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첫 출근
마담이 학순이를 부르자 노란 머리에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마른 남자가 나왔다. 그는 껄렁껄렁 걸어오다가 하루를 보고는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놀라긴. 쟤가 웬만한 여자한테는 눈썹도 안 흔들리는데, 자기가 워낙 이쁜가보다. 저런 표정도 짓네.”
학순이 다가와 하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그 눈빛에 희한하게도 음욕이 비치지 않는다.
“뭐에요?”
“뭐긴 뭐야, 여기 일한다고 온 거지, 그래서, 이름이 뭐야?”
마담의 시선이 하루에게 머물렀다. 하루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미소.”
“이름도 예쁘네, 본명?”
하루가 아무 말이 없자 마담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
“아 벌써 지어왔구나, 딱 좋다. 실명같아보여서 손님들도 좋아하겠어, 다른 아가씨들이랑 안 겹치고. 일단 여기 앉아봐, 아이고 곱네, 몸매도 늘씬하네.”
마담은 하루가 앞에 앉자마자 그녀의 얼굴을 세세히 뜯어보았다.
“그래, 이 일은 해봤고? 고정? 고정할 거지? 고정 해, 내가 많이 챙겨줄게.”
“···고정?”
하루는 이쪽 용어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다. 그 모습에 마담이 더 좋아했다.
“초짜구나? 좋지 좋아, 아주 아저씨들이 좋아서 눈 돌아가는 거 벌써부터 선하네! 고정은 우리 노래방에서만 일을 하는 거야. 출근하면서, 회사원처럼. 출근일수에 따라 고정급여도 받고, 그게 훨씬 좋으니까 괜히 다른 데 돌아다니면서 힘 빼지 말고 여기 있어, 잘 해줄게.”
하루는 카운터에 기대어 이쑤시개를 씹고 있는 학순을 보았다가 마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정.”
하루의 취직은 연기력과 상관없이 매우 순탄했다. 미리 준비한 대포폰 번호를 마담에게 알려주고 그곳을 나왔다.
* * *
다음날, 출근 시간은 밤 아홉 시다.
여덟 시가 되자 마담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소양, 준비하고 있지? 그때 봤던 학순이 보낼 테니까 나와 있어요.
“네.”
대원들과 함께 본부에 있던 하루는 전화를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메이크업은 막내의 여자친구 전유리가 퇴근하고 와서 해주고 갔다.
이제 비행 스케줄이 있어서 며칠 못 온다며 메이크업 특강도 해주었다.
또각 또각
하루가 파티션너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까만색 무광에 바닥은 빨간색인 반전이 있는 하이힐, 쭉 뻗은 각선미가 돋보이는 검은색 미니 원피스, 살짝 드러난 쇄골.
그 아찔한 모습에 대원들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거나 피했다.
“그, 그 하순경. 고생이 많네, 진짜 많아.”
“흠··· 뭔가 마음이 아프구만, 백수오빠들 먹여살리려고 막냇동생이 일 가는 느낌이야.”
“맞습니다··· 딱 맞는 표현이십니다. 하후임, 잘 다녀오세요.”
“네, 그럼.”
해수는 하루를 약속장소로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일어나 본부를 나섰다.
하루가 나가자 대원들은 각자 흩어져 이동식 본부인 봉고차로 가져갈 짐을 챙겼다.
무진파 주요인물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고, 하루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100미터 안쪽에서 감청하면서 대기하기 위함이다.
또각 또각
주차장으로 가는 길, 그 짧은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위에 얇은 긴팔 셔츠를 걸치고 있지만, 길쭉한 다리와 하이힐 소리 덕분이다.
본부를 나서기 전부터 무거운 표정을 짓던 해수가 차 문을 열어주며 중얼거렸다.
“다음부터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아닙니다. 저, 이번에 수사에 크게 공헌하는 것 같아서 매우 좋습니다.”
“···그래, 가자.”
약속 장소는 경찰서에서 5분 거리, 한 원룸의 앞이다.
하루가 내려서 문을 닫기 전, 해수가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루.”
“네?”
그렇게 꾸며서 그럴까? 평소보다 더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돌아섰다.
달빛에 옆모습 윤곽이 비치며, 얼굴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해수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어, 그, 누가 터치하려거든, 손가락을 꺾어버려. 내가 책임질 테니까.”
하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네.”
대답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옆머리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내려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그 모습이 정말로 다른 여자들처럼 여성스럽다.
옷과 메이크업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듯하다.
하루가 돌아서서 원룸 앞에 서 있자, 금세 봉고차가 와서 그녀를 태웠다.
* * *
황진이 노래방.
노래방 카운터 옆에 작은 방이 딸려있다. 문이 반쯤 열려있는데 그곳을 학순이 확 열어젖혔다.
안에는 다른 여자 세 명이 미리 와 있었다. 한 명은 접혀있는 이불에 등을 대고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고, 한 명은 한쪽 무릎을 접고 담배를 쭉쭉 빨고 있다. 그 자세가 무방비하여 빨간 속옷이 적나라하게 보였으나 학순이라는 사내도 그 여자도 신경쓰지 않았다.
안쪽에 한 여자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그녀 역시 학순이 보고 있어도 무덤덤했다.
“여기 미소씨, 처음이니까 잘 가르쳐줘.”
학순은 하루를 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여자는 관심도 없고, 담배를 태우는 여자는 하루를 힐끔 보았다가 금세 시선을 거뒀다.
하루는 좁은 방 입구에 멀뚱멀뚱 서서 옷을 갈아입는 여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도 편한 옷을 입고 왔다가 여기서 갈아입으면 되겠··· 아니다.’
하루는 자신의 몸에 수많은 흉터들을 떠올리고는 미간을 좁히며 그 생각을 털었다.
“뭘 봐 썅년아.”
그때 돌연 들려오는 쌍욕, 옷을 다 갈아입은 여자가 하루를 보며 험악한 인상을 지어보였다.
하루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음, 니 뱃살?”
-하,하순경···
-멋있다···
“뭐, 뭐?”
“풉!”
여자는 황당해하며 두 손으로 배를 가렸고, 휴대폰을 만지던 여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런 미친년이!”
성이 난 여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하루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할 때,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랄하지 말고 앉아, 뭔 씨발 이딴 데서 텃세를 부려.”
담배를 태우던 여자다. 그녀는 하루에게 시선을 주며 옆에 앉게 했다. 하루를 죽일 듯이 덤벼들던 여자는 뭐라 중얼중얼거리며 물티슈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예쁘네, 어리고, 쌩짜?”
여자는 눈썹이 진하고 눈빛이 날카로운 것이 한 성깔 하게 생겼다. 이 방의 서열 1위인 듯하다.
하루는 또 처음 듣는 용어에 되물었다.
“생짜?”
“생짜구만, 냄새가 그랬어. 난 주연, 쟨 하나, 아까 나간 년은 딸기.”
“난 미소.”
단답할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에는 대놓고 반말이었다. 주연은 말을 끊고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하루의 얼굴에 내뱉었다.
“후··· 혓바닥이 반토막인가?”
“아니?”
하루가 연분홍 혓바닥을 보여주자 주연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재밌는 년일세.”
-나 진짜 이거 감청하다가 간 떨어질 듯
-꿀잼입니다. 스팩타클합니다.
얼마 안 있어 첫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마담은 문을 열고 아가씨들을 보며 말했다.
“세 명, 아, 미소양도 나와.”
“네.”
핸드폰녀는 세 명이라는 말에 처음부터 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등을 그대로 붙이고 있었고, 하루와 담배녀, 쌍욕녀가 일어났다.
마담이 노래방 3호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손님들에게 말했다.
“아가씨들 들어가요.”
“아 빨리 와 빨리, 3분이나 지났어.”
담배녀, 쌍욕녀, 마지막으로 하루가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반응에 마담이 흐뭇하게 웃으며 부연설명을 했다.
“여기 이 아가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예쁘지?”
“오오.”
“와씨, 연예인이야?”
“쟤! 나 무조건 쟤!!”
남자들의 격한 반응에 마담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이 일 처음 하는 거니까 살살 다뤄요. 알았지?”
“뭐 시발 그런 게 어딨어! 일루와! 여기 오빠 옆에 딱 앉아!”
쌍욕녀 딸기가 딱 봐도 진상으로 보이는 그 남자에게 하루를 밀었다.
그런데 하루가 막상 옆에 앉으니까 남자는 존예 포스에 넋놓고 구경만 했다.
뭔가 감히 손을 댈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와, 와··· 나 사십 평생에 너처럼 예쁜 애 처음 본다. 며, 몇살?”
“스무 살.”
이건 마담과 미리 말을 맞춘 거다. 얼굴이 커버 가능하다면 무조건 어린 게 좋다고.
“어휴, 완전 애기네 애기, 살 뽀얀 거 봐.”
다른 남자들도 옆에 아가씨를 앉혀놓고도 하루에게 시선이 가 있다. 그 중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났다.
“야, 뭐하냐 이 새끼야, 비싼 돈 들여서 아가씨 불러놓고 쳐다만 보고 있느니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지, 비켜.”
-이게 뭔 개소리지?
-하순경, 내가 책임질 테니까 저 새끼가 어디든 터치하려고 하면… 도, 돌격아! 어디 가! 야 오갱아 쟤 잡아!
하루의 인이어가 한창 시끌시끌하던 그때, 턱수염 남자가 게걸음으로 다가와 하루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얹으려고 했다.
하루는 그의 역겨운 손이 살에 닿기 전에 손가락을 낚아채어 꺾으려고 했다.
그때.
슥-
그때 훅 들어온 다른 가느다란 손, 그 손이 남자의 손을 잡아챘다.
담배녀 주연이다.
“아아, 오빠 얘는 아직 애기잖아, 오늘 첫 출근이라니까?”
“뭐야 너는?”
그녀는 자리를 옮겨서 하루와 남자 사이로 끼어들더니, 자신의 다리에 남자의 손을 얹혔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그제야 남자의 인상이 살짝 펴진다.
“오빠 때문에 얘 내일 출근 안 하면 어떡해? 예쁘잖아, 출근 계속 시켜야 계속 보지. 적응해야 자주 보고 손도 가고 놀러도 가고 그러지?”
“놀러? 단 둘이?”
“아마도?”
“아, 응, 그렇지 흐흐. 그래, 내가 처음부터 너무 놀래켰네. 미안 아가야, 너무 이뻐서 그랬어 이뻐서. 이해하지?”
턱수염이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자 하루가 징그러운 듯이 상체를 물리며 고개를 도리도리했다.
“아니.”
“뭐지, 잘못 들은 건가?”
“놔둬, 귀엽잖아.”
“그렇긴 하네.”
하루는 마네킹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있었고, 옆에 남자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잠시 후.
옆에 남자가 담배 하나를 물고 화장실을 간 사이, 쌍욕녀 딸기가 생글생글 웃으며 하루에게 다가왔다.
“야, 이년아! 너도 뭐 좀 해라, 옆에 오빠 과일이라도 좀 먹여주든지.”
하루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그녀를 보았다가 다시 원상태로 전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딴 게 어떻게 여기로 굴러왔지? 엉 오빵 와쏘? 딸기 기다료짜나!”
그녀는 남자 파트너가 들어오자 금세 혓바닥이 반토막이 나서 애교가득한 말투로 맞이했다.
옆에 남자가 노래를 부를 때, 하루가 돌연 테이블에 있는 탬버린을 들었다.
“응?”
“어, 애기 움직인다.”
퉁 퉁 퉁 퉁 퉁 투룽 퉁 퉁 투룽 퉁
그녀가 천천히 박자를 타더니, 점점 박자를 현란하게 쪼개며 탬버린을 쳤다. 그 심상치 않은 실력에 사람들이 놀랐다.
“뭐, 뭐야 잘하는데?”
“풉, 아니, 뭐지, 왜 웃기지.”
* * *
“오빠 또 와, 기다릴게.”
“안녕, 쪽!”
여자들이 먼저 나오고, 술에 잔뜩 취한 남자들이 비틀거리며 나왔다.
“어으, 머리야.”
“아, 허무하다.”
마담이 눈웃음을 치며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재밌었어?”
턱수염 남자가 엄지를 추켜올렸다.
“최고, 최고, 저 탬버린 에이스, 내가 무조건 지명할 거야! 알았지?”
“아 아가? 그럼~ 미리 연락만 주면 빼놓지.”
“쟤는 진짜 무슨 티비 연예인 보는 것 같다니까. 신기하다 진짜, 저런 애가 왜 여기서 노냐.”
“용돈 벌고 싶은가보지, 그런 이쁜이들 많아. 계산해줄게.”
* * *
바로 다음 손님 무리가 대기하고 있어서, 쉬는 시간은 10분만 주어졌다.
주연은 다시 그 좁은 방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었고, 핸드폰녀 하나는 아까 자세 그대로 있었다.
하루는 가만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딸기가 힐끔 보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촤아아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딸기가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막고 서서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하루에게 던졌다.
탁
하루가 라이터를 잡아채자 그녀가 턱을 들며 말했다.
“불 붙여봐.”
하루는 손에 든 라이터를 보았다가 그녀를 보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는 손가락이 없어?”
딸기는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한 손을 번쩍 추켜들었다.
“이 미친 썅년이!”
* * *
같은 시각, 강수대 이동식 본부 밖.
해수가 감히 하루의 몸에 손을 대려는 지옥행 탑승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지이잉 지이이잉
다른 전화면 무시하겠는데,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물어왔을 때만 전화를 하는 정영수이기에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어.”
-신형님?! 재벌 조녜 다 가진 안서은 대표이사님하고 싸우셨습니까?
“아니, 왜.”
-대성 쪽 기자들이 신형님 물고뜯고 난리났는데요? 그 뭐, 교도소에서 죽은 반모씨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