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김영식은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가 이 신입이자 양아치 좃밥 허세충 문신남이 자신에게 물을 먹여주는 것을 발견하면, 이 사람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그때, 수가 영식에게 속삭였다.
“소리 질러.”
“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가 영식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뼈가 부서질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지만, 비명을 내지르기에는 충분한 타격이었다.
“끄아악!!”
“야 야! 뭐하는 거야!”
경비가 형광등을 켜고는 수를 다급히 말렸다. 화장실을 가는 중에 말소리가 들려서 들렀던 것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죽지만 않게 괴롭혀도 된다고 해서….”
“아이 씨, 이 새끼 이거 완전 악마네, 잠 잘 때는 좀 놔둬 새끼야. 이러다 뒤지면 니 장기 털린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이 새끼 괴롭힐 시간에 훈련이나 해, 몸만 좋지 아주 약골이 따로 없어 약골이.”
“네, 넵.”
수는 선배 경비에게 굽신거리며 상담소를 나갔다. 나가기 전, 문 앞에서 뒤돌아서 영식과 눈을 마주하고는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그 입모양이 워낙 정확해서 영식은 그 뜻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
별다른 교류도 없던 저 문신충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위험을 감수하며 물을 챙겨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던 거야.’
영식은 착한 일을 앞장서서 하지는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싫어하는 평범한 현대인이다. 그는 지금 자신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지만, 저 능력 없는 문신충이 자신을 도우려다가 큰 일이 나지 않기를 바랐다.
* * *
정말로 지옥같았던 며칠이 흐르고, 영식은 입에는 재갈, 손발은 밧줄로 묶인 채 트럭 화물칸으로 옮겨졌다.
화물칸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 또는 영식보다 먼저 적립금 천만 원을 채우고 나가기를 신청했던 사원들이 있었다.
드르르릉- 철컥
“야야 다 내려!”
“빨리 빨리 내려라.”
두 발은 묶여있지만 반 발자국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경비, 아니 조직폭력배들이 강제로 끌어냈다. 짠내가 확 풍기고 주변에 커다란 컨테이너가 많이 보였다.
‘항구….’
앞장서서 가던 조폭이 한 컨테이너를 열더니 그 안으로 사람들을 쑤셔 넣었다.
가까이 갈수록 불쾌한 악취가 코 끝을 찔렀다.
안에 작은 전구가 켜져 있어 대충 보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피, 토사물, 구석에 철사로 고정되어 있는 오물통.
이런 쪽으로 잘 모르는 영식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밀항이다.
영식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기 들어가면 끝이다.’
영식은 어깨를 밀치는 조폭의 팔을 뿌리치며 몸부림쳤다.
“으읍, 우웁!!”
그러나 팔다리가 묶인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탈출 시도는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그는 제 발에 걸려 넘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 개새끼가, 그렇게 일찍 뒤지고 싶나?”
퍽 퍽!
영식이에게 밀려났던 사내가 그를 발로 마구 밟았다.
그때 조장 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손을 들어 그를 말리고는, 영식의 팔을 가리켰다.
“저거, 팔 하나 자르고 라이타로 지져라.”
“전에 그 변호사라는 놈처럼 말입니까?”
“어 걔가 변호사였나? 그래, 그럼 안 뒤진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사내가 씨익 비릿하게 미소짓고는 트럭 앞자리에서 정글도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영식을 컨테이너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우으으으!”
“가만 있어라, 잘못하면 니 모가지 날아간다.”
영식은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에 소변을 질질 싸면서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마저도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내는 정글도를 들고 영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팔을 자르려면 밧줄부터 풀어야 하고… 지랄하면 귀찮아지니까… 기절부터 시켜야겠구나, 오케이.”
그가 정글도 면으로 영식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때, 사내의 뒤 어둠 속에서 두툼한 손이 스윽 나왔다.
그 손이 사내의 턱과 머리를 잡더니 거침없이 휙 돌렸다.
우드득- 털썩
사내는 단말마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정글도를 들고 있는 자세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척
공황상태이기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영식 앞으로 낯익은 얼굴이 드러났다.
재갈을 풀어주는 손.
“수, 수, 수 형님…?”
“내가 말했지, 조금만 참으라고.”
영식은 당장에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반갑기보다는 불안했다. 지금이야 기습으로 사내를 쓰러트렸지만, 밖에는 수많은 조폭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구해주려다가 이 문신충, 아니, 수 형님까지 죽을 것이다.
훈련 때 다른 놈들에게 엄청 당하는 모습을 힐끔 본 적이 있다. 근육은 크지만 약한 사람이다.
“수, 수 형님… 근데 저 사람 하나 쓰러트렸다고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어떡해요….”
그는 말없이 영식의 팔을 묶은 밧줄을 커터칼로 자르고, 그것을 영식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신해수다. 영식아.”
“예… 예?”
지금 상황에서 이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그런데 죽음을 예감한 병사가 마지막 전장에 나갈 때 동료에게 이름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라며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이름을 되새겼다.
‘신해수, 신해수, 신해수?’
그러다 문득, 낯익은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배우 오세연의 팬이었던 영식은 그녀와 처음으로 스캔들이 났던 일반인이자 경찰인 괘씸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겨, 경찰?’
영식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영식씨?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영식씨도 저 여자한테 잡혀 온 거 맞지?
-여긴 자유시간이 언젠가? 아무곳이나 돌아다녀도 되고?
그동안 이상했던 행동들이나 질문들이 떠오른다. 수, 신해수의 넓은 등을 바라보는 영식의 눈빛에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끼익
그는 정글도가 바닥에 있는데도 무시하고 맨 손으로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달빛이 살짝 들어온다. 해수는 반쯤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여기 있어, 금방 끝난다.”
* * *
쾅
신해수는 컨테이너 문을 닫고, 잠금장치까지 걸었다.
“뭐야, 넌 거기 언제 들어갔냐?”
“아까.”
“어 그렇구나, 어라? 이 새끼가 갑자기 반말을….”
사내는 해수를 혼내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해수는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조폭들을 지나 양부장에게 다가갔다.
양부장은 배 앞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다른 사내와 회를 먹고 있었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자 그 주변을 지켜서고 있던 사내가 해수를 막으려 했다.
“야, 야 신입? 뭐야?”
해수는 말없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양부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양부장님, 이 사람이 본사 직원들입니까?”
“엉? 어 마, 맞긴 맞는데, 넌 뭐냐 갑자기? 얘들아, 이 새끼 뭐냐?”
“아, 나는….”
해수가 돌아서서 하늘을 보았다.
삐유우웅-
그 타이밍에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작은 폭죽 하나, 신호탄이다.
매일 감시를 당하는 장기 잠입이기 때문에 송수신기는 없고, 하루 때 제대로 활약했던 발 밑창에 설치하는 압력 작동형 GPS기기 하나만 달고 있어서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다.
해수는 그저 강수대만 믿고 잠입해서 생활했던 것이다.
저 폭죽은, 강수대가 해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경찰기동타격대를 투입한다는 신호탄이다.
진압복에 진압봉, 한손용 진압방패로 무장한 기동타격대가 오면 금세 제압이 될 테니, 그 전에 패기 위해서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
“니네 잡으러 왔지.”
우드득-
해수는 바로 양부장의 팔을 잡아 등 뒤로 확 꺾으며 일으켜 세웠다.
“아아악!!”
그 돌발행동에 주변 조폭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본사에서 온 조폭들은 가만히 한 발 물러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너 미쳤냐?”
“이 새끼가 뒤질려고 환장을 하네.”
훈련 기간에 자신들의 상대가 안 되던 약골 해수를 생각하며 그들이 손을 뻗었다.
이에, 해수는 한 손으로 양부장의 팔을 꺾은 상태로 덤벼드는 사내에게 주먹을 뻗었다.
뻑! 퍽!
어설프게 달려들던 사내 둘이 해수의 주먹에 코뼈가 으스러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제야 다른 사내들이 품에 감추고 있던 회칼과 손도끼를 꺼내어 들었다.
점점 흉흉해지는 분의기에도 해수는 옆집 불구경하듯이 얌전히 앉아있는 본사 직원들을 둘러보다가, 그들의 대장과 눈을 마주했다.
“니네도 꺼내, 그래야 마음껏 패지.”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해수는 본사 대장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양부장의 팔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다른 사내에게 밀쳤다.
양부장은 애초에 조폭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능력자로 인정받아 그 자리에 오른 양아치다.
그래도 꼴에 높은 자리에 있다고 부하들 앞에서 못볼 꼴을 보이자 품에서 접이식 칼을 꺼내어 해수에게 덤벼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턱 우득
“커헉!!”
해수는 칼과 함께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꺾고, 그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짧게 끊어 쳤다.
빠각-
“끄르륵-”
양부장은 칼을 놓치고,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뒷걸음질을 치다가 쓰러졌다. 급소를 정확히 맞았는지 입에서는 피거품이 나온다.
그 사이 다른 사내가 해수의 옆구리를 향해 회칼을 뻗었다.
탁!
해수는 정확한 타이밍에 회칼을 든 그의 손을 왼손으로 쳐내고, 오른손으로 턱을 후려쳤다.
뻑!
사내는 턱이 130도 돌아가더니 눈을 까뒤집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때 학습능력이 없는 사내 한 명이 손도끼로 해수의 어깨를 찍어왔다.
해수는 손도끼를 든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 한 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잡고 돌아서며 업어쳤다.
콰장창창!!
양부장과 본사 직원 대장이 앉아있던 테이블이 완전히 박살났다. 그제야 재빨리 뒤로 피했던 대장이 미간을 좁히며 부하들에게 뭐라 했다.
“저 겁없는 새끼, 모가지 잘라라.”
억양이 토종 한국인은 아니다. 중국인 또는 조선인이다.
그의 말에 부하 두 명이 품에 손을 집어넣을 때, 해수가 반 박자 빠르게 다가가 주먹을 짧게 끊어 쳤다.
퍼벅-
대장 양쪽에 있는 사내가 뭘 하지도 못하고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풀썩 쓰러졌다.
“어?”
턱
대장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버리한 채로 해수에게 멱살이 잡혔다.
대장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기계적인 힘에 잡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웅-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아스팔트 바닥에 등이 제대로 꽂힌 대장은 순간 시야가 까맣게 변하고,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핑 돌고 숨이 멎었다.
고작 1~2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이게 죽는 거구나 느꼈던 그에게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뒤늦게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조폭보다 훨씬 더 조폭같이 생긴 무서운 인상의 사내, 신해수가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알아?”
해수는 솥뚜껑만 한 주먹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쾅!!
* * *
충남 지부장 양부장과 본사에서 파견된 상하이 지부장이 해수에게 당하기까지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신입이 난리를 피우니 멀리서 재미삼아 구경하고 있던 조폭들의 뇌에는 머리 둘이 당한다는 것은 변수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행동이 늦었고, 그제야 해수를 향해 수십 명의 조폭이 흉기를 꺼내어 들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때.
“돌격대!!”
익숙하고 반갑고 찌질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쓸어버려!!!”
“우아아악!!”
“아아악!”
“와아아아아!!”
평소와는 달리 창공을 찢을 듯한 함성과 함께 전신을 진압셋트로 무장한 경찰기동타격대 백여 명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조폭들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