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영식이
“영식이가…….”
신해수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도 아니고, 무려 오토바이를, 아무리 키를 꽂아놓았다고 해도, 이렇게 길거리에 블랙박스가 넘치는 거리에서 도난을 당했다는 것이….
해수의 혼잣말에 로이스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영씩? 영씩이? 폴리스 네임 신영식?”
“아니, 일단….”
해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토바이를 정차시켰던 곳을 정확하게 찍고 있는 차를 한 대 발견했다.
그는 차주에게 동의를 구하고 넘겨받은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옷차림이 젊어보이는 남자 둘이 어슬렁거리다가 뻔뻔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한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다른 cctv를 확인하여 인근 카페에서 그들이 나왔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해수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이 사람들 기억하십니까?”
“아, 네, 남자 둘이서 딸기스무디 하나 주문해서 기억해요.”
“결제는 어떻게 했습니까? 현금?”
해수는 그들이 얼굴을 가린 만큼 당연히 현금으로 주문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뇨, 카드요. 잠시만요.”
뜻밖의 희소식에 해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결제한 카드마저도 방금 전에 도난신고가 들어간 카드였다. 카드 주인은 40대 여성이었다.
해수의 애마 영식이를 찾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로이스킴은 바쁜 일이 없는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 계속해서 해수를 따라다니며 미안해했다.
“어떻게 해요? 나 때문에 잃어버린 거잖아, 내가 새로 사줄게요! 폴리스 프렌드!”
“괜찮습니다.”
하지만 로이스킴은 기어코 해수의 손에 명함을 쥐어주고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외국계 회사의 본부장이었다.
“하….”
혼자 남은 해수는 요즘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안서은은 만날 수 없고, 대성은 돌아선 듯하고, 여론은 경찰과 자신을 저격하고.
게다가 막타로 애마 영식이까지 도난당했다.
택시를 잡아 타기도 마음이 좋지 않아, 터덜터덜 경찰서를 향해 걸었다.
그때.
브르르릉-
오토바이 배기음 소리에 해수가 날카롭게 반응하며 돌아섰다. 허나 소리가 미세하게 다르기에 자신의 것이 아님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멀리서 오토바이 두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해수는 자신의 것과는 외형도 다른 오토바이들을 보고 금세 시선을 거뒀는데, 그들이 해수의 앞에서 멈추어 섰다.
“신형사님!”
“여기서 또 뵙습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오토바이를 아예 갓길에 정차를 해놓고 내려서는 빠르게 헬멧을 벗고 허리를 숙이는 우락부락한 사내 둘, 턱짱 회원들이었다.
“아… 그래.”
“신형사님 어디 가십니까? 오토바이는 두고 오셨습니까?”
“아니, 아니다.”
“어디 가십니까? 가는 길 태워드리겠습니다!”
한 명이 2인승이 가능한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해수는 오토바이를 얻어탔다가 경찰서 앞에 내리면서 그들에게 도난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그들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마냥 화를 냈다.
“아니!! 감히 신형사님 오토바이를 어떤 새끼들이 가져간 겁니까?!”
“이 자식들! 걸리면 아주 콧구녕을 찢어서 입이랑 하나가 되게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어, 그래… 가라.”
강수대가 새로 맡은 사건은 특수폭행 사건으로, 고작 해수의 오토바이를 찾는 데에 시간을 소모시킬 수는 없었다.
해수는 일단 자차도 있으니 경찰서에 오토바이 도난 신고를 해놓고 현재 맡은 사건에만 집중했다.
도난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찾는 방법은, 번호판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조회하는 기기가 달린 차량을 가지고 나가서 차가 많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대기하다가 도난 차량 조회가 뜨면 쏜살같이 추적하여 잡는 것이다.
전국의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주기적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다른 범죄에 비해 작은 사건으로 취급하는 만큼 찾는 속도도 느렸다.
일주일째 되었을 때, 그냥 영식이는 잊고 새로운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해야 하나 해수가 고민하던 때였다.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턱짱장구름: @신형사님, 이거 형사님 오토바이 아닙니까?]
(수많은 오토바이들 모여있는 사진)
(해수의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 사진)
해수는 사진을 확대하여 보았다. 스크린 왼쪽에 살짝 깨진 모양, 오토바이에 기대어 있는 사내의 옷도 블랙박스에서 본 것과 같다.
[신턱신: 맞다. 어디야]
[턱짱장구름: 그렇습니까? 턱짱 회원 카페에 한 분이 오토바이 동호회 사진 올린 것에서 발견했습니다! 당장 잡으라고 하겠습니다!]
[신턱신: 당장 잡아, 도난 오토바이다. 너희만 믿는다.]
[턱짱간부쫑: 저, 저희만…]
[턱짱간부읭: 감동… 무조건 잡아서 콧구멍을 찢어버리겠습니다!]
[턱짱장구름: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해수는 바로 차키를 챙기며 일어섰다.
“저 오토바이 좀 찾아오겠습니다.”
“오토바이? 찾았어?”
“오오, 그래그래 얼른 다녀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막내가 손을 번쩍 들며 일어섰다.
해수는 오토바이를 찾으면 타고간 차를 가져올 사람도 필요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차키를 던졌다.
[턱짱장구름: 신형사님! 동호회 투어 중이라는데 신의도 휴게소에서 쉰답니다! 거기 있는 회원이 쫄보라서 잡지는 못하고 계속 따라붙겠답니다. 저희도 가고 있습니다!]
[신턱신: 좋아, 계속 브리핑하도록]
[턱짱장구름: 예썰!]
* * *
턱짱 동호회의 회장 구름은 오토바이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잡으러 휴게소로 향하는 이 순간, 무언가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삶을 강제 개조시켜주었던 그 존경하다못해 경외하는 신형사에게서 신뢰를 받고, 범죄자를 잡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삶이 가치있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끼이이익-
“여긴데.”
“여기 맞는 것 같은데?”
미리 회원에게서 들었던 휴게소 주차장의 한 구석에 간부 쫑과 읭까지 셋이서 그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브르르릉
부아아아앙-
각종의 오토바이들이 휴게소로 들어왔다. 최소 40대는 넘는 듯했다.
구름은 턱짱 회원과 만남을 가지고는 해수의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확실했다.
몸이 우락부락한 사내 네 명이 다가오자 청년은 움찔하며 경계했다.
“뭐에요?”
목소리를 들으니 더 젊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을까 싶은 목소리였다.
구름이 팔짱을 끼고 턱을 살짝 들어 그를 내려다보며 위엄있게 물었다.
“이 오토바이, 어디서 났어요?”
“왜요. 이거 삼촌한테 선물 받은 건데?”
“삼촌? 어떤 삼촌.”
구름이 되묻자 청년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니 시발 그런 걸 내가 왜 말해줘야 돼? 아저씨 뭔데?”
회장이 새파랗게 어린 애에게 욕을 먹자 쫑이 나섰다.
“뭐어? 시발?!! 이거 네가 훔친 오토바이잖아!”
쫑은 우락부락한 덩치에 비해 목소리가 얇고 하이톤이었다.
그의 외침에 오토바이 동호회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뭘 훔쳐?”
“아니, 지금 저 아저씨들 네 명이 저 청년 한 명을 핍박하는 거야?”
사람들이 모여들고 보는 눈이 많아지자 청년이 눈동자를 굴리며 급속도로 불안해했다.
그는 돌연 오토바이를 타더니 시동을 다시 걸었다.
“어어! 멈춰! 시동 꺼 시동 꺼!”
“쫑아, 읭아! 저 새끼 잡아!”
부르르릉-!
청년은 사내들이 달려들려고 하자 더욱 급하게 액셀을 당겼다.
아무리 근육덩어리들이라고 해도 마력이 좋은 오토바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들은 청년이 액셀을 당기자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몸을 굴리며 피했다.
“이런 젠장!”
끼이이익-
그때, 홍해처럼 갈라지는 사람들의 끝에 자동차 한 대가 우뚝 멈추어 섰다.
콰광!
짧은 거리에서 액셀을 쎄게 당긴 청년은 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았고.
쾅!!
차 문이 강하게 열리며 한 번 더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스윽
차에서 내린 해수는 청년의 목덜미를 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눈을 마주했다.
“안녕, 나 오토바이 주인이다.”
“이런 씨…!”
해수는 그를 차에 기대어 돌려세우고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해수를 보고 재빨리 다가온 턱짱 회원들과도 하이파이브를 한 번씩 쳤다.
“수고했다. 덕분에 잡았다.”
“그런데 오토바이랑 차랑 둘 다 부서져서 어떻게 합니까?”
“괜찮아, 범인 잡았으면 됐어.”
영식이가 멀쩡한 상태에서 범인을 따로 붙잡는 것이 베스트긴 하다. 하지만 아까는 범인이 도주하려는 상황이었던 만큼, 수리비가 오토바이 중고값보다 많이 나오겠지만, 해수에게는 범인을 잡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훨씬 더 가치 있었다.
해수는 구름을 포함한 턱짱 회원들을 흐뭇한 눈으로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해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사람인데, 질 안 좋은 싸움질만 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범인을 잡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니 흐뭇한 마음이 앞섰다.
“좋아, 주말에 보자고.”
“옙 형사님!”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십시오 형님!”
주차장에 남아있던 동호회 회원들과 구경꾼들이 흠칫하며 물러났다.
일제히 허리를 숙이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조폭들을 연상케 했다.
* * *
다른 공범 한 명은 피시방에서 자동차 게임을 하다가 붙잡혔다.
이들은 스무 살도 아니고 열아홉 가출 청소년들이었다.
스물도 넘지 않았으면서 전과가 벌써 5범이 넘었다.
“아이, 봐주세요. 국민의 혈세로 먹고 사는 형사님? 나 아직 학생이에요 학생, 학생의 밝은 미래를 경찰이 망치면 안 되잖아요?”
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갱이 두꺼운 책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아이! 씨! 못 잡았네, 요즘 때가 어느 땐데 파리새끼가 돌아다녀 파리가,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청년은 오갱의 거친 반응이 지금까지 경찰서에서 받아왔던 때와는 조금 달라서 움찔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해수는 두 청년에게 다가가 양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래, 경찰이 앞날 창창한 학생들의 미래를 망치면 안 되지.”
“그, 그쵸? 맞아요. 하하, 역시 이해할 줄…”
우득
해수는 그들의 어깨를 살짝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깨뼈가 바스라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으으!”
“으윽!”
“내가 정말 너희들 안타까워서 바른 길로 꼭 인도해줄게, 교도소 짝꿍들도 특별히 신경 쓰고, 잘 가라.”
해수는 그들의 지금까지 저지르고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은 자잘한 경범죄들까지 싹 다 묶어서 형량을 최대로 받게 했다.
최고의 교화는 최대의 고통이다.
* * *
하루는 결국 3주를 채우지 못하고 퇴원하여 다시 출근했다.
파출소나 지구대로 가려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 초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전출에 대한 말을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점심시간, 오랜만에 짜장면에 복음밥에 탕수육 대짜까지 시켜서 먹고 있는데, TV에서 한 여배우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최근에 영화가 새로 나와서 여기저기 인터뷰나 예능에 많이 얼굴을 비추고 있는 배우였다.
오갱이 입에 탕수육을 하나 집어넣고 씹어먹으며 말했다.
“이야, 오세연이라고 했지? 인기 많을 만 하다. 이렇게 줌인하는데 피부에 잡티 하나 없는 거 봐, 요즘 막 주가 오르고 있지?”
오갱의 말을 막내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맞습니다. 힘내라 장쌀쌀이 20프로 넘기고 나서부터 여기저기 많이 나옵니다. 영화도 올해 두 번째 주연입니다.”
“너 왜 이렇게 잘 알아, 오세연 팬이야? 아, 나랑 같은 오씨네?”
“본관이 다릅니다.”
“너 내 본관 어딘지 모르잖아.”
“아무튼 다릅니다.”
“이상하게 기분 나쁜데?”
그때, TV에서 배우 오세연의 이상형 인터뷰가 나왔다.
그러자 사무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쓸데없이 기대를 하는 것처럼.
-오세연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저는…
-편하게 말씀하세요 편하게, 배우 말씀하셔도 되고, 연예인 중에 아무나
-제 이상형은 연예인은 아니고… 아실려나, 신해수 형사님이라고, 경찰이십니다.
-네? 와우!
우득
다들 놀라워서 말을 잊지 못하던 그때, 나무젓가락이 부러지는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