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미인계
후둑 후두둑
피 묻은 치아 여러 개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예 혀를 깨물지 못할 정도로 많은 치아가 생으로 뽑혀나갔다.
“아,아으윽”
반팀장은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했다.
‘마,마실장보다 더 잔인한 놈….’
신해수는 건조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다가 발로 그의 배를 밟아 멈춰 세웠다.
“너 회사 놈이지.”
반팀장의 눈이 확 커졌다.
‘역시 이 자는 회사를 알고 있었어.’
“배신주가 보냈냐?”
반팀장은 피가 철철 흐르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씨가 보냈냐?”
교관이라고 하면 이 자가 하루의 존재를 눈치챌까 싶어서 성만 말한 것이다.
하지만 마씨가 흔하지 않듯이, 반팀장은 바로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듣고 눈이 빠질 듯이 커졌다.
‘마, 마실장을 알고 있어? 어떻게? 마실장은 절대 일반인이 알 수 없다. 회사에 대해, 회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위험하다. 위험해.’
반팀장은 누가 봐도 엄청나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는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모르겠지, 그럼 맞아야지.”
해수의 커다란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반팀장은 그 주먹을 맞이하며 의식을 잃었다.
* * *
엘리베이터는 단순 고장으로 신고하고 구급대원들을 돌려보냈다.
바로 수리공 두 명이 왔고, 그들은 10층에서 벨트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어, 이거 누가 일부러 끊은….”
스윽
그때, 해수가 나타나 경찰 공무원증을 보여주며 긴밀하게 말했다.
“증거만 기록해주시고 비밀로 해주십시오. 원활한 수사를 위해.”
“아,네,네.”
“그,그럽죠.”
기절한 반팀장은 옥상 보일러실에 임시로 가뒀다. 법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압박취조를 하기 위함이다.
회사 관련 사항을 강수대 본부에서 취조할 수는 없으니.
해수는 1층에서 하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렸다. 이놈 외에도 또 다른 놈이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 해수님!”
하루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해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뻐 총총걸음으로 달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반가운 사람이 보이면 더 반가운 법이다.
하루의 표정은 보고 있는 해수도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왔어, 가자.”
하루가 입주민 엘리베이터 고장 문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습니까? 그럼 이거 타고 7층까지 가는 건 어떻습니까?”
하루의 손끝이 상가 전용 엘리베이터로 옮겨졌다.
해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계단오르기는 좋은 지구력 운동이지, 10층이면 한참 모자라지만.”
“네….”
오늘 하루종일 뛰어다녔던 하루지만, 군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집에 들어가서 하루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나오자마자 그녀의 팔목을 잡아끌며 소파에 앉혔다.
“하루, 칠성회라고 들어봤어?”
“칠성회… 사이다?”
하지만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해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녀가 모르면 회사 출신들도 모를 수 있다. 회사와 칠성회… 칠성회가 극비리 비선실세 단체인 건가?
“그럼 북두칠성 문신은 본 적이 있나? 이렇게 생긴 거.”
“북두…? 아.”
해수가 사진을 보여주자 하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급속도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교관… 등, 왼쪽 위에… 그와 같은 문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시 15년이 넘었는데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팀장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피투성이에 얼굴이 퉁퉁 부어서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이 사람은 본 적이 있나?”
하루가 흠칫했다.
“이, 사람…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절 모를 겁니다. 스치듯이 두 번 정도 보았습니다. 저보다 한참 윗 기수일 겁니다….”
“음….”
“이 사람이 해수님을 찾아왔습니까?”
“응.”
“죄송합니다! 저,저때문에…!”
하루의 반응에 해수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미세하게 저었다.
“아냐, 나 잡으러 온 거야.”
해수는 짧게 박 경위 관련 사건과 회사, 그리고 칠성회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박영철 경위라는 분도 자살위장살해를 당하셨어, 이어서 내가 타깃이 된 거지.”
해수는 말이 나온 김에 박 경위의 아파트 복도 cctv 영상에 찍힌 거구의 사내를 보여주었다.
아주 멀리서 찍힌 옆모습과 뒷모습 뿐이지만, 기억력과 관찰력이 좋은 하루라면 누군지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 사람은 아는 사람인가?”
하루는 눈을 깜빡이며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추었다.
“이…”
하루가 말을 잇지 못한다. 영상에 그 남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하루의 눈에 선명한 공포가 담겨있다.
해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마교관이구나.”
목표가 점점 더 뚜렷해진다. 마교관, 그가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다.
* * *
끼익-
해수는 반팀장을 감금시켜둔 옥상 보일러실에 들렀다.
반팀장은 입에는 재갈을 물고, 두 손은 원통에 뒤로 묶인 채 얌전히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제압당하자 혀를 깨물고 죽으려고까지 했던 놈이니 고문으로 입을 열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놈이기에 힌트를 기대하고 찾아온 것이다.
슥
해수는 그의 재갈을 풀고 물었다.
“회사 위치가 어디야?”
“회사… 어디에나 이찌만, 너는 볼 수 어따.”
비장하게 말하지만, 이빨이 몽땅 빠져서 발음이 새니 우스꽝스러웠다.
“지랄하지 말고.”
해수는 엄지로 그의 쇄골을 살포시 눌러주었다.
“끄으으으읍!! 싸라리 날 쥭여라!”
“아냐, 내가 널 왜 죽여.”
이번에는 두 손으로 그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반팀장의 몸이 가늘게 떨림이 느껴진다.
하루보다 한창 기수가 높아보이는 자는 처음이기에 훨씬 독하고 실력도 좋을 줄 알았는데, 회사 출신 치고 겁도 많고 엄살도 심한 것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뽑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칠성회 일곱 단체가 어디어디인지, 널 보낸 회사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마씨 그 새끼는 지금 어디 있는지, 이 중에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손 들고 대답해, 알았지?”
“말더 안 대는… 아아악!!”
해수는 반팀장의 입에 재갈을 다시 물렸다. 리드빌딩 옥상에는 그의 억눌린 비명이 오랫동안 울렸다.
탁 탁
몇 시간만에 나온 해수는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회사출신답게 입은 무거웠지만 표정은 다채로웠다.
그의 표정으로 알아낸 정보는 두 가지다.
스스로 반팀장이라고 부르는 그는 일성의 배신주가 보낸 것도 아니고, 마씨가 보낸 것도 아닌, 단독으로 암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씨에 관해서다.
반팀장은 왠지 마씨에 대해 물으면 감정기복이 컸다. 그래서 계속 자극을 하니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씨… 하, 마실장, 그자가 어디 있는 지 알면 뭐 어쩌게?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세상에는 원래 자신이 모르는 괴물이 더 많은 법이야.
-마실장이 혹시 총도 피하나?
해수의 물음에 가만히 고민하던 그는 휴대폰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다니는지는 아무도 몰라, 이건 나한테 연락할 때 쓰는 그의 번호다.
해수는 바로 그 번호를 메모장에 적어놓았다.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을 하면 혹시나 그가 눈치챌까 하여 저장은 하지 않았다.
‘영수한테 부탁할 일이 또 생겼군.’
집으로 내려가자 하루가 작은 여행가방에 짐을 싸놓고 있었다.
“뭐지?”
“저는, 해수님을 위험에 빠트리게 합니다.”
“아냐, 내가 다 설명했잖아, 그들은 널 아직 몰라.”
하루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그녀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향했다. 그녀는 작게 우물거렸다.
“ 해수님을, 옆에서 지켜주려고… 경찰이 되었는데, 오히려 위험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는….”
“그래, 가.”
“…네?”
하루는 의외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해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가 있어, 내가, 아니다. 나도 모르는 곳으로 가 있어.”
반팀장이라는 자가 단독으로 진행했다는 말이 거짓일 수도 있고, 진실이라고 해도 어쨋든 칠성회에서 자신을 주시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하루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얘기하면 또 지켜준답시고 안 떨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냉정하게 그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떨어트려야 한다.
“잘 가고, 돈 넉넉히 줬으니까 시설 좋고 보안 확실한 곳에서 지내고, 출근하면 보자고.”
“아… 네, 안녕히, 계십시오.”
하루는 얼떨결에 허리를 깊이 숙이고 문 밖으로 쫓겨났다.
* * *
신해수는 반팀장을 데리고 같이 출근했다. 반팀장이 해수를 살해하려던 정황과 증거는 넘쳐났다.
덤프트럭 운전사는 실종되었다. 실패했으니 먼 곳으로 보냈다고 한다.
살인미수로 반팀장은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팀장이 교도소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반팀장의 암살시도 이후로 몇 달이 지났지만, 암살시도 비슷한 일도 겪지 않았다.
그가 알려준 마실장의 번호도 2G폰으로 추측되었다. 지금까지 세 번 켜졌지만 추적이 쉽지 않았다.
큰 단서를 가졌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루에게 다시 들어오라고 했지만, 고집을 부리며 들어오지 않았다.
쾅-
본부 문이 거칠게 열리며 곽팀장이 들어왔다. 그의 두 손에는 서류가 가득 들려 있었다.
“사건 왔다 사건~”
해수가 벌떡 일어나자 그보다 더 빠르게 근육몬이 달려나가 서류를 받았다.
“어이 고맙다. 다들 모여봐.”
“옙.”
“예 알겠습니다!”
팀장은 서류 가장 위에 있는 것을 소파테이블에 펴놓고 설명했다.
“마약팀이 맡은 사건인데 골치 아프다고 해서 우리한테 이관 왔어, 마약 쫓다 보니까 인신매매 장기밀매 다 줄줄이 엮여있는 거 같더래, 아니 왜 꼭 이 세 개는 졸라 같이 붙어다니는 거야 짜증나게?”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마약, 인신매매, 장기밀매, 이 세 개가 있으면 따라오는 게 뭐겠냐?”
하루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검지를 들었다.
“돈!”
하루의 반응에 곽팀장이 찰나 아빠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땡!”
“뭐야 저 표정, 형님이랑 10년을 같이 지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인데?”
“뭐 뭐 닥쳐, 빨리 맞춰봐.”
해수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조폭입니다.”
“그렇지, 조폭 새끼들 잡아내는 게 또 우리 전문이잖냐?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자고.”
“사무실에서 몸 푸는 양반이.”
“너도 얼마 안 남았다. 나 물러나면 니가 사무실 지켜야 돼, 사무실도 쉽지 않다. 니네 다칠까 봐 전전긍긍 얼마나 똥줄 타는데.”
평소처럼 욱하지 않고 다른 반응에 오갱이 미간을 좁혔다.
“뭔 소리야 갑자기, 물러나긴 누가 물러나, 형님 물러나면 나도 형사 때려칠겨.”
“헛소리 말고 다들 자료나 읽어봐, 야.”
꽤 많은 수사 자료를 읽고 두 시간 만에 다시 머리를 맞대었다.
사건은 이러했다. 마약 출처를 찾아다니다 보니 무진파라는 조폭들과 연계되어 있고, 그놈들이 요즘 중국과 거래가 잘 안 되니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연계해서 사람도 팔고 장기도 판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수사 중에 꼬리 자르기를 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노래방 도우미들 중에 괜찮다 싶은 애들 영입해서 손님들한테 약을 팔거나, 해외출장을 시킨다 이거지?”
“음… 웨이터로 위장잠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웨이터라… 돌격이나 막내는 너무 튀고, 오갱은 너무 늙었고….”
“이런 씨… 반박할 수 없다.”
그때, 하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잠입하겠습니다.”
“하,하루가 직접?”
“미인계?”
다들 일제히 하루를 보았다. 머리는 부시시하고 남자같은 활동복을 입고 있고 화장따위 하지 않았는데도… 눈이 부시다.
“통하겠는데…?”
하루는 일어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미인계.”