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자금 운반 알바
대성병원 입원실.
의식이 없었던 환자가 일어나자 간호사들은 물론 당직 중이던 의사도 달려왔다.
“환자분, 환자분 보이시나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강정례….”
“네 맞아요. 발음도 좋으시네요. 그런데 이 분들은? 보호자세요?”
의사가 정영수와 그의 여자친구를 보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강정례씨 보호자분은 아드님 한 분밖에 없는데, 이 분은 아니에요.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은미는 당황하여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영수의 손목을 잡고 나왔다.
“아니, 저는, 일단 나가자 여보야.”
수상한 사람들보다는 지금 막 깨어난 환자가 중요하기에 의료진들은 따라 나오지 않았다.
“여보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은미가 변명을 하려다가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덩치가 크고 눈이 매서운 남자, 그리고 그 옆에 낯익은 여자.
은미와 함께 일을 꾸미고 남자들 돈을 빼먹는데 도움을 주는 친구였다.
이곳에서 새로운 호구 영수와 함께 마주치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뭐, 뭐야…?”
은미가 당황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자, 영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 걸음 나섰다.
“내가… 전에 말했지, 친한 형이 돈 빌려줬다고… 인사해, 그 형이야.”
영수의 소개에 신해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강진서 강력수사대 수사관 신해수입니다. 서로 같이 가시죠. 진나래씨.”
“어, 어?”
경찰이라는 뜻을 이해하고 은미, 아니 진나래가 고개를 돌려 영수를 보았다. 영수는 그녀의 시선을 담담하게 마주했다.
“여봉… 이게 어떻게 된… 아 씨발 놔! 내 몸에 손 대지 마! 성희롱으로 신고한다!”
그녀가 날카롭게 해수의 손을 쳐냈다.
단숨에 벗겨지는 그녀의 가면,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영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스윽
그때, 해수의 뒤에 가려져 있던 하루가 나왔다.
“진나래씨를 사기죄로 긴급 체포합니다. 불응 시 공무집행 방해죄가 추가됩니다.”
“야, 야 썅 놓으라고!”
영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였던 진나래가 체포되어 끌려가는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 * *
몇 시간 전.
대성병원 데이터베이스 해킹 전, 정영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신형님: [사진]
“이건…!”
학생증 사진이다. 얼굴은 다른데 아래에는 무용과 김은미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적혀 있었다. 학번도 같다.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도 알아보지 않고 연락할 사람이 아니다.
알고보니 무용과 김은미라는 사람은 현재 자퇴한 상태고, 진나래는 미팅 때 같이 나온 친구의 친구로, 영수처럼 구멍을 메우려고 급하게 거짓 신분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 진짜 무용과 친구도 진나래의 신분을 모르고 그저 클럽에서 만났던 얕은 친구였다.
진나래는 사기 전과 3범의 전과자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남자로, 젊은 남자부터 중년까지 다양했다.
본부취조실.
정영수와 진나래가 단 둘이서 마주하고 있다. 영수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잔뜩 독이 오른 상태로 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야, 다 알면서 나 가지고 논 거야?”
“…….”
“뭐야 시팔! 뭐 말이라도 좀 해! 니 눈빛 지금 존나 느끼해! 눈알 파버리기 전에 깔아!”
영수는 조용히 눈을 아래로 깔면서 입을 열었다.
“사랑했었다.”
“뭐이 시팔! 사랑했으면 고소 취하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야, 부디, 교화되기를 바랄게.”
사나이 정영수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서서 취조실을 나왔다.
정영수는 놀랍게도 고소는 진행했지만 피해금액은 받지 않기로 했다.
‘그녀로 인해 잠시나마 행복했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 * *
정영수의 첫사랑이었던 꽃뱀 진나래가 기소된 후, 해수는 걱정되어 그에게 안부전화를 했었다.
“뭐하냐, 나와, 고기 사줄게.”
-아닙니다. 돈 버느라 바쁩니다. 아 그리고, 해킹할 일 있으면 말해주시죠, 제가 뼈까지 싹 다 발라버리겠습니다.
“그래….”
영수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 * *
[감자 마켓]
*간단 심부름 해주실 분 (5만원)
제가 지금 상황이 안 돼서 급하게 현금 뽑아주실 수 있는 분 찾아요. 계좌 알려주시면 205만원 이체하고, 200만원만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주소 용수동 가로영1길 23 GT26시 앞
“오 뭐야, 개꿀 심부름이잖아?”
스무살, 이제 막 하던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관둔 김영식은 몇 분만에 5만 원을 벌 수 있는 꿀 심부름을 보고 바로 지원요청을 했다.
-구매자: 합니다
-판매자: 네, 입금받을 본인계좌랑 신분증 사진 좀 보내주세요. 주민번호 뒷자리는 가리시고.
-구매자: -_-? 그건 왜요?
-판매자: 그럼 제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200만원을 드릴 순 없잖아요. 떼먹으면 어떡해요?
-구매자: 아 맞네, 네 보낼게요. [사진]
-판매자: 확인했고요. 약속장소 근처 ATM기기 가신 거 인증하시면 이체할게요.
-구매자: 까다롭네요. 안 떼어먹어요.
-판매자: 200만원이니까요. 싫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한다는 사람 넘쳐요.
-구매자: 아닙니다 지금 갑니다~
영식은 판매자의 말대로 약속장소 근처 ATM기기로 가서 인증사진을 올렸다.
띠링
-입금 2,050,000원
-잔액 2,083,340원
“오 쒯 진짜잖아? 아 씨 먹고 튈까?”
-판매자: 약속장소로 10분이면 걸어서도 충분히 오시죠? 현금으로 뽑아서 와주세요. 10분 넘어가면 죄송하지만 바로 경찰에 신고 들어갈게요.
-구매자: 아, 예예 갑니다.
뭘로 신고한다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경찰이라는 말에 쫄아서 영식은 바로 현금 200만원을 인출하여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러자 다시 연락이 왔다.
-판매자: 죄송하지만 조금 더 올라와서 썬PC방이라고 있거든요? 거기 앞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구매자: 아… 예예
“뭐여, 시벌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영식은 투덜거리면서 썬PC방을 찾아갔다. 대략 200미터 거리로 그리 멀지는 않아서 금방 찾았다.
그곳에서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눈이 예쁜 여자를 만났다.
크롭티에 핫팬츠를 입고 있는데 대충 보아도 몸매가 좋아보였다.
“저, 저기 혹시….”
“네, 돈은요?”
“아 예, 여기.”
여자는 구석으로 가서 돈을 바로 세어보고는 영식과 눈을 마주하고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맞네요. 감사합니다. 혼자 오셨어요?”
추가질문이 들어온다. 모쏠 영식은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예? 예 혼자, 네, 하하, 아, 아름다우세요.”
“아하핳 감사합니다. 그… 휴대폰 번호 저장했는데,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아유 그럼요.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아무때나 연락주셔도 됩니다.”
“네, 친절하시네요. 그럼.”
“네,네, 들어가세요!”
영식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그는 계속해서 깨톡 친구 새로고침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떴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눈만 봐도 아름다운 그녀였다.
그날 밤.
-천사갑부: 똑똑
그녀에게서 먼저 선톡이 왔다.
-영식: 네! 안녕하세요?
-천사갑부: 네 안녕하세요 아까 그 심부름…
-영식: 알고있습니다! 이렇게 선톡주셔서 너무 기쁘네요.
-천사갑부: ㅎㅎ재밌어요. 혼자 사세요?
‘호, 혼자? 이런 걸 물어보는 건 무슨 의미지?’
영식은 벌써 야외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은 몰디브로 다녀와서 자식 둘까지 낳고 손자까지 보는 상상을 했다.
-영식: 네,네 당연하죠, 인생은 혼자 아니겠습니까?
-천사갑부: 그렇구나 가족은요?
-영식: 아 가족은 고향에 있죠. 덕선
-천사갑부: 덕선… 머네요. 가족이랑 자주 연락하세요?
-영식: 아 자주 해야하는데… 한 달에 한 번? 그쪽은 이름이 뭐에요?
-천사갑부: 저기여, 저랑 같이 일하면서 돈 많이 벌고 싶으세요?
‘같이?’
영식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그녀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천국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식:…네? 당연하죠?
-천사갑부: 내일 봬요. 내일 주소 찍어드릴게요.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고
-영식: 아 네네 좋아요! 내일 봬요! 우리만의 비밀!
영식은 일어나자마자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만지고, 한 벌밖에 없는 정장을 차려입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후 1시가 되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와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먼저 와 있었네요?”
“아, 예 당연하죠.”
“이쪽으로”
그녀는 영식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삐빅
그녀가 차 뒷문을 열어준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조수석이 아니라 뒷문?
영식이 의문을 품고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있을 때, 어디선가 사내 한 명이 나타나 영식의 목덜미를 붙잡고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헉!”
차에 강제로 태워지자마자 바로 반대편에서도 인상이 사나운 사내가 탔다.
천사인 줄 알았던 여자는 운전석에 탔다.
영식을 강제로 차 안으로 밀어넣은 사내는 바로 그의 품을 뒤져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원을 껐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짓…!”
부릉 부아아앙
여자는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돈 벌자고 했잖아요. 걱정 마요. 해치지 않아요.”
* * *
강수대 본부. 화이트 보드판에 실종자 김영식과 마스크녀, 그리고 영식을 태우고 간 것으로 추측되는 차량 사진이 붙어 있다.
곽팀장은 마스크녀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여자는 키 몸무게, 큰 눈으로 보아 운반 알바들이 말했던 사람과 일치할 가능성이 커, 적어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운반책은 아니다 이거지.”
김영식이라는 청년이 실종된 지 이 주만에 신고가 들어왔다. 휴대폰이 꺼진 지 이 주가 되었으니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알아보니 요즘 성행하는 보이스피싱 운반 아르바이트에 낚여서 한 번 운반을 해주고, 다음날 실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휴대폰 통화내역은 깨끗했다. 프로들의 흔적이다.
“저 여자를 잡아야겠네요. 한 명은 아닐 텐데.”
“근데 저 정도로는 찾기는 힘들지, 차는 이미 번호판 바꿨겠고.”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저렇게 쥐뿔도 없는 남자를 공을 들여서 납치하는 이유가 뭡니까? 장기밀매?”
하루의 질문에 오갱이 대답하려는데 막내 근육몬이 벌떡 일어났다.
“하후임, 그건 말이지, 피싱 식구로 꼬시려는 걸 거야. 이렇게 젊은 나이라 경험도 없을 테고, 빚만 있는 벼랑 끝에 있는 청년이어야 대놓고 불법 일이라고 해도 할 가능성이 크거든, 뭐 필요없어지면 그 말대로 장기 파버릴 수도 있고, 그래서 이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해.”
“음… 그러면 이 사람을 찾으면 보이스피싱 단체도 잡을 수 있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찾습니까?”
“음….”
그때, 곽팀장이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잠입수사야, 김영식씨가 걸린 것처럼 미끼로 한 명이 들어가는 거지, 어때?”
“형은 가끔 그런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더라, 잠입이 쉬워? 호랑이굴에 맨 손으로 쑤셔넣는 거야 그거. 보이스피싱 새끼들은 진짜 경찰이고 뭐고 없어, 우리 이러다 다 주거!”
오갱의 외침과 동시에 해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잠입.”
모두의 시선이 해수에게 몰렸고, 해수는 하루를 보고 있었다.
사실 지금 잠입수사에서 방심을 일으키는 하루가 적합하지만, 더 이상 위험한 일을 시킬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