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찰이 너무 강함-157화 (157/255)

157. 보이스 피싱 회사

‘나…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

김영식은 한 달 전에 이곳에 끌려왔다. 이곳이 한국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인 지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 한국 사람이거나 조선인이기에 한국이라고 지레 짐작을 할 뿐이다.

이곳은 3층으로 이루어진 큰 조립식 건물이고, 창문은 모두 철판으로 가려져 있다.

-네 여보세요. 저는 서울지방경찰청 김미영 수사관입니다…

-…당신의 계좌가 불법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고…

1층에 가장 큰 공간에는 싸구려 테이블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곳에서 칸막이 하나를 두고 백여 명이 전화기를 들고 열심히 통화를 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현장이었던 것이다.

노동시간은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일곱 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자리에 놓여진 타이머 버튼을 눌러야 하고, 타이머가 30분을 넘어가면 적립금이 1분당 만 원씩 차감된다.

보이스피싱에 성공하면 입금액의 10프로가 성공자에게 적립된다. 적립금 천만 원을 채우면 이곳을 나갈 수 있고, 계속 해도 된다.

자는 곳은 컨테이너같은 곳에 남자 열다섯 명씩 꾸겨져서 자고, 샤워실은 찬 물만 나온다.

또각 또각 또각

이곳에서는 듣기 힘든 하이힐 소리에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돌아간다.

영식을 이곳으로 데려온 여자, 그 천사같던 여자가 매끈한 각선미를 뽐내며 2층 계단으로 올라간다.

그녀는 이곳의 대빵, 양부장이라는 남자의 애인이었다.

가끔 이렇게 눈호강을 시켜주며 등장하지만 같이 일을 하지는 않았다.

쾅!

1층 사무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양부장의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저 소리가 들리면 모든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긴장한다.

“야! 77번!”

새하얀 바탕에 진청색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양부장이 2층 난간을 붙잡고 얼굴을 내밀었다.

77번 자리에 앉아있는 중년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얼어붙어 있다.

“너 이 씨발년아 일루 텨와! 아니다. 거기 딱 있어, 내가 간다!”

양부장은 성난 황소처럼 계단을 달려내려왔다. 77번 여인은 겁먹은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다른 사람들은 통화를 하다 말고 그곳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짜악!

양부장은 오자마자 그녀의 따귀를 갈겼다.

“야, 야! 누가 안 보내준대? 씨팔 감히 경찰에 신고를 해? 천만 원만 모으면 나가라고, 열심히 일하면 나갈 수 있다고, 천만 원 모으기 힘들어? 그건 니년이 열심히 안 한 거고!”

짝 짜악! 퍽 퍽 퍽!

주먹이 그녀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날아들었다.

양부장은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넘기고 여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여기서 경찰에 전화해봤자 소용없어, 니 위치 중국으로 나와, 경찰? 절대 안 와, 내가 얘기했잖아, 통화 다 듣고 있다고!”

퍽 퍽 퍼석!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어 얼굴에 내리찍기도 했다.

그녀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뭉개지고, 피가 튀고, 이제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스르륵

그렇게 그녀가 개구리처럼 바닥에 쓰러지고, 양부장은 일어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연설했다.

“님들, 제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만 열심히 좀 합시다 열심히. 다들 돈 벌고 싶어서 온 거잖아, 여기서 바짝 땡기면 월 억도 벌어요. 나? 현역 때 달에 3억 벌었어, 다들 그 정도는 손에 쥐고 나가야지, 안 그래? 잠깐만 바짝 일 합시다. 오케이?”

“네.”

“네에….”

“넵!”

양부장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눈을 피하는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다가 손뼉을 쳤다.

짝!

“오케이,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 불편한 점 있으면 편하게 말하고. 내가 편의는 다 봐준다니까.”

다시 2층으로 돌아가는 길,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인 영식과 양부장이 눈을 딱 마주쳤다.

그는 영식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영식씨, 할만해요?”

“네? 네 네….”

“그래요. 우리는 영식씨처럼 젊은 피가 아주 필요해, 잘만 하면 연말에 중국 본사로 갈 때 내가 데리고 갈 수도 있어, 거기 가면 그냥 인생 이지모드 되는 거야, 믿을게요. 알았지?”

“네, 아, 알겠습니다.”

툭툭

“그래, 화이팅?”

양부장은 영식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영식의 어깨에는 중년 여인의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여인이 맞을 때 가만히 있었던 죄책감이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지만, 혹시나 뭐라고 할까봐 털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엄마… 엄마 보고 싶다….’

* * *

이곳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7시 퇴근 이후 잠을 자야 하는 10시 이전, 딱 3시간만큼은 건물 내에서 자유시간이다.

“영식아, 뭐하냐?”

노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 큰 사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최근에 들어온 문신충 양아치다.

폼이 큰 옷을 입어서 덩치만 큰 줄 알았는데, 전에 문신한 것을 과시할 때 팔뚝을 살짝 봤는데 근육도 장난이 아닌 듯했다.

영식은 그를 보면 학창시절 PTSD가 와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는 때때로 다가와서 친한 척을 했다.

“담배 핍니다. 한 대 드려요?”

“됐어, 난 안 핀다니까? 기억 못해? 대가리 맞으면 기억하려나?”

놀랍게도 이 문신충은 줄담배를 피우게 생겼는데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아니에요오… 스읍, 후….”

“시발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 어른한테 연기를 뿜어? 이 형님이 한창 때는 말이야,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장대여도 바닥에 버리고 눈깔 깔았다.”

“예 예, 그럴 거 같아요.”

왕년에 잘 나갔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결국 코인으로 빚만 오천만 원 지고, 배달 일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나는 시벌 여기서 존나 돈 많이 벌어서 10층짜리 주상복합 빌딩 하나 살 거다. 건물주가 되는 거지 건물주, 조물주 위에 건물주, 어때?”

영식은 현실파악을 못하고 아직도 꿈에 부풀어 헛소리를 해대는 문신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면 최소 30억은 있어야하지 않나? 그쪽은 이 짓거리 하면서 그게 가능할 거 같아요?”

“그쪽은 시발, 그냥 수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난 이짓 계속 안 하지, 여기 경비팀 지원할 거다.”

“예 예… 수형님, 나는 그냥 나가고 싶어요. 여긴 지옥이야, 시발….”

영식의 말에 문신충이 짐짓 놀란 척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그런 말 하지 마, 누가 들을라, 내가 여기서 양실장한테 꼬발르면 너 잣돼, 알간?”

“그래서… 꼬바르게?”

“꼬바르게는 반말이고 새끼야.”

문신충이 흉기같은 손을 들어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영식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어이 어이, 거기 뭐하는 거야?”

그때, 속칭 경비팀이라고 부르는 까만 정장 사내 한 명이 영식과 문신충을 발견했다.

문신충은 바로 손을 내리며 목소리까지 얇게 바꾸고 비굴하게 대답했다.

“아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친구한테 담배 좀 빌리고 있었어요.”

“아저씨, 담배 한 값에 이만 포인트야. 이 청년이 열심히 벌어서 산 거 삥뜯지 말고, 사서 펴요. 사셔.”

“예 예 그래야죠. 예에”

문신충은 어깨를 좁힌 채 찌질거리며 영식에게서 떨어졌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다.

영식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발놈… 넌 평생 여기서 썩어라.’

영식은 다짐했다.

여긴 한국이 분명하다. 양부장 말로 연말이면 중국 본사로 넘어간다고 한다.

그 연말이 무조건 12월이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으로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다.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그 전에, 천만 포인트를 적립해야 한다.

* * *

문신충은 결국 경비팀으로 넘어갔다. 경비팀에서 그가 뛰어나서 뽑았다기보다는, 태생이 빡대가리인지 보이스피싱 전화해서 계속 실수하고 들키고 심지어 상대방과 말싸움까지 해서 하는 수 없이 경비팀에서 받아준 듯했다.

그는 무엇을 하는지 자주는 안 보이고 가끔 보였는데, 폼을 한껏 잡고 서 있었다.

눈빛이 마주쳐도 가끔 쳐다보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할 뿐 말도 섞은 적이 없다.

* * *

-입금 35,000,000원

“드, 드, 드디어….”

마지막으로 큰 건이 하나 터졌다.

피해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자신부터 살고 봐야했다.

영식은 열심히 보이스피싱 작업을 했고, 드디어 적립금 천만 원을 달성했다.

영식은 바로 양부장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양부장의 사무실 안, 그와 영식이 마주 앉았다.

“그래요. 영식씨, 오늘 크게 한 건 했다고,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봐, 축하해요?”

“예,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천만 원 적립하면 그 돈도 현금으로 주고, 나갈 수 있게 해주신다고….”

“아아… 그렇긴 한데, 왜요. 영식씨 나가려고?”

“…네.”

“아하….”

양부장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 영식씨가 지금 두 달만에 천만 원 벌었잖아. 이제 막 기술 익히기 시작해서 느린 거지, 이대로 열심히만 해주면 일 년에 억은 순식간이야. 그리고 본사 가면 적립금 15프로로 올라요. 인생 언제까지 밑바닥에서 살 수는 없잖아, 신분상승해야지, 이런 기회 흔치 않다고?”

악마같은 혓바닥 놀림에 영식은 솔직히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언제 그 중년 여인처럼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직접 옆에서 병간호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하아… 쩝, 영식씨는 우리의 참 인재일 줄 알았는데, 알겠습니다. 뭐 약속은 약속이지, 내일 아침 일찍 나갈 준비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다음날, 아직 기상시간이 아닌 새벽 다섯 시에 경비 대원 한 명이 그를 깨웠다.

“허업!”

“1층 로비로.”

“아, 아 네네.”

짐이랄 것도 없었다. 영식은 담배 한 갑만 주머니에 챙기고 로비로 갔다.

“놀라지 마시고, 이동할 겁니다.”

스윽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영식의 머리에 검은 천을 씌웠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인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바깥으로 나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후읍, 하, 후읍, 하아….”

천을 뚫고 들어오는 바깥 공기는 영식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곧이어 차를 탔다. 영식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납치했던 차임을 깨달았다. 그때의 공포가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설렘과 긴장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차가 멈추어 섰다.

운전이 아주 잠깐이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불길하다.

“내려.”

거친 손길에 끌려나오고 싸늘한 의자에 앉혀졌다. 검은 천이 벗겨진다.

훅 풍겨오는 피비린내, 영식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칼, 꼬챙이, 실톱, 니퍼, 쇠사슬, 와이어 등이 벽 양쪽에 걸려있다.

바닥에는 피딱지로 추측되는 거무튀튀한 것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여, 여, 여긴 어디….”

고문장소같은 무시무시한 곳이다.

스윽

그의 앞에 양부장이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그는 웃음지으며 말했다.

“여긴 상담소에요. 긴장하지 말고, 우리 천천히 상담해봐요.”

“야, 양부장님…!”

몇 시간 뒤.

“허으으으, 흐으으으….”

영식의 손톱 발톱이 다 빠져 있고, 얼굴은 퉁퉁 부었고 옆구리에 피가 흐르고 있다.

양부장이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본사 가고 싶다는 거지?”

“예, 예에 예에, 제, 제발.”

“아아 알겠어요. 걱정 말고, 거기 가서도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거나 말 안 들으면 상담소로 올 수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 알았죠?”

“예, 예에….”

양부장은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아요… 아 근데 기분이 더럽네,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잖아. 야, 얘 옮기기 전까지 좀 조져, 죽이진 말고. 죽어서 장기 썩으면 니네 장기 도려낼 거야.”

“예 부장님.”

그의 말에 고문을 돕던 사내들이 유리조각을 묻힌 채찍을 들었다. 영식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날 밤.

뚝 뚝

어두컴컴한 곳, 철제 의자에 묶인 채 피인지 땀인지 침인지 모를 것을 흘리고 있던 영식에게서 낯익은 사내가 다가왔다.

스윽

영식은 그가 자신의 입을 벌리고 물을 먹여주는 행위를 보고는 누군지 확신했다.

“수 형님….”

영식의 부름에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전과는 다른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사, 살려주세요.”

“어.”

“제, 제발….”

“알았으니까, 조용히 있어.”

“흡, 흑, 엄마….”

영식도 알고 있다. 저 문신충 양아치 따위에게 희망을 걸기에는 너무 하찮은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대답은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절망적이었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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