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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너무 강함-147화 (147/255)

147. 오히려 좋아

순간 신해수의 귓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그 타격이 몇 배가 된다.

‘믿었던….’

해수가 할 말을 잊고 가만히 있자, 정영수가 말을 이었다.

-얘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에요? 댓글도 자주 보이는 아이디 추적해보니까 예전에 죄다 형님이랑 강수대 칭찬하던 놈들인데?

댓글 부대.

안서은에게 예전에 가볍게 들은 적이 있다. 댓글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특별한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고.

“음….”

하지만 해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안서은이 이렇게 티 나게 확 돌변할 리가 없다. 그녀는 현명하고 지혜롭다.

아마 반팀장이라는 자의 암습, 칠성회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정보. 거기에 살인멸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를 취득했던 박 경위의 죽음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맞물려서 회에서 안서은 또는 대성에게 경고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티 나게 움직일 정도로.

‘안서은.’

해수는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그녀가 보여줬던 신념, 수많은 의로운 선택들.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해수는 잠시 서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말을 돌렸다.

“마실장 폰은.”

-아, 아직 뭐 나온 건 없습니다. 켜지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대성 신경쓰지 말고, 마실장 폰만 확인해줘.”

-알겠습니다. 형님도 몸 조심하십시오.

해수가 전화를 끊자마자 인이어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 * *

노래방 여자화장실.

딸기는 오른손을 추켜들어 하루의 뺨을 향해 휘둘렀다.

톡 건드리면 툭 부러질 가느다란 팔, 근육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팔뚝.

하루에게는 그 느린 공격을 일부러 맞는 것도 힘들 정도다.

타닥 턱-

“꺄악!”

하루는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막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밀어 벽에 밀착시켰다.

하루와 딸기의 얼굴이 거의 20센티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밀착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였다.

“헙…!”

딸기는 초근접거리에서 하루의 눈을 바라보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무, 무섭게 예쁘네.’

문자 그대로 하루를 무섭고 예쁘게 느끼는 딸기였다.

의식적으로 무시해 왔지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모를 보고있자니 정신이 멍해진다. 자신의 팔을 단번에 저지하고 벽에 밀어붙인 것도 화보다는 박력으로 느껴졌다.

하루의 얼굴 공격에 딸기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하루가 무릎을 굽혀 바닥에 있는 담배를 집어 그녀의 입에 꽂아주었다.

탁- 치이익

그러고는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됐지?”

하루는 말없이 겁먹은 토끼처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딸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화장실을 나갔다.

툭-

딸기는 하루가 나가자마자 입에 문 담배를 떨어트리고 화장실 벽에 기대어 스르르 주저앉았다.

“허… 시발, 존나 무서워….”

* * *

그 후로도 하루는 맨 처음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스킨십도 하지 않고 인형처럼 앉아서 탬버린만 두드렸다.

“어흐… 그, 저 아가씨 또 오는 거지? 여기 고정이에요?”

“저 그… 미소, 미소 내일도 와요?”

“탬버린녀 진짜 옆에 앉아있기만 해도 힐링되는 거 같애, 누님, 나 오늘 진짜 백점! 내일 또 올게!”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님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좋았다. 오히려 스킨쉽을 못해서 더 안달나게 좋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폭이 연계되어 있는 노래방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모두 순한맛이었다.

강수대에서 걱정하던 그런 진상들은 다행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 째 출근했을 때.

저벅 저벅 저벅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의 사내 세 명이 들어왔다. 그들을 보자 마담이 카운터에서 맨발로 튀어나와 맞이했다.

“어머 왔어? 아직 수금일 안 지났는데, 무슨 일로 왔어?”

그들 중에 하얀색 반팔 니트에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긴 사내가, 마담이 낀 팔짱을 풀고 카운터 옆에 아가씨들 대기방을 힐끔거렸다.

“장마담, 여기 괜찮은 애 하나 들어왔다면서? 출근했어?”

“아 미소? 벌써 소문이 퍼졌어? 걔는 출근 전부터 손님들이 대기하고 있어, 대기표 뽑아야 될 정도야.”

“그래? 한 번 보게.”

“그래? 그러면….”

마담이 하루가 들어간 방으로 가려고 하자, 사내가 붙잡았다.

“어허, 중간에 아가씨 빼면 단골 삐지지. 기다릴게.”

“아휴 고마워, 하나 놀고 있으니까 얘라도 붙여줄게, 쉬고 있어.”

“그러던지.”

잠시 후.

하루는 한 타임이 끝나자마자 마담에게 붙잡혀 안쪽에 가장 큰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 입고 있는 원피스는 가슴을 여며주는 단추에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강수대 대원들도 실시간으로 그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우….”

“이야.”

“니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아가야?”

대원들은 카메라를 통해 사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들 한 마디씩 쏟아냈다.

-얘네 마스크가 딱 조폭들입니다.

-이마에 써 있네, 무.진.파.

-드디어 등장이네, 하순경 긴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단은 쟤네 신경 거슬리지 말고…

하루가 옆에 앉자 니트 사내는 그녀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거 완전 남자 홀리게 할 얼굴이네, 너같은 애가 왜 이런 데 들어왔지? 텐프로나 너튜브 방송같은 거 하면 훨씬 많이 벌 텐데?”

-오, 씨 맞는 얘기네.

-뭐라고 해야하지? 뭐라고 해야지?

-그,그, 밑바닥 시궁창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아니 그걸 말이라고…

“밑.바.닥. 시.궁.창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헐…

-헉

하루의 국어책 읽는듯한 말투와 충격적인 답변에 사내들은 순간 행동이 정지되었다.

노래방 안에는 갑작스레 적막이 가득해졌다.

그때, 니트 사내가 손뼉을 크게 쳤다.

“아, 아하하하!! 재밌네, 재밌어, 솔직해서 좋네, 도도해!”

“맞습니다.”

니트 사내는 하루에게 몇 살이냐, 어디 사냐, 뭐하고 살았냐, 돈은 얼마나 있냐 등등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미소라고 했나? 오빠가 나중에 보너스 많이 챙겨줄 테니까, 여기서 계속 일하고 있어. 알았지?”

“알았다.”

“크 마지막까지, 요즘 젊은 애들은 참 당돌해. 좋아, 오빠는 왕과장님, 아니 왕오빠라고 부르고. 다음에 또 보자고?”

“가라.”

“아하하핳! 그래그래 갈게!”

하루가 무슨 말만 해도 좋다는 말을 남발하던 왕과장은 그 무리를 이끌고 떠났다.

* * *

왕과장이라 밝힌 사내는 채 사흘이 지나기 전에 다시 하루를 찾아왔다.

“오빠가 계속 우리 미소가 생각나더라고.”

“아.”

-하루, 보너스, 보너스 얘기 꺼내 봐, 자연스럽게.

인이어로 해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루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비장한 눈으로 왕과장을 보며 말했다.

“보너스, 보너스 많이 준다고 했어.”

“어…어? 아, 그게….”

왕과장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갈등했다. 그러자 하루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없으면 됐어.”

“어? 아, 아냐 아냐, 있어 있어. 이게 말이지…”

왕과장은 직접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서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상자를 꺼내었다. 마치 담배 케이스같았다.

그곳에는 하얀색 캡슐 수십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보통 캡슐의 절반으로 귀여운 크기였다.

-대박, 하후임 최고입니다.

-미인계 제대로 통하네.

-저걸 저렇게 가지고 다닌다고?

“이게 하나에… 아무튼, 이게 좀 비싼 거거든? 이걸 미소 단골들한테만 권해봐. 가볍게, 싫다고 하면 바로 빼고. 돈은 우리가 알아서 받을 테니까, 문제 생기면 오빠가 다 해결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루는 캡슐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하루가 순순히 대답하자 왕과장이 케이스에서 캡슐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넘겨주려 했다.

스륵

“엇!”

캡슐 하나가 통, 튀어 허공을 갈랐다.

워낙 몸체가 작고 왕과장의 손가락은 두껍다보니 미끄러져서 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때.

하루가 가볍게 그것을 공중에서 낚아채더니, 아무렇지도 않고 손을 펴고 그것을 확인했다.

“어, 어, 잘 했다. 무사하네, 조심히 다뤄야 해.”

“응.”

왕과장은 하루에게 캡슐 세 개를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를 두고 일을 하러 가야한다는 게 정말 슬프구나. 내일 또 올게, 우리 아가 잘 있어.”

-해, 해수야 어디 가 어디!

-오늘은 기필코 저 주둥이를 찢고…

-근육몬! 막아! 막아!

인이어로 전해듣는 해수의 반응에 하루가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습에 왕과장은 순간 주변 시간이 멈추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가, 가, 갈게, 아, 안녕.”

왕과장은 노래방을 나서는 길에 자꾸 뒤돌며 애타는 얼굴을 했지만, 하루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노래방 앞에 정차시킨 차 앞.

왕과장은 노래방을 올려다보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깡식아, 불.”

그의 말에 깡식이라 불린 사내가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왕과장님, 저 여자,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상사병처럼 속이 쓰리던 왕과장은 바로 인상을 확 찌푸렸다.

“쓰읍, 후… 뭐가?”

의심 눈치는 빠르지만 상사 감정은 헤아릴 줄 모르는 깡식이는 신나게 말을 이었다.

“애초에 왕과장님 말대로 저 얼굴에 너튜브를 하든지 텐프로 가지, 여기서 푼돈을 벌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약 떨어트릴 때 잡아채는 거 봤는데, 그 반사신경도 뛰어나고, 삼두에 근육이 붙어있었습니다.”

“운동하나 보지 뭐, 더 매력있네.”

“무릎이랑 허벅지 안쪽에도 흉터가 있었습니다.”

“허벅지 안쪽? 이 새끼 자세히도 봤네, 언제 다쳤지, 가여운 꽃사슴같으니….”

왕과장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고 깡식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과장님, 쟤한테 빠졌습니까?”

“뭔 소리야, 그래서 니가 하고싶은 말이 뭐야.”

깡식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왕과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짭새 아닐까요?”

“하….”

왕과장은 인상을 찌푸린 채 깡식과 멀어지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담배를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버리고 구둣발로 지졌다.

“야, 깡식아.”

“네 형… 과장님.”

“너 같으면 저 얼굴에 쥐꼬리만 한 월급 받는 짭새를 하겠냐? 현장 투입된 거면 형산데, 저런 여형사가 있다고?”

“죄송합니다.”

깡식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왕과장은 손바닥으로 그의 뒷목을 내리쳤다.

“죄송할”

짜악!

“짓을”

짝!

“애초에”

짝!

“하지 마 이 새끼야!”

퍽!

마지막에는 화를 못 이겨 발로 그의 옆구리를 찼다. 깡식은 옆으로 밀려나 차에 부딪히고 나서야 다시 중심을 잡고 자세를 잡았다.

“어딜 이 새끼가 모함을 해 모함을, 저런 천사가 날개 잃고 우리 구역에 떨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알겠습니다.”

왕과장이 그제야 차에 탔다. 하지만 운전석에 타는 깡식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내가 시발, 저 년 짭새라는 거 찾아내서 너는 좃되게 만든다.’

* * *

며칠 뒤, 부둣가에 있는 허름한 창고.

안에는 벌거벗은 왕과장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는 매질을 당하여 온몸에 피명이 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서 있고, 반대편에는 하얀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중년인이 소파에 앉아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차부장님….”

차부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소파에서 등을 떼고 일어나 왕과장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죄송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요… 죄송할 짓을….”

그가 허공에 한 손을 내밀자, 구석에 있던 깡식이가 후다닥 달려와 자신이 찍은 사진 한 장을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하루가 강진경찰서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다.

본래 첫 출근 때부터 본부를 인근 원룸으로 옮겼지만, 하루가 못다 챙긴 특수방검복을 가지러 갔었고, 잠복 중인 깡식이가 그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차부장은 사진을 왕과장 앞에서 흔들며 말을 이었다.

“왕과장님아, 과장씩이나 달아놓고 뇌에 좃대가리만 꽉 차 있으면 어떡해요? 그렇게 예뻤어?”

“죄, 죄송합니다. 바로 쫓아내고… 줬던 약도 어떻게든 다 회수하겠습니다! 한 번만 절 믿고…”

차부장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가만히 걷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왜 쫓아내, 좋지, 좋아. 선수들보다 예쁜 경찰이라… 저기 물 건너 큰 아저씨들이 환장하지 않겠어?”

“네…네?”

“왜, 못 알아듣겠어? 함정 판 경찰언니 우리가 함정에 빠트리자고, 알아들어?”

“네? 네, 네, 아, 알아들었습니다!”

“니가 벌인 일, 니가 끝까지 책임지셔야지요. 그림 한 번 잘 그려봐, 일 끝나면 거기 노래방은 약이든 애들이든 싹 정리하고, 알았어요?”

“네, 네!! 할 수 있습니다. 맡, 맡겨만 주십시오!”

* * *

며칠 뒤, 하루의 서브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왕변태: 미소씨,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어디서 볼까? 내가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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