젊고, 몸도 꾸준히 관리한 것 같고, 웬만한 괴한은 뼈도 못 추릴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만만한 양반이 아니라서 집도 이렇게 난장판이 될 만큼 싸웠겠지. 이거 봐라.”

팀장은 막내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가까이 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막내가 가까이 오자 검지로 사체의 목을 가리켰다.

“살이 별로 안 말렸지? 지금 보기로는 칼에 찔린 건 딱 이거 하나야. 경동맥에 딱 한 번, 그것도 죽이고 나서, 맨손으로 죽이고 나서 찌른 거지. 보통 놈이 아니야.”

“음…그렇네요.”

해수는 가만히 서서 족적과 파손된 집기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기서 공격을 피하고, 여기서 밀쳤군, 몸통박치기로….’

해수가 당시 상황을 추리하며 발을 옮겼다.

‘여기서… 업어치기.’

“여기서… 업어치기.”

해수는 자신의 속말에 입밖으로 튀어나온 줄 착각할 뻔했다. 눈을 들어보니 그와 같은 동선에 하루가 업어치기를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해수와 눈이 마주쳤고, 해수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바닥에 눕힌 상태에서….”

“발목을 부러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대충 보았을 때는 모르지만, 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사체의 두 발목과 팔목이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목을 꺾어 살해하고, 칼로 경동맥을 찔러 마무리를 한 것이다.

추리가 끝날 때쯤, 다른 방을 살피던 오갱이 말했다.

“돈 될만한 건 다 그대로 있어, 아니 다른 방에 들어간 흔적도 없어.”

“금품도 안 훔쳤고, 원한살인이라기에는 너무 깔끔하고. 이거 왠지 느낌이 쎄하다.”

곽팀장의 느낌은 일치했다.

cctv를 수거하여 확인했지만 이렇다 할만 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 주철권의 집에서 나온 머리카락과 지문을 국과수에 보냈지만, 모두 주철권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씨 뭐 이렇게 답답하냐, 나오는 게 없네 없어.”

“뭐 다른 사건은 뚝하면 딱 나왔나? 얼른 파기나 해.”

“형님 이러다 눈깔 파이겠수, 아우 눈 뻑뻑해.”

툴툴대던 오갱은 눈에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다시 cctv 분석을 했다.

해수와 막내, 하루는 피해자 주변인물 조사를 하러 나갔다.

이렇다 할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원한관계가 있는지 주변인을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 음….”

곽팀장이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분류된 길거리 블랙박스를 확인하던 때였다.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는 남자 한 명의 뒷모습이 찍혔는데, 어딘가 낯이 익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몸도 적당하여 특징하나 없지만 무언가 거슬렸다.

탁 탁

곽팀장은 알약이 목에 걸린 것처럼 찝찝한 마음에 같은 장면을 계속 돌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검은 바지, 진남색 셔츠… 키는 대략… 178?’

이 뒷모습만으로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른 영상에도 이 사람이 찍혔을지 모른다.

시간낭비일 수 있지만,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으니 팀장은 일단 다른 영상에서 검은 바지에 진남색 셔츠를 입은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끼익

그때 원한관계 조사를 다녀온 해수 팀이 복귀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팀장은 분석을 멈추고 턱을 들었다.

“어 고생했네, 뭐 좀 나왔어?”

“일단 운동쪽 사람이다보니 애매하지만 원한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김훈이라는 사람이 조금 큽니다.”

“김훈? 뭔데.”

“국대 대표 뽑는 시합에서 주철권씨에게 지고 다리에 부상까지 크게 입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아예 선수 은퇴했다고….”

“드라마틱하네, 한 번 연락해 봐.”

“예 알겠습니다.”

피해자 주철권씨와 라이벌이었던 김훈은 바로 연락을 받았고, 경찰서에 출석했다.

턱 저벅, 턱 저벅.

그가 본부에 들어서자 장내는 순간 적막해졌다.

한때는 국가대표를 꿈꿨다던 전도유망한 선수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니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의 차림은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다. 다 해진 바지와 색 바랜 티셔츠는 그의 삶을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런 것들이 더욱 살해동기로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팀장이 먼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김훈씨? 강수대 대장 곽수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예, 안녕하세요. 주철권 그 친구가… 죽었다고요.”

그의 눈동자가 씁쓸하게 떨궈진다. 분노와 허무, 허망함 등 수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엉켜 있다.

팀장은 그 눈빛 하나만으로 이 자가 범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취조하다보니 우연히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없었다.

김훈은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혼자 술만 마시기 때문에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는 스케줄이 없던 것이다.

“저는 정말 아니에요. 그 친구한테 원한… 하, 뭐 원한도 가지고 증오도 하긴 했죠,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그게 끝입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하니 알겠더이다. 내 다리 이렇게 만든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내 욕심이었어요. 난, 그 친구의 죽음이 진심으로… 슬픕니다.”

슬프다는 감정은 사실이지만 카테고리가 조금 달랐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순수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 대신 잘 나가던 승자가 자신보다 먼저 처참하게 살해되어 삶을 마쳤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팀장님.”

그때, 해수가 팀장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김훈의 집 앞 cctv를 확인해봤는데, 저녁 6시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나올 때는 아침 7시였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훈에게 말했다.

“김훈씨 알리바이 증명되었네요. 이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원칙대로 하신 거 아닙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 가봐도 될까요?”

“아 네네 물론이죠, 댁으로 모셔… 아, 잠시만요.”

곽팀장은 노트북을 돌려서 김훈에게 블랙박스의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검은 바지와 진남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다.

“이 사람 혹시 본 적 있습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여줬지만, 김훈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어도 누군지 못알아 볼 것 같습니다.”

“아 예, 그렇죠? 아무튼… 그럼 주철권씨에 대해 생각나는 거 있으면…”

똑똑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해수가 다시 취조실로 들어왔다.

“팀장님.”

“왜?”

“사건을 또 찾았습니다.”

사건이 터진 게 아니라 찾았다? 뉘앙스가 이상하다.

곽팀자은 김훈을 돌려보내고 보고를 마저 들었다.

“…비슷한 사건이 다른 관할에서 터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재까지 두 군데인데, 하나는 서울로….”

한 명은 서울 강동구에 UDT 교관 출신으로 동일하게 자택에서 살해된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맨손으로 죽이고 경동맥에 칼로 딱 한 방만 찌른 것이 동일했다.

한 명은 전북 전주, 극진가라데 유단자 출신으로 본인 소유의 도장에서 살해당했다.

이자도 맨손으로 죽이고, 칼로 경동맥을 찔러 마무리한 것은 동일했다.

게다가 칼의 크기, 폭, 위치까지도 모두 동일하여 동일범 소행이라는 것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설명을 들은 팀장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 새끼 이거 도장 깨기네.”

“도장 깨기….”

강수대는 바로 양쪽 경찰서에 공문을 보냈다.

합동수사를 하든지, 아니면 지금까지 조사했던 자료와 영상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두 개의 경찰서는 ‘자기들이 먼저 맡은 사건이니 끝까지 알아서 하겠다’ 라는 그런 뻔한 방식이 아니라, 바로 모든 자료와 영상을 넘겨주며 지원을 하겠지만 전적으로 강수대에게 이 사건을 맡기겠다고 의지표명했다.

“의외로 쉽게 자료를 받았네.”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처럼 증거도 없고 깔끔하니 애 먹을 거 아니까 포기하고 넘긴 거 아닙니까?”

“뭐… 그러게, 살펴볼 게 많긴 많다.”

팀장은 해수와 함께 테이블 위에 높게 쌓여있는 자료를 올려다보았다.

동일범 소행의 사건이 세 개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꾸몄다고 해도, 이 세 번의 범죄에서 작은 단서라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강수대는 눈알이 빠지게 cctv를 분석하면서 세 곳에서 동일하게 나온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노가다에 기억력도 좋고 눈썰미도 좋아야하는 일이다.

“루테인, 루테인 어딨어!”

“하 내 눈알, 이럴 때마다 정말 현대기술이 얼른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사람은 딱딱 찾아주면 얼마나 좋아? 엉? 안 그러냐?”

“그렇습니다아흠”

“하순경이 하품할 정도면 우리가 수고를 많이 하긴 했다.”

그 와중에 곽팀장은 혹시나 그 뒷모습이 찍힌 사람에게 매몰되어 진짜 용의자를 놓칠까 봐,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고 혼자서 그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5일간 본부에서 숙식하면서 분석했지만 이렇다 할 단서도 실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강수대 대원들의 체력도 지치고 정신도 지쳐서 분위기도 급격히 가라앉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이잉

곽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예, 강수대 대장 곽수철입니다.”

-예, 그, 형사님, 저 김훈입니다.

팀장은 일어나 조용한 취조실로 향하며 통화를 이었다.

“예예, 김훈씨, 전화 줘서 고마워요. 기억나는 게 있어요?”

-아… 그때 그 뒷모습 보여줬던 사람, 그냥 지금 갑자기 떠올랐는데, 한창 더울 때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자세히 얘기해보세요.”

-키는 한 180정도? 그거 좀 안 되나, 참 샌님처럼 생겼는데, 꼭 그 백정놈들처럼 싸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남았거든요. 그냥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갔는데, 별로 대화가 기억은 안 나고요.

“음….”

-아, 그런데 그건 생각나요. 대화만 하는데 묘하게 내가 끌려가는 느낌? 꼭 사냥감을 궁지로 모는 것처럼.

“……!”

돌연 팀장의 뇌리에 누군가가 스쳤다. 팀장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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