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59화 (159/255)

159. 라이터

진한 남색의 진압복은 허벅지와 팔뚝을 제외하고는 모두 꼼꼼하게 감싸고 있다. 헬멧과 팔뚝에 끼우는 작고 동그란 방패와 진압봉까지 들어 완전무장을 하면 일반인이어도 마치 종합격투기 선수를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사기로 승화되어 전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다.

“와아아아!!”

“이야아아!”

항상 바쁘고 늦는 경찰특공대 대신 급하게 부른 기동타격대는 마치 굶주린 늑대와도 같았다.

콰광 쾅쾅!

“엎드려!!”

“칼 버려 이 새끼들아!”

퍽 퍽 퍽!!

흉기를 든 조폭들은 타격대원들에게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폭력적인 시위대들을 맞대응하지 못하며 억눌렸던 폭력성을 이곳에서 마음껏 펼쳤다.

퍼벅 빡! 퍼석!

여기저기서 머리가 터지고 팔과 발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기동타격대는 조폭들을 거침없이 제압해나갔다.

한 단체에게 갑옷과 무기가 주어졌을 때 전투력이 얼마나 향상되는 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진압복을 차려입은 경찰 둘은 높은 곳에 올라가 카메라로 지금 상황을 빠짐없이 찍고 있었다.

과잉진압을 고려하여, 항상 어떤 상황에 투입되든지 증거를 남기는 카메라 보직 직원이다.

해수는 묵사발이 된 대장놈과 양부장을 타격대에게 넘기고, 사람들이 잡혀있는 컨테이너로 향했다.

끼이익-

컨테이너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불이 꺼져 매우 어두운 컨테이너 안은 매우 적막했다.

“흐으, 흐으.”

“흐….”

아주 작은 숨소리가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니,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그저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식아.”

해수가 플래시를 켜서 바닥쪽으로 향하게 쏘았다. 그러자 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서로 몸을 붙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해수의 목소리와 실루엣을 알아본 영식이 벌떡 일어나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수, 수 형님?”

해수는 영식의 머리에 커다란 손을 툭 올리고는, 다른 피해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경찰입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삐용 삐용 삐뽀 삐뽀

해수의 말을 뒷받침해주듯이 그 타이밍에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그제야 피해자들은 위험에서 벗어났음을 실감하고 여기저기서 탄식과 울음을 터트렸다.

“하….”

“흡, 흐윽, 흐…!”

“나 이제 진짜 부모님 말 잘 들을 거야….”

“시발, 시발 살았다. 살았어.”

몇몇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고, 몇몇은 비틀비틀 일어나 해수에게 다가왔다.

아까 보았을 때만 해도 썩은 동태와 같은 눈빛을 하던 여인이 해수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녀의 손은 매우 거칠고 메말랐지만 따뜻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인의 눈에 조금은 생기가 도는 듯했다.

* * *

양부장이 관리하는 이곳은 보이스피싱 충남지부였다. 본사는 상하이에 있다고 한다.

알아보니 예전에 강수대가 잡았던 흑사회와 연관이 있었다.

이들은 흑사회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진 조직원들이 다시 삼삼오오 모여서 새로 만든 조직이었는데, 한국 조직과 연결되어 있어서 한국에도 지부를 몇 개나 만들었던 것이다.

경찰청 측에서는 다시 중국 경찰에 연락하여 흑사회 소탕을 약속받았다.

“다, 다 말할게! 말할 테니까 나 여, 옆구리 치료 좀 해줘! 여긴 범죄자 인권도 없냐?!!”

“아직 덜 쳐맞았구나.”

양부장은 고문실력과 달리 입이 굉장히 쌌다. 그를 통해 한국에 있는 다른 보이스피싱 지부의 정보를 알아냈고, 해당 청에 정보와 사건을 공유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국내 최대 보이스피싱 단체, 형사가 잠입하여 꼬리를 잡아 일망타진]

[현재 확인된 피해액 1035억, 회수금액은 300억, 피해자들 억울함에 시위]

피해자, 가해자, 피해금액까지 모두 대규모였던 보이스피싱 단체 소탕 건은 한동안 나라를 크게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잠입하여 본거지는 물론 본사 직원들까지 한 번에 잡아내게 만든 해수의 활약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

강수대 대원들만이 그를 추켜세웠다.

“우리 돌격이! 수고 많았어 정말!”

“맞아 맞아, 지 알아본다고 연예인병 걸려서 안 하던 태닝까지 하고.”

“노란 머리로 염색도 하고.”

“문신까지 하셨습니다!”

“그래 그거 문신은 지워지기는 하냐?”

해수는 소매를 걷어 문신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밀면 지워진답니다.”

“오우 야, 근육이랑 흉터 사이로 문신 보이니까 진짜 무섭긴 하다. 나도 길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고 눈 깔 거 같애.”

“얼른 지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수의 문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곽팀장이 갑자기 두 손을 펼치고 하나씩 접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실적 너무 많은 거 같애, 올해만 굵직한 사건이 몇 개야?”

“맞지, 이 정도면 내년에 전체 특진 확정 아닌가?”

“나도 특진할 수 있을까?”

경위에서 경감도 쉽지 않다. 그러나 경감에서 경정은 다른 차원이다.

경정부터는 계급만이 아닌 대우부터 진짜 간부급으로 다른 세상에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경찰서 과장 혹은 지구대 대장 급이다.

곽팀장의 물음에 오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글쎄, 할라나.”

“그러면 난 여기서 탈출인가.”

“누구 마음대로.”

오갱은 괜히 투덜거렸다. 그러나 곽팀장이 경정으로 올라가면 강수대에 같이 있을 수 없는 건 맞다.

그리고 그동안의 강수대 실적을 보면 특진을 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오갱은 곽팀장이 없는 강수대를 잠시 상상했다가 머리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우나나 가자! 잠복비 나왔다며, 맞지 형?”

“어? 그렇지?”

“사우나….”

사우나라는 말에 하루가 시선을 내리며 시무룩해했다.

그 작은 변화를 눈치 챈 해수가 말했다.

“사우나 말고 회식 어떻습니까? 배고픕니다.”

첫 후임인 하루를 자주 살피는 근육몬도 의견을 보탰다.

“맞습니다! 회식 안 한 지 오래 됐습니다!”

“뭐야, 니네 둘이 짰어?”

“야 니네 일어나지 마, 위협적이다. 하긴 얘네들 데리고 사우나 가면….”

오갱은 해수와 막내, 마지막으로 하루를 보고는 끝말을 흐렸다.

“아 내가 생각이 짧았네, 역시 씻는 것보다는 먹는 거지, 형님 삼겹살 고고?”

곽팀장은 카드를 꺼내어 번쩍 들어올리며 외쳤다.

“그래, 삼겹살 가즈아!”

“가즈아아!!”

* * *

퇴근 후 강수대는 삼겹살 가게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라 가게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강수대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예전에 딱 이 자리에서 동동파 새끼들이 피바다 외치지 않았냐?”

“맞네, 우리 형님 아직 기억력 안 죽었네~”

“여기 불판 갈아주십시오.”

막내와 하루는 그때 자리에 없었기에 눈을 멀뚱멀뚱 뜨고 고기만 집어 먹었다.

“동동파라고, 이 구역 접수한다고 옆에서 피바다로 만들자! 외치던 놈들 있다. 지금은 다들 마음 잡고 일을… 하고 있네?”

해수의 시선이 불판을 갈러 오는 직원에게 향했다. 초록색 앞치마를 한 직원의 얼굴이 낯익다.

그는 해수를 알아보고 멈칫했다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물리치료 박사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고정훈입니다!”

“어, 어 그래 정훈아 반갑다. 목소리 낮추고.”

고정훈은 동동파 식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어서 팀장과 오갱을 알아보고 연이어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들어보니, 동동파 식구들 모두 각자 살 길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정훈도 이곳에서 일한 지 일 년 가까이 되었고, 가게 사장에게 보너스를 받을 만큼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었다.

“아이고 잘했네 잘했어, 그래 정훈아 보기 좋다. 얼마나 좋아! 기다려봐.”

곽팀장은 정훈의 근황을 듣고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 앗 괜찮습니다!”

“아냐 내가 기특해서 그래 기특해서, 주먹밥 먹던 애들이 평범한 일 하는 거 진짜 희귀한 거야, 받아 받아.”

해수도 같은 생각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될 거다.”

“가,감사합니다….”

그 모습에 막내는 입안 가득 삼겹살을 집어넣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조용히 감동 받고 있었다.

.

.

.

“어우 잘 먹었다. 오늘 맛있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형님 한 대 콜?”

“아이 씨 내가 너때문에 못 끊는다.”

오갱의 말에 곽팀장이 못이기는 척 담배를 챙기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막내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해수와 하루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사이다를 원샷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막내는 해수에게 습관적으로 경례를 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수와 하루 둘만 남게 되었고, 해수는 불판 위에 있는 삼겹살을 하나씩 빠르게 집어먹었다.

탁-

그렇게 마지막에서 두 번째 거를 먹기 직전, 하루의 젓가락이 날아와 해수의 젓가락을 막았다.

해수가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저 할 말 있습니다.”

진지한 하루의 분위기에 해수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말해.”

“내년 인사 이동 시즌에 휴직을 내겠습니다.”

“…휴직?”

해수가 추천한 것은 파출소로 이동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해수도 놀랐다.

“네, 해수님의 발언 때문은 아닙니다. 잠시 제 앞날을 위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음….”

하루는 해수가 다친 것을 보고 그를 가까이에서 지키기 위해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해보니, 같이 일을 하는 것은 오히려 제한이 많다.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스케줄에 자유로우면서 돈은 벌어야 한다.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하루는 어떤 일을 해야만 자유롭게 시간을 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을 지 여러가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해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래, 세상 경험도 적은데 이 험한 일만 평생 하기에도 그렇지, 다른 직업도 많이 경험해봐.”

“알겠습니다.”

근육몬은 해수와 하루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화장실 입구에서 힐끔거렸다.

* * *

같은 시각, 가게 앞 흡연구역.

지이잉 지이잉

“어, 형님 나 전화.”

“어 그려.”

오갱은 와이프 전화에 바로 담배를 끄고 소리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일어나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팀장은 가만히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며 허공을 보았다.

스윽

그때, 누군가가 옆에 앉았다.

흡연구역에 의자가 세 개 뿐이기에 가운데에 앉아있는 팀장 옆에 앉을 수밖에 없다.

팀장은 시선을 허공에 고정하고 있었기에 누가 앉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순간 꼬리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쫘르르 돋아났다.

매우 불길한 기운, 언젠가 한 번 느꼈던 기운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곽팀장은 그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옆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

“아저씨. 불 좀 빌립시다.”

“아 예.”

촉은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넘어갈 수 없는 형사정신은 몸부터 움직였다.

팀장은 그에게 라이터를 넘기는 게 아니라 직접 불을 붙여주면서 빠르게 스캔했다.

남자의 얼굴은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특징 하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탁, 치익-

그러나 담배를 들었을 때 손을 보니, 엄지와 검지 사이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다른 손가락 끝에도 굳은살이 보인다.

손가락을 따라가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이 마주쳤다. 그 건조한 눈을 마주한 순간 팀장은 뒤통수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표정은 티를 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스읍, 후… 그런 거 물어보기 전에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

남자는 팀장의 질문에도 담배 연기를 여유롭게 한 모금 내뱉고는 대답도 애매하게 했다.

“아, 전 충남 온 지 거의 20년 됐네요. 억양이 충남이 아니라 물었수.”

“직장 때문에 고향을 버렸나?”

“에에? 버리다니요? 매 달마다 내려가고 있구만, 우리 고향이 잔치국수를 얼마나 기가 막히게….”

버렸다는 말에 팀장은 발끈하여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때 전화통화를 마친 오갱이 왔다.

“형님 뭐하쇼?”

오갱의 등장에 팀장은 순간 뇌정지가 왔다. 나름대로 베테랑 형사인데 저 남자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갔다.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마음가짐부터 다른 취조였다면 달랐을 것인데 방심했다.

“아, 아녀, 들어가자.”

그 남자는 팀장에게 눈인사를 했다. 곽팀장은 미간을 좁히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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