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화장하는 하루
작전명 ‘미인계’.
하루가 도우미로 위장 취업하여 무진파와 연계된 마약 유통망을 알아내는 작전이다.
-노래방 도우미처럼 메이크업하는 법
“하순경.”
검색어를 입력하던 하루는 신해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섰다.
“혹시… 전에 밥 맛있게 먹었을 때 표현하는 법 알려준 사이트가 여기야?”
하루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존… 씨… 맞습니다.”
“닫아.”
“넵, 신선배님.”
해수는 고민에 빠졌다. 하루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법을 모른다.
경호원으로 출근하던 시절 덕분에 기초화장은 할 줄 아는데, 그것마저도 어색하다.
해수는 이런 것에 도움을 줄 만한 인물로 주변인을 생각하다가 안서은이 떠올랐다.
슥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안서은의 연락처를 찾던 그는 멈칫했다.
‘대성….’
박 경위의 X파일에 칠성회 의심 그룹 중에 그녀의 집안이 거론되어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해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하루가 커뮤니티 사이트에 입력하려던 검색어를 훔쳐본 곽팀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문제네, 나도 화장하는 방법은 모르는데….”
“당연한 말을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나?”
“어허? 오갱이 슬슬 기어오르네? 이러다 계급장 떼고 맞짱뜨자고 하겠어?”
“에이, 그건 안 하지, 우리형님 장례식 치러주기 싫어.”
“그건 그렇지.”
그때, 막내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해수가 그를 보며 턱짓하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제 여자친구… 부를까요?”
“아?”
“아 맞다!”
대원들은 그제야 막내의 여자친구가 현재 남자의 로망인 스튜어디스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 * *
잠시 후.
해수와 하루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똑똑
강수대 본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막내가 벌떡 일어났다. 팀장도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어, 왔나?”
막내가 문을 열어주기 전, 먼저 문이 열리며 완벽한 고양이상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케 폴로 미니원피스를 입어 길쭉한 다리가 돋보인다.
그녀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막내를 보고는 금세 활짝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펼쳤다.
“냥닝뇽!!”
“어, 어 융융….”
막내는 대원들 눈치를 보다 작은 목소리로 별명을 말하며 안겨드는 그녀를 맞이했다.
여자친구는 마치 몇 달 만에 만난 것처럼 달려들어 막내에게 안기고는 매달리기까지 했다.
“커, 큼.”
“허허, 청춘이구만, 보기 좋아 좋아. 그대로 진행하자, 나 나이는 먹었어도 꼰대 아니야.”
팀장의 이상한 말에 막내는 더 눈치를 보며 그녀를 떨어트리고 뒤늦게 인사를 시켰다.
“그, 예, 팀장님, 제 여자친구입니다.”
팀장에게 소개를 하자 여자친구는 방금 애교 가득한 얼굴은 어디 가고, 도도한 얼굴로 싹 바꾸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마치 얼굴은 고양이인데 다리가 긴 사바나캣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였다.
“안녕하세요. 전유리입니다.”
혀 짧은소리에서 갑자기 아나운서처럼 똑 부러진 말투에 팀장은 신기해하며 일어나 손뼉을 쳤다.
“아, 아이엠 유리? 유리처럼 투명한 분이었구만! 비자금 생성할 일은 없겠어! 으허허!”
물론 갑작스런 무리수에 부끄러움은 대원들의 몫이었다.
“티, 팀장님.”
“형님, 잠깐 나 좀 보자.”
그때.
“풉-”
싸늘해진 공기를 뚫고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유리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은 것이다.
그 반응에 오갱은 물론 팀장도 놀랐다.
“엉?”
“이게… 통한다고?”
뒤늦게 표정을 가다듬은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대충 내용을 전해 들었던 만큼 본부 안을 둘러보던 유리가 의문을 표했다.
“그 여자분은?”
“금방 오실 거야.”
말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째진 눈, 강철같은 근육, 수많은 흉터. 해수의 등장에 전유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막내 뒤에 숨었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탈인간급 근육몬이기에 내성이 생겨서 웬만해서는 겁먹지 않지만, 해수에게 풍기는 기운은 그녀를 바짝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로 막내는 활짝 웃으며 신이 나서, 외출을 나갔다 들어온 주인을 맞이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듯이 다가가 해수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했다.
“선배님! 제 여자친구입니다. 유리야! 이 분이 신해수 선배님이셔!! 신해수 선배님!”
방파제가 없어진 유리는 당황해하다가 눈치 없이 신이 난 막내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아… 전유리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귀에 피가 나도록.”
“신해수입니다. 반갑습니다.”
본부에서는 들리지 않던 여성의 목소리에, 해수의 등 뒤에 가려져 있던 하루가 옆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헙!’
하루와 얼굴을 마주친 유리는 다른 의미로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이, 이 분이…?”
“맞아, 내 유일한 후임, 하루씨.”
유리는 진심으로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자 형사, 그것도 제압 실력도 좋다고 들어서 성별만 여자고 막 근육질에 피부도 구릿빛이고 걸크러쉬 쩌는 여전사 정도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허리가 쏙 들어가 있고,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가련한 얼굴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아, 아니… 이건 반칙이지.’
가까이서 보니 더 충격적인 외모다.
창백하리만치 투명한 피부, 가지런히 뻗은 속눈썹, 무심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 상처받은 듯한 아련한 눈동자. 남자들이 환장하는 갸름한 여우상, 청순함을 향상시키는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자그마한 귀까지.
전국에 내로라하는 미인들만 모여있는 자신의 항공사 내에서도 탑 급, 아니 항공사 CF를 찍어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다.
그렇다고 실전 실력이 좋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냐? 그것도 아니다.
굵기는 자신과 비슷해 보이지만 내실이 다르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는데 그 가느다란 팔뚝에 압축형 근육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이로 툭 튀어나온 힘줄이 대미를 장식한다.
그냥 인형처럼 자리만 차지하는 적당히 예쁜 여형사면 질투심에 더해 불안감까지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가 되니까 아예 원래 있던 작은 불안감도 해소되고 존경심마저 생기려고 했다.
다 잘하는데 예쁘기까지 한 멋진 여성은 많은 여성의 워너비다.
전유리는 남자친구의 일터 구경이나 하고 대충 일은 끝내야겠다는 처음 마음가짐은 온데간데없이 버렸다.
팔뚝을 걷어붙인 그녀는 자신이 챙겨온 장비를 꺼내며 비장하게 말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실력 발휘를 해보겠습니다.”
“오오, 머, 멋있어 융융!”
“나만 믿어! 우뇽밍!”
오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는 냥뇽닝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매번 바뀝니다. 자신도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 그런 거군.”
사무실 가운데에 하루를 앉히고, 전유리를 포함하여 네 명의 남자가 하루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하루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가장 가까이 있는 전유리가 그녀의 감정을 읽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되겠다. 저쪽으로 가서 하죠, 아저씨들은 할 일 하세요. 여기 아가씨는 변신 좀 할게요.”
“아….”
“네, 네, 이거 방해했네요. 죄송합니다.”
“일합시다 일!”
전유리는 하루를 데리고 사무실 구석에 파티션으로 가려진 곳으로 향했다.
속칭 아저씨라 불린 이들은 일을 하는 척하지만 파티션너머의 소리가 귓가에 민감하게 들려왔다.
“…눈 위에 보시고, 여기, 이 손가락, 아 손가락 따라서 눈 내리지 마시고요. 여기에 고정, 그렇죠.”
여자 한 명이 더 들어왔다고 사무실 냄새도 무언가 다르고 공기도 다르다. 유부남이 둘이지만 그냥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하면서 죄짓는 기분이 들어 해수는 고개를 강하게 털어 떨쳐냈다.
“…이것도 걸치시고, 발 사이즈 뭐에요?”
“235입니다.”
“오, 저랑 같아요! 운명인가? 이거 한 번 신어보세요.”
“예.”
잠시 후.
또각 또각 또각
남자의 달팽이관을 자극하는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지자 대원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어색한 걸음으로 나오는 하루의 모습이 한눈에 잡혔다. 허리를 잡아주는 진청색 벨트 원피스에 검은색 하이힐.
“어?”
“와……!”
“헐…….”
가식 한 점 없는 순수한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더 어려보이게 앞머리는 눈썹에 가지런히 닿아있고, 어깨 아래로 흐트러져 있던 머리를 뒤로 한 묶음으로 깔끔하게 묶어서 새하얀 목선을 드러냈다.
진한 눈화장은 평소보다 눈이 1.5배는 더 커 보였고, 눈꼬리가 길고 끝은 살짝 올라가 더욱 도도하고 새침하게 보였다.
눈 밑에 펄은 그 와중에 사랑스러움을 챙겼고, 연분홍색 입술은 탄력 있고 촉촉하다.
“음….”
해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몇 초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네 쌍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하루는 얼굴을 붉히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소리쳤다.
“이제 출동 나가겠습니다!”
“어어어!”
“아냐아냐아냐 잠깐!”
해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예쁘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과하게 예쁘다. 무난해야 작전에 변수가 없는데 필요한 예쁨력이 넘쳐나서 문제다.
해수는 하루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휘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 덜 예쁘게 보이는 화장법은 없습니까?”
“아.”
“허허, 참.”
해수는 문자 그대로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돌려서 지금 너무 예쁘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헛웃음을 흘렸다.
누구보다 그렇게 받아들였어야 할 하루지만, 그녀만이 해수의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전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덜 예쁘게 보이는 화장법, 없습니까?”
“에? 아하하”
* * *
[황진이 노래방]
무진파 조직원들이 가끔 출몰한다는 노래방이다.
또각 또각 또각
아직 해가 떠있는 저녁.
하루는 전유리가 해준 화장에 그녀가 준 옷과 하이힐을 신고 노래방으로 갔다.
낯선 구두 소리에 노래방 카운터에 있던 마담이 고개를 돌렸다가 하루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떨지 말고, 껌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묻는 거야, 여기 일자리 있어요?
하루의 컨셉은 철없는 어린 여자다.
그녀가 작게 입술을 열었다.
“…네.”
-대, 대답하지 말고, 대답하지 마.
“알겠….”
-…
뒷말을 삼킨 하루는 그제야 하루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담을 발견했다. 반짝반짝이는 탐욕의 눈빛, 돈으로 보는 것이다.
하루는 삐걱삐걱 걸어가 그녀를 마주 노려보았다. 그렇게 1초… 2초… 3초 정도 지났을 때, 껌을 두 번 씹고는 입술을 열었다.
“여기. 일자리. 있어요?”
-아…
-방금 AI 튼 거 아니지? 내 내비게이션이 딱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하순경이, 못하는 것도 있구나.
-이거 주인이 이상하게 보고 거절하는…
-쉿, 하순경 헷갈립니다. 쉿
마담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카운터에서 달려나와 하루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 있지 있지! 넘치지 넘쳐, 없어도 만들어야지, 야, 학순아!!”
-음…
-조, 좋은데?
-계획대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